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객잔에서 첫 경험, (4/73)



〈 4화 〉객잔에서 첫 경험,

하산을 하고 내려오면 사형이 배웅을 하러 따라나왔다. 뭐,  아무리 수련에 미친사형이래도 사랑스러운 사매를 홀로 보낼 순 없었던 거겠지? 이러니 저러니해도 사형은 사형이니까. 그걸 노린(?)거지만.


"사형, 저기 마을이 보여요."

"그렇구나. 내려가보는  정말 오랜만이구나."

그러고보면 나도 사형도 별로 내려와본적이 없었다. 산에서 구도하는 사람들처럼 수련만했으니.. 사형도 꽤 들떴는지 자신이 출도하는 것처럼 주위를 쓸어보았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니?"

사형의 질문을 받은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여행의 시작은 뭐니뭐니해도 객잔이지!

"객잔.. 가보고 싶지 않으세요?"


"객잔 말이야?"


"네,  꼭 가보고 싶었어요! 객잔!"

내가 들떠서 외치자 사형은 신기하다는 듯 날 보고 환하게 웃었다. 음 역시 이상하게 보였나? 하지만 무협 소설의 시작이자 끝이 객잔 아닌가, 항상 거기서 시비도 걸리고.. 예쁜 여자도 만나고, 마두도 만나서 위기에 처하고..? 그런데 정작 현지인인 내가 머물러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하.. 네가 그렇게 가고 싶다니 가야겠지. 여행을 본격적으로 출발하기에 앞서서 여장(旅裝)도 꾸려야할테니 마을에 머무를  들르도록 하자꾸나."


"네!"

기운차게 대답한 나와 사형은 그렇게 산 아랫마을의 객잔에 들렀다. 매앵객잔. 조금 미묘한 이름의 객잔 주변에는 매화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늙은 점소이가 달려나오듯이 인사를 했다.

"어서옵쇼! 식사이신가요. 투숙이신가요?"


"둘 다. 그리고 방은 하나만 줘. 특실로."

"아, 알겠습니다. 숙박비는 은자  냥입니다. 식사는 지금하시겠습니까?"


"그래."

중년이 넘어보이는 점소이는 내 반말에도 허리에 차여진 검을 보더니,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끄덕였다. 그렇게 가버린 뒤로 무림인을 상대하기가 싫어서 떠넘겼는지, 대신에 다소 앳되어 보이는 소년 점소이가 탁자로 다가왔다.  점소이는 물을 내려놓고는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협사분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적당히 소면과 만두."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식사가 나올 거에요."

"응, 알았어."


생긋 웃어줬더니 얼굴이 확 붉어진다. 예쁜건 알아가지고..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탁자 맞은편에 앉아서  모습을 쓸쓸한 얼굴로 지켜보는 사형에게 말을 걸었다.


"사형."


"어..? 왜 그러니 사매?"

"..주무시고 가실래요?"


"으훕!"


사형은 무림인답게 마시고 있던 물을 뱉는 건 막았지만, 적잖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그게 무슨 소리니 사매. 다른 사람이 들을까 무섭구나."

"괜찮아요."

기막(氣膜)을 펼쳤으니까.


사형 역시 강호의 기준으로 따지면 절정고수의 끝자락. 내가 펼친 기막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는지 주위를 보곤 씁쓸하게 한숨을 지었다.

"하아.. 사매의 무공이 고절한 것은 알지만, 사형을 상대로 그런 농을 치는 건 좋지 않아."


"..어째서 농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게..."

"제가.. 진심일지도 모르잖아요?"


말을 흐트리는 사형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면서 물어보면 사형은 부담스러운지, 부끄러운건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빨개진 얼굴로 몸을 살짝 뒤로 빼려고 했다. 나는 그럴수록 탁자위에 몸을 기울였고, 좁은 탁자 사이에서 고개가 닿으려고 하는 순간.


"사,사매.. 저기 음식이 오고 있어!"


쳇, 쓸데없이 빠른 점소이 같으니. 나는 다시 물러났고 점소이는 쭈뼛거리면서 식탁에 음식을 올려놓았다. 사실 메뉴판도 뭣도 없는 세상에서 소면이랑 만두 말고는 잘 몰라서 이렇게 시킨거지만. 아무튼 사형은 음식을 보더니 반색한 표정이었다.

"음..! 오랜만에 먹는 화식(火食)이로군!"


무척 어색한 말. 사형도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많다. 젓가락을 들어 맛을 보면 오래간만의 화식임에도 맛은 평범했다. 그렇게 소면을 먹고 있으면 사형의 기색이 미묘했다. 신경쓰이겠지.. 그렇지만  그걸 전혀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서, 사형도 은근히 철벽이다. 나는 슬그머니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 척, 앙가슴이 살짝 드러나도록 끈을 풀었다.


달그락, 달그락.


젓가락질을 몇 번하던 사형은 이상을 감지했는지 처음에는 눈을 깜빡였다. 그게 당연하겠지. 그렇게 눈을 깜빡이다가 내 벌어진 옷섶사이로 살색이 보이는 걸 눈치챘다. 사형은 젓가락이 아니라 진검을 쥐었다고 해도 믿길만큼 진중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매?"

"네. 사형."


"저기...."


"네?"


내가 물으면서 살짝, 몸을 돌려 틈 사이를 더 벌렸더니 깜짝놀라 고개를 숙이는 사형. 그대로 탁자 밑에서 개미라도 찾는 것처럼 고개를 처박고 말했다.

"그,그게.. 강호는 문파의 내부와는 다르니, 복장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군요. 각골명심하겠어요!"

결의하듯  주먹을 꽉 쥐어 옷고름을 더 풀리게 만들었다. 내 대답에 안심한듯 한숨을 뿜으며 고개를 들던 사형은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난 앙가슴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되었고, 이제는 젓가락을 든 손이 학질에 걸린마냥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사,사매..?"

"왜 그러세요?"


"..그, 그러니까.."

사형은 여전히 말을 못했다. 왜 말을 못해,  옷이 풀려서 유두가 보일 것 같다고 당당하게 말을 못하는 거에요. 사형?! 이 사매의 가슴이 남들에게 보여져도 괜찮으신건가요? 다른 이들이 제 유두를 보고 자위하는 생각으로 흥분하실 거에요?

"저기, 그... 그..."

"네?"

"그..그그.. 그..!"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틀었고.. 사형은 차마 말은 못하고 빨개진 얼굴로  아래쪽 탁자를 바라보며 요괴마냥 그그그 거리고 있을 뿐이라,  뒤늦게 발견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가슴을 보았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칠칠치 못하게."

옷고름을 여밀 즈음 사형은 심마와 반년쯤 싸우고 온 것처럼 피폐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결국 분위기만 어색해졌고, 사형은 식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젓가락으로 소면 태극권의 수련을 반복했다. 얼어붙을 것 같은 식사가 끝나고 동전을 건네받은 소년 점소이가 물었다.

"그럼.. 객실로 안내해드릴까요?"

나는 묻고 있는 점소이를 두고 사형을 보았다.

"객실까지만 같이 가주세요. 혹시, 여색을 밝히는 마두(魔頭)를 마주치거나, 색마(色魔) 같은 게 숨어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대체..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은거야 사매?"

사형은 자못 황당해하는 기색이었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아니면 내 어리광에 못이겨 받아주려 한 것인지 순순히 2층까지 따라와주었다. 문을 열어재끼면 특실이라 그런지 방도 널찍했고 물건도 괜찮았다. 성실한 사형이 이런 부분에 지적을 안 한게 신기할 정도다.

"음, 깨끗한 방이구나."

"정말이에요. 사형 이 금침좀 보세요!"


이름없는 객잔치고는  잘만들어져 있었다. 색상이 좀 화려해서 다른 생각이 들긴 했지만. 금침을 만져보며 이불보를 당기던 나는 은근한 표정으로 사형을 올려다보았다.


"저기 사형..."

"으,응..?"

"저어... 제가 조금 열이 있는 것 같은데... 잠깐... 봐주실 수 있어요...?"

일부러 조금 분위기를 잡고 이불보를 잡아당겨보았다. 분홍빛 표정에 약간 벌어진 달뜬 숨, 당장이라도 쓰러질듯한 가련한 손짓에 당겨지는 옷고름. 단순해보이지만 무려 세가지 조합의 유혹. 결국 사형은 내가중수법에 당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더니 덜컥 나를 감싸안았다.

.. 성공?

그때 귓가에 사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매,. 사매는 정말 내 여동생 같은 존재니까.."

"그건.."

"물론 나도 사매가 싫은  아니야 하지만.."

쳇, 딱히 성교하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는데.. 이렇게 말하면 내가 차인 것 같잖아. 내 잡생각과 상관없이 사형은 내 등을 쓰다듬으면서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매는 이제부터 무림행을 할 거잖아? 그러니까. 분명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날지도 몰라. 사매는 강하지만 아직 어려. 그러니까 순간적인 감정에 맡기지 말고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야해. 만에 하나라도 사매가 나로 인해 인해 불편해지길 바라지 않아..."


듣고 있던 내 손이 떨려올 정도의 착한 마음 씀씀이..

당신은 어디까지 신사인거에요! 사형!!!


"..알겠어요."


"만일.. 내가 대성을 해서 내려오는 날이 되면.. 사매에게 걸맞는 남자가 되면 그 때는.."

"흥, 알았다구요!"


"..미안해 사매."

내가 조금 심통난 것처럼 말하자 사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그렇게 사형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으,음.. 뭔가 기분이 씁쓸 미묘한데다가 허전해. 이런 건 예상에 없었는데.. 처음은 가급적 사형과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삐뚤어질테다. 처음따위 아무나에게 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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