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설정 - 2
사정의 여운을 잠깐 즐기고 난 다음. 민채에게 입으로 청소하라 말해놓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빠가 말한 게 이런 것들 맞지?”
“어어. 정확해. 아주. 그런 거 매우 좋아.”
“취향 참 특이하다. 이런 거 상상하면 흥분 되고 그래?”
왜냐면 이건 이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들이니까.
“뭐 어때. 꼴리면 장땡이지. 그것보다 아까 하던 얘기나 이어서 해봐.”
“어떤 거? 학교?”
“어어. 학교. 아, 그리고 잠시만.”
대충 깨끗하게 정리를 마친 것 같은 민채의 드림창을 가져와서 하나 빠르게 추가한다.
「내가 요구하는 상황은 어떤 것이라도 최대한 들어주고 싶은 정도」 - 8
요즘 자제하고 있는 만능 항목이지만, 단순한 거 시킬거라 괜찮아. 민채의 머리를 살짝 톡톡 치면서 말한다.
“민채야. 지금 종이랑 펜있니?”
“네? 아, 아니요.”
“그럼 편의점 가서 좀 사와. 얼른”
“아, 네.”
나의 부탁에 재빨리 속옷과 셔츠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선다. 이런 거 나중에 잘 기억 안 날 수도 있고, 만난 김에 이 아이디어 뱅크인 윤진에게서 최대한 뽑아먹어야지.
“뭐야? 적어놓게?”
“어. 나중에 써먹게.”
“뭘 이런 걸 써먹어? 오빠 뭐 야설 같은 거 써?”
“어... 뭐 대충 그런 거라고 치자.”
뭐, 사실 이런 일은 야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니까.
“아무튼 그런 건 크게 신경쓰지 말고, 아까 그 학교로 돌아가서... 또 다른 거 뭐 없어?”
“괴롭히는 걸로 계속? 아니면다른 걸로?”
“둘 다.”
“으음.. 괴롭히는 거라고하면..”
윤진이 턱을 검지로 톡톡 건드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습이다.
“그런 건 어때? 아예 책상이랑 의자도 없는 거야.”
“응? 그거는 진짜 괴롭히는 거 아니야?”
“아니, 이제 여자애들이랑 같은 의자에 앉는 거지. 자기만의 자리가 없이 무조건 여자랑 살을 부대껴야 하게 만드는 거.”
“어떻게 보면 일종의 괴롭힘이긴 하네. 내가 내 자리에 앉을 수 없게 자유를 뺏어버리니까.”
“자유가 없다.. 흠..”
자유라는 단어에 뭔가 또 반응이 오는 것 같은 윤진.
“그럼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괜찮은 것 같아.”
“어떤 거?”
“아예 손도 못 쓰게 만드는 거지.”
“손을?”
“어어. 근데 단순히 손을 못 쓰게만 하는 거면 그냥 괴롭힘이니까, 여자애들 손이랑 내 양손에 수갑을 하나씩 채우는 거야.”
상상을 해본다. 나는 양 옆에 여자들과 수갑을 차고 있는 그 상황. 왼쪽에 한 명. 오른쪽에 한 명. 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딸려오는 둘의 손.
근데 그러면 굉장히 불편하지 않나? 별로 꼴린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그럼 이제 양 옆에 여자애들이 손이 필요한 모든 걸 다 해주는 거지. 밥도 먹여주고, 옷도 갈아입혀주고, 가려운 데 긁어주고, 오줌싸러 가면 꼬추도 잡아주고..”
음.. 그렇게 생각하니 나름 괜찮은 것 같기도 한데.. 방법이 수갑이라.. 음..
“내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예시고, 다른 걸로 대체하거나 방법을 바꿔도 되고.”
“아아, 괜찮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냥 뭐든 좋으니까 다 얘기해주세요.”
어차피 나중에 드림창 항목 설정할 때 한 번 싹 다시 봐야하니까. 그 사이에 민채가 돌아와 옆 자리에 앉았다.
“여기요.”
“어, 고마워. 이제 니가 우리가 하는 얘기 듣고 필요한 내용 요약해서 적어놓으면 돼.”
“아, 네. 알겠어요.”
한 발 빼고 난 직후라 그런지 지금 당장 몸을 탐닉하기 보다는 설정에 집중하고 싶다.
“괴롭히는 거 뭐 또 없니?”
“음.. 괴롭힌다는 건 일종의 통제 같은 거잖아?”
“통제.. 통제 맞지. 누구든 괴롭힘 받는 걸 원하지 않는데 내 의지랑 상관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럼 이런 거는 어때? 자위를통제하는 거야.”
“자위를 통제?”
“자위라는 건 내가 원할 때 쌀 수 있는 방법이니까. 이거를 통제하게 만들고, 오로지 여자와의 성적 행위만으로 쌀 수 있게 만드는 거야.”
음.. 자위 통제라.. 어디서 본 것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나쁘지 않아.
“근데 학교는 그렇다치고 집에서는 어떻게 통제를 해? 정조대라도 채우나?”
“에이, 그건 좀 너무하니까. 그런 거 말고 여자들이 남자랑 같이 자고, 잘 때 세워서 꽂아놓고 자게 만든다거나?”
“... 여자한테?”
“응. 그리고 밤중에라도 은근슬쩍 할 수도 있으니 한 명은 꽂은 채로 올라타서 자고, 다른 두 명은 양 쪽 팔을 꼭 붙들고 자는.. 뭐 그런 거?”
어느 순간 학교의 범주를 넘어선 것 같지만.. 뭐 어때. 듣기 좋은 걸.
“그리고..”
-
완전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 샘물이 따로 없다. 애초에 나는 이미 어지간한 MC물들은 섭렵해왔기 때문에 너무 클래식한 내용들은 좀 진부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한테서 들어보니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꼴리기만 하면 되지. 진부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오케이. 오케이. 학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넘칠 지경이야.”
“그래? 그럼 다음은 뭔데?”
“다음은.. 회사로 해볼까?”
사실 회사는 내가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른다. 시스템도 잘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잘 몰라. 드림창을 이용해서 회사원인 척을 해도 업무적 내용을 전부 쑤셔박기는 힘들 것 같으니까.
“회사에서도 남자는 하나야?”
“음.. 아니아니.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럼 혹시 남자는 있어도 되는데 섹스하는 건 그 남자 하나야?”
“그게 베스트긴 하지.”
너무 꼭 내가 있을 공간을 여초로 만들 필요는 없지. 남자들이 있기는 하되, 나의 꼴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가 좋아.
“회사는 아까 학교에서 말한 것처럼 벌 같은 개념으로하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아.”
“왜?”
“학교에서 받는 벌이나 상 같은 거야 뭐 별거 아니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거 하나로 승진이 힘들어지고 그럴 수도 있잖아?”
“음..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면그렇게 하면 되겠네. 회사에서 섹스하는 게 잘하거나, 잘못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본분으로.”
“본분?”
“아예 업무 자체를 섹스하는 걸로 해버리면 되잖아?”
역시 바로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게 딱 정석적인 회사에서의 MC인 것 같기는 해.
“다만 이제 합당한 명분이 필요하지?”
“명분?”
“그냥 섹스만 하면 끝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잖아? 일이라는 건 하면 결과가 나와야 하는 거니까.”
“그럼 어떻게..?”
“이렇게하면 되겠네. 그 남자가 여자 사원들이랑 섹스하는 걸 여자들만을 위한 사내 복지업무로.”
복지..! 섹스가 복지라니.. 그것도 여자한테? 의외로 뭔가 들어맞는 느낌인데?
“여자들의 상식을 바꿔서 남자들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처럼 하나의 휴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면 어때?”
“담배 대신 섹스?”
“꼭 섹스여야 할 필요는 없지. 그냥 사탕 대신 남자 좆이나 빨아도 되게끔.”
사탕대신 좆이라.. 남자들 담배 태우듯이 여자들도 한 번 쪼옥 빨면서 기분 전환이나 하라는.. 오호..
“나쁘지 않네.”
“그리고 수당 같은 것도 챙겨주면 좋지.”
“수당? 무슨 수당?”
“출장 섹스 수당이나, 질싸 수당, 성감대 발견 수당, 성적 취향 추가 수당, 임신 수당... 같은?”
미친. 저런 말이 줄줄이 나온다는 게 진짜 신기하다니까? 그건 그렇고. 질싸를 해주면 돈을 더 받고, 미처 몰랐던 성적 취향을 발견해줘도 돈을 더 받고.. 심지어.. 이, 임신..?
아까부터 은근히 윤진이가 임신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애초에 섹스의 목적 중에 임신도 있으니까 이상한 건 아닌데..
아냐. 그건 내가 알아서 조절하면 되지. 일단 얘기나 계속 들어보자.
“그리고 어디 좋은 모텔이나 호텔 같은 곳을 제휴를 해서..”
이어지는 윤진의 제안. 아니.. 얘 이런 거 원래 좋아하나?
-
“이 정도로 되겠어?”
“너 원래 이런 거 생각하면서 다니는 거야? 아니면 그냥 지금 여기서 즉흥적으로 막 쏟아내는 거야?”
“즉흥적으로 하는 게 95%라고 보면 돼.”
“대단하다 대단해..”
민채가 꼼꼼하게 적은 내용들을 보니 나는 뭐 추가하거나 할 필요 없이 그냥 수정만 해도 될 정도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는 왜 이런 인재를 지금까지 내버려둔 거지? 이제 김지훈 찾을 필요가 있나?
“지금 학교랑 회사 했으니까.. 다른 곳이라고 한다면..”
응? 또 있다고?
“그러고보니 요새 군대가 또 핫하지.”
“군대!?”
무슨 군대에서 여자랑 섹스를 하냐. 물론.. 여자 부사관이나 여자 장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 군인 찾기가 어려울 것 같은..
아니지. 내가 너무 군대식으로 생각했구나. 그런 여자를 찾을 게 아니라 만들면 되잖아. 군복만 입히면 되니까. 군대.. 군대라.. 지금부터 전투 섹스를 시작한다. 뭐 그런 건가?
근데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나도 한 사람의 예비역으로써 기존 군부대에서 행정상 문제같은 걸 일으켜서 후임 애들한테 피해는 주고 싶지 않은데.
“그것도 그냥 군대 말고 UDT인가? 특수부대 같은 거 있잖아. 유튜브에도 많이 나오지.”
“아, 요새 많이 나오더라.”
“아까 오빠가 말한 상식을 바꿔버리는 거니까. 아예 상식을 바꿔서 새로운 특수부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만드는 거야.”
“무슨.. 특수부대인데?”
“막.. 작전이나 살상 이런 거에 전문가 말고 섹스에 특화된 여성부대지.”
“.. 미인계 같은 거?”
“얼마나 좋아?”
참.. 어처구니가 없다. 상식을 바꾸라고는 했지만 아예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내는구나. 앞으로 뭐 막히는 거 있으면 일단 얘부터 불러야겠다.
“그래.. 그럼 나는.. 아니, 그 남자는 거기서 무슨 역할인데? 조교? 아니면 걔도 여자 꼬시는 요원?”
“아니? 여자들 훈련용 생체 딜도인데?”
생체 딜도라는 말에 순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응!? 후.. 훈련?
“훈련이면 그 남자 꼬추가지고 하루 종일 연습하는 거 아냐?”
“맞을 걸?”
“그럼 그 남자는 하루 종일 쥐어짜이느라 바쁘겠네?”
“그렇겠지?”
순간 몰골이 피접해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아니야. 그런거는 내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으니까.
근데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해. 약간 군대 스타일로 해서 재밌는 부분을 가미하면.. 음.. 나쁘지 않은 즐길거리가 될 것 같은데.
“근데 어디까지나 내가 그냥 생각난 것만 말해본거야. 내가 군대는 잘 모르니까.”
“아니아니, 아주 좋아. 그렇게 대충이라도 생각난 거 있으면 뭐든지 말해봐. 아, 커피 떨어졌니? 한 잔 사줄까?”
“아니, 커피는 됐고.. 지금 생각하는 곳이 하나 있긴 한데..”
“오! 어딘데?”
“우리 학교.”
“대학교?”
“근데 생각해봐도 대학교는 너무 자유로운 곳이라 뭔가 딱 느낌이 오는 게 없기는 하다.”
하긴, 그렇긴 하지. 이미 잘 하고 다니는 애들이 넘치고,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다 보니..
“그래도 굳이 하나 넣자면 교양 과목으로 하나 만드는 정도?”
“교양? 무슨 교양?”
“성의 이해.. 같은?”
“그럴싸한 교양 제목이네.”
“중간고사 없는 대신 조별과제 하나 만들어오기 같이.”
“조별과제 어떤 거?”
“야동 하나 찍어오는 거죠. 가장 꼴리는 곳이 1등.”
뭐지.. 이 기시감? 분명 어딘가의 평행세계에도 그런 교양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인데.. 하지만 뭐 나쁘지 않아. 이것도 일단 접수.
민채가 적는 걸 보는데.. 확실히 많이 채우긴 했다. 어차피 하나의 환경을 만드려면 추가해야 되는 항목이 많다보니 조심해야하니까.
“근데 나는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게 있어.”
뜬금없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윤진. 갑자기?
“뭐가?”
“원래 사회에 일원인 사람이 직접 겪어보고 난 다음에 상식을 바꿔버리는 게 제일 좋을 것 같거든.”
내가 이 주제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 정도를 너무 높게 잡아서 그런가? 그런 것 까지 몰입해서 생각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하지만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 내부자가 제일 그 곳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거는 힘든 게 나는 그 환경을 만들고 들어가버리면 기억을 잃어버리니까.
... 어라? 기억? 잠깐만...
내가 내 능력에 대해 기억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능력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잖아?
생각해보니 그렇네?
만약에 내가 기억을 잃어버려도 일정 부분에 한해서는 드림창의 능력을 사용할수 있게 한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설정을 짜는 것보다 재미있는 게 나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까 했던 학교에서의 괴롭힘도.. 내가 직접 찐따의 좆같음을 겪고 난 다음에 능력이 생겨버렸다고 생각하면.. 그 짜릿함은 모든 걸 알고 들어가는 거랑 비교가 안 될거잖아?
맞아.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모든 것을 다 짜놓을 필요는 없구나. 아아.. 새로운 문이 열리는 기분이다.
매번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야 되는 부담감에서 해소된 느낌. 가슴 속이 매우 개운해졌다. 아, 갑자기 기분 존나 좋은데?
“그래서 그 상식을 바꿀 내용을 생각하려면 직접 그 곳에 가서..”
아직까지 상식개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윤진에게 말한다.
“야, 윤진아.”
“응?”
“그거 이제 그만하고 떡이나치러 갈까?”
뜬금 없는 나의 떡제안에 조금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윤진의 눈초리가 가늘어지더니 민채에게 살짝 눈길을 주고난 뒤에 나에게 묘한 웃음을 흘리면서 말한다.
“쓰리썸?"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