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벌칙 - 1 [친구등장]
“내가 오전에 이거 하면서 존나 느낀 게 있다.”
“뭔데 뜬금없이?”
“이 능력 쓸 때 중요한 건 얼마나 완벽하게 설정을 잘 짜느냐가 문제가 아니었어.”
“그럼 뭐가 중요한데?”
“꼴리는 게 가장 중요해.”
시내에 위치한 한 장어집. 점심특선 메뉴도 있고 위치가 좋아서 그런가 사람들이 꽤나 바글바글한 집이다. 들어오면서 바로 드림창 꺼내서 우리한테 전혀 신경 안 쓰도록 했으니 남들 눈은 신경 안 써도 된다. 종업원들만 빼고. 우리한테 음식 가져다 줘야 하니까.
그리고 눈앞에는 점심부터 원기보충을 위한 비싼 장어가 지글지글 거의 다 익어가고 있었다.
“니가 나한테 처음에 얘기한 것도 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 않았냐?”
“그래, 그건 맞지.”
“근데 갑자기 뜬금없이 뭔 소리냐?”
“잠깐. 오빠, 아아아.”
“오, 아아.”
A랑 얘기하다가 옆에서 소연이 먹여주는 장어를 헤벌쭉하면서 받아먹는다. 좋아 죽네 새끼.
“처음엔 이거저거 면접 내용 짜면서 엄청 좋았지. 재밌을 거라고. 근데.. 막상 까보니까.. 괜히 과한 컨셉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으음.. 맛있네. 그건 좀 에바참치 아니냐. 그래도 재밌었는데.”
“근데 거기서 우리가 처음 기획했던 내용은 하나도 없잖아? 서류도 처음에만 보고 하나도 안 봤어.”
“그건.. 그렇지?”
“오빠, 아아.”
이번엔 내 입 가까이 젓가락이 온다. 생강과 소스가 곁들어진 장어를 그대로 받아먹는다. 씹으면서 오른쪽을 보니 먹여주고 나서 시크하게 자기 먹느라 바쁜 서연이가 보인다. 뒤늦게 나이를 물어보니 각각 22, 21이라 해서 오빠라 부르라 했다. 역시 오빠 소리가 최고야.
결국, 아까 그 난리 정리하면서 남은 인원 보내고 다섯 명 중에 두 명만 데려왔다. 어차피 밥만 같이 먹이려고 데려온 거라 크게 터치는 안하고 먹여주는 것만 시키는 상황. 어차피 이제 다섯 명은 이제 단톡 멤버 확정이니까.
그냥 검색해서 나온 가까운 장어집으로 왔는데, 생각보다 맛은 나쁘지 않네. 우물우물 기름진 맛을 잡아주는 생강향을 느끼면서 삼켜버린다.
“이게 해보니까 알겠다. 그냥 딱 설정놀음이야.”
“설정놀음은 또 뭐야.”
“그런 거 있잖아. 게임이나 소설 같은 데서 설정만 존나 짜는 거 좋아하는 그런 거.”
“아, 대충 알 거 같다.”
“앞으로는 그래야겠어. 우리가 하는 일이 존나 직관적인 거 아니냐?”
“1차원적이지.”
“오후부터는 면접 내용 버려도 될 것 같다.”
“오전부터 버린 거 아니었냐?”
윽. 그건 맞지. 갑자기 오디션이라고 틀었으니까. 말만 오디션이지 그냥 애무파티였지만.
“대충 컨셉만 잡고 가면 될 것 같아. 오후에 장소 어디라 했지?”
“거기가.. 어디였더라. 어디 아파트였는데. 한 명 사는 곳.”
“집이면 뭐 눈치 볼 거는 전혀 없겠네.”
아, 맞다. 그리고 애들 그것도 쳐내야지. 어으 근데 갑자기 오줌 마려워.
“야, 나 화장실 갔다 올테니까 단톡 하나만 보내놔라.”
“어? 밥 먹다가 무슨 단톡.”
“A컵인 애들만 다 쳐내.”
“... 존나 칼 같네.”
“걍 설정 해놨으니까 A컵인 애들만 싹 나가라 하면 된다.”
대충 장어 한 번 더 받아먹고 끄덕이는 A를 보며 화장실로 향한다. 쩝쩝 씹던 장어를 남아 있는 소변기에 달라붙기 전에 삼키고 지퍼를 내린다.
하아.. 생각해보니 그렇네. 면접내용 존나 재밌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하니까 좀 허전하고. 차라리 중간중간 애드립을 넣어서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유진이 보낼 때도 그랬고.
대충 다 싸고 난 뒤에 거시기를 털어내고 손에 물 묻힌 다음에 나간다. 흐, 오전에는 한 발도 못 뺐지만 오후에 뺄 예정이니 든든하게 먹고 가야겠다. 손을 털며 자리로 돌아가서 휴대폰 보고 있는 A에게 묻는다.
“했냐?”
“어, 했는데..”
“했는데 뭐.”
“반토막났다.”
“... 뭐?”
급하게 자리에 있는 내 휴대폰을 켜서 단톡방에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퇴장 알림. 남은 숫자가 몇이냐.. 하고 보니까.. A랑 나포함 22명..?
“뭐냐 이거.”
“그러게. 아까 성병 나간 애들 빼고도 A컵 애들 20명이 넘게 빠졌다.”
“... 이게 현실인가.”
하아.. 갑자기 허탈함이 확 찾아왔다. 진짜 거르고 거르면 얼마 안 남겠네. 비틀비틀 힘 빠진 몸으로 자리에 앉았다.
“가슴 큰 애들이 그렇게 찾기 쉬운 줄 알아?”
소연이가 A에게 한 쌈 싸주면서 얘기한다.
“내가 너만큼 큰 걸 바라는 게 아냐. 어? 여기 서연이만 되도 어? 얼마나 좋냐.”
“나도 작은 편은 아닌데...”
“아니, 얘기가 그렇다는 거지... 근데 큰 지 안 큰지 내가 안 만져봐서 잘 모르겠네?”
“장어나 드세요 아저씨.”
서연이 방금 막 익힌 장어 하나를 내 입에 쑤셔 넣으니... 으 뜨거. 입안에서 굴려가며 식힌다. 얘들한테 섹드립 허용을 해놓으니 아주 스무스하게 이런 얘기로 흐르네. 내 능력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싹 없애버려서 상관없고.
“어?”
아직까지 휴대폰 보던 A가 갑자기 놀란다. 우물우물 씹으면서 묻는다. 으음 아무것도 안 찍어도 맛있넹.
“왜?”
“우리 오후 일정가려고했던 집이라 했던 애도 나갔는데?”
“... 하아.”
골치가 아파온다 갑자기. 괜히 얼굴만 보고 뽑았나. 다음부터는 얼굴이랑 몸매 두 개 다 뽑자. 아, 근데 그거 하려면 또 귀찮아지는데. 그건 나중에 생각해. 입에 있던 것 삼키고 물어본다.
“거기 몇 명이었는데 몇 명 나갔냐?”
“여기 다섯이었는데 지금 한 명 있다.”
“미친...”
다른 모임이었으면 일정 취소 각이네. 근데 한 명이라.. 한 명.. 으음.. 한 명을 우리 둘이서 하는 건 좀 그렇고.. 에이, 모르겠다.
“야, 그냥 걔 한 명 데려와서 우리끼리 그냥 놀자.”
“오, 그럴까?”
“걔 어디 사는데?”
“글쎄? 물어보지 뭐.”
어제 열심히 단톡방에서 활동해서 그런가. 여자애들한테 톡 하는 건 존나 거침없어진 것 같은데. 옆에서 오물오물 씹으면서 우리를 보던 소연이 묻는다.
“뭐야? 어디 놀러 가게?”
“그럴까 싶은데.. 너 뭐오후에 할 일 없냐?”
“없어. 이거 끝나고 그냥 집에 가려고 했지.”
“서연이는?”
“나도 뭐..”
얘들도 한가하네. 여자끼고 노는 게 최고지 암. 카톡하랴 먹여주는 장어 먹으랴 바쁜 A에게 일거리 하나 더 주고자 묻는다.
“야, 저녁에도 일정 있었냐?”
“어? 저녁? 잠시만...”
스윽스윽. 톡톡톡. 손가락을 바쁘게 놀리는 A.
“이야.. 여기는 여섯이었는데 한 명 밖에 안 남았다.”
“어째 오늘 다 몰려있네. 내일은 좀 많겠다.”
“글쎄... 면접 안 보는 사람들도 남아있는 사람 있어서.”
“아, 맞다. 안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
49명중에 20명.. 절반 이상이 A라니.. 갑자기 현실에 슬퍼지네. 우리 애들 만난 게 정말 행운이었구나.
“걔한테1시 반에 데리러 간다고 나와 있으라고 해라.”
“오케이. 바로 하겠습니다.”
신나게 휴대폰 두들기는 A를 보며 하나 더 먹으려는 데 그 사이에 서연이 입안에 넣어주며 묻는다.
“근데 뭐하고 놀게?”
“으음.. 니네 뭐 하고 싶은 거 있니?”
“글쎄... 언제까지 놀게?”
“뭐 저녁에도 한 명 밖에 없으니 저녁에 한 명 더 끼워서 놀면.. 너희 시간 되는 대로.”
“흐음..”
볼이 살짝 튀어나온 채로 귀엽게 씹으면서 고민하는 그녀. 초커 때문인가 약간 섹시해보이기도? 흠, 역시 인물로 뽑은 것도 괜찮은 것 같아.
“단순히 놀기만 할 거 아니잖아.”
휴대폰 내려놓고 말한 A가 아아아 입 벌리면서 먹여주기를 기다린다. 입에 음식 들어갈 때 마다 좋아 죽느라 바쁜 놈이다.
“그렇지.”
“뭐야? 놀기만 안하면 뭐를 하게?”
소연이 A의 입에 쌈 하나를 넣어주면서 묻기에 능청스럽게 대답해준다.
“하이고, 젊은 남녀 다섯이 모이면 뭐하겠습니까.”
“서.. 설마 그거..?”
“어, 그거.”
“미쳤구나.. 평일 대낮에 그런..”
낯부끄러워 하는 그녀. 아가씨.. 방금 전까지 가슴 빨리다가 자기도 정액 먹어 보고 싶다고 하신 주제에..
“시간은 상관없지! 지금이 기회잖아. 다섯이 만나서 5인큐 돌리기가 쉬운 줄 아냐?”
“...어? 5인큐?”
“젊은 남녀 다섯이 모이면 당연히 5인 자유 랭겜이지. 무슨 생각을 하신 거죠?” “아니.. 하.. 참..”
“머릿속에 히토미를 좀 끄시는 게 어떨까요?”
당했다는 것을 안 그녀가 토라진 모습으로 나를 째려보는데... 아이고. 얼굴로 모은 애들이라 귀엽기만 하다 야. 옆에 A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묻는 거랑 좀 비교되네.
“그래서 진짜 안 할 거야? 진짜?”
“안 할 거면 이거 왜 먹겠냐?”
“어후, 약간 식겁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나 집어먹는 A. 흐음.. 다섯이라.. 다섯이서 어디 가지?
“근데 진짜 어디 가냐?”
“그러게. 다들 하나씩 던져 봐. 돈은 다 내가 내니까 걱정 마시고.”
“어? 진짜?”
“진짜니까 하나씩 던지세요.”
“그럼 나 방탈출!”
가만히 듣던 서연이가 가장 먼저 얘기한다. 방탈출? 나 그거 안 해봤는데 재밌나?
“그거 재밌냐?”
“생각보다 재밌던데? 근데 돈 생각하면 좀 아깝긴 해.”
“아아, 내 돈은 안 아깝고?”
“남의 돈 쓰면서 노는 게 최고지.”
그것도 맞는 말이구만.
“나는 영화 보고 싶은데.”
소연이도 한 마디 한다. 영화? 그것도 좋지. 요즘 뭐 볼만한 거 있나? 그리고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A한테도 묻는다.
“야, 너는?”
“나는... 다 같이 하는 게 좋은데. 어.. 뭐 보드게임방이나.. 포켓볼이나..”
호오, 평소답지 않게 그런 거를 생각하다니. 얘기 듣다보니 다 좋긴 한데.. 흐음.. 어떻게 연관을 시킬지..
“오빠는?”
서연이가 이번에는 쌈을 싸주면서 입에 넣어주고 묻는다. 먹여주고 묻는 게 어딨냐. 흐음.. 딱 생각나는 게 없어서 턱을 괴고 씹으면서 고민한다. 가장 중요한 건 그거야..
최대한 야하게 하고 싶어.. 나 한 발도 못 뺐단 말야. 일단은 미뤄놓자.
“어차피 이거 먹고 커피도 한 잔씩 할 거니까 천천히 생각하자. 바로 떠오르는 게 없네.”
뭔가 팍 하고 꽂히는 게 없다. 그래도 뭐.. 소서연 듀오랑 한 명 더 데리고 다니면 존나 우월감 쩔어서 다 재밌긴 할 건데.. 하.. 나도 모르게 고민하다가 꿀꺽 삼켜버리고 튀어나오는 한 마디.
“아.. 뭔가 딱.. 그런 거 없나?”
“뭔데? 뭐를 자꾸 원하는데?”
A가 묻는다.
“아니.. 뭔가.. 쎅쓰하면서도 같이 즐길만한 뭔가 재밌는.. 그런 게 필요해..”
“뭐? 옷 벗기기 고스톱 같은 거?” “그건 존나 올드하잖아.”
그래. 그것도 게임하면서 동시에 아주 쎅쓰하지. 옛날에 그거도 유명했잖아. 옷벗기기 젠가 썰 같은거.
“우리끼리 그런 거 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해.. 채워지지가 않아..”
“왜 우리끼리가 부족하냐?” “우리끼리는 당연히 그런 거 할 거니까.. 흐음..”
전에 왕게임 할 때나 얘네랑 오디션 내용할 때는 처음이라 흥분됐는데... 이제 허들이 높아졌나.
“그럼 그걸 남한테 보여 주냐?” “그건...... 어?”
보여줘?
어라? 남한테 보여준다고..?
“뭐를 누구한테 보여줘?”
“뭔 소리야. 그냥 해본 거야.”
“아냐.. 그거 재밌네..”
뭐를 보여주겠니. 당연히 남들한테 보여주기 힘든 거나 안 되는 것이어야 재밌지.
누구한테 보여주겠니. 당연히 보여주는 것을 보고 반응이 재밌는 사람이면 좋겠지.
그리고 반응이 재밌으면서.. 뭔가.. 그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놀리는 듯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자신감과 우월감..
아아...!!
재밌는게 생각 났어.
“... 어느 곳이든 상관이 없다.”
“엉?”
A가 다정하게 먹여주는 소연에게 입을 벌리다가 묻는다.
“나는 어디를 가도 상관없어. 우리끼리만 아니라 사람들이 좀 있는 곳이면 돼. 단!”
“단?”
“게임을 하자.”
“게임?”
그래. MC에서 뭔가 납득시킬만한 룰을 만들려면 게임이 제일이지.
전에 했던 게임이라 하면 왕게임이 있었지. 하지만 그거랑은 조금 다르지만 아주 좋고 재밌는 게 있잖아?
씨익. 절로 웃음이 지어지면서 대답한다.
“벌칙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