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프롤로그
“그러니까 최면물이란 무엇이냐 하는 본질이 중요하다 이거야.”
“이 새끼 또 이러네.”
학교 근처에 있는 내 자취방. 세 놈이서 술을 마시며 쓸데없는 얘기만 늘어놓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얘기를 꺼냈다.
“뭔데? 쟤 왜 저러냐?”
“몰라. 저거 군대 이상한 곳 다녀오더니 병신 됐어.”
“후임으로 최면술 하는 애라도 들어왔냐.”
“아니 최면술 말고 최면물 등신아.”
“그게 뭔데 갑자기 지랄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잔에 술을 채우는 A와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B가 있었다.
내가 이 쪽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입대하고 난 뒤, 논산에서 훈련소에 차츰 적응해 갈 때쯤 깨어난 내 성욕이 원인이었다. 밤마다 불침번을 서면서 멍하니 화장실 앞 불빛이나 쳐다보는 것이 지루해져 재밌는 게 없나 하던 차에 야한 상상이나 하고 있었을 즈음이었다. 21년 되도록 한 번도 근처에도 못간 아다 새끼였지만 이렇게 구르다보면 술만 주구장창 쳐먹느라 붙었던 뱃살도 빠지고 근육도 붙고 막 으잉? 하면서 어쩌면 여자친구라는 것도 생겨보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이 행복한 망상. 그 망상의 끝에는 당연히 미지의 세계였지만 자료로는 수 없이 학습했던 섹스가 있었음에 당연할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야시시한 상황에 살이 붙어 수 없이 많은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 덕분에 술살을 생각하지 못하고 한 치수 작게 받은 군복 바지를 거시기가 빳빳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누가 볼 사람도 없는데 뭐 어떻겠나 하는 와중에 문득 든 생각.
‘하.. 씨발.. 진짜 여기 눈앞에 딱 있으면 존나게 흔들어 재낄텐데 진짜..“
하지만 당연히 그런 아다 새끼의 망상이 벌어질 리가 없지. 차라리 원래부터 그런 훈련소가 있었다면 모를까.
‘...응?’
어쩌면 잠깐 잠들었을지도 모를 짧은 순간에 지나간 이상한 생각. 원래부터 그런 곳이 존재할 수가 있나? 하지만 말이 안 돼지. 그런 곳을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당연하게 받아들여?’
씨발, 이거 잘못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잖아. 일본군 새끼들이 한 것마냥 그런 좆같은 걸 원하는 게 아니야 나는. 다시,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를 생각해보자. 그게 가능하게 만들려면 사람들을 강제로 인정하게 만들거나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거나 조종할 수 있어야지. 이런 거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밖이었다면 이런 상상은커녕 야동 하나라도 더 찾고 있겠지만 야심한 새벽의 무료함은 나를 센치한 탐구자로 만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초능력을 이용한 쌔끈한 망상들. 분명 변태같은 애들은 이런 자료 굉장히 많겠지? 이런 건 어떻게 찾을 수 있지? 하고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찾아온 신병훈련 수료 면회. 부모님이 준비해 오신 먹을거리에 배를 빵빵하게 채운 뒤,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척 하며 엄마 폰으로 슬쩍 찾아보았다. 여러번 검색기록을 삭제하면서 찾아본 그 태그. 최면물, Mind Control. 당장이라도 뭐가 있나 찾아보고 싶었지만 차마 엄마 폰으로 그것까지는 못 볼 것 같아 참았다. 내가 휴가만 나가봐라.. 진짜 미친 듯이 치고 온다.
그러한 각오는 자대 배치 받은 뒤에 열심히 굴려지고 갈굼받으면서 차츰 잊혀져 갔지만, 신병위로휴가를 나가면서 봉인된 마수를 깨우고자 집에 도착하고 나서 밥도 안 먹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낯선 분야라 그런지 죄다처음 보는 것들이었고, 인터넷 뒤져가며 번역하는 방법도 찾아서 야겜도 죄다 다운받아서 해봤다. 옛날 게임들을 찾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인터넷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결제까지 해가면서 모았으니까.
근데 점점 가면 갈수록 좋은 것 찾기가 어려웠다. 분명 MC물로 분류된 것은 맞지만 내용을 까고 보니 스토리는 개망작에 MC물의 탈을 쓴 그냥 능욕물이 대다수였다. 나중에는 그냥 MC고 뭐고 서로 박아대기만 바쁘니까. 또, 단순히 좋은 작품만 있는 게 아니라 지뢰도 많이 포함돼 있었다. 당연히 제정신으로는 못하는 병신 같은 변태 성욕이다 보니 그 곳에 사용된 것 같은데 그 더러운 게 머릿속에서 안 사라져서 한 동안 고생 좀 했었다.
그리고 최대의 단점은 이런 내용이 마이너하다는 것. 휴가 맞춰나온 A에게 이 얘기를 하니까 돌아온 얘기는 그런 걸 왜 굳이 찾아서 보냐는 핀잔. 하긴, 그런 거 없어도 좋은 야동과 망가는 넘쳐나는데 굳이 그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내 거시기를 폭발시키려고 했던 그 야한 시추에이션은 내 머릿속에만 맴돌 뿐이라는게 조금 안타까웠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짬도 차고 스무스하게 전역하면서 최면물은 단순한 내 선호 취향 중에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전역하고 나서 컴퓨터도 새로 맞추고 알바도뛰며 재출발을 위한 준비를 하던 중에, 오랜만에 최면 야겜 신작이 나온다는 것을 보았다.
대충 간략 스토리만 읽었는데도 훈련소 그 시절이 떠오를 만큼의 내 취향의 스토리. 나쁘지 않은 작화.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발매일. 오래전 기억속에 남은 최고의 야동을 찾은 정도의 흥분에 휩싸였다. 일본 야겜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방법 등을 찾아보았고 오매불망 발매일 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발매 당일, 모두가 잠든 새벽에 기쁨에 휩싸여서 지른 그 게임을 시작했을 때, 허탈함이 가득하기까지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분량도 짧고 전혀 매력 없는 캐릭터들과 이해가 안 되는 취향. 말이 최면에 걸렸지 그냥 들이대도 대줄 것 같은 창녀같은 마인드의 히로인.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매우컸다. 뽑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내 거시기를 보며 허탈함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은 현재로 돌아와서, 복학한 1학기를 마치고 계절학기도 끝난 여름 방학. 내 방에서 억지로 술판 벌이던 놈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는 중이다.
“뭐 어때 시발 이런 얘기 좀 하면 안 되냐? 내가 그럼 과제 발표 때 나가서 이런 얘기 하리?”
“하면 존나 재밌을 듯.”
“교수님 새로운 세계에 눈뜨고 막 인터넷에 OO대 최면남 존나 유명해지겠네.”
“아 병신들 진짜 닥치고 좀 들어봐.”
“걍 혼자 떠들게 냅두고 술이나 마셔”
그러면서 잔은 부딪혀 주는 놈들. 한잔 쭉 들이키고 말을 이어간다.
“그거 있잖아. 찐따랑 씹덕의 차이. 찐따는 일진들한테 복수하는 상상하고 씹덕은 일진들한테 초능력으로 복수하는 상상하고.”
“그래서 니가 씹덕이라고? 응~ 인정.”
“그러니까 거기에 초능력이 최면이라고. 그런거 없이도 여자들 잘만 만나고 다니는 놈들이 그런게 뭐가 필요하겠냐?”
“아다새끼 요새 그런 상상하고 노니?”
“내 방에 후다는 못 들어와 병신아”
병신들끼리 서로를 쓰다듬어주는 모습이었다.
“근데 현실에서 초능력 같은 게 있을 리가 있냐. 다 어디 AV나 망가나 게임에서나 나오잖아.”
“니는 그게 전부잖아”
“씨발 누가 뭐래냐. 아무튼 애초에 AV나 망가 속 세상인데 그 딴거 없이도 잘만 쳐댄다고. 그러면 도대체 그게 왜 있냐?”
“니 같은 놈들 위로하라고 만들었겠지.”
“덕분에 잘 쓰고 있기는 한데 이 새끼 존나 끼어드네”
A 다리를 몇 번 걷어차니까 피하는 척 술 한 병 더 가지러 일어난다.
“그 최면이란걸 써먹으려면 뭔가 차별점이 있어야 될 거 아냐. 그게 바로 현실에서 일어날 리가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그 비현실적인게 뭐임?”
“존나 많지. A 같은 새끼한테 이쁜 여자친구 생기는거?”
“와, 그거 존나 비현실적임. 바로 이해되네.”
“내가 아까 말했지. 씹덕 특이라고. 그러니까 거기서 최면쓰는 애들은 죄다 존나 사회부적응자 같은 새끼들밖에 없는 것 같아. 죄다 성격 음침하고 괴롭힘도 당해서 그런가 존나 복수심 쩔고”
“찐특 바로 나오겠네. 그거네 방금 야스오 되는 상상함ㅋㅋㅋㅋ”
“그래서 최면 써서 여자들 존나 따먹고 다니지. 그건 존나 당연한데 가끔 게임 같은데서 보면 이 새끼들은 정도를 몰라서 뒤지는 경우도 있음.”
“그래서 지금 얘기한 거중에 뭐가 문제인데”
“이런 얘기를 하는 새끼가 문제겠지”
어느 새 한 병 더 가져온 A가 한 잔 따라준다고 병을 든다. 뭐래 븅신이 하면서 종이컵 소주잔을 갖다 댄다.
“근데 대부분 보면 그 스케일이 존나 작다고. 원래 망가나 게임이라 주위에 존나 얼굴 개쩔고 가슴 존나 빵빵한 애들이 많아서 그런가 거기서 걍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
“니가 그거 할 수 있으면 존나 크게 논다 이거임?”
“내가 그거 있으면 시발 니네 지나가는 애들 골라서 먹게 해주지”
“엌ㅋㅋㅋㅋㅋ 병신ㅋㅋㅋㅋ 비트코인이 더 현실성 있겠다 ㅋㅋㅋㅋ”
“그리고 어차피 그런거 쓰는 애들이 병신이라 그런가 거의 건드는게 남의 여자란 말이야. 그럼 당연히 NTR도 따라오지”
“아 시발 너 그런 거 보냐?”
잔 부딪히려다가 슬쩍 빼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B
“아니 병신아 거기서 그게 따라온다 그거지. 근데 이 새끼들은 그러다 칼맞는 게 안 무서운가. 그걸 그냥 냅두는 놈들도 있어서 존나 무섭더라. 소시오패스인가.”
“그럼 뭐 어째야 되는데”
“최면물이잖아. 딱 하나면 돼. 그냥 그 남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거를 좋게 생각하게 만들거나.”
“와 시발 니도 소시오패스인거 아니냐? 듣다보니 소름 끼치네.”
“현실도 아닌데 뭐 어떰. 걍 AV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면 편함.”
“나는 AV같은거 안보고 국산만 봐서 몰라.”
술이랑 안주가 점점 비워져 간다. 뭐 안주거리 하나 더시켜야 되나? 얘기하고 있는 A랑 B.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음.”
“아직도 안 끝났냐? 미쳤네 이거.”
“이것만 할게 좀 닥쳐봐. 처음에는 최면이랍시고 동전도 굴리고 그 뭐냐 펜듈럼? 진자? 그런 것도 흔들고 한단 말야. 그리고 어디서 좀 들어본 듯한 막 최면 암시 이딴 것도 막 얘기하고 걸어.”
“그건가? 그 막 눈꺼풀 무거워지고 깊숙한 곳인가로 내려간다는 거?”
“어 뭐 아무튼 그런건데. 이 새끼들이 처음엔 그럴싸하게 해놓고 나중에는 귀찮은지 대충 말만 지껄여도 다 먹힌단 말야. 처음에는 최면도 약해서 존나 심한 거는 못 하는데 나중에는 다 검. 최면도 시발 경험치 쌓이면 강해지나봐.”
“엌ㅋㅋㅋ 패왕색인듯ㅋㅋㅋㅋㅋ”
“패왕색 존나 잘 어울리네 ㅋㅋㅋㅋ”
둘이 낄낄대고 웃고 있다. 근데 생각보다 드립이 괜찮네.
“차라리 그럴거면 처음부터 존나 쎄게 주든가. 어차피 스토리는 늘려야 되고 처음에는 약한 것부터 해야 되니까 그딴 페널티 주는데. 뭐 어느 순간 최면도 존나 쎄지고 무슨 최면 걸었는지도 묘사안함. 설명하기 귀찮아서 대충 말로 때워. 그 정도면 최면이 아니라 그냥 Mind Control이지 시발.”
“나중가면 쎾쓰! 만 해도 다 뚫리냐?”
“고속도로 개통임. 아우토반 수준.”
“개꿀이네.”
“그리고 그 뭐냐 최면이 쎄지는 건 쎄지는건데 중요한건 그 최면이 어떤 강도로 걸렸는지를 전혀 모름. 그냥 말로 대충하면 척하면 척 알아들음. 내가 예를 들어서 A한테 최면 걸어서 나를 때리고 싶게 만들면뺨을 때리고 싶은지, 죽빵을 갈기고 싶은지를 모를 거 아냐.”
“어 나는 후자”
“야, 그거는 나도 좀 걸어줘.”
“꺼져. 아무튼 이 따위로 대충 묘사할거면 차라리 그거 좋을 것 같다. 게임식으로 UI 만들어서 1~10까지 수치로 표현하는거지.”
“10이면 뭐 어디까지 가는 거냐? 때려 죽여도 하는 거?”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이 새끼 지가 머릿속에 이미 다 짜논 거 아냐?”
“그런 것도 없이 이딴 얘기를 하면 그게 더 소름이다시발ㅋㅋ”
“존나 낯설게 입으로 그런 말 지껄이는 거보다 차라리 게임처럼 인터페이스 딱 있고, 수치로 지정하고, 즐겨찾기 등록해서 바로바로 써먹고. 그럼 얼마나 좋냐?”
“아주 설명서 까지 주겠네.”
“워런티까지 있을 걸?”
“병신들 진짜 ㅋㅋ 아 됐어 걍 잡소리고 술이나 마셔”
A한테는 둘이 술 마실 때 몇 번 얘기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길게 속에서 털어내다 싶이 얘기한 적은 처음이었다. 뭔가 쌓인 응어리가 풀린 느낌. 덕분에 술은 더 쭉쭉 잘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