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89. 하와이에서 생긴 일
최종적으로 가족 중 하와이에 가게 된 인원은 총 네 명이었다.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 모두 가고 싶어 했지만 직장인의 애환이라고 할까?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까 일주일이란 시간을 비우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하와이에 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 우린 집을 막 나서려던 참이었다.
"뭐 안 챙긴 거 없죠?"
난 노파심에 한 번 더 물었고, 다들 끄덕였다.
"여권 없으면 못 가는 거예요. 진짜로 다들 잘 챙기셨죠?"
내 물음에 다들 한번씩 더 확인하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난 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집을 나왔다.
밑으로 내려가자 밴에서 사람이 한 명 나오더니 내게 미소를 지으며 유라 언니가 다가온다.
"다 준비 했어?"
"응."
유라 언니는 곧 이어 내려오는 엄마와 아빠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이곤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아, 세나 매니저님이시구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짐 이리 주세요. 제가 들어 드릴게요."
"아이고, 아니에요. 운전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차까지 저렇게 가져와 주시고."
가볍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린 짐을 싣고 차에 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부드럽게 유라 언니가 회사에서 직접 몰고 온 밴이 움직였다.
난 조수석에 앉아서 유라 언니를 흘겨보며 말했다.
"근데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나 휴가 가는데."
"그래서 이렇게 운전도 해주고 짐도 날라줬잖아."
유라 언니의 말에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무슨 촬영인데?"
"그냥, 간단한 패션 잡지 화보 촬영이야."
유라 언니가 나를 공항까지 차를 태워 주는 이유는 공식적인 SN의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와이에 휴가 간다는 것을 알고 화보 촬영 일정을 잡았다.
SN에선 적은 비용으로 나를 굴릴 수 있으니 아주 얼씨구나 했을 거다.
처음에는 그게 괘씸해서 싫다고 할까 했지만, SN에서 내가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게 떠올라 받아들였다.
"거기 한번 열어봐."
난 조수석 앞에 달려 있는 보관함을 열었고, 그 안에는 파일철이 하나 들어 있었다.
"이번 촬영에 관련된 것들이니까 읽어 봐."
유라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곤 파일철의 덮개를 열었는데 별안간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히엑! Vog잖아? 세나가 촬영하는 게 Vog에요?"
세연 언니는 유라 언니가 패션 잡지라고 할 때부터 나를 계속 보고 있었던 건지 내게 들려있는 파일철을 가져가 빠르게 넘겨 보기 시작한다.
"와... 대박! 진짜 Vog잖아? 세나가 Vog에 나온다니...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세연 언니의 말에 아빠와 엄머도 관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한다.
"Vog? Vog가 그렇게 대단한 거니?"
엄마의 물음에 세연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당연하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패션 잡지란 말이야. 진짜 엄청난 거야! 세나야, 진짜 자랑스럽다."
세연 언니의 호들갑에 난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 뭐 그래 봤자 어디 구석에 조금 나오고 말겠지."
내 말에 유라 언니는 웃음을 터뜨렸고, 난 그 웃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라 언니를 쳐다봤다.
"무슨 소리야, 세나야. 너 표지 메인 모델인데."
유라 언니의 말에 세연 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아빠와 엄마도 메인 모델이라는 말에 멍한 표정을 지으신다.
Vog라는 패션 잡지를 잘 모르시지만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잡이의 메인 모델로 나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계실 거다.
"메인 모델이라고? 내가? 왜? SN에서 돈 좀 썼나?"
난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더니 유라 언니는 작게 웃더니 말했다.
"SN에 그 정도로 돈이 많진 않거든? Vog에서 연락이 왔어 너를 이번 호 메인 표지 모델로 쓰고 싶다고. 넌 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너 엄청 유명해."
"아니, 뭐... 내가 유명하다는 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아니, 넌 잘 몰라."
내가 잘 모른다고 딱 잘라 말하는 유라 언니의 말에 난 헛웃음을 지었다.
"숙소, 연습실, 숙소, 연습실. 가끔 집 아니면 SN. 그것도 다 차로만 이동하니까 넌 네 인기를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미국이나 유렵 쪽에선 너 진짜 웬만한 K팝 스타들보다 인기가 많아."
"내가 그 정도라고? 활동하지도 않았는데?"
"활동 열심히 하고 있잖아?"
"응? 무슨 활동? 해외에서 하는 활동은 이번이 처음 아니야?"
"오프라인이야 그렇지. 온라인에선 활발하게 하고 있잖아. 특히나 프로게이머라는 거. 그것도 무시 못 하는 거고."
유라 언니의 말에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최초의 여성 프로게이머, 거기다가 미모와 몸매가 되니까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거기다가 게임 실력까지 출중하고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명문이라고 알려진 SKY Y1의 소속.
게다가 이번 스프링 시즌에선 서포터로 MVP까지 수상했으니까 사방에서 관심을 받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너튜브가 진짜 신의 한 수였어."
"하긴, 그건 나도 진짜 그렇게 될 줄 몰랐어."
내 생각에 내 인기의 80%는 너튜브란 생각이 들었다.
영상이 어떻게 운 좋게 해외 유명 가수들의 관심을 받게 됐고 그렇게 되니 그 나라의 그 유명 가수들의 팬이 내게도 관심을 보이게 됐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줬는데 정말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꿈같은 일이야."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간혹 내 너튜브에 들어가 엄청난 숫자의 조회수와 댓글들을 보면 몰래카메라에 여태껏 당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됐을 때 그저 멍한 느낌 밖에 안 든다. 정말 현실감이 없기 때문에 체감도 느껴지지 않고.
'아, 경기장에서?'
최근 체감이 됐던 곳이 있다면 경기장이었던 것 같다.
스프링 결승에서 생각보다 내 팬들이 엄청나게 많이 와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정말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의 열기였는데 무서울 정도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원해 줘서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떨떨하다.
"옷도 너무 예쁘고, 진짜 부럽다. Vog라니..."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언니에게 Vog는 정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곳일 거다.
"언니도 나 촬영할 때 따라올래?"
내 물음에 세연 언니가 눈을 크게 뜨더니 말한다.
"진짜? 진짜 따라가도 돼?"
난 고개를 돌려 유라 언니를 보며 물었다.
"돼?"
세연 언니도 고개를 휙 돌려 유라 언니를 쳐다봤다. 유라 언니는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연 언니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 안 될 거야. 없지. 내가 말해 놓을게. 네 언니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진 않을 것 같은데? 서약서 같은 건 써야겠지만."
"그런 거야. 백 장, 천 장도 쓰죠. 진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세연 언니를 보며 유라 언니가 말했다.
"패션 쪽 일하고 했죠? 학과도 그렇고?"
"아, 네. 한국대 패션 디자이너과에 다니고 있어요."
"동생 잘 둬서 좋은 경험할 수 있겠네요. 흔치 않은 기회니까 제가 잘 얘기해 볼게요. 아마 어렵진 않을 거예요."
"안 된다고 하면 나도 안 한다고 해."
내 말에 세연 언니가 내 어깨를 때리며 말한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얘가 미쳤어! 그걸 왜 안 해!"
언니는 랩이라도 뱉어내 듯 숨도 쉬지 않고 말한다.
"야! Vog가 어떤 패션 잡지 회사인데! 무조건 해야지, 얘가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야? 진짜 다른 곳은 몰라도 Vog는 구석에 달랑 한 장 나와도 넙죽 절해야 되는 곳이라고!"
약간 리듬까지 느껴지는 것 같은데? 정말 랩 하면 이상하게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심각한 표정을 지었더니 언니는 그제야 내가 Vog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난 못 봐도 상관 없으니까 안 된다고 하면 그냥 말아. 조금 나중에 사서 보면 되니까. 하여간에 무조건 해!"
세연 언니의 말에 난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무조건 된다고 할 거야. 유라 언니가 그러잖아 그쪽에서 먼저 나한테 요청한 거라고. 그럼 내가 뭐 아쉬울 게 뭐가 있어? SN은 좀 아쉽나? 하여간에 우리도 세게 나가도 된다는 얘기였어."
내 말에 세연 언니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가 또 한다고 하면 하는 성격이라 내가 정말로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아닌가 걱정한 모양이다.
"뭐, 여러운 건 아니니까 그쪽에서도 거절하진 않을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인데 뭐."
언니는 내친김에 Vog에 전화를 해 볼 생각인지 신호가 걸렸을 때 잽싸게 핸드폰에 손을 뻗어 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창한 영어가 반대편 수화기에서 흘러나온다.
역시나 유창한 영어로 유라 언니가 인사를 나누며 말했다.
"네, 반가워요. 거긴 저녁이겠네요. 우린 지금 미국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중이에요. 물론이죠. 아, 다른 게 아니라 예정된 인원이 1명 더 늘었는데 괜찮을까요? 네네. 그녀의 언니에요. 네네, 친언니요. 가족이죠. 아, 네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뭐래요?"
"뭐래?"
전화를 끊자마자 묻는 우리 둘을 보며 유라 언니는 웃더니 말한다.
"괜찮다고 하네. 가족이니까 뭐 따라 서약서 같은 건 작성하지 않을 테니까 비밀유지만 잘 해달라고 하네. 사진은... 알지?"
"네. 찍고 SNS에 안 올리면 되잖아요. 아싸!"
세연 언니는 환호성을 지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니에겐 확실히 좋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언니는 혼자 좋아하더니 별안간 내게 키스 세례를 퍼부으면서 연거푸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좋아?"
"당연히 좋지!"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 언니의 말에 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는 벌써 핸드폰을 들고는 과 동기들에게 자랑을 한다고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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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도착하자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난 감독님과 코치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곧바로 탑승 수속을 밟았고 우리 가족들은 유라 언니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도맡아 챙겨줘서 다른 사람들 보다 쉽게 준비할 수 있었다.
시간에 맞기 우린 비행기에 올랐고,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가 이륙했다.
비행기에 타 책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던가 아니면 게임을 하던가 하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갔다.
중간에 먹었던 기내식도무척 맛있었다.
"드디어 도착이구나!"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해 우린 다시 지상을 밟을 수 있었다.
"일정은 내일부터니까 푹 쉬어도 돼. 아, 그리고 세나 가족들 숙소만 스위트 룸이야."
유라 언니의 말에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에? 우리만? 왜?"
"원래 여기 오는 거 SKY에서 지원해 주는 거잖아."
"응."
"근데 그거야 휴가 목적으로 지원해 주는 거니까 우린 따로 지원해 줘야지."
난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는 심보가 아니었어?"
내 말에 유라 언니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한다.
"어, 아니었어. SN에서도 따로 지원해 줬고, 본래는 Vog에서 다 지원이 나와."
"아, 그래?"
"어. 하여간 어쩌다 보니까 세 곳에서 전부 지원을 해줘서 너랑 가족분들은 잘 지내다 갈 수 있을 것 같아."
유라 언니의 설명을 들은 세연 언니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아빠, 엄마도 막내 덕분에 호사를 누린다며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SKY에서 준비해 준 리무진버스를 타고 우린 하와이에서도 가장 좋다는 호텔로 이동했다.
도착하니 정말 우리만 스위트 홈에서 묶을 수 있었고 다른 선수들과 감독, 코치님은 일반 객실을 이용했다.
그런 나를 보며 민영이가 왜 누나만 스위트 홈이냐고 물어서 혀를 내밀곤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다.
"나는 SN에서도 지원받고 Vog에서도 지원받거든!"
내 말을 들은 한 여자분이 놀라며 묻는다.
"Vog요?"
민영이 옆에 있던 여자분이었는데 난 누군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아, 안녕하세요. 윤세나 선수시죠? 이하연이라고 해요. 민영이 누나에요."
"아... 그 한국대 음대 다니시는?"
"네, 맞아요."
우아하면서도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꽃미녀가 이런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정말 예쁜 사람이었다.
"하나도 안 닮으셨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내 말에 민영이는 발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이하연은 입을 가리곤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