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왕게임 - 4 (17/132)



〈 17화 〉왕게임 - 4
비워진 잔들 채워준 뒤에 기분 좋게 한 마디 건넨다.

“오늘 새로운 사람 많이 만나네. 다들 반갑게 한 잔 허시죠. 자자, 짠.”

가볍게 유리잔들이 부딪히는 소리. 벌컥벌컥 들이키고 보니 이것들이 또 돌려서 마신다.

“야, 니네랑 나 얼마 차이도 안 나는데 너무 어르신 취급하는 거 아니냐.”
“그냥 뭔가 자연스럽게 돌리게 되네요.”

아라가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음, 이제부터 얘네랑 이거저거 다 볼 사이인데 말은 편하게 하고 싶다. 근데 ‘어이구 우리 동생들. 이제부터 오빠라 부르고 말 편하게 해~ ^^’ 하면 존나 꼰대 같잖아. 그럴 땐 뭐다? 남아있는 맥주를  비우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자, 그럼  번째 왕게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하면서 가볍게 짝짝 박수치는 그녀들. 일어서서 보니 초롱초롱한 눈빛의 예쁘고 가슴  여자들이 나를 보는  상황. 꽃밭에 둘러싸인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느낀다. 으음, 살아있음을 느껴.

“번호 부여하겠습니다. 아라 1번 정화2번 윤진씨 3번 그리고 저 4번. 다들 자기 번호 기억하셨나요?”

네에, 발랄한 하이톤의 대답 소리. 웃고 즐기는 술게임마냥 재밌게 참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왕을 발표하겠습니다. 두 번째 왕의 자리에 오를 사람의 번호는... 두구두구두구”

입으로 두구두구 거리니 다시  번 책상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귀엽넹.

“자, 4번! 4번입니다.”

아아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여인들. 세 명이 똑같은 반응을 서로 보고나서 대충 이해를 한 것 같다.

“와, 또 오빠야?”
“두 번 연속 왕이시네요.”
“이야, 내가 오늘 운이 따라주는가 봐.”

생각보다 엄청 아쉬워 하는 애들. 하지만 괜찮아. 두 번째 시킬 거는 되게 가벼운 거니까.

“자,  명이 남고 처음 하는 게임이니까 가볍게 친해지자는 의도로 가겠습니다. 이제부터 서로 존댓말은 사회를 볼 때 저와 저에게 대답할 때 제외하고는 금지. 오빠동생, 언니동생으로 말 편하게 하시죠. 아, 그리고 술도 돌려서 마시지 말고.”
“뭐야, 나랑은 별로 상관없는 거네.”
“아.. 그.. 저 저도 오빠한테 반말로요..?
“어허, 윤진. 왕의 명령을 거역할 셈인가. 이런 불충스러운 지고”
“아.. 아니.. 아.. 알았어.. 그러면 아라도 나한테 편하게 말해줘.”
“아.. 네. 아, 아니 알았어 언니...”

흠흠. 보기 좋은 광경이야. 흐뭇해지는 마음에 한 잔 더 적셔볼까.

“자자, 서로 한 걸음씩 가까워진 기념으로 한 잔씩 더 하시죠. 아니, 나도  그러네. 한 잔 하자.”

비워진 잔에 맥주랑 소주를 채워주고 잔을 짠 부딪힌다. 오늘따라 꿀꺽꿀꺽 넘어가는 시원한 맥주가 달다 달아. 자, 술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제 본 게임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지.

“자! 이제 두  정도 게임을 해봤으니 다들 감을 잡으셨을 거라 생각하고, 이제 본격적인 왕게임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에? 본격적이요? 아니아니, 본격적이라고?”

아직도 존댓말이 입에서 쉽사리 안 떨어지는 아라가 묻는다. 내가 고작 이런 거 시키려고 왕게임 하자고 했다고 하면 드림창이 울고 있지.

“자, 아까 제가 하는 왕게임은 변형식 왕게임이라 했습니다.기억나시죠? 하지만 이 게임에 본 이름이 따로 있는데요. 사실 이 게임의 이름은 바로 에로틱 왕게임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숙녀분들 다들 한 몸매들 하시는데 섹드립은 괜찮으시죠?”

네에에 하고 밝게 대답하는 그녀들. 아까 설정해놓은 섹드립 내용이 있어서 얼굴에 웃음기가 보인다.

“일반적으로 진행 방향은 아까 저랑 진행했던 변형식 왕게임이랑 동일합니다. 다만, 여기서 바뀌는 거는 왕의 명령. 왕의 명령은 무조건 성적인 내용을 담은 명령이어야 합니다. 가벼운 터치부터 끈적한 모든 게 가능합니다.”

그리고서 슬쩍 아까 추가했던 「왕게임을 하고 싶은 정도」를 1으로 바꾸고 「에로틱 왕게임을 하고 싶은 정도」를 추가해서 7로 만든다.

“다만 성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여기 계신 여성분들 전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한 분이라도 반대하시면 다시 전에 하던 건전한 내용의 왕게임으로 진행이 됩니다. 자,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성분들?”

슬쩍, 애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어.. 글쎄, 어.. 어떻게 할까?” - 윤
“그.. 뭐, 괜찮지.. 않을까?” - 정
“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왕게임 하는 것도 조금..” - 아

뭔가 하고 싶기는 한데 말로 꺼내기는 좀 부끄러움이 남아있는가 보다. 그래, 내가 의도했던 것이 바로 이거. 야한 내용으로 하고 싶긴 한데 부끄러우니까 좀 눈치를 보면서 쭈뼛대는 이 느낌. 으흠 기분 좋게 중재 들어갑니다.

“자자, 숙녀분들께서  부끄러움을 타시는 것 같은데요. 제가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럼 세 잠시  눈을 감아주시겠습니까?”

세 명 다 나를 슬쩍 보더니 상체를 펴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자, 나는 솔직히 에로틱 왕게임을 하고 싶다 하시면 조용히 손을 들어주세요.”

올라올까 말까 하면서 멈칫멈칫하는 느낌으로 결국엔  명 다 손을 든다.

“자, 손을 내려주시고요. 눈을 떠주세요. 결과가 나왔습니다.”

눈을 뜨고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본다. 꿀꺽. 작게 들리는 노래 BGM 사이로 윤진이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렸다.


“에로틱 왕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뭔가 헛기침하면서 슬쩍 고개가 숙여지는 애들. 알면서 다들  그러시나.

“어휴 눈알 안 굴리셔도 됩니다.  같이 똑같이 손드셨으니 자자 신나게 박수로 시작하시죠.”

짝짝짝. 힘없는 박수가 이어진다. 일단은  지금은 이래도 막상 시작하면 괜찮아질 거야.

“룰은 말씀드렸다시피 동일한데 왕의 명령이 중요합니다. 제가 성적인 부분이라 했지만 뭐 동성이면  된다. 너무 약해서 안 된다. 이런 거는 딱히 없고 그냥 머릿속에 생각나는 애정행각을 모두 포함할 수 있습니다. 단, 너무 고통스럽거나 비위생적인 행동은 삼가주세요. 설마 그러실 분은 없겠죠? 찡긋.”
“어.. 사회자님 그러면 손만 잡는 것도 포함되나요?”
“그럼요. 본인이 손만 잡고 잘 수 있다면 가능합니다. 저도 가능할 겁니다. 안 해봤지만.”
“아닐 것 같은데.”
“거기, 쉿. 조용히 하세요.”

실없는 농담에도 조금씩 풀리는 듯한 분위기니까 빠르게 시작해보자.

“자자, 번호부터 부여해드리겠습니다.”

자기 번호는 기억할 수 있으니 번호를 계속 그대로 하는 것보단 가볍게  바퀴씩 돌리는  낫겠지. 이제 제대로 시작한다니 눈빛이 달라지고 몸을 세우며 집중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자, 제가1번 아라 2번 정화 3번 윤진 4번입니다. 기억하셨나요? 그렇다고요? 네. 바로 왕을 발표하겠습니다.”

이제는 말  해도 적당히 손가락을 테이블에 튕긴다.

“자.. 세 번째 왕이 될 번호는.. 1번입니다!”

이야 너무 놀랍게도 내가 또 왕이잖아? 번호를 듣자마자   어깨가 아래쪽으로  처진다. 그러면서 눈치를 살피다가 이번 왕이 또 누구인지 바로 아는 모습이다.

“세 번 연속은 좀 심하지 않아?”
“아이고, 그러셔도 우째. 내가 누구보다 공정하게 진행하는 거 알면서.”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봐.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오빠 명령은 뭔데?”

나의 명령은 당연히 쎅쓰! 지만 처음부터 시작할 건 아니지. 처음엔 가볍고 상큼하게 뽀뽀부터 시작해볼까. 누구랑 하지? 정화랑은 많이 하다 왔으니.. 아라도 괜찮고 윤진이도 괜찮네.. 어? 잠깐만. 굳이?

“자, 왕이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명령만을 이렇게 기다리는 이쁜 신하들을 한 명만 고를  없지. 암.

“이쪽 입술에 2번, 왼뺨에 3번, 오른뺨에 4번이 3초 이상 뽀뽀해주세요. 아참, 애정을 가득 담아 주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으잉? 아니, 그..  명 다요? 아니아니, 세 명 다?”
“한 명을 하던 세 명을 하던 백 명을 하던 고것에 제한은 없습니다. 억울하시면 왕 하시던가~”

끄응 하는 소리를 내지만 어쩔 수 없는 아라. 근데 세 명이 동시에 내 주위에 서야 하니 내가 좀 움직여야겠네. 가게 잠깐 둘러보니 테이블이 고정도 아니고 몇  없으니 조금만 옮겨 놓으면 자리  생기겠다. 중앙 쪽으로 가서 근처 테이블을 조금씩 벽 쪽으로 밀어 넣는다.

“오빠 뭐해?”
“이제 공간 좀 많이 필요할  같아서 대충 자리만 만들어놓게.”
“테이블 어디다 밀면 돼?”
“그냥 대충 의자 빼고  쪽으로만 밀어놔.”

세 명도 합세해서 가볍게 밀어 넣으니 혼자 춤을 춰도 괜찮을 만한 공간이 나온다. 좋아, 여기가 이제 핫플레이스다. 빈 공간 가운데로 빈 의자를 하나 가져와 앉는다.

“자자, 얼른 오세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각자 자리로 향한다. 왼쪽에 정화, 오른쪽에 윤진. 그리고 가운데 아라.

“동시에 해야 돼? 따로 해도 돼?”
“가급적이면 동시가 좋을 듯. 내가 카운트 해줄게.”
“하.. 별 거 아니니까 빨리 해버리자.”

세 여인의 머리가  머리 근처로 다가온다. 크흐, 향기에 취해버릴  같아. 입술이  건조한 것 같아서 재빨리 입술에 침을 묻힌다. 정화와 윤진은 의자 등받이에 각각 손을 댔고, 아라는 정면에 서서 양 어깨를 붙든다.

“오빠 카운트 좀.”
“어? 어어. 셋에 하는 거야. 하나, 둘, 셋!”

아라의 얼굴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동시는 아니지만 오른쪽, 왼쪽, 그리고 정면에서 차례대로 느껴지는 보드라운 감촉. 내 입술을 밀고 들어오는 입술은 약간 튼 부분이 느껴지는 내 입술과 달리 닿는 모든 부분이 포근하게 밀어주는 느낌이었고 볼에 닿는 부드러움에서는 따뜻함이 더 잘 느껴진다. 양쪽에서 밀어대는 힘이 서로 달라 얼굴이 움직일 것 같아서 뒤늦게 목에 힘을 주니 벌써 입술이 떨어진다.

“느낌이 어때?”

슬쩍 왼쪽 귀에 속삭이는 정화의 목소리에 살짝 등줄기에 소름이 돋을  했다. 어으, 귀에 다이렉트로 꽂아버리니 뭔가 느낌이..

“아주 포근해. 매일 밤에 자기전마다 받고 싶다.”
“꿈도 야무지셔요.”
“빨리 다음 게임하자. 나도 이번엔 좀 해보고 싶어.”

윤진이 어느 새 자리에 앉아서 재촉한다. 얘 의외로 승부욕 같은  있나? 아니면 야한 짓 하고 싶어서 이러나? 남은 두 명이 자리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시작한다.

“자, 바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준비 되셨죠?”
“네네, 빨리빨리.”
“어유, 많이 급하신가 봐요. 그러니 저도 빠르게 번호 부여하겠습니다. 윤진 1번 나 2번 아라 3번 정화 4번. 그럼 왕이 될 번호는....”

두구두구두구. 윤진이는 눈까지 감은 채로 손가락만 치고 있다. 엄청나게 하고 싶은가봐. 좋아 시켜줄게.

“2번입니다!!”

다음에.

“아아 또..”

허탈해하는 세 여인의 모습이 갑자기 설마? 하는 눈빛으로 휙휙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진짜? 장난 아니고?”
“어휴, 진짜죠. 구라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안 배우셨습니까?”
“아니 이러기야 진짜? 오빠 뭐 씌인 거 아냐?”

그래도 어떻게 하니. 내가  킹메이커인데. 너무 침울해 하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약간 얘들한테 참여할 기회를 줘볼까.

“자자 어명을 발표하겠습니다. 다들 예를 갖춰주세요.”
“그냥 어련히 알아서 하세요.”
“무엄하지만 그냥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세 분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꼴찌 한 명은 옷 하나를 벗어주세요.”

갑자기 세 명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놀란 듯이 나를 본다.

“뭐야? 그런 것도 돼?”
“직접 이름으로 지명만 하지 않으면 뭐든지 가능합니다요.”
“아니.. 하.. 무슨.. 옷벗기기 가위바위보를..”
“이런 게 게임 게임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그녀들.명령에는 무조건 따라야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슬쩍 손을 가운데로 모은다.

“아, 깜빡했네. 양말이나 신발, 악세사리 벗는 걸로는 안 됩니다. 겉에 보이는 옷과 속옷만 됩니다.”
“어? 양말도?”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물어보는 윤진. 슬쩍 아래를 보니 운동화 안에 양말이 보인다. 대충 지면 양말로 때울 생각했구나?

“아이고, 안타깝게 그렇게 됐네요. 이번 왕이 계시는 왕국에서는 양말을 옷으로 취급 안 한대요. 이거 참.”
“... 얄미워 진짜..”

원망스러운 듯이 흘겨본다. 하지만 어째, 재미를 위해서는 그래야 하거늘. 아라 표정도 잠시 멍해지면서 눈을 굴리는 것을 보고 슬쩍 아래를 다시 보니 얘도 똑같다. 맨발인 애는 정화밖에 없군. 승부를 위해 모여진 손을 보니 어? 윤진이 혼자만 반지를 끼고 있다.

“뭐야, 윤진아. 너 남자친구 있어?”
“어? 어, 있는데.”

어이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참 부러우신 양반이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아아, 그냥 물어봤어. 가위바위보 하시죠.”

가위바위보가 무슨 진검승부라도 되는 듯이, 작게 긴장된 숨을 내쉬는 모습이 보인다. 어우, 눈빛을 보아하니 다들 진심인데? 긴장감이 감도는 그 순간. 각자의 손을 가볍게 흔들며 시작한다.

가위바위보! 하는데 무승부. 다시 바로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이런 둘 다 바위인데 혼자 가위인 사람이 있다. 어째 패배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같았던 윤진이다.

“호오오, 이겼다.. 다행이다..”

정화와 아라가 긴장이 풀렸는지 손을 가볍게 떨면서 승리에 안도감을 취한다. 서로 가볍게 손까지 맞댄다. 그에 반해 별로 없는 테이블 위에 공간을 찾아 팔을 대고 아아아 작게 신음하며 머리를 감싸 쥐는 윤진. 그 모습을 보니 더욱 놀릴 맛이 나는  같다. 원래 패배자를 놀릴 때는 모두가 한 마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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