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76. 한국대 소냐
"안녕하세요!"
[세하!]
[ㅅㅎㅅㅎ]
[월드 클래스! 윤세나!]
[아니, 우리 세나는 못 하는 게 뭐야?]
[ㄷㄷ 프로게이머 때려치우면 안 돼요. ㅠㅠ]
[여신님, 이제 가수인 건가?]
[ㄴㄴ 본업은 프로게이머가 맞지.]
[근데 SN이랑도 계약하고 활동할 수 있나?]
[이중 계약 아님?]
돼지 국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난 솔로 랭크를 돌리기 위해 내 자리에 앉아 방송을 켰다.
보통 방송을 할 때 방송 시설이 잘 갖춰진 독방에서 하던가 아니면 자기 컴퓨터에서 그냥 켜서 하던가 둘 중 하나였는데 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방송할 공간을 골랐다.
"어허! 이중 계약이라니. SKY와 SN 둘이서 원만한 합의를 통해 더블 계약을 한 겁니다. 이중 계약이라니요."
[이중 계약은 불법임.]
[세나는 이중 계약 아니야.]
[우리 언니 누가 건드리냐? 다 처네라!]
[어차피 플레이 오프 확정인데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거 아니에요?]
[인정, 인정. 어차피 우승은 Y1일 것 같은데.]
[솔직히 Y1이 우승할 것 같죠?]
아, 이거 또 나를 시험하시네.
"당연히 저야 Y1이 우승했으면 좋겠죠. 그렇지만 그거야 다른 팀들도 다 같은 생각일 거고. 플레이오프를 1위로 확정했다고 해서 우승한 건 아니니까요."
[크으, 역시 세체폿.]
[이제 시작이지.]
"오, 맞아요. 따지고 보면 이제 시작인 거죠. 앞으로 남은 경기들은 진짜 우승이 걸린 경기니까."
[에이, 그래도 Y1 우승할 것 같긴 하잖아요.]
"그거야 장담할 수 없죠. 여러분, 협곡은 둥근 법입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어요. 아시죠? Y1도 예전에 엄청 낮은 곳부터 도장 깨기 해서 우승했던 거."
[크, 그때가 리즈 시절이었지.]
[거기서 나온 말. 어차피 우승은 Y1]
[그때 진짜 Y1이 우승한다고 생각한 사람 없었는데.]
[협곡은 둥근 법이다. 이거 멘트 지리네.]
"우리가 당할 수도 있는 거죠. 진짜 모르는 거예요. 경기가 다 끝나 봐야 아는 거죠. 그러니까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에 없죠."
[옳소!]
[그렇소!]
[물소!]
[물소 처네라!]
[젖...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저는몰러유님이 강퇴되셨습니다.
[살벌하네. ㄷㄷ]
[바로 강퇴 ㅋㅋ]
[형은 이해한다...]
[아아...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난 솔로 랭크를 돌리고 나서 내 음악 너튜브인 소냐에 들어가서 댓글을 확인하며 답글을 달아줬다.
[오! 이거 답글 달아주는 거 진짜 본인이었네.]
[대박! 일일이 다 달아주시는 거였어요?]
"그럼요. 당연히 내가 하죠. 이걸 누가 해줘요."
[보통 소속사가 해주는 줄 알았는데.]
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 원래 그래요? 소속사에서 대신 답글 달아주고 그래요? 스읍.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팬들을 속이는 거 아닌가?"
[팬들은 모르니까요.]
[무플보다는 낫다?]
"흠, 그런가? 내 생각엔 별로인 것 같은데. 내가 직접 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다 해줄 순 없지만 그래도 이런 시간 이용해서 최대한 열심히 하다가 보면 다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크... 역시 그녀는 마음도 여신이었습니다.]
[게임의 여신, 음악의 여신... 벌써 두 개 분야에서...]
난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면서 실시간 방송 채팅을 보며 너튜브 댓글을 읽고 답글을 달아주고 있었다.
"오, 영어. 생각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네?"
외국인의 인원수가 더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상위에 올라가 있는 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들이 영어로 된 것들이 많았다.
난 능숙하게 영어로 답글을 달아줬다.
[오! 뭐야! 영어도 할 줄 아네.]
[우리 세나가 티가 안 나서 그렇지 한국대거든요.]
[아, 맞아. 한국대.]
[한국대 생인데 영어야 기본 탑재 돼 있겠지.]
한국대라고 해서 모두 다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기초적인 회화는 가능한 수준은 다들 된다고 봤다.
모교가 칭찬을 받는 느낌이라 난 조금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요. 한국대면 영어는 기본이죠."
난 그렇게 말하며 스크로를 계속 내리다가 눈에 띠는 댓글을 보면 읽고 답글을 달아줬는데 중간중간 역시나 악플이 보였지만 무시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악의적인, 그러니까 조금 감정이 섞인 악플이나 가족들을 건드리거나 성적인 발언들은 놓치지 않고 신고를 꾹꾹 눌렀다.
"관심을 많이 받으니까 이런 건 또 단점이네."
연예인이라는 게 참 양날 검이다. 한없이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한 미움을 받기도 한다.
나를 제대로 모르면서 나를 이럴 것이다 추측하며 악의적으로 나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날 만나 본적도 없으면서 나와 대화 한 마디 나눈 적 없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확신을 가지고 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예단하며 떠벌릴 수 있을까?
"정말 이런 사람들 이해가 안 가요."
난 한숨을 내쉬면서 난 계속해서 댓글을 달아주고 마음에 드는 글은 좋아요도 눌러주며 솔로 랭크가 잡힐 때까지 뜨는 시간을 알차게 이용했다.
[근데 진짜 안 잡히긴 한다.]
"이게 잘 잡히는 거예요. 이게 팀 스케줄이 전체적으로 비슷해서 솔로 랭크 하는 시간이 다 비슷하거든요."
[아, 그래서 이 시간에 선수들이 솔로 랭크를 많이 하는 건가?]
[오오! 그렇구나.]
[헐... 이게 빨리 잡히는 거라니. 대박이다.]
"헐..."
스크롤을 내리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고 말았다.
"아... 아랍어인가?"
믿기 힘들지만 아랍어 글씨처럼 보이는 댓글이 보였는데 굉장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랍어 아시는 분?"
난 손을 들어 보이며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봤는데 놀랍게도 시청자 중에서 아랍어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굉장히 빠르게 올라갔지만 누군가 아랍어 댓글을 해석해줬다.
[앞에는 인사 말이고, 뒤에 내용은 이렇게 아름다운 음색을 가진 한국 가수는 처음이다. 앞으로 응원하겠다. 라는 내용입니다.]
"오! 감사합니다. 그럼 내친김에 감사합니다. 아랍어로 좀 가르쳐 주세요."
[شكرا لك, 슈크란이라고 발음합니다.]
[슈크란이네. 슈크란.]
[아랍어로 감사합니다. 슈크림빵 메모.]
[ㅋㅋㅋㅋ]
[아, 왜 저런 게 웃기지. 아재인가.]
나도 실시간 채팅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댓글에 복사해 붙여넣기를 했다.
"좋아, 굿굿. 감사합니다."
난 아래로 조금 더 내렸고, 중간에 중국어도 보였고 일본어도 보였지만 그건 굉장히 자신 있게 댓글을 달았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놀라며 말한다.
[뭐야! 일본어랑 중국어도 할 줄 아나 봐!]
[헐... 미쳤네... 이게 한국대 클래스인가?]
[대박! 역시 한국대 여신님.]
[윤세나! 윤세나! 우윳빛깔 윤세나!]
[재색겸비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두둥, 탁!]
[얼쑤, 좋다!]
[ㅋㅋㅋ 죽이 잘 맞네.]
난 손을 휘적휘적 저으면서 말했다.
"중국어는 어려워서 회화는 어느 정도 되는데 쓰는 게 좀 아직도 어렵고, 일본어는 읽고 쓰고 다 할 줄 알죠. 제2외국어로 고등학교 때부터 배웠거든요."
[제2외국어? 그런 것도 있었습니까?]
[제2외국어는 그저 거들 뿐.]
[아하, 그런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제2외국어로 배우면 저 정도 수준까지 되는 겁니까?]
[개소리 자제요.]
"제가 좀 열심히 공부한 편이긴 하죠. 일본 애니메이션 재미있는 거 되게 많잖아요. 와나타베 신이치, 신카이 마토코, 곤 사토, 오소다 마모루, 미아쟈키 히야오나. 하여간 일본이 애니메이션은 엄청 잘 만들잖아요."
일본을 썩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본 사람들 전체가 싫은 것도 아니고. 일본의 국가적인 이념에 대해서 싫어하는 거지 우리보다 잘하는 건 뭐 잘한다고 얘기해 줄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강국인 건 맞으니까.
[친일파다!]
[이 시국에?]
[이 시국 지난 지가 언제인데.]
[무슨 소리임? 아직도 진행 중인데?]
[대한민국의 냄비 근성을 잘 모르시네. 끝났습니다.]
"아니, 애니메이션 잘 만든다고 했다고 친일파는 좀 아니지 않아요? 헐... 너무하시네."
난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래, 특히 남자들은 다 조용하자. 이유는 우리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잖아.]
[한, 두 번 도움받은 게 아니긴 하지. 크흠, 흠.]
[우리 거기까지만 하자.]
[동지들, 서양도 괜찮은 게 많다네.]
[그래도 비슷한 나라가 아무래도 좀...]
[그만하자니까.]
실시간 채팅을 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나한테 뭐라고 할 게 아니네. 이왕이면 국산을 이용합시다."
난 그렇게 말하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나 혼자 있는 게 아니라서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채팅창은 ㅋㅋㅋ로 도배가 된다. 그 와중에 한국은 퀄리티가 떨어져서 안 된다는 채팅이 엄청나게 올라온다.
뭐, 그렇긴 하지. 나도 힘들 때 스스로 위로를 해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동감하는 표정을 지었더니 그걸 포착한 사람들이 들개처럼 달려들었다.
[뭐지? 왜 다 아는 얼굴이지?]
[뭔가 상당히 공감하는 듯한 그런 표정인데?]
[누나 야동 보세요?]
[세나야, 너도 야동 보냐?]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진짜 강퇴하지 마라.]
[그래 ㅋㅋㅋㅋ 솔직히 원인 제공했다.]
갑작스러운 야동 공격에 난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니, 나도 22살이나 먹었는데 당연히..."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숙이고 입은 가린 채 마이크에 대고 속삭였다.
"본 적이 있죠. 아니, 안 본 사람도 있나? 다 봤을걸? 여자들은 안 본 사람 있으려나?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영화도 요즘 잘 나오니까."
성인 영화는 그래도 한 편쯤은 다 봤겠지.
내 말에 다들 전체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가 성적으로 특히 여자에게 개방적이면 천박하다거나 문란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에 좀 숨기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여자도 성욕을 느끼나요?]
"아니, 이건 무슨 바보같은 질문이야."
여자도 성욕을 느끼냐니. 그럼 여자가 무슨 로보트인가?
"인간이 느끼는 기본적인 3대 욕구가 뭡니까?"
[식욕, 수면욕, 성욕!]
[식, 수, 성.]
[식욕, 색욕, 수면욕]
[성욕이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다들 잘 아시네. 여자는 그럼 인간 아닙니까? 그런데 이건 좀 다르지. 성욕=첵스는 아니라고요. 남자는 성욕하면 당연히 첵스라고 생각하는데. 여자는 아니에요."
[그건 무슨 소리에요? 성욕이 섹스 하고 싶은 마음 아닙니까? 선생님!]
[우와아! 성교육이다!]
[어허! 어린 애들은 잘 시간이다. 얼른 나가라.]
[19걸고 우리 조금 더 찐하게 가시죠.]
"거기까진 잘 안 가요.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닐 것 같은데. 키스나 뭐... 포옹, 애무 정도 선에서 욕망이 그친다고 해야 하나?"
난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1타 강사님! 그럼 성욕을 언제 느끼십니까!]
[궁금하다! 알려줘라! 알려줘라!]
난 고개를 갸웃했다. 성욕을 느끼는 때? 이건 나한테 맞는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 난 솔직히 남자를 보고 성욕이 있기 보다는 여자를 보고 성욕을 느끼고 있으
니까.
이게 나중에는 변할지 모르겠지만... 변하는 게 아니라 내 주어진 상황에 맞춰가는 거 아닐까?
어쨌든 성소수자라는 길이 험난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아무 남자와 만나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내가 마음에 들어야지.
"으으."
뭔가 기분 나쁘다.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진짜 친한 친구라면 할 수 있으려나? 난 갑작스럽게 떠오른 정후의 얼굴이 떠올라 입을 쩍 벌렸다.
"대박..."
아니 얘가 왜 여기서 나와? 난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가지만 알려주세요!]
[그래요. 너무 빼시네 진짜!]
[여자는 언제 성욕을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그냥 일반적인 의견을 얘기했다.
"아니, 뭐... 여자라고 크게 다르겠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단둘이 어두운 곳에 있다거나. 아니면 뭐, 야한 영화를 본다거나 분위기에 흠뻑 취하거나 이성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거나 몸 좋은 남자를 본다거나. 뭐 그럴 때?"
[역시 1타 강사님.]
[윤세나를 자빠뜨리는 법. 메모, 메모.]
[미쳤네! 선 넘지 마라!]
[그래, 저 사람 진짜 미쳤다. 내가 먼저 자빠뜨릴 건데.]
[애송이들... 내가 먼저다.]
별안간 나를 누가 먼저 자빠뜨리는지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져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 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