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벌칙 - 7 [친구등장]
대놓고 엄청 참여하고 싶은 티를 내더니.. 기어코 이런 말까지 하시는구나. 그래, 뭐 다 좋다 이거야. 승자의 말은 들어줘야지. 일단 뭐 벌칙 주는 건 본인 마음이니까 어떤 걸 원하는지 물어나 보자.
“그래서 어떤 걸 하고 싶은데?”
“어.. 아까 서연이 했던 것도 괜찮은것 같고..”
으음, 그러면 재미없지. 했던 거 또 하면 창의력 부족으로 욕먹는단 말이야.
“가능하면 저기 팀원들 한 명이라도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벙한 표정의 A, 그리고 탐탁치 않아하는 소연이를 가리키니 턱을 괴며 고민하는 그녀. 의욕은 과다한데 뭔가 딱 떠오르는 게 없는 모양이다. 나도 한 번 고민해볼까.
여기 온 이유는 다른 남자들의 부러운 시선을 즐기기 위해서다. 근데 뭐, 어느 정도 터치까지는 허용할 수 있지. 터치.. 터치라... 흐음.. 오?
갑자기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한 번 얘기나 해보자.
“누나?”
“... 어? 왜?”
정말로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었는지 약간 반응이 느린 주희.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닥속닥 나의 의견을 제시한다.
“어때?”
“오... 재밌겠네.”
흥미를 보인다. 누나 성격상 이런 거 좋아할 것 같거든. 누나가 크흠 작게 목을 가다듬으며 발표할 준비를 한다.
“자.. 이번 벌칙은..”
사실 벌칙이라고 하기 애매하지 않나. 자기가 당하는 거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A를 가리키며 얘기를 이어가는그녀.
“A가 눈을 가린 저를 이끌고 한 바퀴 산책하고 오면 됩니다.”
“... 어? 나? 내가?”
가만히 있다가 자기 얘기가 나오니까 흠칫 놀라는 A. 뭐 니가 할 거는 별로 없긴 하지만.
“이 정도면 거저먹는 벌칙이지. 와, 정말 자비로우시다.”
“그렇지? 너무 약하게 한 거 아닌가 싶어.”
“이런 거는 저기 팀한테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거죠.”
우리 팀 세 명이 좋다고 티키타카 하고 있으니 소연이 표정이 찜찜해지는 것 같아. 어쩌면 다음 벌칙에 영향을 줄 수도?
“아, 눈 가릴 거 뭐 있나?”
“눈? 쟤 손으로 가리면 되지.”
A를 가리키며 얘기한다. 그래, 그러기 위해 필요한 존재잖아.
“자자, 빠르게 합시다. 너도 이리 와라.”
A가 뭔가 어정쩡하게 이쪽으로 온다. 우리 중에 유일하게 옷을 입고 있는 녀석을 붙잡아서 누나의 뒤에 서게 하고, 양손으로 누나의 눈을 가볍게 가리도록 올려준다.
“요렇게. 어떻습니까?”
“오.. 뭔가 색다르네.”
몸에 아주 약한 떨림을 느끼며 만족스러워 하는 고객님.. 이 아니라 주희. 그거야 그거. 똑같은 짓을 해도 눈만 가리면 신세계가 펼쳐지는 그거.
“자, 이제 너한테 모든 게 달려있으니 누나 잘 모시고 다녀와야 돼.”
“모시는 건 뭐야.. 나이 얼마나 차이 난다고.”
어라. 약간 발끈하시는 것 같은데. 나이 드립은 별로 안 좋아하는 듯. 그리고 슬쩍 누나 앞으로 가서 양쪽 귀를 막고 작게 얘기한다.
“뭐, 뭐야? 귀는 왜 막아?”
“야. 처음부터 저기 계신 분들 사이로 가라.”
약간 진저리를 치긴 했지만 귀를 막은 손을 떼지는 않는다. 약간 기대하시는 것 같은데 이거. 그 기대에 부응해주기 위해 고개를 돌려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손님들에게 작게 얘기한다.
“보지 제외하고 만지는 거 가능합니다. 만지기만 하셔야 돼요. 그 이상은 노노.”
내가 하는 말에 나한테 시선이 모두 쏠렸다가 자기들끼리 눈이 마주친다. 설정해놓은 게 있으니 선은 넘지 않을 거다. 누나 귀에서 이제 손을 떼고 A의 어깨를 살짝 치면서 얘기한다.
“이제 출발하시면 됩니다.”
“오케이. 자, 누나. 천천히 앞으로..”
“어어..”
천천히 발걸음을 떼며 앞으로 향하는 알몸의 그녀와 그런 그녀의 눈을 가린 채로 뒤에서 맞춰가는 A. 이거 참 어디서도 보기 힘든 진귀한 모습이야.
이제 중간쯤에 다다를 때가 됐다 싶었는지, 몸을 틀려는 누나를 막으면서 A가 얘기한다.
“어, 누나. 여기 아니야. 더 가야 돼.”
“어..? 그래?”
그리고 다시 처음 방향으로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간다. 그 방향으로 향하면 어디로 가는 건가. 남자들이 큐대도 다 내려놓고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는 그 곳이다.
몇 걸음 더 가고 난 뒤에 이제 몸을 틀자고 주희의 고개를 살짝 돌리는 A. 그리고 이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니..
“꺄악!”
낯선 손길에 의외로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가리는 주희가 있었다. 그 소리에 호기롭게 처음으로 탄력적인 가슴을 움켜쥔,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도 놀랐는지 바로 손이 떨어진다.
“뭐, 뭐야?”
“여기 손님들인데. 만지는 건 싫어?”
“어..? 어..... 그, 그게..”
차마 싫다고는 대답을 안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적극적이었으니 한 번 제대로 느껴보셔야지.
“싫다고는 안하셨으니 일단 앞으로 가겠습니다.”
A도 뭔가 신났는지 천천히 자신의 몸을 이용해 그녀를 앞으로 밀어낸다. 방금처럼 당찬 모습은 어디가고, 한 명의 수줍어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 개의 손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양쪽 가슴과 한 쪽 엉덩이에 각각의 손이 달려들어 부드러움을 만끽하는 손들.
주희 역시 이번에도 낯선 손길에 움찔하긴했지만, 이번에는 비명보다는 야릇한 신음을 참아내며 천천히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재밌는 건 지금 저 누나의 감도는 아무것도 설정한 게 없다. 본래의 감각으로 느끼느라 정신 없어하는 저 모습을 보니 분명 노출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 분명해.
점점 앞으로 나아갈수록 사람들의 손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정석적으로 가슴을 만지는 사람. 집요하게 유두만 노리는 사람. 엉덩이를 꽈악 움켜쥐는 사람. 허벅지를 열심히 매만지는 사람.
똑같은 애무도 눈을 감은 상태에서 하면 좀 더 민감하게 느껴지겠지. 가장 중요한 보지는 만지지 말라고 했으니 적절하게 흥분도만 높여줄 것으로 예상한다.
아까 서연이 뒤를 집요하게 따라오던 그 새끼는 이번에도 A의 뒤를 따라다니며 손이 닿을 수 있는 어디든 만지느라 바쁜 모습이다. 저거 참 대단한 놈이네.
누나가 새로운 손길이 느껴질 때마다 움찔거리는 걸 보니 생각보다 재밌어 보인다. 흐음.. 나도 언제 저거 한 번 해볼까? 하는데..
순간 내 눈을 의심하는 장면이 벌어졌다.
어떤 미친놈이 누나가 아니라 A의 엉덩이를 움켜쥔 것.
씨발. 생각도 못했다. A도 존나 당황해서 놀란 눈으로 그 새끼를 쳐다본다. 나는 만진 당사자 새끼의 뒤통수만 보였지만, A가 그 새끼 얼굴을 보더니 존나 식겁한 표정으로 천천히 가던 주희를 빠르게 재촉해서 그 곳을 빠져나온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나체의 그녀를 떠나보내야만 했고,거기 있던 사람들도 그 짓거리를 한 놈에게 비난과 혐오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 곳을 빠져나온 뒤로는 누나 눈을 가리고 있던 손도 풀고, 빠르게 손목을 잡고 이쪽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그녀랑 다르게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 A의 모습. 불안한 눈빛을 보이는 그 놈한테 물어본다.
“야, 뭐냐?”
“와.. 씨발.. 존나 식겁했다 진짜..”
이제 보니 조금 식은땀까지 나는 것 같다.
“진짜 좆같아서.. 존나 꿈에 나올 것 같아 씨발..”
“왜? 무슨 일인데?”
아직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주희.
“그.. 저기서 누가 A 오빠 엉덩이 만졌어..”
“어? 진짜?”
설명해주는 소연과 놀라는 주희. 이제 보니까 우리 애들도 약간 놀란 눈치다.
“저 새끼 뭐 했는데?”
“존나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까.. 와.. 갑자기 존나 징그럽게 쪼개는데..”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어하는 A. 와우, 얘 방에서 바퀴벌레 나온 이후로 이 정도로 싫어하는 거 처음 봐.
“괜찮냐?”
“어우.. 씨발.. 야.. 진짜 좆같은데 딴 데 가면 안 되냐?”
“어? 상관없지. 딴 데 가자 그럼.”
갑자기 이런 식으로 포켓볼을 그만 하게 될지는 몰랐는데. 근데 뭐 충분히 이해해. 나 같아도 개좆같았을 거니까.
“야야, 옷 입어라. 나가자.”
여자애들도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군말 없이 의자 쪽으로 다가가서 옷을 집어 들고 입기 시작한다. 나 역시 빤스를 입으면서 슬쩍 그 쪽을 보니 거기 무리들도 약간 그 새끼를 피하는 것 같이 보인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겠지. 그 중에서도 남자 좋아하는 놈들도 있을 거고. 너무 욕망에 충실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으, 근데 그게 나였으면 바로 드림창 설정하고 존나 팼을 것 같아.
바지 입으면서 여기 드림창 가져와서 추가한다.
「우리가 나가면 우리가 들어온 후부터 있었던 일을 모두 기억에서 삭제」 - ON
“야야, 나 먼저 나간다.”
아직도 기분이 좆같아 보이는 A가 대답도 안 듣고 도망치듯이 이곳에서 나간다.
“남자가 남자 만지는 게 그렇게 싫은 거야?”
주희 누나가 브라 후크를 잠그면서 묻는다.
“친구끼리 장난으로 치는 것도 선 넘으면 좆같은데. 존나 쌩판 남이 만지면 안 쳐맞은 게 다행이지.”
“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면서 티셔츠를 입는다. 에휴,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한 건가? 만지라고만 했지. 누구를 만지라고는 얘기 안했으니.
대충 다 입고 먼저 카운터로 가서 계산부터 한다. 에이, 좀 재밌게 하려고 했더니 이런 방해가 들어올 줄은. 계산하고 나니까 옷 다 입은 애들이 카운터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기다리다가 같이 나간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나가냐 하는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차 문을 여니까 핸들에 고개 쳐박고 있는 A 보고 나니까 좀 안쓰럽게 느껴진다.
“야. 야야.”
“... 왜.”
“밖으로 나와봐.”
어깨가 축 처져있는 A를 불러내고 애들은 일단 차에 태웠다. 둘 다 몸을 차에 기댄 상태로 얘기한다.
“그렇게 좆같았냐?”
“지금 속도 약간 안 좋다. 내가 이런 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러냐.”
에휴, 어쩔 수 없지.
“지워줄까?”
“어?”
“그거 기억 지워주냐고.”
“어... 그래. 그게 낫겠다. 부탁할게.”
휴우우 한숨을 쉬며 부탁하는 A. 방심하고 있다가 당해서 그런가 충격이 더 큰 것 같다. 씁쓸한 기분으로 A의 드림창을 가져와서 추가해준다.
「오늘 당구장에서 남자에게 만져졌던 사실과 그 새끼 얼굴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함」 - OFF
추가한 다음에 묻는다.
“지운다?”
“어.”
A의 대답에 슬쩍 추가한 내용을 ON으로 바꾼다. 씁쓸한 표정이었던 A의 표정이 갑자기 놀라움으로 가득 찬다.
“오.. 뭐지?”
“기분 좀 풀렸음?”
“나 방금까지 왜 기분 좆같았던 거냐?”
사실 자체를 기억 못하니 왜 기분 나빴는지도 기억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 뭐 기억 지워서 좋아지면 더 좋은 거지. 근데 또 당하면 또 기분 좆같아지는 건 똑같지만.
... 어라? 기억을 지우면 그 기분을 다시 느낀다고?
갑자기 뭔가 괜찮은 느낌이 온다.
“뭔 생각하냐?”
골똘히 생각하고 있으니 A가 묻는다.
“야, 생각해봐라. 니 인생에 개쩌는 베스트 야동 하나 있지.”
“하나쯤은 다들 있지. 그건 왜?”
“그거 지금 봐도 처음 볼 때랑 느낌이 똑같냐?”
“똑같을 리가 있냐. 몇 번 보면 질려. 오랜만에 봐야 좋지.”
손가락을 튕기면서 A를 가리킨다.
“그럼 만약에 그 야동에 대한 기억을 지워. 그러면?”
“어?”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기억에서 없앤 상태로 그 야동을 다시 본다고 생각해봐.”
“어.. 글쎄.. 상황이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쩐다고 생각하겠지?”
기억을 지우는 걸 활용할 수도 있겠다. 아아, 뭔가 느낌이 온다.
“야.”
“왜.”
“나 싸대기 한 대만 때려봐.”
“미쳤냐?”
“아 괜찮으니까 너무 세게 말고 한 대만 때려봐.”
“이왕 맞을 거 좀 쎄게 맞으면 어때?”
“아 닥치고 적당히 때리라고.”
뭔가 찝찝한 표정의 A가 손을 들더니 가볍게 내 뺨을 짝! 하고 때린다. 아프지는 않다. 기분도 뭐 예상한 거니까 그리 나쁘지 않고.
“됐냐?”
“어. 기다려 봐라.”
바로 내 드림창을 가져와서 ‘드림창 면역’ 항목 위에 내용 하나를 추가 한다.
「A한테 싸대기를 맞았다는 사실과 자신이 지시한 것을 기억하지 못함」 - OFF
후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OFF를 ON으로 바꾼다.
... 뭔가 바로 달라지는 느낌은 없네. 다시 드림창을 보니까.. 어? 뭐야 이 항목은? A한테.. 싸대기?
“야. 니 나한테 싸다구 날렸냐?”
“치매왔냐. 지가 때리라고 해놓고.”
“내가 때리라고 했다고?”
뭐지? 항목을 봐도 전혀 기억이 안나. 그리고 뒤에서 똑똑 소리가 들린다. 약간 놀라서 차에서 떨어져서 뒤를 돌아보니 창문을 내리는 서연이.
“오빠들 왜 싸워?”
“어?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아까 A 오빠가 싸대기 때리던데.”
“... 진짜?”
나의 말에 서연이도 뭔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창문으로 고개를 넣어서 물어본다.
“내가 A한테 진짜 싸대기 맞았어?”
“뭔 소리야. 맞은 당사자가 모르면 누가 알아.”
주희 누나의 대답을 듣고 나니 뭔가 갑자기 억울함이 느껴져. 나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드림창 보니까 당연히 내가 한 것 같기는 한데..
꽤나 충격적인데 이거. 정말 기억이 안 나서 애매한 느낌으로 드림창 항목의 ON을 OFF로 바꿨다.
... 아! 이제야 기억난다. 내가 때리라고 했지. 이제 다 기억이 나서 내가 방금 했던 질문이 굉장히 바보같이 느껴져.
그래.. 이거야. 기억 조정. 갑자기 재밌겠다는 생각에 얼굴이 밝아지니 대충 알았다는 듯한 A가 물어본다.
“이제 테스트 끝났냐?”
“어. 존나 기억지우는 거 대박이네.”
“그거 설정 잘해야 될 것 같은데. 잘못하면 좆될 수도 있잖아.”
“그건 그렇지.”
마지막에 기억 돌아오는 것만 설정 잘하면 될 거야. 이제 존나 폭이 넓어졌어. 모든 것을 첫 경험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정도니까.
“그래서 언제 가 우리?”
뒤에서 보채는 서연이를 본다. 예쁘다. 지금에야 얼굴이 익숙하지만 처음 보면 말도 제대로 못 붙일만한 상대겠지.
그렇다면 내가 능력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면? 서연이랑 같이 술만 마셔도 존나 행복하지 않을까?
“야. 우리 돌아가자.”
“어딜 돌아가?”
씨익 웃으면서 A에게 말한다.
“순수하던 그 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