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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1부 씨앗(1) (4/109)



〈 4화 〉1부 씨앗(1)

시누이 가족이 재준의 집으로 들어온지도 벌써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가 살갗에 익숙해 지는것과 반대로 은영이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해 좀체 익숙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실 몇가지 있었다.

우선 시매부인 영길의 은영을 향한 필요이상의 '싹싹한'태도였다.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도무지 그럴 자신이 없는 그 비릿한 눈웃음을 유독 은영앞에서 흘려보내는것은 물론이요, 도무지 논리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수없는 상태로 자기혼자 신나서 떠들어 대는 화술(화술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아까운 것이 은영의 솔직한 속내건만)엔 익숙해질 자신이 없는 은영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대화 중간중간에 은영의 몸을 위아래로 그리고 좌우로 구석구석 살피는 영길의 태도에는 반쯤 포기하고 있는 심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누이인 연수가 생각보다는 그다지 자신을 악의적인 감정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과 -사실 연수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연재가 학생으로써 그리고 어른으로서 자신을 잘 따른다는 점이었다. 사실 은영으로써도 가장 기쁜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물론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있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시누이 가족이 새로 들어옴으로써 마지막 퍼즐의 한조각이 자리를 찾아 채워진것마냥 이제야 완전한 가족의 형상이 만들어진 느낌도 드는것이 사실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마치고 하루의 일정을 모두 소화해내고 시계를 올려다 보자니 밤10시를 훌쩍 넘기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기말고사와 함께 학생들도 방학을 맞는 덕분에 교사로써도 작금의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은영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바, 거의 녹초가 된 몸을 간신히 이끌고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


은영이 자가용에 시동을 걸자 야자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틈으로 낯익은 이의 얼굴이 들어온다.




"연재네? 후우 집에 같이 들어갈까?"




그런 생각에 연재를 불러 세우려던 은영이 잠시 멈짓하더니 이윽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어든다. 그리곤 핸드폰으로 연재의 전화번호를 찾아눌렀다.



"네.. 선생님"


얼마간의 신호가 흐르고 스마트폰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연재가 은영의 전화를받으며 말했다.





"어 연재야. 선생님...아니 음.."




은영은 잠시간 연재에 대한 호칭으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그만두기로 하고 말을 이었다.



"선생님도 지금 집에 가는 길인데 같이 들어갈래?"

-.......어디 계시는데요?



말을 받은 연재가 은영을 찾으려는듯 자리에 서서 수화기를 귀에 댄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 교문 근처에 있는데 아무래도 학교애들 많은것 같으니까 차를 다른쪽으로 옮길게 그쪽으로 올래? 아록상가라고 아니?"

-...........예 알고 있어요. 거기서 뵐게요 그럼





서둘러 전화를 끊는 연재를 바라보며 은영은 왠지 아차싶은 마음이 걸렸지만 서둘러 아록상가쪽으로 차를 몰았다.


아록상가앞에 차를 대고 몇분간 있자니 룸미러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연재의 모습이 보인다. 은영은 주위를 한번 살피고 차문을 열어 연재를 맞았다.


"연재야 타. 힘들었지??"


-아니요. 선생님이  힘드시죠

"어머 착하기도 해라."



어색한 기운을 조금이라도 걷어내려 애를 쓰는 은영이었지만 어쩐지 뜻대로 되지않는 기분이 든다. 한달 가까이 같이 생활하고 조금은 가까워진 마음이들어도 역시 사제지간이면서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의 괴리감은 차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사람을 조금은 낯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차를 몰아 20분 남짓한 집까지 달리자니 좀처럼 어색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은영이 음악이라도 틀 요량으로 카라디오 위에 손을 얹어보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한다. 얼마를 달렸을까. 신호등 앞에 멈춰선 은영이 조용히 연재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아록상가로 나오라고 한건 딱히 다른 뜻은 없었어."


-........... 알고있습니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선생님.



선생님. 지난 4년간 익숙하리만큼 들어온 단어이건만 지금 상황에서 은영의 귓가를 간지럽히는 선생이라는 단어는 왠지 무겁고 차가운 느낌이 든다. 은영은 짧게 쉼호흡을 한번 한뒤 연재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음. 호칭말인데. 우리끼리 있을땐 구태여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부르지 않아도 될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무슨?




"아니..아니... 그러니까 학교밖에선 가족이니까 그에 맞는 호칭을 쓰는 편이 좋지 않을까해서. 외숙모라든지."

-...........죄송합니다 전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편해서요


"아..아.. 그..그래?그럼 괜찮아 괜찮아 미안해하지마. 큭 그래 맞아 사실 쉬운 일은 아니지 하루종일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갑자기 외숙모라고 부르려니."



은영은 연신 연재의 표정을 살피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분명 자신이 원하는 대화의 흐름이 아니건만 지금 차안에서 나누는 연재와의 대화는 일말의 의무감과 본능 사이에서 표류하고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지극히 사무적인 대화는  후에도 계속됐다. 학교생활은 어떤지, 친구는 많이 생겼는지 뭐 그런류의 판에 박힌듯한 질문들과 교과서적인 답변들이 서로에게 오고가기를 몇번 반복하고 나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은영은 뜻모를 안도감에 연재에게 들키지 않도록 짧은 숨을 몰아 내쉬었다.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은영은 아쉬운 마음을 연재에게 내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밤 11시가 다되어가는데도 자신의 집 거실방이 환한 것에 조금의 이질감을 느끼며 은영이 초인종을 눌렀다.



"아.. 왔어? 연재도 같이 왔구나?"





초인종을 누르고 몇분 지나자니 조금은 상기된 표정의 남편 재준이 문을열고 나오며 은영과 연재에게 번갈아 인사를 건낸다. 은영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지만 그저 묵묵히 남편을 따라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구!!! 김선생님.. 아니지 아니지 그게 그러니까 흐흐 재준이 와이푸 오셔었눼!!!"


거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이내  익숙한 쇳소리가 은영을 맞이한다. 은영은 본능적으로 호칭에 대해서 쏘아붙일까하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한다. 그보다 영길주위에 벌어진 술판과 낯선 남자들을 향해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을 쏘아 올릴 뿐이다.



"우와.. 영길아 저분은 누구시냐?"

-아 그게 근데. 그러니까 흐흐 꺽. 윔마. 그게 윔마 처남댁이다임마. 춰남 뒈엑!

"이야. 저분이 니가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그분이냐? 역시 빨통이.. 아니지 아니지. 외모가 장난이 아니신데?"


-큭. 크큭. 아 그게 근데. ㅤ누에가 원제 고짓말하는고봤냐. 근데 그게 인간 유영길 거쥣말은 안한다 이거야.


은영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대면하고 애써 침착하려 애썼다. 어떻게 된일인지 남편을 올려다봤지만 재준은 잿빛을 구긴채 입을 다물고 서 있을 뿐이었다.


"처남댁 그러지말고 이리와서 한잔 따라봐요. 꺽. 영길이 처남댁이 따르눈 술한잔 먹고싶고만. 먹고싶아.. 큭큭 먹고싶다"


-아니 근데. 그게  미췬놈아. 남의 처남댁한데 근데 그게 뭔 말이려. 입닥치고 그게 근데 술이나 받아라.


은영은 가슴깊이 불쾌한 기분 한가득이었지만 딱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기어이 ‘저 인간‘이 일을 벌이는구나. 사업이 망할대로 망한것은 둘째치고 어머님과 남편, 그리고 나의 집에 기어 들어올 때부터 촉이 좋지 않았는데. 은영은 이미 술이 취할대로 취한 영길을 흘겨보며 자리에 서 있었다.

재준내외를 가만히 따라 들어오던 연재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 연재를 불러 세우려던 은영은, 방안에서 나오는 시누이와 시어머니를 마주하고는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도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연재의 뒷모습을 말없이 살펴봤다.


"야 유영길. 술이 먹고 싶으면 그냥 조용히 먹어라. 사고치지말고?"

-아 근데 그게... 연수.. 아니 머눌님와.... 근데 그게 친구들이랑 춰남댁 앞웨서 할소리냐.  그게 근데 놤편 기를 쉐려 줘야지.. 아 근데 그게 기를 모새워주면 다른거라도 세워주던가 큭큭

"진짜 한동안 잠잠하다 했어 인간아. 에휴."


-연수야 그만해라. 유서방이 오랜만에 친구들 데리고 술 한잔 하는 모양인데 이런 날도 있어야지.



쉴새없이 영길을 몰아붙이며 서있는 연수를 시어머니가 다그치며 말한다. 그런 시어머니를 은영이 조금은 답답한듯 보고 서있다.




"카아. 역쉬 근데 그게 장뭐님 바께 없슴다. 그게 그러니까 사위 사랑은 장모. 뭐 그게그런겅 아님까역시 그게 사랑합니다 장뭐님 쪽"


영길이 어울리지도 않게 머리위로 팔을 올려 하트모양을 만들어올리자니 그모습을 지켜보던 은영이 잔득 매스꺼움을 느꼈다. 베시시 웃고 있는 영길을 한참동안 쏘아보던 연수는 방문을 꽝하고 닫으며 방안으로 사라졌다. 벌써 얼마간 이 상황을 지켜보던 재준내외와 시어머니는 그저 시간이 멈춘듯 거실 한켠에  있을 뿐이었다.


"아놔. 술 떨어졌네. 꺽. 영길아 한잔만 더 하자. 저기 어머님. 아니지 우리 줘남댁. 줘남댁? 큭큭  그렇게 주나 줘남댁. 우리 줘남댁이 먹을것좀 만들어주면 너무 고마울텐데"


-야 이 실퀴야. 아 그러니까 근데 그게 우리 처남댁한테 그런거 부탁하지마라 앙?"

"새끼 존나게 비싸게 구네. 천년만년 있을것도아니고 좀만 더 마시다 갈건데 뭘 그리 매정하게 구냐 안그래요 줘남댁?"




아까부터 영길 옆에 앉아서 기분나쁜 말투로 일관하는 남자가 은영을 올려다보며 베시시 웃는다. 그러자 거의 동시에 시어머니가 가만히 은영을 바라본다. 이렇게  바에야 답은 늘 정해져 있을 뿐이다.





"알겠어요 옷...옷좀 갈아입고 나올게요 어머니"





그렇게 말하는 은영의 손을 시어머니가 한번  부여잡는다. 방으로 천천히 들어가자니 그 낯선 남정네들이 환호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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