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모집 - 4 [친구등장]
“일단 가장 기본적인 신상정보부터.”
“틀은 어떻게?”
“그냥 우리가 알아볼 수 있게만 만들면 돼. 대충 표로 그려도 되고, 그냥 써도 되고.”
“그냥 얘들보고 써오라 하면 안 되냐?”
“그러면 내용 일일이 다 지정해줘야 하잖아. 그리고 빠지는 내용도 있을 거고. 그냥 대충 나열해서 내용 정리부터 하자.”
대충 알았다는 듯이 다시 문서프로그램을 키는 A.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생각나는 대로 그냥 다 써 버려. 깨끗한 새 창을 키고 A가 묻는다.
“자, 제목은 뭘로?”
“제목? 하.. 나 제목 존나 못 짓는데.”
“그럼 대충 이력서로 하던가.”
“그래, 상관없으니까 대충 써라.”
이력서든, 딕데이터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내용이 중요하지.
“자, 이제 처음으로 사람을 알아가는 데 있어 가장 먼저 필요한 것.”
“신상정보지.”
“고렇쥐.”
A가 가볍게 표를 만들어서 하나씩 작성한다. 이름, 나이, 주소, 연락처, 이메일.. 응?
“이메일은 왜 쓰냐?”
“별론가?”
“합격메일 보낼 것도 아닌데 필요 없지 않냐.”
“이력서 얘기 나와서 이것도 써버렸네.”
이메일은 지우고..
“야, 학력도 쓸 거냐?”
“... 솔직히 필요는 없는데 뭔가 넣으면 재밌을 것 같다.”
“같이 놀 사람 구하는데 학력 보는 것도 존나 병신 같네. ㅋㅋㅋ”
“원래 병신 같아야 더 재밌지. 넣자.”
학력도 넣었다.
“학력도 넣었는데 가족사항이랑 경력도 넣어야지?”
“시발, 그래. 1페이지는 그냥 이력서로 채우자. 취미랑 특기도 넣어라.”
“주량도 넣지 않냐 그거.”
“오, 주량은 필요해. 가끔 술친구 하면 좋잖아.”
“개굿이네. 이런 애들 옆에 끼고 술 마시면 술맛 존나 쩔 듯.”
“정작 부르면 말도 못하는 새끼가.”
“아가리좀.”
어.. 생각해보니 그냥 이력서 양식들 인터넷에 많을 것 같은데.
“야, 아니면 그거 어디냐. 인터넷에서 이력서 양식 같은 거 받을 수 있지 않냐?”
“오, 그러네.”
A가 손가락을 튕기면서 인터넷 창을 켠다. 양식들이 참 많이 뜬다. 근데 뭐 대부분 경력 가족사항 자격사항 이런 것들.. 이렇게 나열할 내용들은 없는데.
“음.. 정작 이력서 보니까 필요 없는 내용도 많네.”
“그러게, 자격증이나 병역 이런 거는 필요 없지 않냐.”
“고것들 싹 병합해서 새로운 항목 만드는게 낫겠다.”
슥슥 몇 번 클릭하고 단축키를 만드니 이력서에 듬성듬성 빈 칸이 생긴다. 보자보자, 기본적인 신상정보는 다 들어 있으니 이제 피지컬을 넣어보자.
“야, 여기에 이제 그거 몸에 관련된 거 넣고.”
“몸? 뭐, 키랑 몸무게 같은 거?”
“어, 그거랑 가슴 컵사이즈.”
“존나 필수지.”
따다닥 키보드를 누르더니 금방 칸을 나눠서 채워 넣는다. 음, 이 새끼. 잘 뽑았어. 경쾌하게 엔터를 누르고 다시 묻는다.
“다음은?”
“다음은.. 역시 그거지. 혹시 지금 혼자세요?”
“오.. 남친 있나 없나?”
“남친만 있는 게 아니지.”
“어?”
기분 좋게 다시 수정하려다가 멈칫하는 A.
“뭔 소리?”
“아니, 남친만 있는 게 아니지. 남친 다음이 뭐냐?”
“남친 다음? ... 헐? 설마?”
깜짝 놀라는 A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남편이 있는 지도 물어봐야지.”
“.... 시발. 그러네.”
잠깐 멍하니 고민하던 A가 남친 유무 항목을 현 상황으로 바꾸고 옆에 남편 / 남친 / 솔로 로 바꾼다.
“오, 센스 있네.”
“와.. 시발.. 유부녀라니.. 미친..”
나름 녀석에게 느낌이 온 것 같은 모습이다.
“왜? 별로냐?”
“아니, 좋긴 좋은데.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놀라워서.”
“그런 말도 있잖아. 남의 여자가 되니 더 매력적이다.”
“남친과 남편. 한 글자 차이가 이렇게 다른 느낌을 주네.”
얼굴을 털며 여운에서 벗어난다. 그래, 아직 할 일이 많다.
“다음은 뭐냐?”
“다음은 이제.. 지금이 아니라 과거를 얘기해야지.”
“과거? 뭐, 성형?”
“오..? 그건 생각도 못했는데? 야, 성형 이력도 추가해라.”
일단 추가하는 A.
“과거 그거 아니었냐? 그럼.. 아!”
“거쳐간 남자 수 쓰라는 거지.”
“과거 남친 몇 명이었나?”
“어. 그리고 그것도 추가해라. 거쳐간 좆이 몇 개인가.”
“미친 새끼. 존나 대놓고 쓰라네.”
“우리 좆이 들어갈 지도 모르는 곳인데 잘 알아둬서 나쁠 거 없지.”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면서 과거 남친 수 밑에 섹스 했던 남자의 수를 추가한다. 다 쓰고 나니 웃으면서 미간을 꼬집는 A.
“존나 병신 같지만 재밌네.”
“원래 이 짓거리도 다 재밌자고 하는 짓이지.”
“니가 내 친구라 다행이다.”
“뭐가?”
“이런 존나 병신같은 짓거리 같이 할 수 있어서.”
“이 새끼 하라는 브레이킹은 안하고 재미 들려서 나보다 더 한 거 할 거 같은데.”
“야, 그래도 아직은 존나 양심적이지 않냐?”
“됐고, 다음.”
“저장부터 하고.”
일단 바탕화면에 ‘이력서’로 저장해놓는 A. 준비성 좋네.
“다음은?”
“다음은.. 아, 야. 직업썼냐?”
“어? 직업은... 안 쓴 듯.”
“직업부터 넣고. 직업이 중요하지. 이제부터 성적 판타지를 좀 쓸거니까.”
직업 넣다가 오호! 하면서 돌아보며 오묘하게 좆같은 표정을 짓는 A.
“성적 판타지.. 오, 시발. 존나 멋있는 말이야.”
“야, 그거는 좀 칸 좀 크게 해라. 항목도 여러 개 들어갈거고 단답형으로 하기보다는 서술형이 좋으니까.”
“옙, 만들었습니다.”
이제 큼지막하게 ‘성적판타지’란이 생겼다.
“일단은.. 가장 먼저 자신만의 특이한 페티쉬.”
“페티쉬?”
“남들이랑은 다른 거 있잖아. 모든 여자들이 다 좋아하는 뭐 만져주거나 하는 거 말고 특이한 거. 뭐 SM 이런거?”
“호오.. 씨발.. 막 묶고 때리는 그런거?”
“아니면 뭐 코스프레 같은 것도 좋지.”
“그런 것도 있지. 니가 시킨 거. 막 주인님 주인님 거리는 거.”
“닥쳐 개새끼야.”
하, 씨발. 갑자기 갑툭튀로 꺼내드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짓을 한 거지? 그걸 또 왜 얘한테 얘기한거지?
“페티쉬 넣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가장 좋았던 섹스 경험.”
“뭐냐 너? 이거 다 생각해왔냐? 왜 이리 술술 나옴?”
“이런 거는 생각해오는 게 아니라 한 번 발동 걸리면 술술술 나오는 거임.”
“오.. 개쩌네.”
타다다닥. 추가하는 A.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해보고 싶은.. 그러니까 희망하는 섹스.”
“이런 거 넣으면 존나 이상한 거 나오려나?”
“인터넷 같은 데 보면 여자들도 성적 판타지 개쩔잖아. 얘들한테도 아이디어 좀 얻자고.”
“근데 얘들은 능력 모르는 데 되게 한정적인 거 쓰지 않나?”
“아니, 판타지니까. 거기에 조금 개량만 하면 괜찮을 걸?”
“머릿속이 판타지인 애들도 있겠네.”
“머릿속에 섹스밖에 없는 애들도 있을 거고.”
둘이서 낄낄 거리면서 추가하니 초인종이 띵 - 동 하고울린다. 오, 벌써 왔나. 현관으로 빠르게 움직여서 문을 열려는 찰나에 어... 이, 이번에는 뭐 이상한 일 없겠지?
“뭐하냐?”
“아니, 아무것도 아님.”
이상하게 물어보던 A를 뒤로하고 문을 살짝 여니, 그냥 배달대행인지 헬멧 낀 상태로 무덤덤하게 음료만 건네주고 간다. 음료 받아서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들어온다.
“뭐냐? 왜 그럼?”
“... 요새 자꾸 내 의도랑 다르게 일이 커지는 느낌이라 좀 조심 좀 했다.”
“자의식 과잉인 듯.”
딸려온 스무디에 빨대를 콕 뽑아서 쭈욱 마시는 A. 길게 마시더니 카아아 하며 아재 같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야.. 시발. 이게 국밥 한 그릇인가?”
“국밥충 꺼지시고. 다음.”
한 모금 가볍게 더 마시고 내려놓는다. 나도 빨대를 꼽고 옆에서 마시면서 얘기한다. 크으, 짬뽕먹고 딸기 스무디라니. 어마어마하구만.뭔가 짬뽕보다 해장 잘되는 거 같은데?
“다음은 뭐냐?”
“다음은.. 방법에 대해 얘기해야지.”
“방법? 섹스?”
“그래. 뭐, 체위라던가. 애무라던가. 좋아하는 거.”
선호하는 체위와 애무를 추가한다.
“그리고?”
“그리고는 이제 내 취향을 넣어야지.”
“니 취향 뭔데.”
“노출.”
“... 시발. 어째 카페에서부터 그러더라.”
“꼽냐고 개새끼야.”
“존나 좋아서 그렇습니다, 형님.”
새롭게 칸을 추가하는 A.
“뭐, 어떻게 추가 하냐?”
“노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정도 쓰고. 그리고 자신이 해본 최대 노출 써보고.”
“핫팬츠 이런 것도 노출로 치나?”
“그것도 보기는 좋으니 맞지. 그 다음은.. 아니다. 질문 같은 것들은 그냥 면접 때 물어보자.”
“이거는 면접 때 생각나는 용도 정도면 되겠네.”
“고렇지.”
탁탁. 가벼운 손놀림을 보여주는 이 놈. 그러고보니 계속 나만 얘기한 것 같은데.
“니는 뭐 넣고 싶은 거 없냐?”
“나? 글쎄. 나는 그런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럼 지금 생각해 봐 병신아.”
“오키. 잠만.”
흐음.. 하면서 관자놀이에 손을 대며 고민하는 A. 나처럼 고민하는 거 보다 그냥 얘가 하나씩 던지는 게 더 괜찮을 때도 있지.
“면접 때 안 심심하게 장기자랑 같은 거 넣을까?”
“그건 면접 얘기고. 우리가 시키면 되는 거니까.”
“아니, 여기다가 항목 넣어서 보고 재밌으면 시키고 재미없어 보이면 안 시키면되지.”
“... 나쁘지 않네.”
자신만의 장기 항목을 추가한다. 음, 이런 거는 생각 못했는데. 어떻게 면접에서 장기자랑을 시킬 생각을 하지?
“야, 괜찮다. 막 던져 봐라.”
“어.. 본인 성격의 장단점?”
“성격? 성격이야 뭐 얼마든지 고칠 수 있긴 한데.”
“그럼 본인 섹스의 장단점?”
“... 넣어라.”
신난 듯이 추가한다. 하긴, 이런 거 면접에서도 물어볼 수 있긴 한데 사람이 그래도 좀 있다 보니 걍 써오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좋아. 그리고?”
“흠.. 세 명 이상이서 해 본 적 있는지?”
“오, 좀 바꿔서 그렇게 하자. 최대 같이 섹스해본 인원 수.”
“설마 3명 이상 있겠냐?”
“사람 일 모르는 거다. 혹시 몰라? 알고 보니 뒤쪽에서 유명한 애일수도.”
“근데 그건 다녀간 좆으로 좀 추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녀간 좆 많아도 1:1 많이 한 애랑, 다녀간 좆 적어도 여러 명이서 한 애랑 느낌이 다르지?”
“흐음.. 생각해 보니 그렇네.”
고개를 끄덕이며 항목을 추가한다. 어, 나도 하나 생각났어.
“다음은 좆으로 가자.”
“뭐? 무슨 좆?”
“자기가 경험해본 최고의 좆과 최악의 좆.”
“오, 시발. 썰 푸는 건가.”
“간략하게만 쓰고 자세한 내용은 직접 듣지 뭐. 그거 서술형 너무 많아도 읽기 힘듬.”
“하긴 직접 입으로 듣는 게 훨씬 낫지.”
이쯤 추가 했으면 많이 한 것 같다. 사람이 많으니 적당히 끊어야지.
“이제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얘기하다보면 시간 순삭될 것 같다.”
이제 대충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A. 이제 다른 것을 생각할 차례다.
“야, 이제 제일 중요한 거 고민할 때다.”
“어? 뭔 고민?”
“시간이랑 장소.”
그래, 면접인 만큼 직접 보기로 했으면 봐야지. 근데 이 만한 인원이 모일만한 시간대도 정해야하고, 장소가 제일 중요하다.
“일단 시간보다 중요한 게 장소지. 49명인데. 반으로 나눠도 최소 20명은 넘을거 아냐.”
“그렇지. 이 인원들 수용할 수 있는 장소.”
“뭔가 형식적인 면접보다 본격적으로 할 수 있으면 재밌을 것 같은데.”
“여기, 니 방은?”
“개씹에바지. 여기 20명이 어떻게 들어 오냐.”
“그럼 어쩌지? 어디 장소 빌릴 수 있나?”
흐으음, 남정네 두 명이 딸기 스무디 쪽쪽 빨면서 고민하고 있는 장면. 뭔가 좀 안 어울리네.
“펜션 빌릴까?”
“음.. 펜션도 뭔가.. 어차피 얘네 면접만 보고 보낼 애들이라.”
“왜? 데리고 놀지?”
“20명을 어떻게 데리고 놀아. 몇 명 데려가면 모를까. 아직 그렇게는 안 해봐서 좀 그렇고.”
“이왕 할 거 해보면 되지.”
“아 나중에 할 거야 그건. 그리고 펜션 같은 거는 대부분 구석진 곳에 있잖아. 애들 언제 데리고 오고 언제 데려다 주냐.”
“그것도 그렇네.”
으음. 시작할 때는 좋았는데, 뭔가 느낌이 안 오네. 인원이 많아서 그런가. 느낌이 확 와닿는 곳이 없어. 그 와중에 A가 음료 쪽쪽 빨다가 뭔가 느낌이 왔는지, 먼저 얘기를 꺼낸다.
“... 야 근데 애들 꼭 한 곳에 모아야 하냐?”
“어? 뭔 소리냐?”
“생각해보니까 얘네 어디 사는 지도 모르는데 한 곳에 다 모으려면 존나 비효율적인 거 아니냐.”
“... 어? 그러네. 어디 구석진 곳에 사는 애도 있을 거 아냐.”
“차라리 이렇게 하자.”
A가 의자를 빙 돌리면서 얘기한다.
“얘네 살고 있는 곳을 조사해서 각각 구 인원별로 따로 모이게 만들던가, 아니면 장소 몇 군데를 지정해서 그 쪽으로 모일 수 있는 애들 모이라 하면 되지.”
“어? 우리는 어떻게 하고?”
“차 하나 렌트해. 내가 운전할게.”
“아, 니 운전병 했지?”
“운전이야 뭐 어려울 거 있나.”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다. 이만큼 인원들 한꺼번에 수용하는 곳 찾아서 대규모로 이동하는 것보다 우리가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근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 그런데 장소는 어떻게 정해?”
“그거를 우리가 잘못하고 있었다.”
“뭘?”
A가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면서 얘기한다.
“왜 우리가 생각을 하냐? 거기 사는 애들이 더 잘 알텐데.”
“... 헐?”
그러네? 생각해보니 내가 다 정해줄 필요가 없었잖아. 근처 사는 애들끼리 모이면 되는 걸.
“... 존나 쓸만하네? 새끼.”
“자주 불러주십쇼.”
A가 능글맞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