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벌칙 - 3 [친구등장]
“그래서 어디 가게.”
“응?”
약국 앞에 세워진 차 안에서 단 둘이 대기하는 중에 A가 묻는다. 어라? 뭐지? 요즘 요렇게 얘랑 대화하는걸로 자주 시작하는 것 같아.
“어디 갈 건지는 말을 해줘야 끌고 갈 거 아냐.”
“아아.. 거기 어디냐. 우리 전에 맨날 가던 당구장.”
“당구장?”
생각만 하고 말을 안했네. 당구장이 좋지.
“뜬금 없이 왠 당구장임?”
“거기 포켓볼도 있잖아.”
“거기 뭐.. 있긴 한데.. 대부분 당구 치러 오는 우리학교 애들이랑 아저씨들 아니냐.”
“고렇지. 고거 때문에 가는 거지.”
한 쪽 눈이 찌푸려지면서 뭔 소리야? 라며 혼잣말을 절로 내뱉은 A.
“일단 가서 보여줄게.”
“쯧.. 뭐, 그래. 내가 손해보는 건 없겠지.”
“손해가 뭐냐? 개이득 보고 있는 와중에.”
“그건 그렇네. 점심도 비싼거 먹고.”
장어값이 꽤 나왔지만 뭐. 돈이 중요한가. 납득하는 듯하던 A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어본다.
“아, 맞다. 야 근데..”
“뭐?”
“니 능력으로 애들 가슴은 못 키우냐?”
“가슴?”
“오늘 보냈던 애들도 좀 아깝잖아. 가슴만 조절하면 진짜 좋은데...”
“하아... 존나 아쉽지만 못 키운다.”
저번 주에 연수원 돌면서 테스트 해본 내용이다. 사람들 마음도 컨트롤 가능한데 혹시 몸에 관련된 내용도 컨트롤 가능하지 않을까?
결과는 꽤나 실망스러웠다. 애초에 ‘가슴이 커지는 정도’, ‘가슴 커짐’ 같은 거는 추가가 안 된다. 그러면 혹시가슴을 키우는 호르몬 같은 건? 그것도 추가가 안 된다. 내가 처음으로 드림창에게 가져본 실망이다.
그나마 추가되는 것 정도는 ‘가슴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정도’였다. 즉, 오로지 정신적으로 '생각‘에 관련된 내용만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진 상태다.
근데.. 성적인 것에 대한 민감도 이런 거는 그런 쪽이 아닌가? 신기하네. 뭐, 이런 거라도 있는 게 감지덕지지만.
“하.. 그것만 됐으면.. 내 키 좀 늘리고.. 거시기 좀 늘리고.. 천연 스테로이드 좀 빨아서 근육좀 키우고 했지. 이렇게 내 몸뚱이를 놔둘 리가...”
“하긴...”
“뭘 하긴이야 이 씹새끼가.”
와.. 딱 두 글자인데 뭔가 엄청 많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가슴 크기 키울 수 있을 정도면 애들 얼굴도 바꿀 수 있을걸?”
“그냥 그 정도면 인조인간 하나 만들 수 있겠네.”
그 와중에 우우웅 하면서 울리는 휴대폰. 어라, 약 샀나보네.
“애들 이제 올 것 같다.”
“저기 보니까 나오고 있네.”
애들 셋이서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나와서 차 근처로 와서 차 문을 연다. 주희랑 서연이가 내 옆에 타니 자연스럽게 팔을 애들 어깨위로 올리면서 묻는다.
“뭐 샀냐?”
“몰라. 거기 약사님이 알려주시는 거 그냥 사봤어.”
스윽. 약 3개가 담긴 봉투에서 하나 꺼내서 보여주는 서연. 나는 봐도 모르니까 알아서 하셔.
“우리 이제 어디가?”
“니네 포켓볼 칠 줄 아냐?”
“어.. 나 한 번도 안쳐봤는데.”
주희 누나가 얘기한다. 알고 보니 나이가 스물넷이더라.
“니들은?”
“나도 안쳐봤어.”
“나는 딱 한 번 쳐봤는데.”
흐음. 경험자가 서연이 한 명이라.
“그거나 하러 가자.”
“어.. 다른 것도 재밌는 거 많을 것같은데..”
은근슬쩍.. 이 아니지. 대놓고 싫다는 듯이 얘기하는 소연. 니들이 그렇게 나오면 생각이 다 있어요.
세 명의 드림창을 하나 만들어서 추가하면 되잖아? 아이 간단해라. 요렇게 추가해보자.
「포켓볼을 치고 싶은 정도」- 7
“그래? 그러면 다른 거나 하러 갈까?”
“나는 괜찮은 거 같은데?”
“오랜만이니까 한 번 쳐보지 뭐.”
남은 두 명의 반응이 좋다.
“아니.. 뭐 재미 없다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많다 이거지.. 나도 뭐 상관없어.”
슬쩍 말 돌리는 그녀. 나의 의견에 NO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럼 거기 간다.”
“기사님 출발하시죠.”
“어차피 존나 가까운데 뭐.”
A가 핸들을 돌려 차를 출발시킨다. 나의 품에 반쯤 안겨 있는 두 사람을 보다가 주희 누나의 골짜기에 눈이 간다. 슬쩍 만질까.. 하다가 백미러슬쩍 보니 A의 얼굴이 보여서 포기하고 그냥 묻는다.
“누나는 뭔 생각으로 이거 입고 왔어?”
“이거? 쟤가 좀 까고 나오라고 해서 그냥 집에 있는 거 입고 왔는데?”
“까.. 까고 나오라니..”
언어 선택이 조금 독특하시네.
“아, 아니.. 나 처음 봤을 때 진짜 속옷만 입고 있는 줄 알았잖아.”
“처음엔 진짜 벗고 나왔는데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돌아가서 입고 나왔잖아.”
“헐? 진짜?”
“당연히 구라지.”
하면서 자기 혼자 좋다고 쪼갠다. 어.. 뭐지? 이 여자? 뭔가 뜬금없는 스타일인데? 근데 아까부터 보니까 왜 빈손이지.
“누나 서류는?”
“어? 어.. 아! 옷 다시 갈아입다가 깜빡하고 놓고 왔다.”
... 어라? 깜빡? 나랑 A의 말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거 아닌가? 드림창에 이런 구멍이 있나..? 하고 생각하는 와중에 갑자기..
“...는 구라고 여기 있지. 자.”
하면서 돌핀팬츠를 앞으로 쭉 잡아당기더니 거기서 팬티 바깥쪽에 있던 접혀진 종이를 꺼내서 나한테 준다. 나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서연이랑 앞에 있는 두 사람도 숨을 들여 마시는 소리가 들리는 걸 봐서 좀 놀란 모양이다.
어마어마하다. 어마어마해. 이.. 이거는 뭔가 보기가 쪼끔..
“어.. 고, 고마워. 근데 우리 이제 면접 안 봐서 서류도안 보거든.. 얘기를 깜박했는데 안 가져와서 한 번 물어본 거야...”
“그래? 뭐야. 괜히 가져 왔네.”
뭔가.. 쎄네. 이 언니.
강렬한 첫 인상에 의해 약간 주눅이 들어서 그런가 오는 내내 그다지 말을 잇지는 못했다. 뭐 가깝기도 해서 금방 오긴 했지만.
당구장 근처에 도착해서 차를 댔다. 그리고다 같이 내려서 당구장이 있는 2층으로 가는데, 내가 가장 앞서 향한다.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뭐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닌 곳. 어차피 여기는 싼 맛에 오는 거라.
문을 여니 파란 당구대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으음, 내가 당구장을 애들 따라 몇 번 오기는 했어도 존나 못 쳐서 항상 돈만 쓰고 갔지. 주위를 둘러보니.. 평일 낮인데도 의외로 사람이 있다.한 10개 정도 있어 보이는 당구대중에 6개는 차 있는 듯? 그 중에 대부분이 나이든 사람보다는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랑 젊은 아저씨들? 정도였다. 여자는 우리 밖에 없는 것은 당연.
카운터 바로 옆 당구대에서 큐대 들고 서 계시던 사장님이 오셔서 먼저 인사해주시기에 바로 따라서 고개를 숙인다. 포켓볼을 치겠다 말하니 대충 손으로 가리키시는 사장님.
그리고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애들에게 슬쩍 시선이 가신다. 음, 그 모습을 보고 딱 당구장 드림창을 만들어서 추가한다.
「나와 A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정도」 - 9
‘제외 - 김소연, 송서연, 김주희’
그리고 안쪽에 있는 포켓볼당구대로 향하는데 스윽 지나가면서 옆을 보니까 내 뒤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자기 차례에 허리 숙이고 큐대로 공 조준하고 있는 아저씨도 공이 아니라 뒤쪽에 있는 애들 따라 눈이 돌아가는 게 보인다.
슬쩍 발걸음을 늦추고 애들 먼저 보낸 뒤에 가장 뒤에서 따라오는 A에게 말한다.
“보이냐?”
“너 뭐 했냐? 존나 노골적인데?”
“별 거 아냐. 너랑 내 시선만 신경 안 쓰게 했다.”
“어?”
약간 이해가 안 가는 듯 잠시 멈칫했다가..
“아!”
이해한 모습이다.
“오.. 뭔가 괜찮은 것 같은데.”
“그치? 생각보다 시선이 엄청 쏠린다니까. 나 내용 추가하고 있을 테니까 애들한테 룰 좀 알려줘라.”
“오케이.”
기분 좋게 포켓볼 당구대로 향하는 A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당구장 드림창을 켠다.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성추행을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 10
「우리에게 부탁받은 것 외에 더 이상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 - 9
「우리들의 노출과 섹드립, 성적 행위에 대해 말리거나, 비난하거나, 신고하고 싶지 않은 정도」 - 9
앞으로 벌칙게임에서 과한 전개는 방지하기 위해. 애초에 뭐 다들 좋다고 보느라 바쁘겠지.
아, 그리고 이번에 새로 추가해볼 것이 있다. 이번에는 OO시 드림창을 가져온다. 이번에 처음 해보는 건데 잘 될지는 해봐야 알겠지.
「영상 및 사진 자료에서 ‘나’와 함께 있는 무리들의 노출과 성적 행위에 대해 매우 당연하고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도」 - 10
이거를 이제 전국적, 전세계적으로 펼치면 CCTV 같은 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일단.. 당분간은 크게 놀 생각 없으니 이 정도만 해놓자. 테스트도 해봐야 되고.
당구장 드림창 마무리 짓고 포켓볼 당구대를 보니 다들 신나서 큐대 들고 허리를 숙여 몸을 당구대에 바짝 붙이고 슥슥 한 번씩 쳐보는 자세를 잡고 있다. 튀어나온 엉덩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것은 덤.
가까이 가기 전에 일단 애들 내용도 추가해놓자. 아까 설정해놓은 세 명 드림창을 가져와서 설정한다.
「포켓볼에 대해서 내가 말한 룰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정도」 - 9
「승부에 대해 꼭 이기고싶다고 생각하는 정도」 - 6
「포켓볼에 집중할수록 자신의 노출이 신경 쓰이지 않는 정도」 - 7
「엉덩이를 맞을수록 승부욕이 조금씩 증가하는 정도」- 4
「자신이 공을 쳐서 넣을 때 마다 2초 동안 강한 쾌락을 느낌」 - ON
「자신이 공을 쳐서 넣을 때 느끼는 쾌락의 정도」 - 6
‘기준 - 자신이 느껴본 최고의 쾌락 2’
이 정도면 되겠지. 룰에 따라야 한다는 걸 강하게 넣어봤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다들 각자 큐대 하나씩 들고 A에게 열심히 배우고 있는 포켓볼 당구대로 가까이 가면서 얘기한다.
“자, 이제 팀 짜자.”
“팀 어떻게 하게. 2명 3명인데.”
“어... 그냥 귀찮은데 앞좌석 뒷좌석 합시다.”
“그러지 뭐.”
A가 아까부터 은근히 소연이한테 눈길이 가는 것 같거든. 그래, 뭐 취향은 좋은데 여자친구로는 안 만들어줄 거야.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면서 말을 잇는다.
“기본룰은 A한테 다 배웠어?”
“어. 뭐 별 거 없잖아. 쳐서 넣으면 되지.”
서연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우리는 에잇볼 할 거니까 뭐 어려운 거 없지.
“그러면 우리만의 특별한 룰을 알려드려야겠네.”
“특별한 룰?”
나는 이런 특별룰 얘기할 때가 제일 신나.
“자기 차례에 공을 쳐서 못 넣은 팀원한테 엉덩이 한 대씩 때려줘야 됨.”
“아.. 그런 것도 있구나..”
“오 좋은데?”
뭔가 납득하는 듯한 둘과 다르게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주희. 으음.. 아까 이 누나 서류 좀 봐둘 걸 그랬나..?
“그리고 공을 넣을 때 마다 팀원 한 명이랑 키스 한 번씩 하셔야 합니다.”
“키스? 혀도 넣어야 하나요?”
“그건 하는 사람 마음.”
나의 답변에 고민하는 소연을 보던 A가 나에게 엄지 하나를 치켜세워준다. 그래, 알아. 나도 내가 쩌는거.
“마지막으로 이긴 팀이 진 팀에게 벌칙을 하나 시킬 수 있습니다.”
“벌칙? 무슨 벌칙?”
“그건 이긴 팀 마음이지. 뭐든지 가능합니다.”
그거를 알려주면 재미가 없잖아.자, 시작하기 전에.. 어라. 나 장갑 안 가져왔네.
“아, 나 장갑 안 가져왔다. 장갑 필요한 사람?”
“내가 가져올게.”
주희 누나가 흔쾌히 대답하더니 당당하고 파워한 워킹으로 카운터쪽으로 간다. 그리고 옆에서 누나 움직임에 따라 남자들시선이 천천히 움직이는 걸 보고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아.. 존나 알 것 같다.”
가게 내에 있는 남자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천천히 고개가 움직이는 걸 보고 A가 고개를 끄덕인다. 돌아올 때도 안 보는 척 등진 사람도 옆으로 눈알 굴리는 게 보인다. 적절히 가슴도 출렁이는 데 보기만 해도 좋네. 정신줄 놓고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어느 새 우리한테 돌아온 그녀.
“장갑 필요한 사람?”
A 빼고 네 명이 낀다. 나는 당구 허접이라 이런 거 껴야 돼.
“누가 먼저 하냐?”
팔을 쭉쭉 잡아당기면서 스트레칭까지 하던 A가 옆에 와서 묻는다. 준비만전이네 아주.
“그냥 니네팀 먼저 하셔.”
“어? 왜?”
“이거는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
“그런가?”
대충 알았다는 듯이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가는 A.
“뭐야? 무슨 얘기 했어?”
서연이가 큐대에 쵸크를 어설프게 문지르며 다가온다.
“어.. 별 거 아냐. 벌칙을 뭘 시킬까.. 하는 그런 얘기야.”
“도대체 무슨 벌칙을 시킬 건데?”
“진짜 별거 없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얘기한다.
“일단 옷 입고 있을 생각은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