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일상 - 6
상황이 재밌게 흘러간다. 내 앞에는 식은땀을 흘리느라 바쁜 모습의 훤칠한 남자가 앉아 있고, 양옆에는 각각 여자친구라 주장하는 여자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앉아있다.
뭐, 일단 난장판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내가 강제로 앉힌 것에 불과하지만. 자꾸 싸우려고 해서 일단 입도 다물게 했고.
중요한 건 이관계도 재밌지만 여자들도 굉장히 보기 좋다.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몸매와 빠지지 않는 얼굴. 캬, 이 정도 양다리면 양심적으로는 에바지만 좆으로 생각하면 이해는 간다 야.
서로 약간 다른 느낌으로 매력을 내뿜고 있잖아. 뭔가 성숙한 여자라는 느낌과 풋풋하고 귀여운 느낌이랑. 음, 괜찮아. 덕분에 내가 양쪽 다 맛 볼 수 있으니까 이해해줄게.
자, 그나저나 어떻게 된 일인가를 알아봐야지. 이 모든 스토리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니까. 앞에 좌불안석인 남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거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 만난 것부터 쫘악 얘기해봐. 여자들 신경쓰지 말고 친구한테 얘기하듯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부터 설명하자면..”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마른 침을 삼키던 녀석이 갑자기 눈빛에 생기가 돌아오면서 입을 연다. 옆에 여자들 신경을 안 쓴다? 그러면 무용담이지 시발. 그리고 양 옆에 여자들을 가리키며 하나 더 얘기한다.
“지금부터 얘가 하는 얘기 전부 무시해.”
좋아, 시작이군. 팝콘이 없는 게 아쉽지만.
“1학년 2학기 때 애들이랑 술 마시고 있다가 우연하게 옆 테이블에 있는 누나 처음 봤는데, 와 와꾸도 그렇고 몸매가 끝장나는 거야. 애들끼리 와 개쩔지 않냐? 막 이러면서 존나 보면서 마시는데.. 뭔가, 저 정도면 진짜 들이대도 손해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딱 들대? 마침 헤어진 지 좀 돼서 여자도 슬슬 고프고. 그래서 거기서 애들이랑 내기 걸었지.”
응? 내기?
“내가 군대가기 전까지 저 누나 따먹을 수 있냐 없냐. 나야 뭐 존나 자신 있었으니까. 그러더니 애들이 술 마셔서 그런가 돈을 막 걸더라. 5만원, 10만원씩 걸길래 오, 시발. 이거는 개꿀이네 하면서 그 날 바로 들이대기 시작했지.”
행동력 넘치는 친구네. 근데 시발 그런 내기라니.. 존나.. 어우..
“근데 연락처는 다른 사람 통해서 알아냈어도 누나가 졸업반이었고, 취업준비 하느라 바빠서 만나기도 힘들었단 말야. 거기에 생각보다 철벽 치는 귀찮은 스타일이고. 그래서 진짜 쉽게 생각했는데 몇 개월 동안 누나 바쁜 와중에도 존나 쫓아다니면서 애걸복걸해서 겨우겨우 사귀는 것부터 시작했거든? 근데.. 시발 진도가 존나 안 나가네?”
사귀기 시작한 것부터 진도 존나 빠른 것 같은데 시발.. 가진 놈들은 다른가?
“근데 점점 시간은 가고. 애들이랑 동반입대 날짜도 정해놔서 미루지도 못하고. 벌써 겨울이 돼서마음만 자꾸 조급해지는데, 딱 그 날이 왔지.”
“그 날?”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누나가 정말 힘들게 좋은 곳에 취업이 딱 됐다고 연락이 온 거야.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데도 감격에 차서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존나 좋아하는데 거기서 촉이 딱 오대? 아, 지금이 기회다.”
먹잇감을 노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네 이거.
“그래서 딱 내가 재빠르게 선수를 쳤지. 나랑 축하 파티를 하자고. 내가 다 준비할테니 몸만 오면 된다고 하니까 의외로 쉽게 OK가 떨어짐. 그 길로 곧장 수업 째고 조금 비싼 와인이랑 케잌이랑 안주랑 뭐 이것저것 잔뜩 사와서 자취방에 준비하고, 룸메 대충 부탁해서 내보내고. 그리고 준비 완벽하게 한 다음에 누나 불러서 둘이서 기분 좋게 한 잔하는데..”
..하는데? 그 다음 말 대신 대충 커피 한 모금 쪼로록 빨아먹는 새끼. 아, 거 끊는거 봐라 진짜. 대충 목을 축인 놈이 혀를 날름거리며 다시 얘기를 이어간다.
“이게 누나 기분이 엄청 업된 상태라 그런지 쭉죽 마시더니 금방 알딸딸한 상태가 된 거야. 오우, 그래. 이거다. 오늘은 진짜 되는 날이다. 근데 그 와중에도 누나가 존나 힘들었다고 계속 한탄하는 걸 진짜 인내심을 갖고 자상하게 다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그 다음에 누나가 고맙다고 하는 순간. 딱, 타이밍인 걸 알고 시작했지.”
“뭐를?”
“누나, 정말 축하하고 고생 많았다고 하면서 슬쩍 내 군대 얘기로 돌려서 살짝 동점심 유발하게 한 다음에 요렇게 말했지. 누나, 앞으로 사회생활 시작하면 많이 고되고 힘들텐데 내가 군대 가 있는 동안 누나 곁을 못 지켜주는 게 굉장히 미안하다고. 먼저 선수치니까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사실 자기도 나랑 하고 싶은 거 많았는데, 그걸 해버리면 가장 중요한 취업에 소홀해질 것 같아서 계속 참았다는 거야. 그거 듣고 딱 느꼈지. 아, 이건 각이다. 100%다.”
오우 시발. 이건 연애 고자인 나도 알겠다.
“그 다음은 뭐긴 뭐야. 바로 눈물 닦아주고 키스부터 시작하니까 전혀 거부를 안 하지. 거기서 진짜 한 번 먹으려고 쌓아놓은 모든 것을 다 풀어버리니까 누나 좋아 죽드라. 존나게 떡치고 누나 자는 거 찍어서 애들한테 인증샷 보여주고 돈도 받았고.”
아, 그걸 기어코 받아내는 구나.
“그리고 이제 리미터 풀리고 나니까 뭐야. 나 입대날이랑 누나 입사날이랑 비슷해서 그 전까지 조오오온나게 한 다음에 애들이랑 같이 이제 들어갔단 말야.”
들어가? 아, 입대?
“그 뒤로는 뭐 휴가 나올 때마다 누나 만나서 존나게 풀고 가고 그랬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누나가 나 만날 때마다 하소연을 엄청 하는 거야. 처음에는 나도 힘들고 누나도 힘들구나 뭐 이렇게 대충 받아들여줬는데, 어우 이 징징거리는 게 날이 갈수록 심해지네.”
징징이라니. 정말 애정이 떨어진 상태인가. 아니면 너무 과해서 그런건가.
“근데 뭐 누나가 돈을 잘 버니까 씀씀이가 좋아서 내 돈 나갈 일 없고. 떡칠 때는 존나 좋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도 존나 쌓여서 그런가 적극적이더라. 뭐 그래서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지. 그것까지는 다 좋아.”
존나 좋지 시발... 어우, 나도 그런 여자친구 있었으면.. 어우 시발..
“그러다가 내가 병장달고 2차 휴가 나왔을 때, 면제인내 친구가 나 휴가 나온 거 알고 신입생들이랑 술 먹는다고 오라 해서 학교를 갔어. 거기 여자애들이 누나랑 다르게 되게 풋풋하고 싱그러운 그런 게 느껴져서 존나 기분 좋게 마시고 있었거든. 근데 뒤늦게 여자애 둘이 더 왔는데 오우, 뭐야. 한명이 존나 이쁘네?”
걔가 얘인가? 옆에 처음부터 남자랑 커피 마시고 있던 여자를 쳐다본다. 음, 뭐. 이쁘긴 해.
“게다가 얘기해보니까 또 잘 맞아. 은근하게 나한테 페로몬을 풍기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내 친구한테 나 여자친구 있는거 비밀로 해달라고 한 다음에 들이대서 어찌저찌 번호도 교환하고, SNS도 친추 해놔서 자대에서 존나 연락했지. 누나보다 더 많이 한 것 같아.”
이야, 이거 참.. 대단한 놈이네.
“근데 나도 솔직히 찔려가지고 얘기는 많이 했는데 적극적으로는 못했지. 그러다가 내가 너무 지지부진하니까 오히려 얘가 나한테 먼저 사귀자고 하더라. 와, 거기서 존나 바로 대답을 못하고 고민을 존나 했어. 어떻게 하지? 아.. 시발.. 사실대로 얘기해야 하나? 그렇다고 누나를 어떻게 버리냐.. 이미 여자친구 없다고 속인 순간부터 쓰레기가 맞긴 한데.. 아.. 막 고민하면서 둘 중에 누구를 고르냐 막 고민하고 있다가.. 딱 그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인지 대충 알겠다. 나는 이미 결과를 아는 사람이니까.
“양다리? 양다리 가? 솔직히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데.. 게다가 누나는 이미 졸업한 사람이고.. 주말 정도 밖에 못 볼 거고.. 아직 졸업안한 누나 친구들만 좀 조심하면 될 것 같고.. 약간 컨셉을 잡으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 나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애정표현 같은 거 잘 안한다. 뭐 이런 식으로.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더라.”
... 개새끼네.
“게다가 뭐 제대 얼마 안 남은 상황이어서 시간도 많으니까. 거기서 OK해버리고. 제대한 뒤로는 누나 일할 때는 얘랑 만나고, 주말에 시간 될 때는 누나랑 만나고. 어우씨, 걱정 많이 했는데 의외로 스릴 넘쳐서 존나 재밌더라.”
재미까지 느끼냐. 이야, 무서운 놈이네 이거.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치밀한 놈은 아니라 이름 잘못 부르는 실수도 몇 번 해서.. 솔직히 언젠가는 들킬 거라는 거는 알았거든. 근데 뭔가 막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걸려도 내가 존나 잘못했다고 빌면 한 명 쯤은 나한테 남아 있어줄 것 같다는 그런 자신감?”
그러게. 무슨 자신감이냐.
“뭐, 대충 이렇게 된 얘기고. 이제.. 여기까지 왔으니.. 뭐, 어떻게 할지는..”
하아.. 가볍게 즐기려고 했는데 듣고 나니까 여러 생각이 드네. 일단 이 새끼는 개새끼가 맞아.
그래서 이 새끼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물어봐야지.
“자, 내가 질문하는 거에 솔직하게 대답해. 방금 얘기한 것처럼 친구한테 말하듯이.”
미간을 꼬집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남자.
“여기 여자 두 명 중에 누가 더 좋아?”
“하아.. 그게...”
살짝 고개를 돌려 양 쪽에 여자 얼굴을 확인한 남자. 그러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솔직히.. 둘 다 포기 못하겠다.”
욕심도 많은 새끼네. 솔직하게 대답하라 했으니 정말로 솔직한 심정일건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곰곰이 생각한다. 자, 정리해보자. 남자놈은 양다리를 걸친 상태인데, 둘 다 포기하기는 싫다. 게다가 나는 이 여자들 와꾸랑 몸매가 맘에 들어서 하고 싶다. 근데 이렇게 존재감 없는 상태에서 해버리면 이 상황이 있으나 마나한 상황.
그리고 나 역시 솔직한 심정으로 이 새끼는 나쁜 새끼라 조금 엿 멕이고 싶어. 시발, 남들은 한 명 사귀기도 힘든데 지 혼자 두 명을? 게다가 이런 애들로? 게다가 두 명 다 포기 못해? 시발. 좆으로는 이해해도 경쟁자로써는 용납 못해.
물론 당연히 뺏어먹겠지만.. 그냥 뺏어먹으면 영 재미가 없단 말이지. 전에 쪼다새끼한테 했던 거랑은 좀 다르게.. 음.. 뭔가 이 존재감이 없어서 내가 하는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까지 결합하면..
오! 이렇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거 같은데? 저 새끼 소원도 이뤄주고. 여자도 먹고. 설정까지 가져가니까.. 음, 좋아. 이번에는 이걸로 해야지.
자자, 그 전에 설정부터 해야지. 일단은 이 세 명이 양다리를 이해하게 만들고, 나를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고..
이렇게.. 요렇게..
좋아, 이 정도면 된 것 같네. 자, 그러면 상황극 시작 전에 배우들 이름부터 알아볼까. 남자는 뭐 알 필요 없고, 여자는.. 배수빈이 누나.. 그리고 옆에 얘는 이민서.. 오케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번에는 내 얘기를 듣는 것보다 이 새끼 생각을 듣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으니까. 생각하는 그대로를 내뱉게 만들어야지. 자, 이렇게.
「생각하는 그대로를 전부 입으로 말함」 - ON
쪼다새끼한테 써먹어봤지. 하도 지랄 같아서 금방 그만뒀지만. 일단 여기 민서를 일으켜서 같이 데리고 밖으로 나간 뒤에.. 일정 시간 이후로 들어오라고 설정한 뒤에..
자! 시작해볼까!
[화자가 남자로 바뀝니다.]
흐읍!
잠깐 움찔하면서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음, 뭐지?
“왜 그래?”
옆에 누나가 약간 놀란 눈치로 보고 있었다.
“어.. 잠깐 딴 생각하다가..”
“옆에 사람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 뭐.. 별 거 아냐.”
존나 뜬금없이 왜 그런 생각이 들었지? 누나랑 민서랑 양다리 걸치다가 둘한테 들통나는 생각이라니. 애초에 셋이 사귀고 있는데. 그 짧은 사이에 꿈이라도 꿨나?
대충 앞에 있는 커피를 다시 쪼로록 마신다. 흐음, 개꿈이니까 잊어버리자. 그나저나 민서는 언제 와?
“아참, 내가 얘기 했나?”
누나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얘기한다.
“응? 무슨 얘기?”
“여기 @@도 같이 만나기로 한 거.”
으윽,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 새.. 아니 걔는 여기 왜 와?”
“뭐 어때. 그냥 같이 커피나 한 잔 마시는 거지.”
으, 그 덜 떨어진 놈이랑 내가 왜 같이 커피를 마시냐 이거지. 그것도 여자친구들도 같이 보기로 한 여기서. 솔직히 대가리도 나빠 보이고 행동도 굼뜨고 좋은 점 하나 없는 것 같은 놈인데.
그러다가 띠링 하면서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민서인가? 고개를 돌려서 입구를 보니.. 아니네. 그 새끼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근데.. 어?
천천히 다가오는 한 남자. 등도 약간 굽혀진 상태로 엉금엉금 걸어오는 게 존나 꼴보기 싫은 것도 있지만.. 그거랑 전혀 상관없이 엄청난 모습으로 우리 테이블에 다가온다.
“헤.. 헤헤.. 아, 안녕하세요..”
목소리도 듣기 싫다. 누나는 그제야 녀석을 알아차렸는지, 그 놈을 보더니 살짝 놀라면서 묻는다.
“아니.. @@아. 너... 왜 옷을안 입고 있어?”
“네..? 어어, 그, 그렇네.. 까, 깜빡했어요..”
씨발.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옷을 안 입고 와? 당장 누나가 저런 병신 새끼를 내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 바램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는 누나.
“그래.. 깜빡했으면 어쩔 수 없지. 다음부터는 옷 잘 입고 다니고.. 일단 앉자.”
으응? 놀란 눈으로 누나를 쳐다보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앞에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쭈욱 들이킨다.
어.. 이 이상한 느낌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