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색마는 음흉하다, - 1 -
뭐, 무림 소설좀 읽어본 이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무림에는 색마(色魔)라는 존재가 있다. 남자를 지칭하는데, 여자는 색녀라고 불리니까. 아무튼, 단순히 색을 밝히는 남자가 아니라 정사를 통해서 내공을 빨아가고, 목숨마저 거둬가는 존재가 바로 색마였다.
갑자기 왜 그런 걸 생각하냐고..? 그건 바로.
"색마를 찾자!"
이것이 나의 현재 목표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산적한테도 범해져봤으니 다음은 색마 아닐까? 사실 색마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객잔에서 잠깐 머물다가 요 근래 출몰하는 색마의 소문을 들은 것이다. 환희색마(歡喜色魔)라고 했던가..?
녀석의 최근 행적으로 알려진 곳은 화월촌(花月村)이라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허름한 사당이나 여인네들이 소일하는 곳 등에서였다. 한 두번 저지른 게 아니었는데 듣자하니 처음에는 평범하게 여자를 꼬시고 데려가서 몸을 취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먼저, 사당부터 확인해보는게 맞겠지.
그리고 그곳에는.. 중이 앉아있었다. 사당이니까 모시는 이가 있어도 이상하진 않은데.. 절이 아닌데도 있는 중은 색마랑은 거리가 멀어보였다. 애초에 여자를 잘 꼬시게 생긴 것도 아니었고, 어느 쪽이냐고 하면 우락부락한 느낌이었다. 부처님의 자비를 철권으로 뒤지게 때려박을 듯한? 불진(拂塵)으로 도 때리지 말라. 는 속담이 있다면 저 사람을 위한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
그는 나를 눈치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갑자기 오른손을 뻗어 내 앞길을 가로 막았다.
"잠시만, 멈춰주십시오. 시주."
"..무슨 일이시죠?"
"혹시 저 마을로 가려는 길이신지..?"
"그런데요..?
"위험합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시주처럼 아름다운 분이 가신다면 필시 큰 횡액을 당하고 말 것이오."
지금 그 횡액 당하려고 가는 건데요....?
그렇게 대답할 수도 없어서 멍하니 쳐다보자 승려는 내가 놀랐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들으셨을지 모르지만 저 아랫마을과 이 근처에서는 흉악한 색마가 출몰하여 많은 아녀자들이 피해를 보았소이다. 그러니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면 돌아가는 것이 시주를 위한 일이외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달라요. 그 색마를 추살하러 가는 중이니까."
"!!!"
내 대답에 승려는 놀랐는지 눈을 깜빡떴다가.. 내 허리춤에 걸린 검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실례하였소, 소승은 색마를 추살하기 위해 파견된 소림(少林)의 불광이라고 하외다. 시주의 협의는 알겠으나.."
불광은 입을 열었다가 나를 쓸어보며 말을 끌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 반박귀진이었다. 그래서 차마 승려되는 자로서 '네가 약해빠져서 강간당하고 끝날 거다' 라고 말해주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성가셔 질 것을 예상한 나는 약하게나마 기세를 돋우며 말했다.
"불광스님이셨군요. 저는 천검문의 용세린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은 알겠으나..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색마를 추살하고 말거에요!"
"허어.. 세린 시주의 깊은 협의는 알겠으나 저 색마는 보통 색마가 아니오. 이미 은팔지(銀八指) 포도리(包道理) 소협과 내이놈(內李㖈) 체포함(體捕艦) 대협을 비롯한 고수들마저 당했소!"
"저는 그분들을 모르지만.. 결코 그 분들보다 제 검이 약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 정도론 부족하나 싶어서 기세를 더하자, 불광의 눈에 이채가 어렸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저었다.
"시주의 실력이 보기 드물만큼 뛰어난 것은 인정하오. 그러나.. 이렇게 부탁하오 세린 시주, 불도를 걷는 자로서 무고한 누군가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소...!"
나는 기세를 끌어올린 채 다소 건방지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애송이처럼 말했는데도, 불광은 오히려 애원하듯 말하고 있었다. 으음, 차라리 당해봐라 하는 식으로 대하거나 할 줄 알았는데.. 아직 이 무림에도 협(俠)이 남아있긴 한가보다. 그래서 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시는 점은 알겠지만.. 저에겐 체포된 두 분과 다른 장점이 있고.. 그를 이용한 계획이 있어요."
응, 그 장점은 방금 떠올린거지만... 그것은 아주 간단한, 색마에게 홀린척.. 방심하게 하여 허를 찌른다는 계획이었다. 일류고수도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있을 때는 이류만도 못하고, 색마는 정을 취할 때 약해지니까. 내 설명을 들은 불광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어찌 세린 시주께서는 아녀자의 몸으로 그런 계획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시주의 무공의 훌륭할지는 모르나.. 무슨 수를 쓸 지 모르는 색마를 상대로 그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오. 부디 달리 생각하시오. 어차피 화월촌으로 향하는 길목은 이곳 하나뿐이고 조금만 기다리면 곧 무림맹의 지원이 올테니..."
끈질기다. 의도는 알겠지만 내 취미를 방해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봐야 색녀로 찍혀서 내가 추포당하겠지...? 결국 나는 잠깐 침묵을 지켰다가 최대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불광을 노려보고 말했다.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른 아녀자들이 희생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씀이시군요."
"..! 그,그것은.."
"주제넘으나 스님께는, 아니 소림에는.. 실망하였어요. 협사가 협의를 위해서 제 몸을 아낀다니요? 스님."
"..!"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아녀자들이 고통받고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불광 스님은 힘이 있음에도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심지어 협을 행하려는 저를 막기까지 하시고요."
"헙.."
"제지하리라는 확신이 없어 악을 방치한다면.. 이 세상에 협의는 남아나지 않을 거에요. 언제나 자기보다 약한 악만 사냥하는 협의가 어찌 진정한 협의라 할 수 있겠습니까?"
"끄읍..."
내 말을 들은 불광의 표정이 굳었다. 이대로 돌부처가 되는가 싶을 정도로 굳어져있더니.. 얼굴을 부들부들 떨며 새빨개진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후우.....! 소승이.. 크게 잘못 생각하였소, 소저께서는 여인된 몸으로도 스스로의 안위를 아끼지 않는데.. 색마가 저토록 활개침을 알면서도 승려된 자가 몸을 사리는 꼴이라니.. 내 생각이 잘못되었소, 허나 세린 시주 혼자 위험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소승이 돕겠소!!"
"네? 그, 그말은.."
설마..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물론 시주를 도와 색마를 토벌하겠다는 의미 아니겠소!"
제기랄!
내가 어떤 생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크게 깨달은 표정의 불광이 내 곁으로 합류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머리에 주먹을 꽂고, 떼어놓고 싶지만.. 들킬 게 뻔하니,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존재도 하지 않았던 계획이었지만, 아무튼 수정된 계획은 간단했다. 내가 색마에게 먼저 접근하고.. 미끼를 문 색마를 나와 불광이 함께 토벌한다는 것. 그것을 핑계로 나는 불광을 나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어째서.. 소승이 멀어져야하는 것이오?"
"불광 스님의 정순한 기운이 느껴지면 색마가 나타나지 않을테니까요. 가급적이면 저로부터 멀리, 최대한 멀리에 계셔주세요."
"으,으음.. 어느 정도면 되겠소?"
"아주, 아주 멀리요. 보이지도 않을 만큼요. 어차피 싸움이 벌어지면 제가 소리를 치던, 어떻게든 할테니.. 그 때 오시면 되지 않으시겠어요? 설마, 제가 색마에게 바로 당할만큼 약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내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불광은 끄덕이면서 멀어져갔다. 휴우. 이제야 살겠네. 그리고 나는.. 평범하게 마을로 향하는 척 주위의 기운을 감지했다.
마을에서 무수한 빛들이 보이며 지나가는 행인, 개, 거지 등의 기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걸어가는 무언가 탁하고 강렬한 기운이 보였다. 저게 그 '색마'인가. 대담하게도 색마는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초면에 실례지만.. 본 공자는 조온마라고 하오. 본인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듯하여 부끄러우나, 동향인 자들은 본 공자를 '큰 그릇으로 난 사람'이라하여 난색기(爛色器)라고도 부르지요. 하하하..."
이미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는 줄도 모르는 조온마는 나를 보더니 크게 이를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으음..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서 부담스러우시리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소저께서는 정말 보옥과 같이 아름다우셔서 말을 걸지 않을 수가 없었소이다."
"아, 음.. 네.. 칭찬에 감사해요."
"하하하.. 칭찬이라니요! 당연한 얘기 아니겠소? 너무나도 아름다우신 그대의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겠소이까?"
"음.. 용세린이라고 해요."
"오오.. 용소저였단 말인가! 이름조차 아름다우시다니!"
"네? 그 정도는.."
"하하하.. 겸손하기까지 하시니 그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사려와 지혜를 겸비하셨을 줄이야.. 본 공자가 오늘 크게 개안을 하는 것 같소. 이런 선녀 같은 분을 뵐 줄이야..'
자꾸 뭘 하든 칭찬세례를 뱉어대는데.. 어색해 죽겠다. 차라리 네가 따먹고 싶으니 빨리 벌려달라고 하는 쪽이 낫겠어. 내 기도를 들어줬던 걸까? 조온마는 갑자기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뻗어 어깨를 잡았다.
"초면에 실례지만.. 소저께서 내어주시는 술잔을 받을 기회를 주시겠소?"
"네?"
"후후, 소저와는 통하는 게 있다고 생각해서 말이오..."
응? 이거.. 아무리 색마래도 너무 빠르지 않아? 그렇지만 나는 대화하는 도중에 녀석의 자신감을 알 것 같았다. 아까부터 조온마에게서는 무언가 향이 났다. 주로.. 기분이 묘해지는, 이를테면 발정이 나는 향이 말이다. 그것을 따로 막거나 정제하지 않았기에 내 몸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효과가 얼마나...
주륵,
에..?
"그.. 그게에....하아.. 하아.."
"이런,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괜찮으시오?"
괘,괜찮지 않아... 놈은 숨을 추스르는 나를 향해 노골적으로 웃으면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뿌리칠 수가 없다. 허벅지 사이에는 물줄기가 흘러나와 한 줄기 선을 그었다.
"아무래도.. 잠시 객잔에서 쉬어가시는 것은 어떠시오. 소저..?
속삭이는 척, 내 어깨와 등허리를 은근하게 쓰다듬는데 고작 그 동작만으로도 무시무시하게 몸이 뜨겁고, 숨이 끓어오른다. 전신에 뜨거움이 끓어넘쳐서.. 도무지, 도무지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뭐 이런 굉장한 약이..
"흐으읍..!"
"아아.. 승낙해주신 것이오..?! 그럼 이리로 따라오시지요. 소저."
조온마는 나의 대답도 듣지 앟은 채 내 허리에 손을 감았다. 하지만 도저히 뿌리치거나 거절할 수가 없었다. 허리가 바들바들 떨린다. 조금만 방심해도 당장이라도 실금하듯 애액을 뿜어버릴 것 같다. 주저 앉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계야...! 갑자기 걷게 되자 신음이 새었다.
"읏.. 으..! 히익..!"
"이런! 소저, 괜찮으시오? 걷는 게 힘들어보이시는 듯한데... 도와드리리다."
"하아... 하앙..!?"
조온마는 그대로 나를 부축했다. 그저 부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쓸데없이 은밀한 손짓이, 내 몸을 건드리고 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객잔. 저항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이건 불가항력이랄까. 몸은 불덩이가 됐고 가쁜 숨이 나오면서 당장 옷을 벗고 싶은 무시무시한 충동을 참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내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으면.. 이미 투숙을 했었던 건지 벌써 방까지 들어왔고 능숙하게 침상에 앉혀주었다.
"하아, 아아.."
"아까부터 열이 나시는 듯한데... 소저. 혹시.."
녀석은 걱정스럽다는 말투와는 달리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 끝은 내 가슴을 스쳐지나갔다.
톡,
"히응으으윽..!!"
눈 앞이 뒤집힐 정도로 굉장한 느낌. 그저 움직이던 손 끝으로 툭 밀어내듯 가슴 끝을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유두에서 불이나는 것 같다. 슬쩍 등허리를 쓰다듬었는데.. 엉덩이 사이가 근질거려서, 미칠 것만 같다. 아, 아.. 마치 가랑이 사이를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다. 누군가 만져서 떼어줬으면, 주물러줬으면..!!
"흐윽, 그흐으윽..!!"
"이런, 본 공자의 실수였소! 그런데 소저, 어딘가 아프신게요? 말씀해보시오. 나름 의술에 소양이 있으니.. 내 도와드리리다."
"흐아, 으아.. 아... 아..."
손 끝으로 내 배를 문지르자 배 안 쪽으로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 꼴을 본 조온마는 무척이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제는 더 숨길 것도 없다는 듯이, 내 배를 노골적으로 만지다 못해 꾹,꾹, 아랫배를 눌러댔다.
"히이익.. 히윽으윽..!! 그,아,아아..!!"
"이런... 급한 상황이니 잠시 소저의 진맥을 보도록 하겠소."
조온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