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사형과의 하룻(?)밤. - E -
"그..!그..읏..!"
쓸데없이 소심한 사형에게 용기가 나는 주문을 외워주면서 육봉을 쥐었는데, 돌연 입술을 파르르 떨던 사형이 정지했다.
뚝.
"어.,..?"
눈을 깜빡여보면 거기엔 사형이 몸을 떨면서 굳은 모습 그대로 기절해 있었다.
"사.. 사형?"
툭, 툭.
"장난 치시는거죠?"
조금 밀거나 눌러봐도.. 사형이 안 움직인다.
어, 어쩐지.. 이거 조금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은데..?
"사..형? 사혀어어엉!!?!"
가볍게 장난을 칠 생각이었는데.. 이거 진짜로?!
덜컥.
"아,아니, 큰 소리가 나서 와봤더니.. 환자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요!"
"어, 어..."
진맥을 짚던 의원이 충격에 빠진 얼굴로 외쳤다. 절정고수도 못되어 보이는 의원이 음양합일의 위대함을 알까? 나라고 그렇게 될 줄 알았냐고... 실수한 건 맞지만.
"환자는 안정이 필요하니 나가계시오!"
결국 쫓겨났다.
안 쪽을 감지해보면, 의원이 수습을 하니 어떻게든 기혈이 안정되는 듯 보였다. 어떻게 수습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
이렇게 완고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이제 사형 얼굴을 어떻게 보지?!
"...으,으음..."
불현듯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보기 어색한 게 문제면..
한 동안 안보면 되잖아?!
혹시.. 나 천잰가?
무림이 있는 세계라고 해서 꼭 강호에서만 활동하란 법도 없고... 좋아, 그럼 나의 모험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 으,음. 뭐 대충 그런 열린 결말 같은 느낌으로 해두자. 그러면 언젠가 서먹한 것도 잊고 사형이 돌아오라고 할 때 쯤 가면 되지 않을까. 무림인의 삶은 기니까...
"그럼,.. 잠든 척하고 있는 사형. 나중에 봬요. 사부님께 안부 전해주시구요!"
....
"그 이야기 들었나?"
"무슨 이야기?"
"서역 상인에게 들은 얘긴데... 얼마전에 서쪽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수라와 싸웠다더군!"
"자네.. 낮술했나?"
"아니! 술이야 지금 마시고 있고! 이건 진짜라니까!"
"하.. 무슨, 선녀랑 수라가 싸워... 말도 안되는 소릴 할 거면 그냥 술이나 마시게."
얘기도 어느 정도 허황되어야 맞장구쳐줄 기분이 나는 법이었다. 대작하던 보따리꾼의 짜증에 이야기 하던 이는 억울한 듯 고개를 마구 두드렸다.
"어허! 그 사건이 일어나고 새 떼가 수천마리가 폐사하고, 천산 산맥이 갈라졌어! 그걸 보고 왔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란 말이야!"
"하이고.. 다들 사술에 미쳤나보지. 퍽이나 말이 되겠다. 차라리 요즘 남쪽에 나온다는 선녀의 얘기가 현실성 있겠군."
"그건 또 뭐야?"
동료 보따리꾼은 주위를 슬쩍보더니, 잔뜩 불콰한 얼굴로 속삭였다.
"흐흐.. 그게 요즘 남만에서 퍼지는 얘기인데.. 밀림 속에서 이무기를 타고 다니는 선녀 같은 여인이 나타나서 몸을 섞어주고, 만족스러웠다면 절세 무공을 가르쳐준다는 구만."
"..뭐?"
"만나기만 하면 인생 역전인데.. 크으..!"
"이무기를 타고, 선녀 같은 여자가 대준 다음에 절세무공? 하!... 자네 돌았나?"
타악!
동료의 반문에 보따리꾼이 술잔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이 자식은 방금 전까지 지가 하던 얘기랑 똑같은 걸 들려줬더니, 왜 갑자기 정색을 해?
"이런 지미! 니가 한 말이 방금 이 말이랑 똑같다니까?!"
"나는 증거가 있다고! 그딴 헛소리랑 같이 취급하지마!"
"뭐?! 헛소리?! 증거는 이 쪽도 있다! 이 자식아!"
"뭐 이 자식?! 이 새끼야! 오늘 어디 한번 붙어보자!"
보따리꾼들은 결국 싸움이 붙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는 삿갓을 고쳐쓰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은 천장을 바라보되 눈빛은 더 먼 곳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에게서는 다소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머물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같이 가자고 했어야했나?
'사매, 잘 지내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