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잠입 훈련은 혹독하다, - 7 -
"일어나라!"
호통 소리에 깨면 문 밖에서 검황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어제는 기절해버린 걸까.
"옷은 거기 있으니 입고 나와라."
가리킨 곳을 바라보면 대중 목욕탕의 그곳처럼, 흑의 무복이 잔뜩 쌓여있었다. 누가 잠입 훈련 아니랄까봐 살수나 입을 법한 옷을 무더기로 쌓아놨다.
하지만 속곳이 없는데?
하지만 검황은 내 질문 따윈 신경쓰지 않는지 그대로 돌아서 나가버렸다. 뭐.. 없는 속곳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니 대충 입고 나가면 검황이 검을 들고 있었다.
"다시 대련하겠다. 검은 잡을 수 있겠지?"
"..네."
몸이 좀, 묘하게 욱씬거리긴 하지만.. 망할 늙은이가 사기를 친 건 아니다. 뭐랄까. 이전보다 유연해졌다는 느낌..?
"그럼, 시작하자."
검황이 검을 들어올렸다.
슈욱!
쏘아지듯이 날아오는 검격, 내공을 쓰지 않고도 이전보다 유연하게 피할 수 있었다.
"호오."
검황도 제법 놀랐는지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동시에 검을 지휘를 하듯 좌우로 번갈아 휘두르며 베듯이 찔러왔다. 그것을 마주 검으로 받아내는데 까지는 순조롭다.
검이 눈에 익은 것도 있지만 몸이 뭐랄까, 조금 가볍다.
"몸은 괜찮은 모양이구나. 그럼 속도를 올리겠다."
말이 끝나는 순간 시야에서 검황의 모습이 사라졌다.
쩌억!
"아흑..!"
순식간에 나를 훑고 지나간 검황은 그 사이에 내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힘의 배분은 비슷하다. 통증은 똑같은데 이거 뭔가...
"뭘 하는 거냐. 집중 하지 못하겠느냐?"
"아... 그,그게.. 너무 빨라서.."
"그래서, 내가 기다려줘야한다는 거냐?"
슈욱-
찰싹!
"히으으응..!!!?"
검황이 말을 하면서 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쳤다. 치졸한 늙은이 같으니... 또,또 후기지수 상대로 전력을 다하네?
"그 천박한 신음은 뭐냐, 고통을 참으랬더니.. 장난하는 거냐?"
정면에서 달려들어오는 검황. 내가 방어를 위해 기수식을 취하는 순간, 검황은 가속하다가 아래로 꺼져버렸다.
퍼억!
"꺄흐읏!!"
검황이 검을 휘두르다 말고 몸을 낮춰 정확히, 내 아랫배에 주먹을 박았다. 허리가 꺾이는 충격에 내 몸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아, 아으...."
"형편없구나.. 신음을 참지도 못하고. 대응하지도 못하고.. 실력은 좋지만 너보다 강한 자와 싸워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송구합니다.."
"마교에서 그런 자세면 죽는다. 상대가 행동한 후에 피하는 게 아니라, 시작할 때부터 반응하는 거다."
그게 말처럼 쉬워야지... 그런 내 표정을 본 검황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뭐, 그게 안되도 상관없다. 몸으로 배우면 되니까."
그리곤 어느새 익숙한 주걱 모양의 매를 꺼냈다.
"아...!"
"한번 못 막을 때마다 열 대 씩이다. 그러니... 우선, 서른 대맞고 시작하자."
검황은 꺼낸 그것을 곧장 내 하반신에 겨눠, 쿡쿡, 하복부 아래의 치골을 찔렀다. 주걱 끝으로 비벼대듯이, 내 음부 주위를 눌러대던 손이 태세를 바꿔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짜악!
"으히이이잇!?!?!"
충격이 느껴지는데, 이, 이상하다. 별로 안 아프다. 몸이 유연해지고. 충격이 이전보다 잘퍼져서 경미하게 전해지는 건 알겠다. 한마디로.. 튼튼해졌다. 튼튼해지긴 했는데 뭔가... 이상...
"신음을 참으라고 했을텐데?"
짜아아악!
화가난 것처럼 휘둘러진 주걱이 거꾸로 올라오는 번개처럼 음부에 올려쳐졌다.
"꺄흐으읍..!!!?"
부화악!
내 그곳은 참았던 애액을 그대로 절정.. 완전히 발산해버렸다. 흑의무복에 뿜어진 애액이 달라붙어 질척하게, 음순의 모양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달라붙었다.
..화,확실하다.
아까부터 느낀건데.. 이거, 뭐가 달라졌는지 알겠다. 그 늙은이가 해준 대법은 분명, 효과는 있지만 단순히 유연하게 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이건 통증의 일부를 쾌감으로 느껴버린다!
"좋다. 내 말을 거역하겠다면, 좀 더 교육이 필요하겠구나."
검황은 자기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내 태도가 거슬렸는지 눈썹을 치켜세운 채, 다가왔다. 그와 반대로 이 아랫쪽의 살은 보지가 무복을 먹을 정도로 왕성하게, 흥분해서 옴죽거리고 있다.
이, 이대로 맞으면...
"자,잠깐..잠깐만요..! 그,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변명은 필요없다. 변가놈 말론 네 몸이 튼튼해졌다고 했는데.. 어디 한번 제대로 확인해보자꾸나."
"자,잠..ㄲ..!!!"
....
깎아지른 돌 산의 정상에서 검이 휘둘러졌다. 노인과 청년은 서로를 향해 망설임 없이 검을 내지른다.
콰광!
청년의 꿰뚫는 일섬에 맞서 횡으로 내질러지는 노인의 검격. 검과 검이 부딪혔는데 천둥소리가 났다. 수 없이 꽂히는 것처럼 충돌이 늘어나고, 이 천재지변에 동물들은 모두 떠나간지 오래다.
따다다당!
콩을 볶는 소리를 수 백배로 키워놓은 듯한 굉음이 일대를 휩쓸었다. 허나 당사자인 둘에겐 들리지 않는 것처럼 연이어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는 것은 철로 된 물체일진데, 그 움직임은 붓 끝과 같이 휘어지고 검격은 명필이 화선지에 붓을 놀리듯 명쾌하면서도 가볍게 반복됐다.
서로의 검 끝에서 쏘아진 기파만으로 거대한 바위산에 궤적을 새기고, 산을 조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마침내 둘이 서로 물러나 힘을 다한 일격이 부딪히려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빗나가게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엇나간 참격은 서로 마주 본 두 개의 바위산에 거대한 흉터자국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이 흡족하게 끄덕였다.
"허허.. 이제보니 큰 성취가 있었구나."
"작은 깨달음입니다."
진무진은 아직 부족하다는 듯 말했으나, 이 정도라면 이번대의 대업을 물려주기에 충분했다. 이제 약관이 지난 되지 않은 청년의 경지가 이 정도이니.. 앞으로 시간이 흐른다면 과연 어떤 곳에 도달할지, 생각만해도 흐뭇해질 정도였다.
"너무 겸손할 것 없다. 이토록 원숙한 성취라니.. 훌륭하다. 그 때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으련만..."
역시나 사부는 알아챘다. 진무진의 경지가 이미 원숙에 이르렀음에도 사매인 용세린이 하산했을 때 내버려둔 것을. 진무진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게 네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과업은.. 제가 하고 싶습니다."
"허락하마. 세린이가 천고의 기재라고 하나.. 너 또한 다시 없을 절세의 기재. 무진이 너라면 수라문(修羅門)과의 일전(一戰)도 맡길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사매에 비할 수는 없지요..."
천검문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뛰어나기 그지없는 진무진이었으나 오직 용세린과 비교되는 것만은 꺼렸다. 종검학은 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 진무진은 천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 재능을 무진이가 가졌다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상념을 깨우는 것은 제자의 목소리였다. 방금의 일전으로 제자의 경지가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무(武)란 일조일석에 모두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걷는 자가 열이 있으면 그 길이 열 갈래로 나뉘듯이 무 또한 그러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사부로서 그가 아직 접하지 못한 길을 알려줄 책무가 있다.
"..무엇이 궁금하더냐?"
"저는.. 천검(天劍)을 깨우치기 위해서 수도 없이 극기(克己)를 반복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희미해지고 난 뒤에야 간신히.. 천검(天劍)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익혔구나. 천검이란 그러하다. 자신을 내려놓을 때 볼 수 있는 것이지.."
훌륭하게 배운 제자를 흐뭇하게 여기며 대답하였으나, 대답을 들은 진무진은 고뇌하는 얼굴로 침묵하다가 반문했다.
"정말로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까?"
"....으음?"
설마. 초입이라지만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제자가 몰라서 물을리는 없었다. 하늘(天)이라 함은 은유일 뿐. 진정으로 말하는 것은 자연... 아니, 이 세계 자체였다.
그러나 자기(自己)로 가득찬 인간은 세계를 느낄 수 없다. 당장 자신의 죽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약한 존재. 그들은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음 또한 이해하지 못한다. 스스로의 죽음을 깨다는데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식이자 기록이지 체감은 아니다. 그렇기에...
─하늘의 검을 얻으려는 자, 스스로를 죽여라.
이는 개파 조사가 남긴 서문이었다. 인간은 자기를 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욕념을 일으키지 않도록 생식을 하고, 자극적인 것을 멀리하며, 때로는 그 감정마저 희미해져야한다. 그렇게 끊임없는 극기를 통해 살아서 죽음에 도달한다.
본시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도달하므로서 자연과 일체되는 것이 하늘의 검(天劍)을 펼치기 위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은 그럴 수가 없다. 수 없이 임사(臨死)를 체현하는 게 그 이유고...'
허나... 그 모든 것은 진무진도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종검학은 제자의 질문이 어리석게만은 들리지는 않았다. 애시당초 둘의 곁에는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분명 근골의 재질은 둘 모두 비슷했는데...'
진무진은 매번 성실했다. 수련의 중간까지도 용세린은 게을렀다. 그렇기에 종검학은 진무진만이 천검문을 이끌 동량(棟梁)이라고 믿었다.
용세린은 하루가 멀다하고 화식을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고, 틈만 나면 바깥으로 나가서 놀고, 심지어 스스로의 욕구를 푸는데도 서슴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천검에 입문한 순간, 그 성장은 무신(武神)의 재래(再來)라고 까지 믿어 의심치않던 무진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였다.
"...사매를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인간이 인간의 본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연심(然心) 같은 건 필요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끄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용세린이라는 예외가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그녀는 예외. 천검문의 개파조사 이래 자신의 대는 물론 진무진까지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천검에 도달했다. 거기에 그녀가 돌연변이처럼 출현한 것 뿐이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허나 세린이를 제외한 모두는 그렇게 천검에 도달했으니.."
"역시 사매가 특별한 걸까요? 예전부터 생각은 했습니다만."
"그건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정말로 불가해(不歌解)했다. 그녀는 극기에서 죽음에 이르르는 계단을 단숨에 넘어설 수 있었던 걸까? 타고 나지 않고 서야.. 어릴 때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지만, 천검의 벽은 고작 몇 번 죽음을 느낀 정도로 도달할만큼 어설픈 게 아니었다.
정말 죽을 만한 나날에 계속해서 시달리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의 고통을 그렇게 오랫동안 받으면서 살아있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 전설의 신의가 옆에서 붙들고 죽였다 살렸다를 반복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아니면 혹시..?
이미 한 번 죽어보기라도 한 걸까?
"...왜 그러십니까 사부님?"
"아니 그냥... 좀 실없는 생각이었다."
"궁금합니다. 제자에게도 가르쳐주시지요."
"크흠, 듣고 웃지나 말거라. 세린이가 이미 죽어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으음... 정말로 그런 거라면 사매는 세상에서 가장 천검에 가까운 사람이겠군요."
"천검에 가까울 뿐이겠느냐? 아마 신선에도 가장 가까울지도 모르지."
신선에 오른다는 우화등선 자체가 죽음을 넘어 정신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고래로 전해지는 전승이 틀리지 않다면 그녀는 이미 선경(仙境)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선경, 선경이라니. 그 제자가...?
"허,허허, 허허허허.. 허허허헛..!"
"하하하..."
아무래도 잡념이 길었던 듯 했다. 이런 황당무계한 생각을 하다니.. 차라리 그녀가 개파조사의 재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신빙성이 있었다. 종검학이 웃자 진무진도 화제 선택을 잘못했다는 걸 깨닫고 마주 웃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문득 사매의 생각이 나다보니... "
"허헛, 그래도 네가 사형은 사형이구나. 이러니 저러니해도 세린이를 신경쓰고 있는 것이겠지?"
"솔직히, 그렇습니다... 제 실력에 부끄럽지만 걱정도 되긴 해서.."
"어허! 네가 실력을 부끄러워하면 나는 뭐가 되느냐? 이제 죽으란 말이더냐?"
"결코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사부님."
"물론 농담이다. 세린이가 좀 그런 구석이 없지 않지만... 그 무공이니, 어디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지."
"누군가에게 맞는 사매라... 상상이 되지 않긴 하는 군요."
.....
"히익, 히윽.. 자, 잘못했어요! 그, 그만..! 그만.. 아, 아하야아악..!!"
짜아악!
또 다시 엉덩이에 불이났다. 그 미친 늙은이가 뭔 짓을 해놓았는지... 맞자마자 왈칵 솟는 성감에 신음을 참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리고 검황은 내 신음을 빌미로 매질을 멈추지 않는다.
짜악- !
"응흐으으으읏..!!!"
"그래, 또 내 말을 무시한단 말이지. 그나저나 신기하구나. 이렇게 때려도 이토록 빠르게 아물다니... 몸이 튼튼해진 건 확실하니.. 그럼 마음 놓고 때려주마."
"자,잠깐..만요..! 이, 이건.. 그러니까..!"
"그래.. 그러고보면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지."
검황의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넝마가 되어버린 무복 바깥으로 빨갛게 물든 살갗이 드러났다. 벌겋게 변해버린 내 음부를 바라보던 검황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혹여 망가질까 힘을 못 썼는데.. 이렇다면 다양하게 해볼 수 있겠어.."
약로만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검황, 이 늙은이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