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79. 스프링 결승 준비
결국, 둘은 기억하지 못했고. 내 살벌한 표정에 둘은 얼른 확실히 알아보겠다는 말을 하고서야 내 따가운 눈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지금까지 선물 한 번도 안 드릴 수 있냐."
무심함이 하늘을 찌르네. 난 믿었던 발등에 도끼라도 찍힌 것처럼 상현 오빠와 진선 오빠를 집중 공격했다.
"진짜 상현 오빠랑 진선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좀 실망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부모님 생신은 그래도 알지?"
내 물음에 둘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냥 장난 삼아서 물어본 말이었는데 반응이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몰라?"
내 물음에 상현 오빠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머니 생신은 알고 있는데..."
"내가 지금 오빠 할머니 생신 물어봤어?"
내 말에 상현 오빠가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내 눈치를 본다. 난 고개를 확 돌려 진선 오빠를 쳐다봤다.
"오빠도 몰라? 부모님 두 분 다 몰라?"
내 물음에 진선 오빠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 원래 알았는데."
"원래가 어디있어, 원래가. 모르면 그냥 모르는 거지."
내 말에 진선 오빠는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넵! 모릅니다."
"어이구? 자랑이다, 자랑이야."
내 투박에 상현 오빠와 진선 오빠는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보며 양쪽에 서선 얼른 타라고 에스코트를 한다.
엘리베이터가 뭐, 동아줄이라도 된 것처럼 환하게 웃는 폼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부모님 생신을 모를 수가 있냐. 그것도 두 분 다! 한 명이라도 알면 뭐라고 안 하려고 했는데 참나.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구나. 많은 걸 바랐어."
자기 부모님 생신도 모르는데 숙소에서 밥해주시는 어머니의 생신을 물었으니... 둘은 내 핀잔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머리만 긁적였다.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도 좀 너무했다 싶기는 한 모양이다.
"하여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둘이 책임지고 알아내도록."
설마 또 바보같이 직접적으로 어머니에게 묻는 건 아니겠지?
"설마 어머니한테 다 티 나게 직접 물어보는 건 아니겠지?"
내 말에 둘의 눈이 힘차게 흔들린다. 둘 다 그럴 생각이었는지 상현 오빠와 진선 오빠는 서로를 쳐다본다.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왕이면 서프라이즈 해서 드리는 게 좋잖아. 그런데 다 티 나게 생신 언제냐고 직접 여쭤보면 눈치채시겠어, 안 채시겠어?"
"채시겠지?"
진선 오빠의 대답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직접 여쭤보지 말고 눈치 못 채시게 슬쩍 돌려서 물어보란 말이야."
내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건 우리한테 맡겨."
뭔가 상당히 자신감 넘쳐 보이는 게 무척 불안하긴 했지만 의욕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그래도 보기 좋았다.
그냥 내가 물어본다고 할까? 그게 가장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퀘스트라도 받은 것처럼 계획을 짜는 둘에 모습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저게 저렇게 재미있어 할 일인가?'
난 고개를 갸웃했지만 뭐, 둘이 좋으면 됐지. 나와 상현 오빠, 진선 오빠는 연습실 안에 들어가자 곧바로 뱅기 코치님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다 왔네, 다들 잠깐 모이자."
따지고 보면 오늘부터 결승 경기를 준비하는 기간의 첫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감독님과 코치분들 사이에서 이상스러운 긴장감이 감도는 느낌이 들었다.
선수들과 감독, 코치분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였고, 감독님은 모인 선수들과 코치분들을 보면서 말했다.
"어, 일단 우리는 거의 90%는 담언이 올라온다고 보고 있거든? 그건 뭐 직접 담언을 몇 번이나 상대한 너희들도 예상하고 있겠지?"
감독님의 말에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팀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결국 올라와서 우리와 결승을 치르게 될 팀은 담언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담언은 그 어떤 팀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그건 직접 붙어본 우리가 보장할 수 있었다.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진선 오빠의 말에 양중인 감독님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뭐 잰지, 한하, DLX다 충분히 올라올 가능성이 있는 팀들이긴 하지만 글쎄다. 난 누가 올라와도 담언과 붙으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감독님 말대로 우리 팀과 담언이 보여주는 올 시즌의 모습을 보면 거의 99%가 결승에서 붙게 되는 건 Y1과 담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팀들이야 어느 정도 색이 있고 대처를 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담언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안 가."
감독님의 말이 이해가 간다.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담언에 있는 김정군 코치님이 본래 Y1에 계셨고, 양중인 감독님은 반대로 담언에 계셨으니까.
'아이러니한 상황이네.'
난 피식 웃고는 감독님의 말씀에 집중했다.
"그래서 우린 담언이 올라온다는 전제를 두고 총전력을 다해서 담언을 분석할 생각이야. 그리고 Y1에 대한 분석도."
지금이야 색이 바뀌긴 했지만 Y1의 기본 바탕을 만든 사람이 김정군 감독님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Y1을 보는 게 더 빠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간, 감독님이 그러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선수야 믿고 따라가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우리를 믿고 따라와 주면 반드시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담언이 어려운 상대인 건 맞지만 힘든 상대는 아니잖아."
감독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을 아주 기가 막히게 하시네.
확실히 저 말이 맞다. LCK에 존재하는 팀 중에서 담언이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상대라는 건 인정하지만 솔직히 우리에게 힘든 상대는 아니었다.
'충분히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팀이지.'
문제는 아마 저쪽도 우리를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전체적인 팀 스케줄은 대회 일정에 맞춰서 조금 변경하긴 하겠지만 기본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건 없을 테니까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거야."
감독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특별히 질문할 거 있니?"
"없습니다."
"없어요."
선수들의 대답에 감독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보자. 다들 모여."
갑작스러운 화이팅 제안에 다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곧 비장한 표정들을 지으며 손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다.
"좋아, Y1, Y1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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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이 코앞에 닥쳤다고 해서 엄청 하드하게 연습하는 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놓고 보자면 실질적으로 연습하는 시간은 많이 줄었다.
1시부터 4시까지 스크림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한 뒤 본래라면 가지는 솔로 랭크 시간이 사라졌다.
대신 담언의 전 경기를 집중적으로 보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내겐 굉장히 생소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는 우리와 담언이 했던 경기만을 가지고 했는데 지금은 시즌 초반 경기를 시작으로 상호 간에 피드백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야, 큰 그림을 엄청 잘 그리네."
감독님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담언의 보이스는 물론이고 개인의 화면까지 다 보고 있어서 그런지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상당했다.
'감독님이랑 코치님은 이렇게나 세세하게 연구하시는 구나.'
내가 가장 놀란 건 감독님과 코치님이 우리에게 나눠주신 담언과 관련해서 정리한 노트였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영상을 보면서 노트도 보고 있었는데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와, 버릇까지 연구하셨네요."
난 손가락으로 노트를 가리키며 감독님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뭔가 싶었는지 감독님이 내게 다가와 노트를 바라보신다.
"아, 이거. 이건 재파 코치님이."
난 고개를 돌려 재파 코치님을 봤다.
"뭔데?"
"이거요."
난 노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고, 재파 코치님은 내용을 읽으시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안경을 고쳐 쓰시며 말한다.
"어, 그런 버릇이 있더라.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거의 90%가 그렇게 무빙하더라.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습관 같아."
삼거리 와드를 지우러 올 때 아래쪽 무빙을 치고 그다음에 위쪽으로 좀 깊숙하게 들어와 한 대를 치고 부시 끝 쪽에서 내려가며 한 대.
그렇게 와드를 지우고 바텀으로 합류.
"진짜 똑같이 행동하네요."
"응, 시야가 없는 상황일 때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더라."
재파 코치님 말대로 이러면 보이지 않아도 어디에 있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거기서 이니시를 걸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는데요?"
"그럴 것 같아서 적어뒀어."
팀에 합류하기 전에는 감독과 코치가 실제 게임에 영향을 끼친다고 얼마나 끼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팀에 합류해서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선수들이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온갖 궂을 일을 다 하는 걸 보고 오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근데 이걸 보니까 그 생각이 한층 더 강해진다. 정말 감독이나 코치를 한다는 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 정도로 분석을 하려면 얼마나 자기 시간을 갈아 넣어야 했을까?
감독님은 영상을 끊으시더니 말했다.
"영상 끊고 말하고 싶으면 손 들어서 언제든 얘기해.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우리가 집고 넘어야 할 점이면 무조건 얘기하라는 거야. 그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각자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른 거니까."
"그래, 쓸데없는 얘기도 상관없으니까 많이 말해."
감독님과 코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영상을 끊으신 이유를 말씀하셨다.
"너희도 지금 경기 중반까지 보고 들으니까 알겠지만 담언의 큰 그림은 거의 배릴이 그려. 배릴이 구상하고 팀원들이 뛰어들지."
감독님의 말에 재파 코치님이 노트를 넘기시며 말한다.
"거의 95%가 배릴의 오더로 크고 작은 전투가 일어났고 83%가 승리했어. 한 경기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전투가 일어나는데 배릴의 오더로 승리한 크고, 작은 전투의 승률이 83%라는 건 정말 엄청 높은 숫자야."
감독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체감이 잘 안 가는 선수들도 있었는지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어쨌든 배릴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무척 뛰어나다는 건 인지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전투 단계에서 세부적인 오더와 아군이 피지컬적인 오더는 쇼메이크가 하고 있더라고. 둘의 성향이 어떤지 잘 보면서 게임을 봤으면 좋겠어."
감독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다. 선수들은 다들 굉장히 집중해서 담언의 경기 영상을 쳐다봤다.
간혹, 노트에 뭔가를 적으면서 보는 선수들도 있었는데 난 담언의 바텀 조합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어떤 형태로 플레이를 하는지 호흡은 어떤지 굉장히 세밀하게 관찰했는데 능력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많은 정보들이 머리에 들어왔다.
우린 중간중간 영상을 끊었다가 얘기를 하거나 쭉 이어보고 나서 한 번에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거나 하면서 천천히 담언을 읽어내려갔다.
"얘들은 꼭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걸던데."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거네. 건다."
"역시나 거는구나."
굉장히 팽팽한 접전 속에서 용에서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난 아까부터 담언이 이상하게 점 부시가 있는 곳에서 싸우려는 모습을 보며 손을 들었다.
영상이 끊기자 모두가 손을 든 나를 쳐다본다. 지금까지 가만히 듣거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보던 내가 손을 들자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한 표정이었다.
"근데 얘들 아까부터 왜 용 싸움 할 때마다 여기서만 싸우려고 하는 것 같죠?"
내 말에 감독님과 코치님의 머리에 물음표가 뜬다. 아닌 게 아니라 계속 영상을 봤는데 굳이 이쪽에서 포지션을 잡고 싸우려는 것 같았다.
그건 진영에 따라 상관없이 보이는 현상이었는데 처음에는 몰랐는데 방금 전 쇼메이크가 굳이 돌아가는 걸 보며 의심이 생겼다.
"조금만 뒤로 돌려주세요."
내 말에 감독님이 영상을 뒤로 돌린다. 난 상현 오빠와 준현이를 보면서 말했다.
"미드 입장에서 지금 쇼메이크 위치가 더 좋지 않아? 따로 갈라져 있긴 하지만 굳이 돌아가서 합류해 싸울 필요가 있어?"
결과적으로 이기긴 했지만 쇼메이크가 돌아가는 바람에 전투가 일어났고, 합류하는 동안의 딜로스가 생겨서 순식간에 담언의 진영이 붕괴됐다.
배릴의 슈퍼 플레이가 없었다면 아마 순식간에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장면이었다.
'확실히 잘하긴 잘 하네. 배릴 선수.'
상현 오빠와 준현이는 몇 번이나 그 장면을 유심히 돌려봤고 둘 다 역시 쇼메이크의 판단에 고개를 갸웃했다.
"합류하는 판단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는 한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저 위치가 더 좋아 보이는데."
상현 오빠의 말에 준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같아요. 굳이 합류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데요. 그냥 저기서 궁도 있겠다 스펠도 다 있겠다 오히려 저기 있는 게 상대 입장에서는 더 짜증 날 것 같은데."
난 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합류하기 위해 도는 공백 시간에 이니시 당했고, 여기서 배릴 선수가 제대로 못 받아쳤으면 아마 반대로 기울었겠죠? 위험을 감수하고 합류할 이유가 있나?"
내 말에 감독님과 코치님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별안간 우리가 보던 영상을 내리더니 다른 영상을 켠다.
그리고 또 다른 영상, 또 다른 영상. 또또 다른 영상.
그렇게 동시에 열고서 담언의 용 싸움을 본다.
그 영상을 보던 찬동이가 의문을 표한다.
"뭐야?"
"얘들 되게 웃기네?"
진선 오빠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나 또한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용 싸움을 다 저기서 하려고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