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모집 - 2 [친구등장]
멋쩍어 하면서 다시 짬뽕 먹는 A. 그렇다. 내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얘가 유일하니까. 흐으, 시발. 어제 술 먹고 아침부터 땀 빼고 뜨끈한 거 먹으려니 잘 안 들어가네. 맛은 괜찮은데.
“그래서 여자를 어떻게 찾냐? 저번처럼 알바 쓰게?”
“아니, 생각을 바꿔봤지.”
“뭐, 어떻게.”
손가락을 한 번 튕기고 A를 가리키면서 얘기한다.
“모집을 하는 거야.”
“... 뭔 모집?”
“사람 보내서 찾게 하지 말고, 여기 근처 전체의 이쁜 여자들이 나한테 자기 정보를 보내도록.”
“... 뭐야? 뭐 어떻게?”
“어.. 일단은 지금 내가 생각한 건 이렇거든.”
짬뽕 슬쩍 옆으로 치우고 밥상에 팔을 얹고 얘기한다.
“자, 내가 대충 얘기한 걸 떠올려봐. 나는 개인이 아니라 범위지정까지 컨트롤이 가능해. 얼마든지 넓게.”
“어, 그건 저번에 얘기했지.”
“근데 그 인원들에 대한 정보를 나 혼자 처리하기에는 너무 양이 방대하다 이거야. 개인의 생각을 항목을 추가해서 읽을 수는 있는데, 그걸 일일이 읽으려면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부족하고.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그렇지?”
“그래서 그 정보를 처리할 사람이 필요해. 누가 있을까?”
“어... 글쎄? 다른 알바생?”
“아니, 알바생이 아무리 많아도 몇십만 명 정보 다 처리하려면 과로로 쓰러지지.”
“그럼 누가 하는데?”
“본인. 본인이 처리하면 되는 거야.”
갸우뚱 하는 A 놈. 흠, 내가 말을 너무 이상하게 하나?
“자, 예를 들어줄게. 키가 170cm 이상인 사람들만 나한테 자기 신상을 보내라고 하는 건 쉬워. 왜일까?”
“명확한 정보가 있으니까.”
“그렇지. 그런 경우는 그나마 쉽게 할 수 있어. 객관적이거든. 근데 내가 모으려는 기준은 뭐겠냐?”
“이뻐야지.”
“그래. 근데 그건 존나 주관적이잖아? 제일 좋은 방법은 내가 여자들 얼굴을 보고 판단하는 건데, 그걸 어떻게 다 보겠냐 이거지.”
“본인이 이쁘다고 생각하는 애들만 받으면 안 돼냐?”
“그게 맹점이다.”
어우, 좀 짜게 먹어서 그런가. 일어나서 냉장고에 있는 물을 가져와서 한 모금 마시고 얘기한다.
“야, 솔직히 생각해 봐라. 니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있는데 거울을 딱 봐. 솔직히 나 이 정도면 꽤 생긴 편 아닌가? 이 생각 드냐 안 드냐?”
“... 안 든 사람이 더 적을걸?”
“그래, 근데 타인이 보기에는 존나 별로거나 평범해 보일 수도 있다고. 내가 잘생긴 애들 나보고 보내라 했는데 너도 나한테 보내서 내가 확인했을 때 그 좆같은 느낌을 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어.. 갑자기 나 디스해서 좆같긴 하지만. 대충 알 것 같은데. 자기 자신한테 좀 관대한 애들도 있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래서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대충 그려지긴 하는데 명확하게 기준을 못 잡겠다.”
A 놈도 가져온 물 벌컥벌컥 마시고 얘기를 이어나간다.
“흐음.. 그럼 주위에서 이쁘다는 얘기 몇 번 이상 들어본 사람 기준?”
“그것도 그럴싸한데.. 근데 겉치레로 들은 말도 포함해 버리는 애들도 있을 것 같다. 이걸 겉치레냐 아니냐 구분하는 것도 개인에 따라 다를 것 같고.”
“으음.. 그럼 어쩌냐... 이쁜 애 추천 받을 수도 없고..”
“... 어?”
추천? 어라? 어라라?
“추천..? 그거 괜찮네?”
“뭔 소리야. 그냥 얘기해 본 건데.”
“아니야, 생각보다 괜찮다 그거.”
“...? 그걸 어떻게 쓰는 데?”
“존나 간단해. 모든 OO시 사람한테 여기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예쁜 20대 여자 한 명을 추천하라고 보내는 거지.”
“어...? 어... 그래서?”
“근데 그거를 일일이 하나씩 문자나 메일로 받을 수는 없고.. 웬만한 사람들 다 스마트폰 있으니까.. 설문! 요새 과제 같은 거 할 때 설문사이트 같은 거 많잖아. 그거로 정보 받으면 거기서 내용 정리할 수도 있지.”
“... 괜찮은데?”
“그렇게 이름들이 모이면.. 타인의 시선에서 이쁜 여자애들 모을 수 있네... 좀 효율적으로 지역별로 있는 애들로도 모을 수 있을 것 같고..”
“오, 시발 좋다. 이거 좋다. 바로 하자.”
그래. 내가 얘한테 기대한 게 이런 거야. 툭툭 하나씩 던지는 무언가에서 나를 번뜩이게 하는 조력자 같은 위치.
“자, 그럼 설문지부터 만들어보자.”
일단 대충 다 먹은 짬뽕들 옆에다 치워놓고 컴퓨터를 켠다. A도 일어나서 옆 자리에 선다.
“자, 일단은.. 설문이나 만들어 보자.”
“야, 여기서 모은 애들로 내가 생각해온 상황극 하는 거냐?”
“보통 그렇지? 너무 상세하게 요구사항 있지 않는 이상..?”
“하.. 씨발. 존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설문 양식을 검색해봐서 하나 만들었다. 역시 갓갓 구글이다. 존나 금방 만드네. 자, 이제 항목들을 추가하자.
“음.. 자, 이제 여기에 필요한 것들을 넣어보자고. 가장 먼저 추천하는 여자 이름이랑 나이. 이건 필수고.. 단답식으로 하면 되겠지.”
“그리고.. 음.. 주소나 연락처는?”
“오, 좋네. 근데, 연락처면 충분할 것 같다.주소는 뭐 연락처만 알면 알아낼 수 있으니까..”
“연락처는 그거도 되겠다. 동명이인 방지.”
“개꿀인데? 존나 여러 명 오면 전화번호 별로 묶으면 되겠구만.”
착착, 하나씩 추가한다. A도 신났는지 열심히 하는 모습.
“이 정도면 됐나?”
“어? 벌써? 사이즈나 얼굴 사진 같은 거는?”
“아, 그런 거는 나중에 따로 할 거야.”
“따로?”
“이거 설문으로 다 끝낼 거 아님. 따로 면접도 볼 거야.”
“헐? 미친? 면접?”
“그럼. 제 아무리 1000명이 이쁘다고 해도 내 눈에 별로면 아웃이거든. 직접 봐야하지 않겠냐.”
“오.. 그건 생각도 못했는데..”
다시 한 번 설문 내용을 보자. 추천하는 사람 이름, 나이, 연락처. 아! 그것도 필요하겠다.
“아니다, 사진은 필요하겠다. 면접을 보게 만들려면 컨트롤을 해야 하니까.”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사진은 한 번 봐야지.”
“근데 사진은 어떻게 하지?”
“이거 파일 첨부 안 돼냐?”
“파일 첨부는 안 되는 것 같은데.. 아, 그렇게 해야겠다.”
항목 하나를 더 추가한다. 사진 볼 수 있는 링크. 알면 쓰고 모르면 안 쓰면 되니까.
“올, 괜찮네.”
“자, 확인해봐라. 설문 할 때 유의사항도 써놨다.”
설문에는 다음 내용들이 있었다.
이름, 나이, 연락처, 그리고 사진 볼 수 있는 곳.
설문 유의사항.
1. 설문 내용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은 기술 안 해도 됨. 단, 이름과 나이는 필수. (나이는 한국식 나이)
2. 추천하는 여자가 지금 현재 OO시 내에 있거나 거주중인 것이 확실해야 함.
3. 만삭의 임산부거나, 입원, 장애 등 몸이 불편하지 않은 상태여야 함.
턱을 괴면서 화면을 골똘히 보는 A.
“흐음.. 니가 컨트롤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이 정도면 괜찮을 듯?”
“좋아, 그러면 저장하고.”
“야, 근데 얼굴만 보냐? 몸매는?”
“어? 어어.. 몸매는.. 일단은 얼굴만 봐보자. 처음 테스트니까. 원래 이쁘면 웬만한 건 다 용서가 됨.”
“그래? 그렇긴하지. 그러면 뭐 상관없고...”
자, 링크를 만들었다. 이거를 전달을 할 건데... 이거를 수십만이 다 한다면.. 흠.. 다 하는 건 좀 에바참치인듯.
“야, 근데 굳이 이거를 전 인구한테 할 필요가 있나?”
“... 그렇지? 생각해보니 전 인구하면 이거 할 줄도 모르는 사람한테 막 보내고 그런 거 아니냐?”
“그러네. 그러면.. 20대 여자를 해야 하니까 이거응답자도 20대면 괜찮으려나?”
“야, 근데 왜 20대 여자냐?”
“엥? 젊으면 좋잖아.”
“아니.. 10대는..? 고딩들도 있잖아.”
순간 얼굴이 굳으면서 그 새끼를 보니까 아주 잠깐의 정적이 우리 사이에 흘렀다.
“뭘 그렇게 보냐..”
“그래.. 10대 좋지. 산삼보다 좋다잖아.”
“아니, 뭐 꼭 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얘기만 해 본 거라고..”
“내가 이거 하면서 그생각도 안 해본 게 아니야 새끼야. 근데 내가 자체 룰을 하나 정했어.”
“뭔 룰?”
“먹고 보니 고딩이었다? 이거는 그래도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어. 근데 민짜를 노려서 먹는 건 좀 아웃인 것 같아.”
그래, 이거는 내가 스스로 거는 양심의 브레이크야. 언제 풀릴지 모르는..
“... 뭐, 니가 그렇다면야. 그냥 20대한테만 보내도 될 듯.”
“그러면은 조건은 이렇게 하자. 20대, 즉 20대~29세면서 핸드폰으로 10분 이내에 답장을 줄 수 있는 사람들.”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바쁜 사람들만 빼면.”
“고거는 컨트롤에 넣고... 야, 근데 인원을 이렇게 설정하면 몇 명 정도 나오려나..?”
“어..? 어.. 글쎄.. 최소 몇만 명 정도 나오지 않으려나?”
“... 몇만 명이 이거 하나로 되겠냐?”
“그러네.. 시발 어쩌지?”
으음, 그건 생각 못했네. 아무리 그래도 20대면 비중이 클텐데.. 그래. 쪼개자.
“야, 쪼개야겠다.”
“어? 어떻게?”
“기준은 이따 정하고.. 한 10개 정도로 쪼개자.”
많이 쪼개면 쪼갤수록 좋지만 그러면 더 복잡해지니까.. 그리고 기준도 설정해야 되고.
“일단 이거 복사해서 설문 10개로 만들어놓고 있을 테니까 어떻게 사람들을 쪼갤지 생각해봐.”
“어..? 어.. 흐음...”
아까 만들어둔 것들이랑 똑같은 양식으로 9개를 더 만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링크를 메모장에 옮겨놓고 A에게 묻는다.
“생각해봤냐?”
“어.. 그냥 대충 핸드폰 끝자리로 구분하면 되지 않냐?”
“핸드폰 끝자리.. 어, 뭐야. 생각보다 존나 간단하네?”
그러네. 괜히 문제라고 생각했네. 스읍, 왠지 살짝 쪽팔린데?
“좋아, 그걸로 하자.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추가할게.”
이제 더 이상 없겠지? 준비는 되었다. 특정 공간에서 능력은 자주 써봤지만, 이렇게 넓은 지역에 써보는 것은 처음이다.
“후우, 이제 시작한다.”
“어.. 힘내십쇼 형님.”
빈 드림창을 하나 꺼낸다. 그리고 범위 지정을 선택하고.. 내가 지금 있는 OO시를 지정한다. 눈앞에 있던 범위지정 표시가 슥 사라지고 ‘범위 : OO시’로 뜬다.
휴우, 이제 시작해보자. 드림창에 내용을 추가한다. 가장 먼저, 한 번에 사람들이 핸드폰만 쳐다보면 이상할 것 같으니 방지 먼저 추가하자.
「지금부터 15분 이내에 20대 사람들이 핸드폰이나 PC로 설문 조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았을 때, 급한 일이 아니면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설문에 참여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은 정도」 - 9
「자신이 만 나이가 아닌 한국식 나이로 20세에서 29세 사이이면서, 급한 일을 처리하고 있지 않으며, 10분 내로 설문 답장을 할 수 있으며, 핸드폰 번호 끝자리가 0인 경우, 링크 ‘https://설문링크주루룩0'으로 들어가서 가장 솔직하게 답변을 하고 싶은 정도」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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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 나이가 아닌 한국식 나이로 20세에서 29세 사이이면서, 급한 일을 처리하고 있지 않으며, 10분 내로 설문 답장을 할 수 있으며, 핸드폰 번호 끝자리가 9인 경우, 링크 ‘https://설문링크주루룩9'으로 들어가서 가장 솔직하게 답변을 하고 싶은 정도」 - 10
「15분 뒤 설문에 관련된 내용은 완전히 기억 속에서 삭제」 - ON
후우, 이렇게 보니까 존나 추가한 것 같네. 그래도 이제 해버렸다.. 하는 심정으로 몸에 힘이 빠지면서 의자 뒤에 기댄다.
“야, 됐냐? 이제 된 거야?”
“일단은 하긴 했다. 기다려 보자.”
“그래? 혹시 벌써 온 거 아니냐?”
어쩌면 벌써 왔을 수도 있겠지. 그치만, 새로고침 계속 누르면서 오는 거 지켜보는 거 보다 10분 지나서 F5 순서대로 딱딱딱 눌렀을 때 그 희열을 느끼고 싶어. 인터넷 창을 아래로 내리고 핸드폰을 켜서 10분 알림을 맞춘다.
“10분 뒤에 새로고침 누릅시다.”
“하.. 개떨리네. 뭐지 이거? 이런 기분?”
“일단 신경을 끄고 화제를 돌려서 면접 얘기나 해보자.”
“어, 그래. 면접 좋지. 몇 명이나 보려고 면접을 얘기 하냐?”
“글쎄..? 한 50명..?”
A의 눈이랑 입이 조금 커지면서 놀란다.
“헐 시발 50명?”
“왜? 적냐?”
“아니 시발 생각보다 존나 많은데? 난 뭐 한 20명 많아봤자 30명 정도 볼 줄.”
“면접 하루 만에 다 안 볼 거야. 이틀 나눠서 볼 거임.”
“그래, 뭐 면접이야 그렇다 쳐. 근데 거기서 몇 명이나 뽑게?”
“맘에 들면 전부.”
방금 보다 조금 더 입이 커지면서 놀라는 A.
“... 너 좀 크게 노는 애였구나.”
“이래저래 사정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미리미리 뽑아놓고 시간 되는 사람 부르면 좋잖아.”
“뽑아놓고 어떻게 관리 하려고?”
“단톡이지. 번개처럼 어디어디 몇 시 가능 선착순 손 이렇게.”
“... 존나 멋있네, 씨발...”
목소리를 안에서부터 끓으며 감탄하던 A가 갑자기 애매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야, 근데 생각해보니까..”
“어? 뭐.”
“굳이 이렇게 할 필요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