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무림의원은 변태다, - 2 -
도착한 곳은 호북의 끄트머리였다. 내가 지명이나 위치를 잘 아는 건 아니고.. 오구환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받아들일 뿐. 오면서 들었지만 무림맹 설립에 가장 주도적이었던 무당파에서 이 곳으로 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라던가 뭐라던가... 대충 흘려 들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무림맹의 건물은 웅장했다. 이전부터 번창한 도시의 형태가 아니라, 터를 정하고 거기에 건물을 쌓았기 때문에 이질적이면서도 규칙을 갖추고 있었다. 성벽을 쌓아올려 전체를 둘러놓은 구조는 아예 하나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와아.. 생각보다 엄청 크네요. 마치 성 같아요."
"하하.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불편해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용소저는 저희의 손님으로 오시니까 말입니다."
"아, 네.."
손님이라고 해도 글쎄. 당장 단주만 봐도 배교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니.. 어쩌면 고문을 할지도 모른다. 설마 거기까지 하겠냐마는 경우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마음의 준비만 해둘까.
"그럼, 나는 보고를 드리러 가겠다. 구환 네가 안내해드려라."
"네!"
구환이 위병을 서던 이와 간단히 이야기하고, 위병이 나를 잠시 보고 무언가를 끄적인 뒤,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막상 들어서고 보니 또 하나의 성이 보였다. 무림문파가 클 수 있다는 건 예상했지만.. 규모가 예상 이상이었다. 족히 오 층은 되어 보이는 높은 성벽 위에 솟은 건물의 웅장함은 가히 장관. 어쩌면 여기는 내가 아는 과거의 중국이 아닐지도...?
구환은 이해한다는 듯 끄덕였다.
"웅장하죠? 저긴 내성이라고 해서 맹의 간부급이나 장로들이 머무는 곳인데, 뭐.. 우리 같은 놈들은 명령 받을 때 빼곤 갈 일이 없는 곳입니다."
그 후로도 안내가 계속되었고, 이어 도착한 곳은 약당이라고 적힌 곳. 내 상상보다 커서 기왓집 몇 채를 엮어 붙인 거대한 장소였다. 흰 옷을 입은 의원들이 하나 둘 돌아다니고, 여기저기서 약탕기를 데우는 모습을 보니 실감이 난다.
"어디보자.. 검진은 이 쪽이군요."
"네.. 오래 걸릴까요?"
"흠.. 경우에 따라 오래걸릴수도 있지만 글쎄요. 제가 잘 아는 부분은 아닌지라.."
"뭐, 알겠어요."
구환을 따라 마당을 지나 디귿자 형태로 둘러싼 건물 내부로 들어서는 찰나였다. 마주쳤다! 군데군데 잡힌 주름살 가운데 솟아있는 커다란 왕점의 노인이 이 쪽을 쳐다봤다.
"아.. 약로(藥老)님 계셨습니까?"
"그래, 꼭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표정이구나?"
"서,설마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저희에게 매번 좋은 약을 만들어주시는 귀하신 분 아닙니까..."
"흐음.. 그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약 한첩 달여주마."
"그... 그그.. 그게.. 가,감사는 합니다만... 제가 단식 중이라서..."
"고기 냄새를 풍기면서 개소리를 하는구나! 그런데... 뒤는 누구냐?"
"..으,응?"
약로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반개한 가느다란 눈구멍 사이로 눈을 나를 핥듯이 위아래로 살펴보고 있다. 음 상당히 노골적인 시선이다.
"아! 이 쪽은 천검문의 용소저입니다. 홀로 배교에 잠입해서 공을 세우셨습니다만, 혹시나 사법 등에 걸리지 않았을까 검진(檢診)을 받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호오, 검진이 필요하다고?"
검진이라는 말에 약로의 눈빛이 뱀처럼 크게 뜨였다.
"그럼 멀리갈 것 없다. 내가 맡도록 하지."
"어, 어르신... 곤란합니다.."
구환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낮췄다.
"이 놈, 내 말에 토를 달다니.. 많이 컸구나. 네 놈이 맹주의 직속부대 소속이라서 넘어가줬더니, 오늘 내 대법을 받아볼테냐?"
"으익.. 그, 그건 좀...!"
"걱정 마라. 실패해도 죽진 않으니."
"그건 그렇습니다만.."
"성공하면 배는 강해질터이니.. 무림인으로서는 꿈과 같은 대법 아니냐?"
"저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허어, 무인으로서 꿈이 없어? 이런 사내 답지 못한 놈! 거시기는 왜 달고 있느냐!"
"어르신.. 안 그래도 저도 아침마다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만큼 작습니다!"
"그럼 내가 팔뚝만해지는 대법을 시행해주마!"
"저는 작고 아담한 게 좋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서 가만히 있으니, 구환은 점점 비굴한 표정으로 슬슬 발을 빼고 있었다. 그 꼴을 보던 약로가 혀를 찼다.
"쯧쯧.. 호의를 베푸는데도 못받아먹다니... 그럼 진단은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할테니 넌 돌아가라."
"정말 안됩니다. 어르신,"
"뭐? 안돼? 누구 마음대로?"
"제가 받은 명은.. 용소저를 약당으로 안내해 검진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놈.. 네까짓게 뭐라고 자꾸 그렇게 맹의 이름을 팔아먹는 거냐?"
"어르신, 이래봬도 저 지살대 부대줍니다.. 부대주!"
거의 우는 소리로 외치는 구환의 외침에, 약로는 나를 보며 입맛을 다셨고 우리는 그대로 빠져나왔다. 방금전에 뭐가 일어난건지 전혀 이해가 안되서 멀뚱히 구환을 쳐다봤고, 구환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 약당에 계신 분인데... 좀 괴팍하십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대법이라는 건..?"
"항상 무슨 독특한 대법을 만드시길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성공한 경우가 없어서.."
"부작용이 큰가요?"
"저번에 받았던 심대협은 고자가 된 충격으로 맹을 떠나셨지요.."
아.
한마디로 이해했다.
계속 구환을 따라갔고, 눈 속에 비치는 건물의 광경으로 미루어볼 때, 이 세계의 무림맹은 상당히 융성한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방금 전의 커다란 마당에 문틈처럼 자리잡은 목조 복도를 지나서 도착한 곳이 또 다른 마당일 리가 없으니까. 댜만 아까의 마당과 달리 좀 좁았고, 약탕을 달이는 사람이나 환자가 없어 분위기가 적막했다.
"약당의 내원입니다. 마공(魔功)이나 사공(邪功)에 당한 환자의 경우 독랄하거나, 기이한 사법들이 많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의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 쪽에서 검진이나 치료를 합니다. 배교의 사법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음.. 그렇군요.. 그렇게 나눠두다니.. 생각보다 많이 크네요."
"그럴만도 하지요. 당금 무림제일세는 뭐라해도 우리 무림맹이니까 말입니다."
그랬나, 무림맹이 제일 컸던가? 대화를 하는 도중 우리는 의원 앞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무언가를 분주히 적고 있던 의원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무슨 일로 오셨소?"
"검진을 받으러 왔는데요.."
"배교에 잠입하여 싸웠던 여협이신데 진찰을 받으러 왔소."
"아. 그렇다면 검진을 받을 분만 이 쪽으로 따라오시오."
구환이 나서서 말했고,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끄덕인 의원이 일어났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끝나면 뵙지요."
"네."
구환을 남겨둔채 의원을 따랐고, 생각보다 복잡하게 길을 걸어야했다. 처음에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다시 왼쪽, 미로처럼 흩어진 여러 방이 있었다. 이 약당이란 곳은 보기보다도 큰 것이 분명했다. 걸어갈수록 방 안에서 느껴지는 인적이 드물어져, 안 쪽인것 같았는데 마침내 도착한 곳은 문을 위해 무려 여덟 개의 미닫이 문을 이어 만든, 규모부터가 다른 방이었다.
"여기로 들어가시오."
"직접 검진하시진 않나요?"
"검진할 분이 안에 계실 것이오.. 들어가시면 되오"
그의 말에 따라 들어갔는데 나를 맞이한 것은 또 다른 문이었다. 이중 겹문이라는 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의원은 방금 지나온 문을 닫고는 돌아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안 쪽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안에 앉아있는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 그래, 이제 왔느냐?"
아니,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
어째서 아까 마당에서 만난 노인이 여기에 있는걸까?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건물 안으로 달려오기라도 한건가? 그런 내 의문을 읽기라도 한듯 끄덕였다.
"흘흘.. 뭐가 이상하냐? 검진을 한다니 의원이 있어야 마땅치 않겠느냐?"
"아까 하시던 일은.."
"그건 다른 놈에게 맡겼다."
나를 보는 노인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늘여진 입술, 음흉한 눈빛.. 음..
"..?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하핫!.. 당돌하구나. 본노에게 그렇게 말하는 아이는, 특히나 계집아이는 오래간만이구나."
"...음. 그래서 누구신데요?"
"본좌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냐? 알고 싶어? 하지만 안 알려준다!! 뭐,.. 계집애야 네가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면 가르쳐줄 수도.."
"사양할게요."
나도 취향이란 게 있거든? 다 죽어가는 놈 같은게. 하지만 노인은 내 눈빛을 무시하고 누가봐도 음흉한 시선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차에 있는 동안 조금, 쌓여있었는데... 그 탓일까 시선만으로 반응할 뻔했다. 으음, 마음은 청순한데 몸이 음란해서 고민이네.
"흐흐.. 아주 좋은 몸이구나."
"아 네.. 진찰이나 해주실래요?"
"흘흘.. 다시봐도 좋구나..."
약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 내 몸을 핥듯이 바라봤다. 이 놈의 영감탱이가 순번을 바꿔서까지 온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진찰을 한다면서 내 몸을 마구 주물러댈 생각이겠지. 진찰을 하면서 환자의 몸을 주물럭거리고 건드렸다는 게 자랑은 아니니..
노인이 갑자기 일어났다.
"저기에 앉거라 진찰을 해야하니."
"네."
나는 별 생각 없이, 노인이 가리킨 귀퉁이의 의자 같은 것에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좀 달랐다. 마치, 내가 살던 시절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물체였다. 잘못봤나 싶어 눈을 깜빡이며 다시 살폈지만 나무와 천 따위를 덧댄 조악한 모양새로도 그 기능만은 확실해보였다.
"자, 우선 다리를 벌리고 여기에 앉는 거다."
아니, 이거... 생김새가 아무리봐도 굴욕의자 같은데...?
그건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산부인과에나 있을 법한 의자였다. 이런 걸 생각하는 놈이 무림에 있을 줄이야... 자연히 반문이 나왔다.
"저기.. 여기에 앉는거라고요?"
"그래."
말은 안하지만 저 늙은이는 엄청 기대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대놓고 가슴이랑 허벅지 사이를 보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하게 될 지는 예상이 됐다.
"의자라기엔.. 모양새가... 이상한데요?"
"그야 검진을 보는 곳이라 그렇다."
"하지만.. 저기에 누우면.."
가랑이가 다 벌어지는데?
"이런.. 그래, 불편한 느낌이 들 수 있겠지. 하지만 네가 걱정해야할 것은 그런게 아니다. 듣기로는 배교에 잠입했었다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는데 확인하지 않겠다는 거냐?"
과연, 그 일그러진 얼굴로 겁을 주니까 한층 위험하게 들리는데.
"저는 아무일도 당하지 않았어요!"
"어허, 배교에는 정신을 지배하는 술법들이 있어 기억조차도 믿을 수 없다. 배교주를 찾지 못했으니 더욱 그렇지. 혹시 알겠느냐? 사실 배교주가 너의 심령을 제압하고, 무림맹의 간자로 써서 중요한 순간을 노리는 지?"
음? 배교주는 죽었다고 얘기했는데, 그 녀석들.. 어떻게 얘기한거지?
"억측이에요. 그럴리가 없어요."
"흐흘.. 그게 아닌지 어떤지는 확인해봐야 아는 거지. 불편해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나는 의원이다. 너는 의원이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검진을 받지 않았다가, 이상이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읏..."
"과거에도 비슷하게 묻는 이들이 많았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똑같다. 혹여 일이 생긴다면 그 땐 너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만?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건.."
과연, 사문까지도 굴비처럼 엮어가겠다는 협박인가, 뭐 문파를 생각하는 마음을 자극하는 말이기도 하고, 딱히 감흥은 없는 협박이지만.
"..알겠어요. 여기 앉으면 되는 거죠?"
"그 전에, 먼저 겉옷을 벗어라."
"...네??"
이게 무슨 미친.. 아니, 참신한 진료법이래? 방금 너무 노골적이지 않았어? 하지만 약로는 눈도 깜짝 안하고 고개를 저었다.
"쯧쯧... 배교의 사법이나 사술에 걸리면 특유의 사이한 문양이 생긴다. 음문(淫紋)이라는 것이지. 그것을 확인해야하지 않겠느냐."
"그건 제가 확인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커흡! 커헙! 커헉! 읏, 으흠! 으흠흠!!"
"왜 갑자기 말이 없으세요?"
"사,사레다! 사레도 모르느냐!"
"그래서 제가 확인하면.."
"엇험! 어허험! 어험! 큼!"
재차 물음을 받은 약로는 눈에 띄게 헛기침을 해대다가 소리쳤다.
"그것이... 그.. 그....으..그래! 사교의 무리들이 증표를 그렇게 쉽게 드러나게 하겠느냐?! 놈들만의 술법으로 가리거나 하는 짓은 일상 다반사다. 그러니 숙련된 의원의 확인을 통해 제대로! 제대로! 살펴야 한다!"
"그거.... 이상한데요?"
"어허, 감히 나를 못 믿는 거냐? 이건 전문가의 진찰이 필요한 일이란 말이다."
약로는 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뻔뻔하게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벗지 않으면 진료는 못한다! 어쩔테냐, 이대로 어떤 사술이 걸렸는지도 모르는 몸으로 돌아갈테냐! 그러다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기나 하느냐? 큭큭.. 저번에 검진을 무시한 계집은 배에서 마물이 튀어나왔지."
"으,윽..."
"흐.. 그래, 받지 않는 건 자유다만, 네 배에서도 그런 게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만 알아두어라."
"하, 하는 수.. 없네요."
내가 무복을 풀어내는 동안 약로는 가까이 고개를 디밀고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언제까지 그렇게 쳐다볼 거에요..?"
"어허! 난 어디까지나 네 몸에 음문이 없나 보는거다! 구석구석 살펴봐야지 알지 않겠느냐."
보통 무림에서 이런 거 실례가 아니었나?
"어허, 진료다. 진료. 쓸데없이 시간끌지 말고 빨리 벗기나 하거라!"
결국 겉옷을 전부 벗었는데, 약로는 헤벌쭉 벌어진 입으로 내 속옷차림을 훔쳐보았다.
"..다 벗었어요."
"흐흘, 그래.. 그럼 자리에 앉거라."
의자에 앉자마자 약로는 정말로 진찰을 하듯이 팔을 붙잡아 살피거나, 뒤로 가서 내 등을 보는 등. 나름대로 의원 같아 보이는 행동을 하긴 했다. 뭐, 그러니 저러니해도 다른 의도인게 뻔히 보이지만.
"흠, 과연 배교의 잔향이 느껴지긴 하는데.. 조금 애매하구나."
"애매해요?"
"그래, 이 정도 진단으로는 네가 걸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럼?"
"속옷도 벗어라."
"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어허, 생각이 길구나. 내가 설마 다른 마음을 품었겠느냐?"
"그건..."
"어차피 나는 서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의료목적이란 말이다!"
"..아,알았어요."
내가 젖가리개를 풀러내고 있으면, 등 뒤로 돌아온 약로가 갑자기 내 발목과 팔목을 끈 따위로 묶었다.
"잠깐, 이건..."
"걱정말거라. 이것도 다 필요한 과정이다."
"묶는다는 얘기는 없었잖아요?!"
"어허! 이게 다 필요한 절차라니까?"
순식간에 양 팔다리가 묶였다. 궁금해서 살짝 움직여보니 보통의 끈이라면 뜯겨나가려고 했을텐데 끄떡도 없는 것이 말로만 듣던 천잠사 같다.
"묶는 게 왜 필요하다는 거죠..?"
"검사중에 고통이 있을 수 있는데 혈도를 제압하면 검사 중에 혈맥이 터지거나, 주화입마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결박하고 하는 것이다. 그럼 어디..."
"아?"
약로가 의자의 틈에 달려있는 나무 봉따위를 움직이자, 좌우의 다리를 묶은 판들이 움직여 가랑이가 좌우로 넓게 벌려지기 시작했다. 하반신에는 속곳이 하나 남아있었지만 양다리가 크게 대(大)자로 벌어진 상태에서는 충분치 못하기 마련이다.
"자,잠깐...! 무, 무슨 짓을..!"
"어허~ 너도 예상했지 않느냐. 이게 다 필요한 일이다. 너무 큰 걱정은 말거라. 이 안에서 일어나는 비밀들은 지켜줄터이니..."
"이 변태노인이!"
"어허! 진단중이지 않느냐. 입이 험하구나!"
"지,지금이라도 당장 풀어주세요!"
"내 말을 뭘로 들었느냐. 해야한다니까..? 배교의 사법은 괴이독랄한 것들이 많다. 이건 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 잠자코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다."
약로가 내 속곳을 잡아당겼다. 고무줄 따위가 없기에 천이 허리에 묶인 식이었다. 그래서 매듭이 풀리자 허무할만큼 쉽게 벗겨졌다.
"무, 무슨 짓을..!"
"흐흘.. 일단은 가벼운 검진부터 시작하자꾸나."
속곳이 벗겨내지자마자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처박은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것 참 가랑이가 예쁘구나. 일단은 가볍게 음독충(淫毒蟲)부터 확인해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