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75. 한국대 소냐
난 치킨을 먹고 팀 스케줄을 소화했다. 다음 경기에 대해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되도록이면 좋은 팀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했다.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은 연승 기록에 너무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지만 선수 입장에서 또 팬들이나 언론에서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으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우리도 연승 계속 하면 좋으니까.'
선수들도 신경 쓰지 말라는 주문에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선수 입장에서도 연승이 깨지지 않길
바라는 건 팬들이나 감독님, 코치님들처럼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자, 오늘 다들 고생 많았고. 세나는 역시 좋았고, 찬동이도 많이 좋아졌다."
감독님의 칭찬에도 찬동이는 웃지 못했다. 최근 경기 출전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기 때문인데 스크림에서도
경기에 출전해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다가 은근히 나와 비교를 당하며 십자 포화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왜 하필 나를 가지고 그러는 거야.'
Y1 팬들은 최근 SN 엔터테인먼트랑 계약하고 너튜브로 첫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걸 가지고 말들이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계속 되고 있기는 하지만 윤세나니까 또 경기력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활동한다고 하니까 믿어 보자는 의견이 많았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Y1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것들이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해준 느낌이었다.
그에 반해서 찬동이는 자기가 못하면 여자친구까지 함께 욕을 먹는다는 부분에 대해서 심함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여자친구랑 노느라 경기력이 안 나오는 거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프로게이머는 연애도 하지 말고 취미 생활도 하지 말고 결혼도 하지 말라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여자친구나 가족을 건드리는 건 정말 해선 안 될 짓 아닌가? 그런 팬들은 정말 팬도 아니다.
"그래, 야. 오늘 찬동이 잘하더라."
"너 오늘 진짜 잘했어. 얼굴 좀 펴라. 얼굴 좀."
칭찬을 해줘도 죽상을 하고 있는 찬동이에게 팀원들이 한 스푼씩 칭찬을 더해줬지만 찬동이는 한숨을 내쉬며 비관적인 말을 내뱉는다.
"에이, 스크림에서 잘하면 뭐해요. 경기에서 잘 해야지."
"그건 맞지."
눈치 없는 상현 오빠의 말에 난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봤다. 상현 오빠는 그런 내 시선에 움찔하더니 얼른 찬동이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말했다.
"근데 원래 스크림에서 잘하는 사람이 경기에서도 잘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도 스크림에서 경기력 좋은 사람이 보통 경기 출전하잖아."
상현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내 눈치를 봤고 난 감독님과 코치님을 쳐다봤다.
갑작스레 내 시선을 받은 코치님들도 한 마디 씩 한다.
"그래, 상현이 말이 맞지. 스크림에서 잘하면 결국 경기에서도 나오게 돼 있어. 개인마다 시간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그래. 그리고 원래 일류급 선수라도 연습할 때만큼 본 경기에서 잘 못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감독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요즘에 너 그리고 좀 심리적으로 압박감도 느끼고 있고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도 좀 많이 받고 하니까 그런 게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거야. 네가 그렇게 계속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될 것도 안 돼."
코치님과 감독님의 진심 어린 조언과 팀원들에게 경기력에 대한 칭찬을 받자 조금은 표정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 찬동아. 너 오늘 진짜 잘하던데? 반응도 좋고. 마지막 경기는 진짜 네 텔 두 번이 다 한 거였어."
내 말에 찬동이가 그제야 조금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팀에 오더를 맡은 사람 입장에서 스크림을 할 때면 누구라도 실수하면 가차 없이 때리고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하고 있었기 때문에 찬동이도 내가 잘했다고 하면 자기가 잘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 알지? 나 칭찬에 인색한 거."
내가 생각하는 기준치가 SKT Y1 선수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선이 무척이나 높았기 때문에 내게서 칭찬을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은 잘 한다는 말보다 피드백을 더 많이 당했기 때문에 내 칭찬엔 고래도 춤을 추게 하는 힘이 살짝 있긴 했다.
'이게 요긴하게 쓰이네.'
솔직히 오늘 찬동이의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찬동이가 보여줬던 능력에 비하면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솔직히 찬동이 정도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걸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는 찬동이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때론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지.'
최근 탑은 하데스, 우재가 거의 출전하고 있었는데 죽음의 신이라는 닉네임답게 LCK 선수 중 가장 많은 솔로 킬을 내고 있었다.
18살이라는 나이 자체가 이미 살벌한 무기였다. 우재는 매 경기를 치를 때마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상대방을 라인전에서 찍어 누르는 운영을 많이 했다.
정말 젊은 패기로 겁 없이 달려드는 이 신예 선수에게 상대 선수들은 번번이 킬을 줬고 그래서 그런지 최근 우재의 기세가 아주 등등했다.
'걱정스러운 건 너무 자신만만하다는 거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았는데 지나치면 자만이 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이란 사자성어도 있는 것처럼 어쩌면 그 사자성어가 우재에게 적용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얘는 자신감이 너무 없어서 문제고...'
찬동이는 1+1으로 자존심에 더해서 자존감까지 떨어진 것 같아 걱정이다.
"자자! 다들 수고했고, 저녁 먹자."
"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녁 11시, 스크림을 끝내고 우린 저녁을 먹기 위해서
휴게실로 이동했다. 마지막 남은 훈련인 12시부터 4시까지 솔로 랭크를 하기 위해선 든든히 먹어야 한다.
"우리 민영이 어디 있니?"
"아, 나도 밥 먹을 땐 좀 편하게 먹자!"
"응, 편하게 먹어. 누나가 뭐 괴롭히니?"
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민영이를 쳐다봤다.
"와... 진짜 저 표정..."
"왜? 내 표정이 어때서?"
난 한껏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민영이를 봤고 민영이는 그런 내 표정에 진심으로 토가 나온다는 표정으로 입을 막는다.
난 그런 민영이를 보곤 웃으며 어깨로 민영이 어깨에 부딪치며 옆자리에 앉아 메뉴를 살폈다.
"크으, 돼지 국밥이라. 냄새 죽이네."
저녁 메뉴는 뜨끈한 국물이 일품인 돼지 국밥이었는데 한 끼 먹으면 새벽 4시까지 든든하게 솔로 랭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감독님과 잠깐 남아서 대화를 나눈다고 조금 늦게 찬동이가 들어왔다.
"찬동아 이리 와."
난 손짓을 해 찬동이를 부르며 내 옆에 의자를 빼줬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놔주고 돼지 국밥 한 그릇을 빼서 세팅해 줬다.
찬동이는 어쩐지 조금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가 빼준 옆자리에 앉기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어? 여자친구랑 통화했냐?"
"아니."
찬동이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살짝 감돌고 있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웃고 있으니까 보기 좋았다.
최근 부진한 경기력으로 경기도 많이 못 나가고 욕은 또 욕대로 많이 먹고 있어서 표정이 많이 어두웠는데.
"누나."
민영이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불러서 고개를 돌렸더니 머리끈을 내게 건네준다.
"땡큐."
난 민영이에게서 받은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는 한쪽에 쌓인 공깃밥을 들어서 민영이 앞과 찬동이 앞에 놔주고 내 공깃밥도 하나 들어서 놨다.
"깍두기!"
손이 닿지 않는 깍두기는 상현 오빠에게 손을 내밀어서 받은 뒤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먹어봤다.
"여긴 간이 딱 나한테 맞게 와서 좋다니까."
이 돼지 국밥 집이 좋은 이유가 간이 나한테 딱 맞기 때문이다. 따로 뭘 더 할 필요가 없이 공깃밥을 넣으면 먹기가 딱 좋았다.
물론, 나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뭘 더 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특히나 진선 오빠는 고기나 순대는 하나도 못 먹었다.
"세나 먹을래?"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착해?
"물어보지 말고 달라니까."
공깃밥 뚜껑에 순대와 고기를 잔뜩 담은 걸 진선 오빠가 내게 건내줬다.
난 내 돼지 국밥 그릇에 바로 넣고 밥도 말았다.
"음, 행복해."
양이 많아진 돼지 국밥을 보며 잔뜩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팀원들이 나를 보며 되게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누나는 진짜 엄청 먹는 것 같은데 살이 왜 하나도 안 찌냐."
민영이의 말에 양껏 숟가락에 떠서 돼지 국밥을 입에 가져가며 손을 저었다. 잔뜩 바람을 불어 식혀서 먹었는데도 뜨거워 입안에서 열심히 굴려야 했다.
"아, 뜨거워. 좀 식혀서 먹는 게 낫겠다."
내 말에 몇 명은 입안에 넣으려다가 멈칫했고 몇 명은 이미 입안에 가져가서 나처럼 뜨거움을 참으며 열심히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였다.
"하아! 하! 뜨거워!"
"앗, 뜨거워!"
"내가 뜨겁다고 했잖아."
난 뜨거워서 몸부림치는 우찬 오빠와 뱅기 코치님을 보며 좋다고 까르르 웃었다. 상현 오빠는 감각을 잃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잘도 먹었다.
"아니, 오빠는 안 뜨거워?"
"그냥 먹을만 한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인지 또 한 숟가락 떠서 입에 가져간다. 엄청 뜨거워하는 선수들과 그 모습을 보고 입에 가져가길 꺼려 하는 사람들을 보며 상현 오빠는 웃더니 말한다.
"아, 이거 참. 요령들이 없네. 깊게 떠서 먹지 말고 겉을 떠서 먹어야지. 그렇게 깊이 숟가락을 집어넣고 뜨니까 당연히 뜨겁지."
"오, 천재!"
진선 오빠가 눈을 빛내며 상현 오빠를 쳐다봤고, 다른 선수들도 상현 오빠의 말에 똑같이 따라서 먹기 시작한다.
"이러니까 진짜 좀 괜찮네."
준현이의 말에 상현이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말한다.
"뭐야? 준현아. 지금 날 의심한 거니?"
상현이의 말에 준현이가 고개를 힘차게 젓더니 말한다.
"아니요. 페이크 센세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준현이의 말에 다들 헛웃음을 지었고 상현 오빠만이 흐뭇한 얼굴로 준현이의 등을 두드려주며 말한다.
"녀석."
아니, 왜 개그맨들이 하는 콩트를 보는 것 같지?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비어있는 공깃밥에 숟가락으로 돼지 국밥을 한가득 덜었다.
"난 이렇게 먹어야지."
돼지 국밥은 이렇게 밥을 말고 남은 빈 공깃밥 안에다가 떠서 식혀 먹으면 금방 먹을 수 있다.
안에 들어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국물도 식혀서 먹을 수 있고. 일석이조라 이거지.
그런 내 모습에 따라하는 몇몇 선수들이 보였다. 난 그런 선수들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거야. 바로 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