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외전, 무림비사(武林秘史)
경국지색의 여인들과, 금지옥엽의 소녀들이 자진해서 스스로의 몸을 바치는 곳.
그런 곳이 이 무림에 있다면 믿겠는가?
상식있는 정파인이라면 마교도의 소굴이라고 외칠 게 뻔하다. 하지만.. 조금 더 맹에 대해서 아는 자라면 조심스럽게... 침을 삼키며 혹시나, 할 것이다.
무영림(武影林).
그곳은 무림맹의 숨겨진 저력이자 최고 원로원으로 숭앙받지만 실체를 아는 이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곳이 무림맹의 위기에 도움이 되겠냐고 묻는다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겠으나, 평시에도 도움이 되냐고 하면 제일 먼저 없어져야할 곳이라고 답할 것이다.
무림맹은 대를 이어 세대가 바뀌었고, 영웅호색이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살던 이들이 나이를 먹었다. 양민이라면 뒷방 늙은이가 되어 서지도 않는 물건을 측은하게 보겠지만 그들은 그들의 자식 못지 않게 왕성했다.
젊어서부터 그 왕성한 욕구와 정력으로 하여금 문제가 끊이지 않았는데, 은퇴한 이후라고 다르랴? 도리어 육체가 강해져 더한 이들마저 나타났다. 사태가 그러니 골치가 아파진 건 무림맹이었는데... 사문의 존경받아야할 어른들이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도 문제요. 무위도식하는 것도 문제였으니 그 해결책이 바로 무영림이었다.
그래서 아예 맹 내의 기관으로 만들어 은퇴한 자들을 끌어모으고, 그들끼리만 지내도록 무림맹 외성 바깥에 거처를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금지(禁地)로 정해서 이야기가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도록 했다.
그 소식은 원로들 사이로 퍼져나갔고, 무공을 익히는 중 자유로이 먹고 미녀들마저 거느릴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공급되는 것은 예인이나 기녀 뿐만은 아니었다.
─배움을 원하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여인들.
그곳은 그녀들이 기대는 마지막 장소이기도 했다. 대개 입문자는 각 가문에서 후계 경쟁에서 밀리거나, 가문이 비천한 자 등. 그런 여인들이 몸을 대가로 입문하곤 했다.
입문(入門)이라고 했으나 들어가는 것도 나가는 것도 자유였고, 안에서의 일이 결코 바깥으로 알려질 일도 없었다. 물론 몸을 대가로 한다는 건 한창 때의 소녀들에게는 감수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나 그럼에도 무(武)라는 마물은 많은 이들을 제발로 들어가게 했다.
언감생심 기명제자(記名第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저 그들에게 여흥을 제공하면 한 수 가르쳐줄 뿐이었으나, 그곳에 있는 이들은 천하 고수들을 일렬로 놓았을 때 누가 제일 앞이냐를 다투는 고수 뿐.
그런 고수의 가르침을 위해 무릎 꿇고 애걸할 이들은 넘쳐났다. 거기에 만에 하나 무기명제자(無記名第子)라도 된다면 그 앞날은 활짝 핀 것과 같았으니 최근에는 기녀가 불려오는 일도 좀처럼 없을 정도였다.
그 무영림 안은 오늘도 수련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제 은퇴했거나 은거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사부들의 열기도 굉장했다. 대나무 숲에 마련된 원형의 넓은 연무장. 그 안에서 긴 흑발의 여검수는 하늘에 부채를 펼치듯이 검격을 휘둘러갔다.
"하아앗! 비선참(飛扇斬)!"
"이런,이런~ 진영아 자세가 틀어졌구나."
"아... 사부님.."
뒤에 있던 중년인은 자세를 교정한다는 핑계로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움켜쥐며, 그대로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게 하니, 중년인의 발기된 하물이 엉덩이에 닿았다.
"자, 따라해보거라. 그 때의 검격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진영이라 불린 여인의 엉덩이에서 육봉을 떼지 않은 채, 자세를 교정한다며 하는 그녀의 가슴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옆에서는 구릿빛의 미녀가 탄력있는 그 맨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오직 젖가리개와 속곳만을 입은 채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격(擊)!"
"어허! 소진아.. 그렇게 움직이면 형이 부서진다고 하지 않았느냐! 누누히 말했잖느냐! 최속의 일격은 대기의 흐름을 느끼고 최적의 경로를 찾을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네.. 사부님.."
"안되겠다. 너는 바람을 느껴야한다. 가리개를 벗거라."
부끄러워하는 소진의 젖가리개를 벗겨버린 근육질의 사내는, 그녀의 조금 떨어진 앞에 섰다가 몸을 낮춰 그녀의 가슴 사이에 시선을 맞췄다.
"자, 내 뒤틀림을 짚어줄테니 다시 해보거라!"
"..네!"
"기합이 부족하다!"
"네엣!!!"
"그래! 다음에도 그러면 벌을 줄테니 제대로 하거라!"
"넷!!!"
잔뜩 긴장해서 움츠러든 허벅지 사이, 땀에 젖어 은근하게 비치는 삼각지와 흔들리는 유방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내. 나머지의 무리들도 비슷한 꼴이었다. 자세를 잡아준다며 만지거나, 벗을 필요가 있다며 벗기거나. 때로는 '벌'을 주겠다며 이런 저런 야릇한 일을 시켰다.
그리고 그 연무장의 중앙을 마치 물 위를 걷는 신선처럼 고고하게 걸어온 노인이 내려섰다. 선풍도골이라는 것이 이것일까 싶은 자태, 그러나 그런 그의 눈과 발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걷다가 가슴이 커보이는 여인이 있으면 대놓고 훔쳐보고, 치마가 짧으면 그대로 엎드려서 그 치마 사이를 바라보기를 서슴치 않았다.
"호오.. 제법. 실하군."
"꺄아앗..!"
치마 안을 관찰당하던 여제자가 비명과 함께 도망치게 만든 노인의 표정에는 히죽거림이 가득했고, 곧장 다른 여인들의 곁으로 가 그 몸을 노골적으로 보길 주저치 않았다.
"저, 저런..!"
"또..!"
"크윽..!"
허나 그 꼴을 본 소위 '스승'들은 주먹을 쥐면서도 차마 어쩌지 못하고 침을 뱉거나 혼잣말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신선이라기보다는 요선에 가까운 행동을 저지른 노인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처음 왔던 그대로 고고한 표정을 연기하며 걸어나갔다.
그가 광장을 지나 숲으로 나아가는데 한 인영이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곁에는 청초함과 도도함이 물씬 배어나오는 소녀가 다가와 간곡한 표정으로 호소했다.
"어르신.... 부디 소녀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시옵기를 청합니다."
그 호소하는 모습은 능히 만인의 심금을 울릴 절색이었다. 소녀의 이름은 모용혜미. 세간에는 무림사화로 알려져 있으며 모용가의 금지옥엽이었다. 호사가가 묘사하기를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것 같은 고고하고 청초하다 하였는데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본 노인은 준엄한 얼굴로 그녀의 몸매를 보다가,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홱 돌아섰다.
"흐음... 안타깝구나, 내가 가르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예? 저의 재질이 부족한 것이라면 어떻게든.."
"그것이 아니다. 여성으로서 마땅히 갖춰야할 것 말이니라."
갑작스러운 선문답에 고민했다. 마땅히 갖춰야할... 것? 모용혜미는 어디가서 그 미모로 과분하다면 과분하다고 했지만 모자라다는 소린 듣지 않고 살았다. 이해할 수 없어 제 몸을 살피며 고개만 갸웃거렸다.
"조금만, 가엾이 여기시어 말씀해주신다면..."
"어허~! 네가 스스로 깨달아야하는 것을... 내가 말하면 어찌 깨달음이 있겠느냐?"
"어르신, 부디.."
"후우.. 꼭 내 입으로 말하게 하는구나."
꿀꺽.
모용혜미는 노인의 입에서 나올 말을 조심스레 기다렸다.
"너는.. 가슴이 작다."
...?
모용혜미는 눈을 깜빡였다.
뭐라고 한 거지.. 방금?
"..가,가슴...말씀이시옵니까?"
흘끔, 노인은 대답 없이 가슴을 쳐다보았다. 아니.. 저 신선 같은 노인이 음욕 때문에 그랬을 리 없다. 아직 모용혜미의 눈빛에는 동경이 가득했다. 이 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지만.. 이때까지 단 한명의 제자도 두지 않았다는 그의 전설은 익히 알고 있다.
즉, 이 노인은.. 기준이 다른 것이다. 저 청아하고 유수같은 표정을 보라, 저 고요하고 물과 같은 깊은 자세를 보면 마음까지 청수해질 정도였으니... 필시 성욕에 심취한 다른 이들과 다른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슴이 작다' 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해석을 가지게 된다. 깨달음. 외면이 아닌 내면... 혹시 가슴 속에 담긴 그 마음, 심력에 대한 것일까? 금지옥엽으로 태어난 자신의 의념의 부재? 아니면 의욕에 대한 재질? 결의?
'..어,려워..'
여전히 가슴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은 너무나도 진중해서, 몸이 꿰뚫리는 듯하다. 그 시선까지 받으니 모용혜미는 더욱 알 수 없게 되어 당혹한 표정으로 몸 주위, 시선, 자신의 표정, 검집에 매어져 있던 검까지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혹여 심의(心意)를 말씀하시는지요?"
"아니다."
"..그,그러하다면 열의(熱意)를..?"
"....아니다."
"그렇다면 의기(義氣)를..."
"아니라고 하잖느냐."
"아,앗.. 그렇다면 명.."
"아니다!!!!"
모용혜미는 그의 준엄한 목소리에 움츠러들었다.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 짜냈으나 반각이 흐르도록 그녀는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
"부디, 부디.. 모자란 소녀에게..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죄스러운 표정으로 부탁하는 모용혜미를 답답하게 보던 노인은 별안간 호통을 쳤다.
"가슴! 유방, 젖! 찌찌를 모르느냐?! 이렇게 말해줘도 모르다니! 아니면 네가 작은 걸 모르는 게냐??!"
천하의 모용혜미가 어디서 이런 말을 들어봤을까? 그것도 면전에서 가슴을 손가락질 당하면서. 그녀의 가슴은 작은 게 아니라 평균에 가까웠다. 거기에 그 몸매는 더 없을만큼 아름다웠고,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울려 무림사화(武林四花)로 불리고 있었다. 도자기도 넓고 얇음이 있듯 그것은 아름다움의 하나였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모용혜미를 결함품을 보는 듯 마뜩찮은 표정으로 품평할 뿐이었다.
"젖.. 가슴...."
"쯧, 그렇다. 네가 만약에 그토록 내 가르침을 받고 싶다면.. 우선 내가 가르쳐주는 거유신공(巨乳神功)을 익혀라. 그렇다면 너에게 내 무공을 전수해주도록 하겠다."
"거..유신공? 그... 그것은 무슨 무공이온지요..?""
"거유신공이란 폭유신공에 입문하기 위한 기본공(基本功)으로 상체의 내기 축적과 흐름을 조절하는 공능이 있다. 이를 통해 축적된 음기로 아름답고 큰 가슴을 만들 수 있는 효과도 지니고 있지."
...해석하면 그냥 가슴이 커지게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아까부터 뭔가 엇나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음선(淫仙)들의 숲에서 유일하게 제자가 없는 그였을텐데....? 혹여 자신을 상대로 시험을 하는 걸까? 저 고고한 얼굴을 보면 그 추측은 점점 강해진다. 모용혜미는 생각을 하다가 간신히 입술을 뗐다.
"말씀에 감읍하나... 검수로서 큰 흉부는 약점이 되기에...."
"이런...! 검(劍)의 검 자(字)도 모르는 계집아이가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구나!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 본래 절대의 경지에 오르면 가슴이 태산만하든! 조약돌만하든 별 차이가 없는 법이다!"
그렇게 저 높은 산을 바라보면서 외치는데, 어찌나 그 기상이 웅대하고 담담한지 일순간 노인의 말이 진실이 아닐까 고민이 될 정도였다. 모용혜미도 어쩌면 수긍했을지도 몰랐다. 별 차이가 없다면 굳이 키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떠냐, 거유신공을 배우겠느냐?"
"허나..."
"뭐?! 허나아...? 더 이상 듣기 싫다! 소질은 절벽 같은 주제에 내가 가르쳐주는 신공을 배울 생각이 없다면 썩 물러가거라!!"
"어, 어르신..!! 그, 그것이 아니옵니다! 다른.. 것을 배우면.. 안되겠습니까?"
"흐흐음.. 다른 것이라..?"
"예..."
노인은 언제 성을 냈냐는 듯 미소지으며 모용혜미의 몸을 쓸어보았다. 노골적인 그 시선에 그녀의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가슴부터 배 아래를 핥는 듯한 시선은 짙어졌다.
자신의 추측이 틀렸을 가능성에 잠시간 두려움이 들었으나.. 그렇다한들 호색한 이들이 천지임에도 정파인들이 모인 곳인 만큼 결코 강제로 정조를 침탈하거나 윽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견뎌냈다.
이들은 직접 몸을 바치지 않는 이상, 어디까지나 다른 이들과 같이 가르침을 내린다거나, 기공을 전수하는 것을 빙자해 희롱할 뿐이다. 진정하자.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도에 격동해서는 안되었다. 그녀들은 감수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입에서 어떤 헛소리가 나오든 입다물고 듣는 수 밖에 없었다.
"혹여 너는 체모(體毛)가 무술을 펼칠 때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아느냐?"
"예? 방금 절대의 경지에서는 신체의 차이는..."
"어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구나! 네가 절대의 경지에 올라봤느냐!? 네가 심검(心劍)이나 무형검(無形劍)쯤은 슥슥 써버리고 그런단 말이냐?!"
"아,아니옵니다!"
"물론... 네 말도 맞다. 절대의 경지에서는 의념(意念). 달리 심력(心力)이 절대적인 게 사실이다."
"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축적해온 내공이나 신체적인 우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오히려 신체적인 강점이 있다면 그 장점을 기반으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의념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아아.. 그렇군요."
노인은 감탄하는 모용혜미의 얼굴과 몸을 스윽 쓸어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체모를 제거해 신체의 수발을 보다 원활히 하는 신공을 개발하였다. 이 신공을 익히면 단순히 뽑는 것과 다르게 발모를 위해 사용되어야할 기운을 육신에 사용해 내공의 흐름을 시키는 효능마저 있지."
"그,그렇다면.. 소녀는 무엇을...?"
"오.. 마음이 들었느냐? 우선 이 백보지로신공(白步智路神功)을 익히려면 발모를 막기 전에 털이 있는 부분들을 특수한 내공으로 처리해야한다. 그러니 가르침에 앞서 너는 대법을 시행할 곳들을 보여야할 필요가 있는데..."
"...?"
"처음에는 직접 뽑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흐으..."
노인의 침이 뚝뚝 흐를 것 같은 노골적으로 음란한 시선이 그녀의 겨드랑이에서 아래로 내려가 그 고간 사이에 고정되었다. 그 시선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모용혜미는 허벅지 사이를 양손을 모아 가리며,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어르신...!"
"어허... 단련의 기본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것인데..."
"어,어르신 그것은.. 제가 배우기에는 너무도 상승(上昇)의..."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되었다! 할 마음도 없으면 썩 꺼지거라!! 퉷, 시간만 날렸구나!"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용혜미는 결국 울상이 되어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모용혜미는 알 수 있었다. 왜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노인이 아직도 제자가 없는지. 다른 이들은 대개가 선은 지키는 법인데... 이 노인은 누가 들어도 변태스러운 얘기를 하거나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을 요구했다.
그렇게 오늘도 한 소녀의 마음이 또 꺾였다. 그녀는 몰랐으나 상대는 역시 그 명성대로였다. 무영림 내에서도 최악최흉의 변태로 이름 높은, 그러나 모두가 그 사실을 모르고 가장 먼저 찾게 된다는 노인.
그가 바로 검황이었다.
....
"후우...."
모용혜미는 결심을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 무영림에 온지 어언 두 달이 지나가는데도 이렇다할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고, 그 이상으로 향무심(向武心)이 높기 때문이었다.
강호의 기라성처럼 많은 검객들 속에서 감히 검성(劍成)이라는 광오한 칭호를 얻은 이를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 그리고 그런 존재에게 배운 상대를 이겨야하는 자신으로서는 어지간한 고수의 가르침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현 무림에서 그녀를 가르칠 고수는 삼황-오제-십왕으로 이어지는 열 여덟명의 절대고수 뿐. 더 넓게 잡아봐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지존들 뿐이었다. 끈 떨어진 그녀가 접근하기엔 모두 너무도 높은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구 무림까지 시선을 돌려 무영림으로 향했다. 과연, 이곳에는 전대의 고수, 때때로 전전대의 고수마저 존재했다. 길가다가 한 명도 보기 힘들다는 초절정의 고수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곳,
그래서 여기라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허나 아무리 모용혜미가 무림사화로 불리는 절색의 미녀라고 하나.. 그 정도의 초고수들이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옷고름을 풀 미녀들을 놔두고 굳이 집착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 경쟁자인 남궁수란이 전대의 최고수 칠존(七尊) 중 한명인 검존에게 무공을 사사 받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검존의 거처에 뻔질나게 다니더니 성취를 이루고 만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이제 자신의 경쟁자는 그 과정이 어떠했건 간에 무림 최고수 중 한명에게 배우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이대로라면 자신은 뒤쳐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계획도 무산될 터.
그녀는 모용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게 살았으나, 오빠와 달리 외유조차 억압당하며 언젠가 정략혼으로 팔려갈 운명이 억울했다. 그렇기에 수모를 각오하고 무영림까지 들어왔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격차가 더 벌어지면...'
이제는 몸 따위를 아낄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자신은 팔려가고 만다. 원치 않는 혼인 따위에 사용될 몸이라면... 차라리 강함의 디딤돌로 쓰리라.
지내오면서 알게된 것이지만 '처녀는 범하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있는 곳이니 어쩌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말 그대로 '처녀는' 범하지 않는 것이지 그 이외의 곳들이 그것을 대신하겠지만 누구도 그것을 문제삼지 못할 것이다.
무영림에서의 일은 무영림에 묻는다. 그 또한 이 땅의 불문율이었으니까.
'하겠어..'
그게 뭐든지, 그렇게 결심을 마친 모용혜미는 칼을 뽑듯 진중한 눈길로 다가왔다. 시를 읊듯이 분위기를 잡고서서 추잡한 웃음으로 여인들에게 달라붙는 노인. 그가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건 믿기 어려웠지만.. 우연히 그의 황홀한 검무를 본 순간부터 인정하고 말았다.
저 노인이야말로 천하제일검이라는 걸.
"어,어르신. 하겠습니다..!"
"흐음? 뭘 말이냐."
"신공을.. 전수 받겠습니다."
"호오? 어느 신공을 전수 받고 싶다는 게냐.. 거유신공이냐? 아니면.. 백보.."
"무엇이든... 지금보다 더 나아갈 수만 있다면... 하겠...습니다."
주먹을 꽉 쥐고, 결연한 얼굴로 말하는 모용혜미를 훑어보던 검황은 아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혀를 차다가 짖궃은 표정으로 말했다.
"호오.. 결정했느냐? 헌데, 나는 재질을 상당히 따지는 편이다. 그런데 아무리 나 정도의 고수라도 너의 근골이 좋은지는 확신할 수 없구나. 상반신은 대충이나마 알 수 있으나.. 하반신은 그 무복에 가리니 제대로 알 수가 없구나. 그러니 네 무복 치마를 잠깐 들어보겠느냐?"
"그.. 읏..... 것은..."
"뭐, 싫으면 아무래도 좋고..!"
부끄러움이 치솟았지만 고작 이 정도에서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입 안을 깨문 모용혜미는 수치심을 누르고 마침내 무복치마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흐음? 이런... 속곳을 입었구나."
"그.. 그렇..사옵니다.."
품평하듯 바라보던 검황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벗거라."
".....예..?"
"벗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속곳으로 인해 너희 고간과 골반 주위의 골격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또! 신체의 균형을 알아야겠으니 그 모양도 볼 필요가 있지. 그러니 너는 속곳을 벗고 뒤를 돌아. 네 하반신을 숨김 없이 보이거라."
"...보.. 보이라.. 하심은?"
"이런, 제기랄! 이렇게 말하면 머리가 굳어서 못 알아듣는게냐! 똥구멍과 보지를 보이라고!"
천박한 일갈에 머리가 하얘졌다. 비록 정략혼 따위로 쓰일 처지였다고는 하나 모용가의 금지옥엽으로 태어난 자신에게, 그런 수치스런 요구를 하다니. 여인으로서 소중한 부분을 노출하라니... 하지만 뻔뻔스럽게도 검황의 표정에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으..으읏..."
"쯧쯔. 그래, 그 정도 결단이었구나. 그렇다면 이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
"아,아닙니다. 어르신!"
"흐음?"
"하,하겠습니다..."
'결심했잖아. 모용혜미. 넌, 검을 위해 죽기로. 모든 걸 바치기로.. 오늘이야 말로.. 검황의 제자가 되어.. 모두를 뛰어넘기로..!'
모용혜미는 스스로의 사명을 되새기며 죽을 것 같은 부끄러움을 억눌렀다. 어차피 부끄러운 일이라면 최대한 빨리 끝내리라 생각하며 속곳의 끈을 풀었다. 헤실헤실거리며 입이 귀에 걸린 검황의 징그러운 미소가 보였지만, 그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명령에 따라 무복치마를 걷어올리고 내려가지 않도록 허리를 수그려 보름달처럼 청아하고 깨끗한 둔부를 완연히 드러냈다. 하지만.. 검황의 명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반신을 숨김 없이 보이라'는 명령. 모용혜미는 입술을 깨물고 엉덩이를 양 쪽으로 잡아벌렸다.
이제 스승이 될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이 이상 없을 치태를 보인다는 뜨거운 흥분과, 벌어진 세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만나 식는 순간. 부끄러움과 흥분으로 가슴이 떨리고, 몸이 무너질 것 같은 감각을 억늘렸다.
분명, 보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벌어진 그곳이 공기를 머금어 떠는 것만큼. 처녀의 흔적이 어서 닫으라고 경련하는 만큼 선명하게 보이고 말았을 것이다. 부끄러움에 눈을 감고 싶었지만 결연하게, 결코 감지 않았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의 다리 사이에 숙여진 고개에서 보여진 검황의 표정을.
"허어억...!"
노인의 표정은 경박함은 사라지고 경악으로 물들었다. 혹시.. 자신의 몸이 통한 것일까? 심상찮은 정도가 아니라 살짝 맛이 간듯한 몽롱한 눈을 보면 무슨 짓을 당할 지 모른다. 이대로 그가 바지를 풀고 미친짓을 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검황이 얼마나 자신을 열망하는 지 알 수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무림일절을 넘어, 천하제일이라 불리우는 그의 비전절학을 얻어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모용혜미의 마음이 상반된 감정 속에 희열로 차오르는 그 때. 이상을 발견했다.
'날... 보고 있지 않아?'
위화감을 눈치챈 것은 검황의 눈동자에 비친 노을빛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 고수이기에 볼 수 있었다. 언덕 아래, 노을을 배경으로 둔 먼 곳을 보고 있는 검황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붉어졌다가, 음흉해졌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를 반복했다.
모용혜미가 같은 장소를 쳐다보았으나 거기에 있는 것은 지평선의 끄트머리에 있음에도 우뚝 솟아있는 무림맹의 성채. 그리고 작디 작은 마차와 인영 뿐. 검황에게는 저게 보이는 것일까? 아니,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당금 무림에서 최고수라 불리우는 검황이 고작 몇 십리를 못 본다면 도리어 실망할테니.
검황의 눈동자에 비치는 인영. 모용혜미는 피를 토할정도로 안력에 심혈을 다해 집중하고서야 저 멀리에서 마차를 댄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자신 못지 않은 미소녀와, 언젠가 스쳐 보았었던 지살대의 모습이 보였다. 노인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였다.
─어려보이면서도 나올 곳은 나왔고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가련한 얼굴, 누가봐도 깜짝 놀랄 정도의 빼어난 미모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결코 그녀에 비해서 자신이 떨어진다곤 생각치 않았는데... 자기 뒤의 변태 노인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이제는 완전히 실성한 것처럼 침까지 흘리는 검황은 맛이 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오오..오오오....!"
그 순간, 있었을 터인 검황이 질풍이 되어 사라졌다.
망연한 표정의 모용혜미를 남겨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