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첫경험 - 1
해가 중천에 떠서야 침대에서 일어나보니 시체처럼 보이는 고깃덩어리 두 마리가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널부러진 술병과 먹겠다고 사온 안주들이 남아 말라 있는 모습들. 어제 술 마시다가 노래방 가고 싶다고 편의점에서 맥주 사서 기어코 코인 노래방을 다녀오고, 또 방에서 새벽내내 맥주를 들이부었기에 이미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나마 잘려나간 기억 속에 하나 남아있는, 변기 커버를 붙잡고 모든 걸 쏟아내고 있었던 나. 덕분에 완전 죽을 것 같지는 않고 반만 죽을 것 같다.
“야야 일어나 해장하자”
슬쩍 고개 들고 핸드폰으로 시간만 확인하더니 바로 또 드러눕는 놈들이다. 잠에서 깨고 나서 몸 상태가 느껴지는 지 끙끙대기 시작한다.
“하.. 시발 내가 또 술을 마시면개다 진짜.”
“그만 멍멍대고 나가자고”
축 늘어진 놈들을 발로 툭툭 차면서 깨운다. 분명 어제 집 내려간다고 적당히 마시자고 한 A놈은 정신도 못 차리고 있다. 나 역시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뭐라도 쑤셔 넣고 다시 좀 잠을 자야 풀릴 것 같다. 바싹 말라버린 입 안에 남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니 혀가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런 이따가 올 때 사와야겠네.
셋 다 일어났지만 누워서 핸드폰만 30분 넘게 하다가 뭉그적거리면서 나왔다. 해장으로 당연히 날 뜨거울 때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먹어야 제 맛인 뜨끈한 국밥을 쳐먹고 나니 속이 든든.. 은 아니고 반도 못 먹고국물만 열심히 퍼먹다가 나왔다. 해장이 필요하긴 한데 많이는 안 들어간다. 그렇게 놈들은 각자 돌아갔고, 나도 내 방에 돌아오니 너저분한 방 상태에 한숨만 나왔다.
“아.. 시발 모르겠다. 이따 치워야지.”
젖은 수건마냥 무거운 몸을 침대로 던진다. 그나마 속에 뭐가 들어가니 괜찮아지는 것 같다. 아아 누가 이것 좀 대신 치워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막 분신술 써서 가위바위보로 치우기 정하기 같은 거 괜찮을 듯? 그런 쓸데없는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 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이 여름에 해가 넘어간다는 것은 이미 저녁시간 넘었다는 것. 시계를 확인해보니 7시가 다 돼간다. 오늘 하루 말 그대로 공쳤구나. 또 이제 밤낮이 뒤바뀌겠네. 물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텅 비어버린 물병. 아차, 아까 먹고 사온다고 했는데 깜빡했구나. 어차피 저녁 대충 때울 것도 사러 가긴 해야하니까. 슬리퍼 신고 요 앞 편의점으로 향한다.
띠링 하며 편의점 문에 달린 종이 울려도 시큰둥하게 폰만 보고 있는 남자 알바생이 있다. 키는 좀 커보여도 완전 멸치 그 자체에 항상 뚱한 안경 낀 얼굴. 내가 여기서 6개월째 살고 있지만 6개월 동안 알바하면서 인사하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 나는 이러기 싫은데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하면서 슬쩍 앞으로 지나가는데...
“...응? 뭐지?”
폰만 내려 깔고 있는 얼굴 옆에 조그마한 사각형 모양의 무언가가 떠있다. 연한 파랑색을 띄고 있어서 뭔가 싶어서 멈춰서 몇 초정도 쳐다봤는데 그 알바생이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쳐다본다.
“..왜요?”
알바가 시선을 폰에서 떼서 나를 볼 때 돌렸던 고개를 그 사각형이 그대로 따라 움직인다. 뭐지? 벌레인가? 아니면 뭐 머리에 붙여놨나?
“그.. 아저씨 머리 옆에 뭐 붙어있는데요?”
“네? 저요? 어디요?”
머리 옆에 손을 휙휙 저으며 확인해보는 알바. 그런데 그 손이 사각형에 닿을 때마다 그냥 통과해버리는 데 고개를 좌우로 돌릴 때마다 계속 따라간다. 뭐지?
“그 얼굴 오른쪽.. 아니 제 기준 오른쪽이고 자기 기준 왼쪽 귀 옆에 정도요.”
“뭐 없는데? 잠시만요.”
그러더니 핸드폰 셀카모드로 바꾸더니 자기 왼쪽을 확인해본다. 그 쯤 되면 뭔가 이상한 걸 알겠지.
“... 뭐 없는데요?”
“네?”
무슨 소리야. 여기 옆에 계속해서 달려있는데.
“저.. 그 제가 떼 드릴까요?”
“네? 아.. 네. 떼주세요.”
그러면서 슬쩍 사각형에 손가락을 댄다. 내 손이 사각형에 닿자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데 갑자기 사각형이 옆으로 펴지는 느낌으로 커졌다.
“어.. 어어!! 뭐야!?”
그 사각형은 그대로 커져서 머리부터 허리부근까지 오는 직사각형으로 바뀌었다. 순간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 했지만 그래도 뒷발을 빠르게 뺀 덕분에 몸이 뒤로 젖혀지는 정도로 끝났다.
“아.. 아저씨 왜 그래요..!?”
내가 소리쳐서 놀랐는지 손이 올라간 멈칫한 상태로 그대로 얼어있는 알바가 있었다. 와.. 나도 깜짝 놀랐지만 자기 옆에 뭐가 붙어있다 했는데 내가 소리까지 치니까 많이 쫄았나보다.
“아니.. 이게 갑자기 커져서요..”
“벌레에요? 뭐에요? 커요?”
“아뇨, 벌레는 아닌데 그 사각형이 좀 커졌는데.. 이 정도면 보시면 바로 아실 것 같은데요..”
알바는 조심스레 그 옆 통유리에 자기 모습을 비춰봤다. 다만 이상하게 아까까지는 계속 따라다니더니 커지고 나서 그 자리에 조용히 떠있을 뿐이었다. 알바가 3초가량 통유리에 눈을 굴리며 이상한 점을 찾아보더니 눈빛이 가느다래지고 조용히 나를 향하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에? 아니.. 이렇게 큰 데 이게 안보여요? 지금은 여기 그냥 떠 있는데요?”
내가 대충 크기를 가늠해서 팔을 벌려서 보여주니까 내 팔을 한 번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숨을 내쉰다.
“..술 드셨어요?”
“예?”
“술 드셨냐고요.”
“아뇨 술은 어제 먹었는데..”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보며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알바.
“그.. 뭐 헛 거 보이시는 모양인데 그냥 가서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 아니 저 그런 거 전혀 안 믿고요. 여기 이렇게 크게 떠 있는데..”
대충 모양새는 커다란 직사각형에 상부, 하부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보니 상부에는 뭔가 글씨까지 써져있다.
“그.. 여기 뭐라고 써져 있는데요.. 이름 ??? 이라고..”
“네!?”
갑자기 짜증이 섞인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알바. 갑자기 왜 저래 새끼가..
“아저씨 저 알아요?”
“예?? 아뇨.. 그 아는 건 아닌데 그냥 여기 왔다갔다 하면서 얼굴은 몇 번 봤죠..”
“근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아요!?”
“이게 아저씨 이름이에요..? 근데 이게 왜 여기 써져 있지?”
“써있긴 뭘 써있어요? 당신 대체 뭐야?”
허 이제 반말까지 나오네. 아니 내가 없는 거 없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지가 못 보는 걸 왜 나한테 뭐라 하지?
“아니.. 여기 있잖아요.. 제가 카메라로 찍어드려요?”
“찍기는 뭘 찍는다는 건데!?”
계속 눈을 부라리는 그 새끼가 존나 맘에 안 들어서 핸드폰을 꺼냈다. 시발 니 눈이 병신인 걸 내가 보여 준다 진짜.
“꺼내서 찍어서 보여드리..... 면.......... 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화면에는 그저 나한테 그저 이 새끼 뭐지? 하고 쳐다보는 알바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 몸 반만한 커다란 사각형이 렌즈에 담기지 못 할리는 없었다. 아니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데 도대체 이거 어떻게 떠 있는 거지?
“아 뭐하는 건데!? 야! 야! 말 씹냐? 니 몇 학번이야?”
계산대를 앞에 두고 나한테 쫑알대는 그 놈을 내버려 두고 이제 다시 보니 윗부분에 간단한 인적사항 같은 게 적혀있었다. 고작해야 적혀 있는 건 이름이랑 나이. 이제보니 나이가 29살이다. 생각보다 많네. 학번 들먹이는 거 보니까 우리 학교 나왔나? 그런데 아랫부분에는 뭔가 틀처럼 사각형이 있을 뿐 위랑 다르게 텅 비어있었다.
“아뇨.. 그..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본 것 같아요”
“하.. 진짜..”
작게 씨발하는 소리까지 들려서 잠깐 움찔했지만 그래도 얘 상대하는 거보다 이게 뭔지를 알아내는 게 우선인 것 같다.
“그.. 저 빨리 물건 사보고 나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알았으니까.. 후... 빨리 사고 나가세요.”
“넵. 죄송합니다.”
빠르게 도시락 있는 쪽으로 넘어왔다. 넘어오긴 했지만 도시락이 눈에 들어올 리가. 분명 옆에 떠 있는 이름이 자기 이름이라고 했다. 나는 저 사람을 이 곳 밖에서 본적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의 신상정보를 내가 알고 있다고? 나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저 사람만 못 보는 거 일 수도 있지 않나? 아니 저게 안 보인다고? 내 눈에 뭐 렌즈라도 껴져있나? 혹시나 해서 눈을 비벼 봐도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왜 하필 이름이랑 나이만? 뭐 데스노트도 아니고... 뭔가 병이라고 생각하기엔 진짜 이상한데..
또, 위에는 인적사항인데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어. 뭔가를 만족하면 아래도 공개되는 건가? 아래도 인적사항인가? 저게 저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도 가능한 건가? 그걸 확인해보려면 한 번 다른 곳도 가봐야 될 것 같은데..
내가 생각만 계속하면서 서 있으니 아까부터 알바가 자꾸 계산대 바깥으로 고개 내밀어서 힐끗 쳐다보고 들으라는 듯이 한숨 쉬어댄다. 아 진짜 적당히 좀 하지 계속 저 난리네. 일단 뭐라도 사서 빨리 나가야겠다. 그리고 이제야 보니 제육도시락이 없다. 도시락이 먹을 게 없네. 방학이라 요새 물건 잘 안 들어오나?
한숨이 세 번째 들리고 나니까 이제는짜증이 치솟는다. 아 씹새끼 신경좀 끄지 진짜 저거 어떻게 못하나? 하고 흘깃 그 쪽을 쳐다봤을 때 숨이 멎을 뻔 했다. 아까 옆에 있었던 그 사각형이 내 옆으로 와서 떠 있었던 것. 그리고 비어있던 아래 창에 무언가가 하나 추가 되어 있었다.
「나에게 신경 쓰는 정도」
그리고 글 바로 밑에는 슬라이드처럼 움직일 수 있는 바가 있었고, 양쪽에는 0과 10이 써져 있었다. 지금은 5에 걸쳐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발뒤꿈치부터 무언가 살아있는 전기신호 같은 게 다리 뒤쪽 오금을 타고 엉덩이를 타고 등을 타고 올라와 머리를 때렸다. 눈이 커지고 숨 쉬는 걸 잠시 동안 잊어버렸던 순간. 이게 뭔가 바로 느낌이 왔다. 그토록 바라고 생각했던 그 능력. 형태는 다르지만 한 번은 꿈에서까지 봤던 그 능력.
5초가량 멍하니 쳐다만 봤다. 정말? 진짜라고? 진짜 이게 지금 가능해?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내가? 나한테? 어.. 언제부터 이런게 가능해진거지? 어.. 어떻게 이게 되는 거지?
좀 더 격해진 한숨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 저 새끼가 있었지. 이.. 이거 한 번 해봐도 되나? 어떻게 하지? 하면서 손가락을 신경 쓰는 정도 아래 슬라이드 같은 녀석에게 댔다. 누르듯이 조금 힘을 주고 양옆으로 조금 움직이니 따라 움직인다. 신기함에 탄성이 터져 나올 뻔 했다. 이거를 움직여야 하는데.. 신경 쓰는 정도니까 0에 놔야 신경을 안 쓰나? 하고 0으로 움직였다. 0에 놓고 손가락을 뗐는데도 뭔가 겉보기에 변하는 건 없었다.
그 새끼한테 뭔가 변화가 있나? 하고 조심스레 발을 떼서 다가가 보니 아까 들어왔던모습마냥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바로 앞에까지 왔는데도 변함은 없었다.
“저.. 저기요..”
말을 건넸는데도 전혀 반응하는 낌새가 없었다.
“저.. 저기요..?”
조금 더 목소리를 크게 했다. 자기 바로 앞에 사람이 이 정도로 얘기하면 최소한 반응정도는 있어야 할텐데.. 똑같이 전혀 미동도 없다. 이러한 반응에 가장 흥분한 것은 나 자신. 정말 꿈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만들어주는 이 상황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로또에 당첨되어도 이것보다는 덜 감동스러울 것이다. 마지막.. 마지막 확인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알바 어깨를 툭툭 치며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저기.. 제 말 안 들리세요?”
그리고 귀찮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며 손을 치워내고는 뭐야? 하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모습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 몰려오는 감동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