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잠입 훈련은 혹독하다, - 2 -
"....당신이 왜 또 여기서 나와!?"
"킬킬킬! 그야 본좌가 바로 약당과 만독전의 주...오오옥!! 끄어어어억! 무,무슨 짓이냐아아악!!"
나는 이 빌어먹을 늙은이를 보자마자, 우리가 그렇게 한가하게 통성명할 사이인 줄 아는 착각을 교정해주었다. 천류보로 달려드는 즉시 그 수염을 잡초 뽑듯 잡아당겼다.
"어젠 잘도 개 같은 짓을 해줬겠다...?!"
"어억! 이 무스.. 끄,끄윽?! 노,놓아라! 내가 누군줄.. 어억!"
"곧 수염이 다 뽑힐 놈이지!"
"으헉?! 이,일단 놓고 말하자! 내가 친히 진단도 해줬지 않느냐!? 끄악!? 네, 네 이년.. 은혜도 모르는 것이냐!"
"은혜는 개뿔! 그게 문제야! 자꾸 잡아뗄래?"
"자,잡아떼다니..!"
"내가 모를 줄 알아? 또 보자며, 사법에 안 걸렸으면 안 걸린거지. 감히.. 수작을 부려?! 영감, 정말로 죽고 싶어?"
이번 약은 정말 고생했다... 춘약이라면 없어서 못 당해보지만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안했지! 어젯밤엔 질 안이 완전히 민감해져버린 탓에 미치는 줄 알았는데.. 생각하니 지금도.. 욱씬거리고.. 으으, 생각하니까 더 빡치네!!
뚜득,뜨드득,
"이 망할 영감탱이! 어쩔거냐고!"
"끄아아악! 꺽, 끊어진다아악!!! 이,일단, 놓고, 놓고옥..!"
"놓긴 뭘 놔! 생명줄 놓게 해줘!?"
약로는 다급히 내 손길에 저항해 무공을 펼쳤지만 될 턱이 없다. 팔목을 쳐내려는 손을 반대로 쳐내어 돌려주고, 도망치려는 발을 옆에서 걷어차 공중에 뜨게 만들었다.
퍼억!
"커헉!"
중심을 무너트리면 약로를 바닥에 엎어트리는 건 간단했다. 대자로 뻗은 노인은 여전히 내 손에 수염이 목줄처럼 잡힌 상태. 행여나 수염이 다 뜯어지지 않도롣 내공으로 보호하며 잡아당겼다.
"끄억, 그, 그만, 그만! 항복하마!"
"안돼. 내가 볼 때.. 영감은 좀 맞아야 돼. 딱 백 대만 맞으면 항복하게 해줄게."
"크,크윽, 네, 네 이년..! 내, 내가 누구인줄 알고..!"
"누구긴 누구야. 진찰한다면서 장난질하는 변태영감이잖아?"
"어,어억..! 그,그건 정당한! 진찰이란 말이다! 나, 날 놓지 않으면.."
"뭐, 변태짓 한 거 이야기 하려고?"
"끅.. 기.. 기천! 기처언! 보고만 있을테냐 네 놈! 빨리! 도와다오!"
갑자기 약로는 배경처럼 있던 건물 방향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하지만 기감을 돋워도 잡히는 기색은 없다. 뭐야, 상상 속의 친구.. 그런 거야?... 나이를 먹더니 치매에 걸렸나?
"네 놈이 당하는데 내가 왜 도와줘야한단 말이냐? 끌끌끌..."
..?!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분명, 이제까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가옥 안에서 척 보기에도 음흉해보이는 약로와 달리 백발이 성성한 신선풍의 노인이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위화감 그 자체였다. 거대한 존재감. 왜, 저런 자를 깨닫지 못했지?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방금까지의 흥분도 잊어버리고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노인의 기세는 있는 듯 없는듯 희미하다. 그래서 이상하다. 기(氣)가 저 노인의 주위에서만 느려지고 있었다. 고요한 게 아니라 고요하게 만들고 있다. 마치 태풍의 눈 처럼.
"호오..? 알아봤느냐? 눈썰미가 제법이구나..!"
"누..구야, 당신...?"
"흘흘, 궁금하더냐? 너부터 밝히는 게 어떻겠느냐?"
"수상한 인물에게 알려줄 이름따윈..."
"크하하, 크하하하하핫!!!"
"..뭐, 뭐야. 왜 웃는 거야?"
"무림맹에서 나를 수상한 자 취급하다니..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있구나."
노인은 대호와 같이 흉흉한 눈빛 속에 기세를 담아서 집중해왔다. 거대한 송곳처럼 집중된 무형의 기세에 꿰뚫리면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다. 본능적으로 마주 내기를 끌어올렸다. 씰룩, 노인의 입가 야릇하게 일그러지는 게 보인다.
이런 제길! 아, 아닌 척을 해야했는데. 너무 경계해버렸다. 들켰..다. 으으... 그렇지만 경계할 수 밖에 없잖아 망할 사부 같으니.. 현 무림에 자기 이상의 고수는 없을 거라더니.. 이 노인네만 해도 사부 수준을 넘는 걸.
"기천! 일단 제압해라! 이 계집.. 내 진찰 때 싫어하긴 커녕 즐겼다. 어쩌면 마교의 하수인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끼어든 약로의 외침에 기천이라 불린 노인이 점점 검집에 손을 대었다.
"그게 정말이냐? 저 변태놈의 손아귀를 좋아하다니... 여태까지 그런 여아는 본 적이 없었는데.. 흠, 수상하긴 하구나."
"내 손이 뭐가 어쨌다는거냐!"
"시끄럽다! 두꺼비를 튀겨다가 흙밭에 굴린 것 같은 놈아."
"이이이익!"
"아무튼 이 놈은 네가 수상하다고 하는구나."
검을 붙잡은 뒤로 느껴지는 기파는 그 안에 담긴 거력을 느끼게 했다. 이대로라면 천문을 개방해야할 지도 모르는데... 그럼 사부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고, 여행도 끝인데...
"아, 아니에요!"
"아니라고?"
"저는 천검문에서 왔어요! 용세린이라하고.. 방금은 저 변태 늙은이가 이상한 짓을 해서 그런거에요! 누명이라구요!"
"누명이라..? 과연 그럴까? 아무리 저 두꺼비 놈이 하찮은 실력이라지만, 놈을 제압할 자가 넘치는 건 아니다. 차라리 네가 마교의 간자라는 의심이 더 합리적이겠구나... 아니 그러하냐?"
신선풍 노인의 의심의 시선이 점점 짙어진다. 너무 편한 마음으로 온 게 잘못이었나?
"사람을 마교도로 모시다니요? 그러는 어르신이야 말로 누구시기에..!"
"허허... 무림맹에서 나를 묻느냐? 내가 바로 검황이니라."
광오하게 자신을 밝힌 노인은 스스로를 검황이라 했다. 분명 듣기로는 무림 최고의 고수 중 한명이라고 했는데.. 그 검황이라고?
"검..황?"
"그렇다."
아니 왜, 여기에 검황이 있는데...? 그런 의문에 답해주듯 끄덕였다.
"이 놈과 조금 아는 사이라서 말이지. 그런데...?"
"저는 흑주라는 자의 안내를 받아서 왔습니다. 여기 은패도...!"
"흠, 그래 패가 있긴 하구나, 허나 나는 내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 지금 본 것으로 너는 상당히 수상하구나... 그렇지 않다면, 너 정도의 실력으로 이름이 안 알려졌을 리 있겠느냐?"
촉이 왔다. 분명 여상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신선에 가깝지만, 이 노인.. 틀림없는 변태다. 어떻게 눈동자가 내 가슴과 허벅지 사이에서 벗어난 적이 없을 수가 있어?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지요?"
"이리오너라, 네 몸을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네..?"
어이가 없어서 쳐다봤는데 검황은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투였다. 마치 의사가 '진맥하려고 손 달라는 데 뭔가 문제라도?'하고 묻는 투라서 나도 모르게 걸어갔다. 그 앞에 서면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는 시선은 약로가 좀스러워 보일 정도로 노골적이다.
"긴장할 것 없다. 본좌는 소싯적에 마교도를 감별하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마교도.. 감별법요?"
"그래. 마교도의 축기 방법은 자극에 민감하지. 그래서.. 배에 기를 불어넣으면 반응이 온다."
"그런... 거라면 알겠어요."
일단은 저 노인에 비하면 정상인 것 같기도하고, 검황이라니까... 괜히 적으로 만들어서 좋을 것도 없었으니 다가갔다. 검황이 그렇게 내 배에 손을 내밀었다. 배가 눌려본 적은 없는데, 탄탄한 손에 배를 움켜쥐자 자궁을 붙들린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다.
"읏..."
"어디보자.. 내기에서 일단 사기(邪氣)는 느껴지지 않는 구나."
"그럼..."
"재촉하지 말거라. 아직 시작도 안했다."
꾸욱.
"흐익?!"
손이 배를 짓누르며 장심에서 뜨거운 기운이 뿜어졌다. 압도적인 내기가 배 안을 관통하듯이 들어왔다. 배 안에 스며들어온 뜨거운 기운이 몸 안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해 전신을 타고 돌아다녔다.
"호오, 상당히 좋은 몸을 하고 있구나."
아무리봐도 근골에 대한 칭찬은 아닌데, 검황의 얼굴만 보면 신선이나 다름없어서 헷갈린다. 진짜.. 확인하는 것 맞아..? 뜨거운 양기가 배 안을 헤집는데.. 내부를 채우고 있다. 열양지기가 자궁을 데워버리는 듯한..
"흐윽..!"
"이런, 기운이 강해서 힘들 수도 있겠지만 좀 참거라?"
몸 전체를 쓸고 지나간 강력한 열기 때문에 덥다. 내기를 일으키면 저항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백퍼센트 들킨다. 아니면.. 내 실력을 알면서 일부러? 시험... 하는건가? 내가 본색을 드러내는지 보려고? 사실 따지고보면 정파지만 트집을 잡고 싶어서?
만난 정파인 녀석들의 대다수가 상태가 안좋다보니 그런 의심도 든다. 으으, 이 늙은이랑은 생사를 결하는 것 말곤 답이 없어보이는데. 게다가 검황을 해쳤다간 배분 문제상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진짜 어떻게 하지...?
꾹.
"아..?!"
"어허.. 흠.. 확실히 훌륭한 재질이다. "
말하면서 슬쩍 내 몸을 만졌다. 뭐,야, 이 늙은이 그런 거였어...? 하늘에서 선인이 내려왔나 싶은 얼굴 때문에 몰랐지만, 지금 보면 완전히.. 내 몸에만 눈이 가있다. 그리곤 허락도 받지 않고 내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엉덩이, 가슴..?
"저, 저기 지금..!"
"어허, 잠깐 기운을 보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 설마 가슴이나 엉덩이 좀 만졌다고 뭐라고 하는 것이냐?"
노,노골적이야! 이 노친네.
약로가 다소 꼴사납게 변명했다는 느낌이라면 검황은 다르다. 그냥 대놓고, 아주, 완전히. '원래 다 그런거야' 하는 식으로 내 가슴을 주물러왔다.
"호오, 유두의 위치가 이렇게 완벽한 것은 처음이다. 마치 환골탈태를 한 것 같구나."
꾹꾹.
읏..!
손짓이 제법.. 아니 상당히.. 기술적이다. 그냥 찌르는 게 아니라 아까의 뜨거운 내기를 넣어서, 유방 내부를.. 헤집어 놓는다. 엉덩이도 마찬가지, 쓰다듬는 척 은근하게.. 그 끄트머리를 음부를 쓸어대고 있다. 이상한 기운 때문에.. 이러다간, 절정한다. 검황의 앞에서 절정해버리기라도 하면..
"그, 그만.. 어르신. 뭐, 뭐하시는 거에요..!"
"어허, 왜 그러느냐. 내가 네 보지라도 만졌느냐? 엄연히 무인에게 있어서 가슴과 엉덩이는 신체 골격을 확인하기 위해 만져볼 필요가 있다. 너도 무인이라면 다음의 경지로 올라가고 싶을 것 아니냐?"
"..저, 저는 딱히 가르침을 구한 적은...!"
"훌륭하다. 지금 살펴보니 아주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구나!"
가슴을 움켜쥐면서 하는 말이 이렇게 당당해도 되는 거야?
"그러니... 너, 내 제자가 되라."
예? 뭐라고요?
검황의 갑작스런 제자선언에 황당한 건 나 만이 아니었는지 약로가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 늙은이 놈! 아직도 그 버릇을 못고친거냐. 무슨 늘그막에 제자냐. 예쁜 계집애를 만지고 싶은 거겠지!"
"허, 나를 너 같은 쓰레기로 보는 거냐? 난 어디까지나 훌륭한 재질을 가진 아이가 더 성장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 거다."
"퍽이나! 이 호색한 놈이 또 위선을..!"
"뭐라고?! 이 더러운 두꺼비 놈이, 감히!"
둘은 죽일 듯이 노려봤다가 갑자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봐도 말을 안하는 것은 아니었고, 서로 표정이 바뀌면서 눈짓이 오가는 걸 보니. 전음으로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혹시나 훔쳐들을 수 있을까 했는데, 수준을 억누른 상태에선 역시 안되나. 잠시 뒤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물러서더니 검황이 인자한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흠흠, 천검문의 용세린이라고 하였느냐?"
"네..."
"그래, 너는 결백한 게 틀림없구나."
"오..오해가 풀렸다면.. 다행..이네요..."
몸은 아니지만. 벌써 애액이 무복 아래로 흐르고 있다. 무복이 치마형태로 되어서 다행이었다.
"마교 잠입 같이 위험한 건 그만두고 내 제자가 될 생각은 없느냐? 이건 진심이다."
"이 놈 무슨 짓을 하려는.. 끅..!"
검황의 제안에 반발하고 나선 약로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길길이 날뛰려는 것 같은데 무형의 힘에 눌린 것처럼 억눌린 표정이었다.
"혹시 맹주 놈이 뭐라 했다고 해도 내가 무마해줄 수 있다. 저 놈도 마찬가지다. 어떠하냐? 너는 최고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그런 훌륭한 곳을 알아버린 이상 안 갈 수 없잖아? 그런 마음을 꾹꾹 채워담은 내 대답에 설마 거절당할 줄은 몰랐는지 검황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 대신 낄낄거리며 앞으로 튀어나온 것은 약로였다. 특유의 야비해보이는 얼굴을 십 이성 대성으로 활용해서 뽐내며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아암! 크하하! 일에 순리가 있는 법이다! 이놈아! 그래서.. 본론이다. 잠입 훈련에 온 것을 환영한다! 본좌가 오늘부터 네게 잠입을 위해 필요한 것을 가르칠 것이다!"
이 변태 늙은이가 맹에서 방귀좀 뀐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왜 의원이 잠입 훈련을 담당하는 거야?
"흠, 아마, 넌 왜 내가 담당하는 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뭐 궁금하긴 한데..
"그 전에 아까하던 것부터 계속..."
"뭐,뭣?! 기, 기다려라! 내가 말했잖느냐! 너를 가르칠 교관이라고! 저번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료행위고 약이 아니냐! 오해하지마라! 너는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마교에 잠입하는 것은 대단히 힘드니 나 같은 약과 독에 능한 이가 가르쳐줘야한다! 아, 들었으면 좀 물러서라! 내가 교관이라니까?!"
말하면서도 떳떳치 못했는지 내가 한 발자국씩 다가갈 때마다 검황의 뒤로 숨으려는 게 보였는데 의외로 검황은 그걸 거부하는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당당한 표정으로 다시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무술을 가르쳐줄 것이다!"
"네? 제자가 되라는 말씀은 분명 거절..."
"어허! 너의 스승이 되겠다는 게 아니다. 맹주의 명을 받아 잠입하기로 했으면.. 자기 임무를 수행하려는 노력이 있어야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친히 기특한 후배에게 무공을 지도해주는 것이지."
아, 네...
"안 그러냐 변가놈아?"
"..그,그래. 네 놈 말대로다."
아무래도 둘이 통하는 게 있었는지 껄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약로가 끄덕였다.
...아무리봐도 두 늙은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