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86. 스프링 결승전
결승전이니 당연히 상당히 많은 팬들이 몰려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나를 보려고 온 게 아닌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진선 오빠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팬이라면 사실 여기서 가장 많은 건 상현 오빠 아닌가? 누구보다 많은 E스포츠 팬을 가지고 있는게 상현 오빠였다.
하지만 경기장이 시야에 들어오자 진선 오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저... 저게 다 뭐야?"
내가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내 응원 문구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저긴 전광판이다."
진선 오빠가 어느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는데 정말 엄청난 광경이었다.
"내 팬이 이렇게 많다고?"
생각지도 못한 대규모의 내 팬들의 인파에 난 입을 쩍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내 모습을 전광판에 띄운다.
"꺄아아아악!"
"너무 예쁘다!"
"오오오오오!"
경기장이 갑자기 환호성이 터지자 캐스터분께서 당황하며 상황을 파악하시더니 전광판에 내 모습을 보곤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네, 정말 대단한 열기입니다!"
캐스터님의 말을 시작으로 선수 소개가 이어졌고 상현 오빠를 소개할 때. 그리고 나를 소개할 때 경기장은 정말 떠나갈 것처럼 큰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특히, 나를 소개할 때가 엄청났는데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해줘서 고맙게도 선수들 중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야, 세나 인기 장난 아닌데?"
그 환호에 상현 오빠가 뭔가 조금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고 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에이, 아니야. 인기야 오빠가 훨씬 많지."
아닌 게 아니라 솔직히 저 팬들이 순수하게 프로게이머인 나를 보려고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너튜브를 통해 만든 부캐. 가수인 나의 모습에 아마 환호하고 열광하는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멋들어진 선수 소개가 끝나고 선발 선수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세팅 점검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은 선발 선수들을 응원하고 대기실로 향했다.
"자, 한 번 가보자."
재파 코치님께서 어울리지 않게 단단히 기합을 넣으시는 걸 보니까 확실히 결승은 결승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무표정하고 냉철한 모습만 보다가 약간 상기된 모습을 보니 뭔가 새롭게 다가왔다.
"코치님 목소리 조금 떨리시는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재파 코치님은 손을 저으며 말한다.
"난 살면서 떨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감독님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고 그로 인해 다들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기분을 느낀 것 같았다.
이럴 걸 예상해서 말씀하셨다면 정말 재파 코치님은 대단하신 분이다.
"얘들아, 긴장할 거 하나 없어. 진짜 쫄 거 없다."
여전히 떨려 나오는 목소리에 진선 오빠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한다.
"아무래도 코치님이 쪼신 것 같은데?"
"티 나냐?"
재파 코치님이 과도하게 떨리는 표정을 지으며 심호흡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말 웃지 않고 참을 수가 없었다.
다들 시원하게 웃는 모습에 재파 코치님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난 절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 물론, 저쪽 전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미드부터 우리 상대가 안 돼."
재파 코치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결승이었지만 크게 긴장이 안 되는 부분도 사실 그 부분이 컸다.
슬쩍 건너편을 보니 우리완 다르게 과도하게 떨고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들이 보였다.
"저쪽은 진짜 완전 초상집 분위기인데?"
내 말에 다른 팀원들도 힐끗 상대편의 얼굴을 살핀다.
"랑쥰 선수는 우는 것 같은데?"
찬동이의 말에 다들 쓴웃음을 지었는데 어느 정도는 랑쥰 선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인지 안쓰럽단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컸다.
"데뷔를 스프링 결승전으로 하네."
우찬 오빠의 말에 데뷔 때 기억이 떠올랐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찬동이가 말한다.
"얼마나 떨릴까?"
"상현이 형이랑 반반만 가도 진짜 대박이지 뭐."
진선 오빠의 말에 상현 오빠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따끔하게 신고식 치뤄야지."
확실히 선수들 전원이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이것이 자만이 아님을 알지만 재파 코치님께선 노파심에 우리에게 경고를 하신다.
"좋아, 그렇게 자신감 있는 건 좋은데. 상대를 절대로 얕봐선 안 돼. 쇼메 선수가 없어도 담언은 강한 팀이야."
그건 맞지. 난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선수들도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순식간에 웃는 모습을 지우고 진지하게 게임 준비를 시작한다.
무난한 밴, 픽을 가져갈 거라고 예상했지만 전혀 색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담언은 밴 카드를 전부 미드에 사용했다. 그 모습에 난 고개를 갸웃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게 의미가 있나?"
챔프 폭이 좁은 미드면 모를까 솔직히 상현 오빠를 상대로 미드에 3밴을 때려 박는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빅툐르, 야지르, 새라핀 모두 상현 오빠가 최근 경기에서 사용해 좋은 모습을 보여준 챔피언들이었다.
"미드가 약하니까 미드에 힘 실어주려는 것 같은데."
재파 코치님은 그렇게 말하며 상현 오빠에게 다가가더니 말했다.
"미리 미드 뽑는 게 어떠냐? 얘들 또 4밴까지 할 지도 몰라."
"오리아냐 뽑을게요."
무난하면서도 무상성 픽이기 때문에 어떤 챔피언을 상대로도 상현 오빠라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파 코치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셨는지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렇게 밴, 픽이 끝나고 게임에 들어가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결승은 결승이네.'
떨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경기를 시작하니까 슬금슬금 긴장이라는 게 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주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이거 들어가자."
빠르게 상대 부시에 들어가자는 핑을 찍자 선수들은 군말없이 나를 따라 나선다.
1킬만 따도 좋고 2킬 따면 더 좋고 스펠만 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챔피언 조합상 우리가 1렙 싸움이 좋았고 최근 물이 오른 우리 팀원들의 능력을 봤을 때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너무 세게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여신님?"
진선 오빠의 말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신도들은 그저 나를 따르기만 하세요. 광명을 줄라니까. 자, 여기로 붙어."
난 벽에 바짝 붙어서 사슬을 빙글빙글 돌렸고, 누구 하나만 걸려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안 나오면 들어간다. 1분 10초에 가자. 그럼 탑은 없을 거야."
첫 경기를 꼭 이기고 싶었다. 내가 너무 무리한 오더를 하는 것 같아 보였는지 상현 오빠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을 들어서 실패한 경우가 적으니 이런 장점이 있다.
"고고고."
내 말에 약속이나 한 것처런 한 몸으로 들어갔고, 내 예상대로 탑은 우리가 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이기는 싸움.
나는 상대 미드인 랑준을 정확히 노리고 사슬을 날렸고, 그대로 걸린 랑준 선수는 퍼스트 킬의 재물이 된다.
킬을 먹은 건. 페이크, 이상현.
"원딜 점멸 빠짐."
화들짝 놀라 대처를 해보려고 하지만 이미 진영이 갈린 상황이라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힘들었다.
"됐어, 여기까지 하고 이거 챙기자."
미드가 죽고 탑은 이미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상황이었고 원딜은 점멸이 없는 상태였다.
레드를 순순히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우린 합심해서 빠르게 먹은 뒤 다음 오더를 했다.
"정글 봐주고, 말릴 수 있으면 말리자. 상현 오빠는 100% 아니면 절대로 가지 말고 미드 지켜."
"알았어."
시작부터 이미 기울었다. 게다가 이번 시즌 첫 경기에서 이겼을 때 두 번째 경기까지 이길 확률은 엄청나게 높았다.
다전제에서 1승은 1승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그게 다전제에 강하다고 알려진 Y1이라면 더.
'시작부터 흐름 탔다.'
미드가 가속 페달을 밟으면 사이드는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 있는 게 LOM이라는 게임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오늘 첫 데뷔전을 치르는 신예 선수라는 거 게다가 랑준 선수는 따지고 보면 순혈 미드 라이너도 아니었다.
'원래 포지션은 원딜이라고 했지?'
그에 반해서 상현 오빠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외길만 파신 분이다.
그 사이에 말로 다 하기 힘든 격차가 존재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피지컬적인 부분으로 메꿀 수 없는 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얘기였다. 특히나 이런 큰 경기라면 더 그렇고.
"이거 실수 없이 스노우볼만 잘 굴리면 그냥 우리가 압승할 수 있어. 초반에 박살내면 2, 3경기 편한 거 알지?"
"그럼, 그럼."
"우린 여신님만 믿고 가는 거지."
"광명을 찾아 주소서."
팀원들의 익살스러운 응원을 받으며 난 게임에 집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한 오더를 통해 스노우볼을 굴렸다.
그 어떤 때보다 더 정밀한 오더와 극도로 집중한 선수들 덕분인지 정말 내가 그린 그림이 그대로 연달아 그려졌다.
그렇게 되니 격차는 20:1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떻게 싸워도 이기는 상황이었지만 난 더욱 선수들은 다그쳤다.
"방심하다 짤리는 놈은 가만 안 둔다. 특히 너 김찬동."
"아, 또 왜 나야!"
"그런 말이 나와 이 새끼야? 너 내가 아까 탑에서 빼라고 할 때 뺐으면 살았다고 했지?"
"아, 무조건 죽는 각이었다니까 그냥 CS 먹고 죽는 게 맞았어."
"너 시뮬 돌려서 내 말 맞으면 넌 나한테 맞을 줄 알아아."
내 앙칼진 목소리에 찬동이가 움찔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시뮬을 돌렸을 때 100% 내 말이 항상 맞았기 때문이었다.
"형 파스 남은 거 있어."
상현 오빠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드린다. 난 철저하게 더 밟아 놓고 싶었다. 스프링 결승에서 첫 경기가 주는 압박감은 생각보다 더 컸다.
초반에 인베이드로 1킬을 줬을 때 괜찮다고 다독였을 거고 경기에 큰 지장 없다고.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경기가 어려웠을 때 인베이드만 아니었으면 하고 생각할 거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온다. 1킬을 줬어도 안 줬어도 어차피 질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우리의 경기력이 너무 뛰어나 자신들의 경기력에 의심을 품을 때.
'급격하게 무너지게 돼 있지.'
그걸 알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이기고 싶었다. 아주 치욕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무런 생각이 안 들게 만들고 싶었다.
"끝까지 집중해. 상현 오빠 내 오더 반응이 조금씩 늦어진다."
"아, 미안. 이제 제대로 할게."
"뭐야, 그럼? 지금까지 제대로 안 했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으흠."
"세나야, 난 진짜 집중해서 하고 있어."
"집중하는 사람은 그런 말도 안 해."
내 말에 진선 오빠가 등껍질에 숨는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린다.
하여간 경기 흐름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저쪽에서 뭘해도 안 되는 상황까지 왔지만 끈질기게 저항했다.
난 그 저항 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포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다 미드로 뛰자."
3억제기가 날아갔고 바론까지 먹은 상황이었다. 언제라도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무리하지 않고 차분하게 차근차근 역전의 빌미를 단 한순간도 허용하지 않게 운영했다.
아마 상대 입장에서는 정말 너무하다고 느낄 정도였을 거다.
그런 생각이 들어다면 2, 3경기에도 우리에게 유리할 수 있었다.
상대방은 내 운영 방식에 치를 떨었을 거고 두려움을 느꼈을 거다.
'한 번 실수하면 이길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그 생각은 경기에서 생각보다 치명적인 행동으로 돌아온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1경기부터 아주 빡빡하게 느슨한 팀원들의 정신을 붙잡아 31:1이라는 스코어를 만들어 경기를 끝냈다.
"후..."
난 만족스러운 경기력에 미소를 지으며 진선 오빠의 등을 두드려주고 페이크 오빠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토닥여줬다.
"아이구, 우리 오빠 잘하네, 엄청 잘해."
갑작스러운 내 공격에 상현 오빠는 실소를 흘린다. 처음에는 엄청 당황하더니 이젠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다.
찬동이는 날 보더니 강아지마냥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내게 내밀며 자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말했다.
"나도 잘했지?"
내가 정말 잘했을 때, 그러니까 완벽한 플레이를 보여줬다고 생각했을 때만 엉덩이를 토닥여준다는 걸 알아차리고 얘는 은근히 그걸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난 헛웃음을 지으며 발로 엉덩이를 밀며 말했다.
"뒤질래? 뭘 잘해, 뭘! 아까 빼면 내가 산다고 했지! 넌 진짜로 숙소 가서 똑같은 상황으로 시뮬 돌서 살았다? 그럼 넌 나한테 진짜 뒤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