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하산(下山), (2/73)



〈 2화 〉하산(下山),

"세린아..!"

"네."

오늘도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바라보는 사부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평소의 신선 같으시던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무슨 용무인지는 이미 예상했기 때문에, 나는 정좌한 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다. 사부는 질린 표정으로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투두둑..

"대체... 남아도 아닌 여자아이가.. 매번 이런 것들은 어디서 구해서 보는 것이냐?"


구음몽(九淫夢), 음녀경(淫女經), 무림색황기(武林色皇記).. 그랬다. 사부님의 품에서 쏟아져나온 그것들은 모두 성욕을 해소하는데 쓸, 도색소설(桃色小說)과 춘화집이었다. 나이가 나이다보니 서지도 않을 사부님의 물건은 아니었고, 밥 먹고 수련 말곤 생각치도 않는 성실한 사형의 물건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것이었다.


"음.... 송구합니다?"


"별로 송구해보이지 않는다만?"

"어.. 그런가요? 나가서 좀 구해올까요?"

"끄으으음..."


분노로 가득한 얼굴을 어떻게든 다스리려는 사부의 얼굴에는 핏줄이 마치 주름살처럼 울긋불긋 돋아나 있었다. 아마 저 주름이 무공수련으로 생긴거라면 벌써 생사경쯤 되어 있으셨을 것 같다.


하지만  때는 벌을 주거나 하면서 혼내던 사부도.. 내가 엉덩이를 맞다가 절정해버린 이후로는 말로만 꾸짖었다. 잠시 후, 신색을 고친 사부는 근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왜 헛되게 시간을 보냈느냐?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거라."


"으음~ 벽이 가로막고 있다보니...?"

"그 말이 벌써 일흔 다섯번 째인 것은 알고 있느냐?"


"어라? 그랬던가요? 일흔 다섯번째 벽이었군요. 아하하하!"


"일흔 다섯 번째였군요.. 가 아니다! 신선이라도 될 셈인게냐?!"

윽! 사부가 무서운 표정으로 일갈했다. 아니 왜, 늙은이가 호통을 치고 난리야? 뭐.. 먹여주고 키워준 사부에겐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없다. 딱히 이 삶에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대한 것보다  세상은 시시한 걸 어떡하나. 소설은 지루했고 놀거리는 끔찍했다. 그런데 호기심에 해본 수음(手淫)이 신세계였다.


"하아... 대체, 어찌하여  소중한 재능을 가지고 매일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냐?"

'허비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건데요?' 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사달이  것같다. 결국 난 손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내 누누히 너의 재능을 가지고 수련하면 절대의 경지도 꿈이 아니라고 이야기 했거늘.. 정녕 그만둘  없는 것이냐?"

별로, 절대의 경지 따위 밟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본심을 말하면 '조사님 어찌하여 제게 이런 시련을 내리십니까?' 하는 푸념부터 시작해서, '내가 부덕한 탓이다. 내가 죽어야지..' 까지의 난리발작을 하시겠지..? 아아, 무림인 제자도 할 게 못된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네가 어찌 이리되었느냐, 세린아.. 내가 널 잘못키운 것이냐?"

'으으...'

 잔소리, 지긋지긋한 잔소리.


처음엔 무공수련이 재밌었다. 하지만 벽에 막힌 뒤론 재미가 없다. 마치 억지로 산을 들어올리려고 수련하는 듯한 느낌. 안되는 일에 힘만 빼는 짓을 맨날 하라니..

"..왜 대답이 없는 게냐?  헛된 일을 할 셈인게냐? 하루 바삐 수련을 해도 모자랄 시간을 낭비하다니.."

수음을 그만 두고 수련을 하라고? 차라리 죽는  낫지!


역시... 결론은 하나 뿐이었다. 나는 침묵하다가 준비했던 말로 입을 열었다.


"사부님, 제자. 하산하고 싶어요."

그 말에 근엄하게 나를 압박하던 사부는 갑자기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나를 봤는데, 손을 덜덜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그건.. 너무 이르다! 넌 아직 어리다!"


"제 나이가 이미 과년을 넘은  오래인걸요?"


"그걸 어리다고 하는 거다! 강호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느냐?! 내가볼 때 너는 하산하려면 십 년은 멀었다!"


"...제가 사부님 이기잖아요."

"커헉!"

치명적인 급소를 맞은 것처럼 사부는 몸을 푸들푸들 떨었다. 허나 그게 사실인 걸? 그러나 이 찰거머리 같은 사부는 나를 향한 눈빛을 강렬히했을 뿐, 아직 꺾이지 않았다.

"세린아!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자보다 나아야한다는 편견을 버리거라! 태산은 흙을 거리지 않고, 남의 산의 하찮은 돌이라도 스스로를 수양할 재료가 되는 법! 알겠느냐?! 너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정말이지 이게 문제였다. 사부가 근엄한  하는 것도 빡빡한 것도 문제였지만  중 제일  문제는 내보내주지 않는 점이었다.

"그 말이  번째이신줄 아세요?"

"이백 마흔 다섯번째다."


진짜  양반은 양심도 없나? 그 핑계로 내가 배운 잡기가 몇 개인데. 이젠 약간이지만 산수화도 그릴 줄 안다. 죄책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닌지 내가 째릿 노려보자, 사부는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아~~~! 분명 성검천공(聖劍天功) 다 익히면 하산시켜준다고 그랬는데! 누군가가 그랬는데에...!!!"

"나이를 들어 가는 귀가 먹어서 그런지 잘 안들리는 구나.. 그래, 크게 좀 말해봐라."


"하!산!하!게! 해주세요!!"

"흐으으음???? 뭐라고 했느냐?? 잘~ 안들리는구나?"


안들리긴 개뿔.  그냥 귀에다 사자후를 질러버릴까보다. 노려봤지만 사부는 뻔뻔하게 안 들리는 척을 반복했다.

"..하고 싶어요."


"음? 뭐라고? 잘 안들리는데?"


"수련이 하고 싶어요."

"정말이냐?!"


"하산해서 수련요."


"그래, 항산에서 수련이 하고 싶다는 말이지?"


"아 왜! 선택적 귀머거린데요!!"

진짜 사부만 아니었으면 한대 쳤다. 물론 나름대로 부모 대신이었던 사부에게 그런 패륜을 저지를 수도 없으니까 참아야하지만, 그렇게 잡혀있는 것도 몇 번째지.. 아으 진짜...

"제 경지에선 여기 있어봐야 어차피 큰 차이도 없는데 내려가도 되잖아요?!"


"어허!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싫어! 나갈거야. 나갈거라구요!! 하사아아아안!!!"


"이, 이게 무슨 경망스러운 짓이냐!"


나는 꽤액 꽤액 비명처럼 질렀다. 사부는 기가막힌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오늘에야 말로 나가고 말겠다!


"사부님도 이런 제가 싫으시죠? 저도 그래요... 그러니까 하산시켜주세요!"

"안된다. 내려가서 무슨 일을  줄 알고 내려보낸단 말이더냐?"


"무슨 짓을 하긴요.. 강호행을 통해서 문파의 이름을 드높여 드린다니까요?"

"거짓말 하지마라. 내려가서 수련은 안하고 맨날 놀 생각에 가득차 있는 거  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지금도  표정에 씌여있다!"


"..윽!!"

"흥. 그러니 너의 하산은 허가할 수 없다. 수련에  정진 하거라!"

"하산! 하산! 하산! 우우, 사부님은 하산을 보장하라!"

"어험! 아무리 그래도 결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당혹해서 호통을  사부였지만 결국  땡깡부림에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했다. 나에겐 하산이 필요했다. 나가서 수음도 자유롭게 하고, 풀때기 대신에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뭐, 일반적인 무림의 제자가 가질 생각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무림 제자가 아닌 걸? 그저, 무림제자의 탈을 쓴 존재니까.


말이 씨가 된다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본래의 나는 남자였다. 군대에 안갔다는 소릴해도 '너 정도면 인정이지!  가면 우리나라 망해!' 하고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줄 정도로 몸이  좋았다.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나날, 그리고 결국 그게 원인이 되어서 죽었다. 그런 체질인 탓일까? 나는 무협소설을 동경했다.

팔다리가 부러져도, 화상을 입어도 낫게 해줄 내가기공과 환골탈태. 더불어 매일 하는 거라곤 단련과 수련의 반복 뿐인데, 그를 통해서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 도달할 수 있으며, 오로지 그 강함만으로 모두의 위에서며 존경을 받는 곳, 협의 있고 악의 있고, 미녀가 있는 세계를 동경했다.

"아... 차라리 무협 소설 같은데 태어나면 좋았을텐데...."


이게 내 유언이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기왓집이 활활 불에 타고 있었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혼란을 수습하기도 전에 내게 자기를 따라오겠냐고 한 노인을 따라 천검문(天劍門)이라는 신비문파(?)에 들어갔다.

거기서 뒤늦게 알았다. 달리지 않았다는 것을... 자라니, 내가 곶.. 아니. 여자라니! 말도 안돼! 그래서 왜 여자냐며, 어째서 내 고추를 가져갔냐고 절규하기도 했다. 그러다 호수에 비친 얼굴을 보곤 한층 더 안타까워졌었다. 이 외모라면 최고의 미공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여자들이 절로 달려 들었을텐데!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떨어져버린 꽃을 포기하고 나면 다행히 그 외의 것들은 좋았다. 자유롭게 뛰어놀며 익혀보고 싶었던 무공을 익히는 재미, 때때로 변장을 하고 마을에 나가 무협 특유의 협객행이라 쓰고 참교육이라 읽는 일들을 해주는 것도. 뭐 사부한테 걸려서 금지당했지만.. 한 동안은 꽤 즐거웠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보니...





모든 것이 지루해져버렸다.

기(氣)와 기(技)의 수련을 통해 나는 분명 강해졌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강해질수록 성취는 더더욱 느려졌고, 설상가상으로 '벽'에 부딪혔다.


"후우......"


그게 얼마나 답답한지는 겪어봐야만 안다. 싸려다가 막히는 것의 백  쯤 화가난다고 할까? 근데 그게 매일 지속된다. 그래서 수련을 쉬었더니.. 놀랄만큼 할  없었다.


외출도 안되지, 수련도 안하지... 그 때부터는 엄청나게 심심해졌다. 그렇다고 다른 놀거리가 있냐고 하면 여긴 무협의 세계다. 하물며 우리 문파가 자리잡은 첩첩산중 속에 할 것이 뭐가 있을까?

정말 놀라울 만큼  일이 없었다.


결국 내게 남은 즐거움은 본성이 주는  밖에 없었다. 절정을 넘어가면서 희미해진 수면욕을 제외한, 식욕과... 성욕. 그러나 이 놈의 문파의 음식은 희망이 없었다.

천검문은 불운하게도 도가 계열 문파였다. 그것도 초 진성 도가(道家) 계열. 장삼봉을 데려다 앉혀놔도 깜짝 놀라서 '이건 좀..' 이라고 할 정도의 도가문파. 식단 부터가 달랐는데, 둘이 먹다 하나 죽으면 '내가 언젠가 저럴줄 알았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음식이 나온다.

생쌀, 야채, 맨날 올라오는데 이름 모르는 야채, 알고 싶지도 않은 야채, 독초가 아닌가 싶은 야채. 자지 또는 거대한 자지말곤 생각 안나는 모양의 야채.


....이게 끝이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성욕에 심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 그래도 버섯으로 자위한 건 아니다. 말린건 까슬하고, 생으로는 물러서 꺾여버리니까... 아, 아니.. 왜? 다,다들  번쯤은 넣어보잖아? 아니라고...?

어, 어찌되었건..! 첫 경험, 아니  수음은 마약 같았다. 배가 아릿하고 아랫배가 뜨거운 감촉에서 시작해서, 전신이 발딱 서는 감촉. 허벅지 사이만이 아니라 온 몸이 불타는 쾌감..

게다가 무공을 익혀서 그런지 체력도 무한대.. 하루에 한 두번만 해주면 넘어가던 때와 달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끝나지 않았다. 하면 할 수록 계속 민감해져서  젖어버리고, 만져버리고, 기분이 좋아지니까.. 피곤하지도 않으니까 하고, 또 하고... 그렇게 식지 않는 영구한 쾌락에 빠져들었다.

"..후으.."

 떠올리니까 아랫배가 욱씬거린다. 분명 아까도 했는데... 이 끊임없이 민감한 몸은 시도 때도 없이 욕구를 갈망했다. 결국 참지못하고 손이 내려갔다. 유혹을 이기지 못한 손가락 마디가 음렬 사이를 찔러 비집고 들어갔다.


"..으,으읏....응...."


손 끝이 갈라진 틈 사이에 접하는 순간, 전신에 뜨거움이 치솟는다. 상상을 했던 것 뿐인데 이미 젖어있다. 혹여 비명같은 신음소리를 듣고 사형이 들이닥치지 않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가랑이 사이를 문질렀다.


손가락이 스치자 전류가 흐르듯이, 몸이 떨렸고 허리 사이가 자연스레 벌어졌다. 붙어있던 계곡이 벌어지면서, 애액으로 얼룩진 구멍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아.... 으.읏.... 으응..."


그저 비벼대기 시작한 것 뿐인데, 벌름거리는 그곳은 이미 뜨겁다. 살살, 간을 보듯이 튀어나온 곳을 문지르면 아랫배가 아려온다. 애액이 찔금,찔끔 흘러서.. 속곳을 적시고 있다.

이대로 사형이 수련을 마치고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의 손가락은 이미 구멍 사이로 향했다. 꾸우욱, 오무라드는 질육을 파고드는 손가락에, 허리라 꺾인다. 분명 이걸로 스무번 째인데도 마치 처음처럼 강렬한 쾌락이 솟았다.

"하윽..."

장난치듯 위와 안에 자리잡은 성감대를 문지르던 손가락은 점점, 빠르게, 움직인다. 이대로, 절정까지 가면...

"으흠..! 으흠!!!"


...우리 영감탱이가 근처에 있었다. 기막을 깜빡하다니. 으으.. 얼굴이 빨개진  같다. 그렇지만.. 그만 둘 수가 없다. 헛기침을 못들은 척 기막을 치고 가랑이 사이로 손을 내리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세린아.. 할 말이 있으니 반각 후에 정자로 오거라."


"네?!.. 아,아앗.. 네,네에..."


"..반각안에 안되겠다 싶으면 조금 늦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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