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1화 〉91. 하와이에서 생긴 일 (91/95)



〈 91화 〉91. 하와이에서 생긴 일

유라 언니와 나는 짐을  풀고 의외로 좋은 장점이 있다는  깨달았다.


"갑자기 스케줄 늘었는데 괜찮겠어?"
"에이, 겨우 30분 늘었는데 뭐. 괜찮아. 그쪽도 어지간히 미안했던 모양이네."
"네가 LCK에서 우승하고 휴가 차원에서 하와이에 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거 말고 변동된 사항은?"
"없어, 아직까지는."


유라 언니의 말에 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SN에서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 오면 아마 너한테 요청할 수도 있으니까."
"SN도 내가 휴가 차원에서 하와이에 왔다는 건 알고 있지?"

 말에 유라 언니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히 알고 있지. 웬만한 거 아닌 이상은 다 잘라낼 거야."


유라 언니의 말에 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도 나도 부지런히 움직여 짐을  푼 상태였다.


"내려가야겠는데?"

유라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세연 언니는 스위트룸을 구경하느라 1시간을 다 소비했다.


구경하느라 지쳐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에 얼마나 웃음이 나오던지 하여간 저녁을 맛있게 먹기 위한 준비는 제대로 한 것 같았다.


로비에 거의 1분 전에 도착한 우리들은 이미  모여있는 다른 가족들을 향해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방 구경 하느라 시간 가는  몰랐네요."
"호호, 아니에요. 스위트룸은 어때요? 당연히 좋겠죠?"
"따님 두 분이 참 예쁘시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하. 딸 잘 둔 덕분에 스위트룸도 구경해 보고 좋네요."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들과 대화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눴고  자연스레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찬동이의 등짝을 후려치며 불렀을 텐데 가족들 눈치가 보여서 포기했다.

"뭐야? 뭔데?"

내가 팀원들 틈바구니에 끼어 들면서 말하자 잘 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앨림이 말한다.

"야,  잘 왔다. 사코 지금 정글로도 괜찮고 서포터로도 솔직히 나쁘지 않잖아. 맞지?"

앨림의 물음에 옆에 있던 우찬 오빠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사코는 아니야. 순전히 솔랭 용이라니까 그러네."


헌준이는 연신 고개를 갸웃하다가 결심이 섰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조커 픽으로 뽑으면 대처하기도 쉽지 않고."

상현 오빠도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내가 봤을 땐 미드로 써도 나쁘지 않을  같은데."
"얘는  무슨 이상한 소리야."

우찬 오빠는 상현 오빠를 무시하곤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세나 네 생각은 어때? 사코 서포터가 괜찮아 보여?"
"나쁠 건 없지. 모든 챔피언은 잘만 쓰면 다 좋으니까. 사코는 크게 상성도 안 타지 않나? 시간을 타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힘이 빠지는 챔피언 중에 하나긴 했다. 그렇다고 아예 못  정도는 아닌  같은데...

"아니, 근데 이걸  휴가 와서까지 논쟁하고 있어야 돼? 놀  좀 놀면 안 돼?"

내가 볼멘소리를 하며 짜증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자 다들 움찔하며 별안간 김찬동을 쳐다봤다.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자 김찬동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김찬동을 보며 말했다.


"뒤질래?"

깔끔하게 사코가 현 메타에 어울리는 챔피언인지 또한 대회에서의 충분히 활용 가능성이 있는지 추가적으로 서포터론 어떤가에 대한 고찰에 대한 얘기를 가볍게 끊어 냈다.

감독님은 공식적으로 마지막 단체 일정이라 그런지 얼굴에 행복이 덕지덕지 붙어 있으셨다.

'하긴, 감독님도 휴가 오신 건데.'


감독님 입장에선 약간 부모님 참관 학습을 하는 느낌을 받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가 아니라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할까? 하여간  측은한 표정으로 감독님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 있는데 하연이가 내게 다가와 나를 불렀다.

"세나야!"
"어, 하연아. 짐은 잘 풀었어?"
"어.  가져온 짐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금방 풀었어. 너는 어땠어? 스위트룸 엄청 좋지?"
"장난 아니더라. 나중에 시간 있으면 구경하러 올래?"
"정말? 그래도 돼?"
"안될 게 뭐 있어."
"그래도... 언니도 계시고 부모님이랑 매니저님까지 함께 계시는데... 구경하러 가기가 좀 그렇지 않나?"

난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넓어서 왔는지도 모를 거야."

내 말에 하연이는 혜? 하며 귀여운 소리를 내더니 말한다.


"그렇게 넓어?"
"어, 장난 아니야. 수영장도 있어."
"수영장?"


수영장이라는 말에 하연이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난 그 모습에 작게 웃더니 말했다.


"수영하는  좋아해?"
"어, 엄청 좋아해. 이번에 하와이도 엄청 기대 중이야."


'나도 기대해도 될까?'라는 마음의 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뻔했다.

하연이는 어떤 비키니를 가져왔을까? 아무래도 부모님들이 계시니까 비키니는 좀 무리인가? 나랑 언니는 비키니 챙겼는데...

비키니를 입는 거야. 뭐, 남자 입장에서 속옷을 입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딱히 거부감은 없었다.

호텔 안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감독님께선 우릴 안내했고 이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부모님은 부모님들끼리 모여 이동하게 됐다.


'뭔가 묘하네.'

항상 팀원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몰랐는데 이렇게 가족 단위로 여행을 오니까 왠지 모르게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게 단순히 설명 때문에 주는 기시감이라는 부분이라 그런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런 내 표정이 주변 사람들에겐 내가 갑자기 심각해진 모습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세나야, 왜 그래?"
"뭐가?"


난 세연 언니의 물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물었다. 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날 관찰하 듯 보더니 말한다.

"아니, 혼자 말도 없고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아, 별거 아니야. 아까 팀원들끼리 했던 말이 떠올라서."
"무슨 말 했는데?"


세연 언니가 궁금하단 표정으로 유라 언니와 하연이도 궁금했는지 날 쳐다본다.

말해줘도 모를 텐데. 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 사코 정글이 지금 메타에 어울리는지 그리고 서포터로서의 활용 가치나 대회에서도 충분히 통할지 뭐 그런 거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더라고."

내 말에 하연이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새삼 내가 프로게이머라는 게 느껴진 모양이다.

"뭐지? 갑자기 남동생이 하나 생긴  같은 기분은?"
"아, 그 기분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세연 언니는 하연이의 말에 동조하고 나서더니 별안간 급발진을 시작하신다.


"앤 진짜 가만히 보면 남동생 같을 때가 있다니까. 나도 털털한 편인데 얜 진짜 털털한 편이야. 얘 지금 나이가 스물둘인데 지금도 화장하는 법도 제대로 모른다."

하연이는 내가 화장하는 법을 모른다고 하니 정말 놀란 표정을 짓다가 어쩐지 곧 수긍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뭐... 딱히 화장이 필요 없는 얼굴이긴 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사실 난 거의 맨얼굴로 다녔다. 이런 말 하면 재수 없겠지만 화장을 해도 안 해도 그렇게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크게 차이가 날 정도로 화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알게 됐지만 사실 그걸 우리 집안사람이라면 뭐  그렇지 않은가?


연예인들도 맨 얼굴이 오히려 더 예쁜 사람들도 많고.


하여간에 난 머리 손질도 지금도 여전히 할  몰랐다. 생존을 위해 고무줄로 머리를 묶는 법 정도야 배웠지만. 꾸미기 위한 스킬은 많이 부족한 편이었다.

"진짜요?"
"그렇다니까. 옷도 편한 것만 입으려고 하고 사람들은 얘가 긴 생머리를 선호해서 그런 줄 아는데 전혀 아니거든. 그냥 귀찮아서 이 머리하는 거야."

귀찮긴 하지만 어깻죽지까지 내려오는 살짝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내 취향이긴 하다. 검은색도 괜찮지만 지금처럼 살짝 갈색 계통의 색도 좋았다.


"전혀 의외다."
"생긴 거랑은 좀 다르게 엄청 털털해. 좀 심하게."


내가  털털하긴 하지.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언니의 말에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야,  너 자랑하는 게 아니라 흉보는 거거든?"
"난 기분 좋으니까 괜찮아."

까탈스럽다는 말보다야 털털하다는 표현이 훨씬 좋지.  인상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도도해 보인다거나 까탈스러워 보인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예쁘다는 말보다  많이 들었던  같기도 한데. 하여간 그래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나쁜 점도 있었다.

"와, 엄청 넓다."


유라 언니의 말에 우리도 호텔 내부에 마련된 레스토랑을 봤는데 굉장히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수많은 요리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홀에 가득했고 맛있는 냄새가 사방에 가득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무슨 냄새가 이렇게 좋아?"


내 말에 세연 언니도 침을 꿀꺽 삼키며 얼른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감독님께선 일일히 자리를 배정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으셔서 한숨을 돌리셨는데 굉장히 고생하시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코치님들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듯 감독님 옆에서 쓰게 웃으며 혀를 내두르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하여간 덕분에 우린 가족들끼리 앉아 편하게 식사를 코스 요리로 받아 먹을 수 있었다.


"어머, 이건 뭐가 이렇게 맛있니?"


엄마는 호들갑을 떨며 너무 좋아하셨고 아빠는 다 좋은데 양을 너무 쥐똥만큼 준다면서 한 소리 하셨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언니는 그냥 조용히 하고 드시라고 타박했고, 그 압박에 아빠는 조용히 식사를 하셨다.

평소엔 저렇게 온화하신 분이... 특히나 아빠는 정말 무서웠는데 뭔가 여자가 되고 나니까 상당히 유한 느낌이었다.


내가 유일한 아들이고 남자라서 나한테 유독 엄하셨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내가 세연 언니를 쳐다보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기에  손가락으로 고구마 샤베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엄청 맛있다고."
"그래?"


언니는 내 말에 반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난 그런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딸이라고 엄마와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게 사실 세연 언니였다.


난 막내아들이었지만 아들이라는. 그러니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실 막내 대접을 받기보다는 장녀인 세아 언니만큼이나 빡세게 굴려졌다.

턱을 괴곤 음식물을 입에 넣고 아빠를 봤는데 아빠는 그런 날 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왜, 우리 막내딸?"

애정이 섞인 목소리와 말투에 참 적응이 안 됐다.


"그냥 좋아서."

난 예쁘게 양손으로 꽃받침을 하곤 말했다. 내가 남자였을 땐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 감히 밥상에서 턱을 괴고 음식물을 입에 넣고 말을 해?

그것도 아빠를 빤히 쳐다보면서? 사실 이 아빠라는 말도 내겐 허용되는 말이 아니었다. 언제나 아빠는 내게 아버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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