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70. Y1 vs 담언 (70/95)



〈 70화 〉70. Y1 vs 담언

내가 어디까지나 김주원 대표를 괜찮다고 한 건 사람으로서지 연애 상대로 또는 내 형부 상대로 괜찮다고   아니었다.


난 언니에게 이 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얘기를 했고 내 말을 들은 언니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아니야, 아니야. 언니가 할게. 언니가. 오늘 경기도 있고 힘들었을 텐데. 언니가 할 테니까 넌 쉬어. 푹 쉬어."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어깨를 눌러 억지로 다시 자리에 앉히고는 그릇을 싱크대로 나르기 시작한다.

난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됐거든. 그런다고 내 생각이 바뀔  같아?"

난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그릇들을 싱크대에 가져가 언니보다 한 발 빠르게 고무장갑을 꼈다.


"아니, 언니는 정말 널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는 거지. 절대로 뭐 바라고 이러는 거 아니야."
"퍽이나 그렇겠다."


 언니를 흘겨보며 옆으로 비키라고 손짓을 했다. 언니는  손짓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고무 장갑을 벗기려고 했다.

"아우,  이래! 저리 가라고! 가라고!"

이 언니가 결국 내가 힘을 쓰게 만드네. 난 엉덩이로 언니를 미치며 싱크대 앞을 차지했다. 잔뜩 힘을 주고
버티며 난 설거지를 시작했다.

"내가 한다니까 그러네."
"절대 안 되지."


이런 거 하나, 하나 해주면서 내 마음을 돌리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다. 뭐, 앞으로 김주원 대표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달리질 수도 있지만...

하여간 언니가 이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지. 뭔가 보여줘야 할 건 언니가 아니라 김주원 대표님 쪽이다.


 옆에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언니를 보며 난 피식 웃곤 말했다.


"가서 TV나 보고 있어. 맛있게 해줬는데 설거지는 내가 해야지."

 그렇게 언니를 달래며 소파로 보냈고 빠르게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도 오랜만에 하니까 재미있네?'

숙소 생활을 하면서 설거지를 어머니께서 다 해주시니까 설거지를 할 기회가 없었는데 집에 와서 오랜만에 하니까 재미있었다.

매일 하면야 재미없고 엄청 쌓인 싱크대를 보면 하기 싫기도 하지만 뭐 이렇게 그때그때 바로 하면 많이 힘들지도 않고 재미도 있는 것 같다.


'하... 진짜 뭔가 여자가 된 것 같다.'

남자일 때도 설거지를 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다. 요리를 만드는 것도 좋아해서 동영상을 보며 많이 따라
하기도 했고.

요즘엔 남자가 그렇게 하는  이상한 게 아니라 다행이었지. 옛날에 태어났으면 진작에 고추가 떨어졌겠지?


어쩌다 보니까 난 떨어져 버린 케이스고...


하여간 여자가 돼서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남자로 살아왔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솔직히 처음에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을 때도 있었지만 분명히 여자라서 편한 부분도 존재했기 때문에 나름 만족하며 적응해서 살고 있는  같다.


'확실히 한국에선 예쁘고,  생기면 편한 것 같긴 해.'

 외모가  났다고 다 잘 사는 건 아니겠지만 소소하게 서류 면접에서 떨어질 확률이 적다는 거나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준다거나 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물론, 잘난 사람도 잘나서 받는 스트레스나 어려움들이 있겠지만 못나서 받는 스트레스나 어려움. 억울함에 비하면 복에 겨운 소리일 거다.


'확실히 시선 적응은 안 되는 것 같아.'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시선적인 부분들은 적응이 안 되는  같다. 노골적으로 가슴을 본다거나 엉덩이나 몸매를 훑는 시선들이 굉장히 많이 느껴진다.


'그래도  신체적 성희롱은 안 당해봤네.'

보통 몸매가 좋은 여자들이 신체적 성희롱에 굉장히 쉽게 노출된다고 들었는데 난 아직까지 그러한 경험은 없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몸매가 그렇게  훌륭한 편이 아니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씻을 때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뭔가 앙칼져 보이나? 확실히 순한 얼굴은 아니고 뭔가 세련된 도시적인 느낌의 얼굴이라 그런 부분이 어쩌면 방패가 되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케이, 다 했다."

난 고무 장갑을 벗어 힘차게 물기를 털어준 뒤 손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고생했어."

언니가 설거지를 끝낸 나를 보며 말했고 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잘 먹었어. 오랜만에 언니가 해준 거 먹으니까 맛있네."

나도 언니를 따라 소파에 앉았고 언니는 소파에 앉은 나를 보며 묻는다.

"거기 음식이 좀 부실해? 맛이 없어?"
"아니야. 맛있어.  밥 같은 느낌이야. 약간 하숙생 주인아주머니께서 밥을 해주시는 느낌?"
"그럼 괜찮겠네. 맛있겠다."
"응, 맛있어. 근데 뭔가 다르긴 달라. 집  같은 거지. 그게 집 밥은 아니니까. 반찬이 적어도 언니가 해준 걸 여기서 먹는   맛있는  같아."

내 말에 언니는 뭔가 뿌듯한지 미소를 지으며 내 엉덩이를 토닥인다.

"아이구, 그랬어요?"


갑작스러운 언니의 터치에 당황한 나는 언니의 손을 막았고 언니는 집요하게 내 손을 피해 엉덩이를  대씩 때린다.

찰싹!

집에서 편하게 입는 돌핀 팬츠를 입어서 그런지 아주 찰진 소리가 났다. 언니도 그걸 느꼈는지 되게 좋아하면서 말한다.

"우리 세나 엉덩이 탱탱한 거 봐라. 소리가 다르네. 소리가 달라."
"아, 그만 좀 때려! 아파!"


하여간 손은 더럽게 맵다. 내가 여자라서 확실히 힘이 좀  들어간 느낌은 있는데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래도 너무 아팠다.

남자였을 땐  손은 기본이고 발도 날아왔으니까. 지금은 정말 장난처럼 때리지만 남자였을 땐 진짜 날 죽이려고 때리는 거라서 강도가 많이 달랐다.

'이것도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네.'


난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오랜만에 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확실히 대화의 주제나 깊이도 남자였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됐다.


"너는 누구 마음에 드는 사람 없어? 거기 프로게이머들 보니까 귀엽게 생긴 애들 많던데."
"아, 우재?"
"우재? 우재가 누구야?"
"왜 덩치 크고 안경 끼고 뽀글 머리한 애 있잖아. 어?
그러고 보니까 우재는 아직 안 나온 것 같은데."


내 말에 언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걘 누군지 몰라. 걔 말고 그 칸느인가?"
"에에? 찬동이? 찬동이가 귀엽다고?"


내 물음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귀엽게 생겼던데? 인기 많지?"

찬동이가 인기가 많은가? 하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인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인기야 페이크가 제일 많지. 상현 오빠. 미드 라이너."
"아아, 알지. 페이크. 근데 언니가 말하는 인기는 그런 인기가 아니라. 그냥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은  같다는 말이지."
"그런가?"

 팔짱을 끼고 생각해 봤는데 솔직히 찬동이가 여자한테 인기가 많은 건 모르겠고 그냥 제일 편한 것 같기는 하다.

그건 내가 남자라서 그런 것 같은데? 솔직히 상현 오빠 빼곤 다 편한데. 아니, 상현 오빠도 이젠 좀 편해졌지.

하루 그래도 같이 돌아다녔다고.

"왜? 너도 관심 있냐?"
"무슨 소리야. 그냥 친구야. 친구. 그리고 걔 여자친구 있어."
"아, 이미 임자가 있어?"
"아니, 난 관심 없다니까."
"누가 뭐래? 그냥 이미 임자가 있어? 하고 물어본 것뿐인데. 이상하게 과민 반응하네? 너 설마 진짜..."
"아니라고."


난  잘라 말했다. 여전히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한테 무슨 소리야.

그러거나 말거나 세연 언니는 나를 게슴츠레한 얼굴로 바라보며 한껏 의심스럽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겼는다.


"아니라고. 아니라고요. 언니 눈이 이상한 거야. 걔가 뭐가 귀여워. 귀여운 건 우리 우재가 훨씬 귀엽다고."


내 말에 언니는 또다시 나온 우재라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우재? 우재가 누구야. 너랑 같은  선수?"
"어. 같은 팀 선수."
"걔도 프로야?"
"프로지."
"1군?"
"응."


내 대답에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갸웃하더니 말한다.

"근데  한 번도  나왔어?"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 경기 경험도 부족하고. 근데 아마 금방 나올걸? 이번 시즌에 감독님께서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볼 거라고 하셨거든."
"경기를 통해서 직접?"
"응. 뭐, 이제 강등도 없고 하니까. 감독 입장에서는 실험할  있는 게 많아졌지."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결승은 가야지."
"뭐, 당연히 우승을 생각하시겠지. 근데 내 생각엔 스프링 시즌에  전력을 다하고 목숨을 걸고 그럴 것 같진 않아.  분위기 자체가."


 말에 언니가 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내용이야 내부에서 직접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가 아니면 읽을 수 없는 분위기니까 아무래도 관심이 가긴 하겠다.


"팀원들 말고 친해진 프로게이머 있어?"
"아니."


내 대답에 언니는 세상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왜? 경기 끝나고 인사도 서로 나누고 그러잖아."
"아, 그거야 그냥 의례적으로 악수하는 거고. 서로 친해질 그런 자리가 따로 마련된다거나 대화를 나눈다거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난 상당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 언니를 보며 물었다.

"왜?"
"아니, 그 대프트라는 사람 엄청 귀엽게 생겼던데. 잘하기도 엄청 잘하는 것 같고. 나 완전 팬 됐잖아."
"오늘 처음 보고 오늘 바로 팬이 됐다고?"
"응."

팬  쉽게 되시네.  어이가 없어 말했다.

"아니,  많은 팀 중에서  하필 담언이야?"

담언은 우승을 놓고 우리랑 가장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될 팀이었다. 그런데 그런 팀을 응원하겠다고? 아니, 응원도 모자라 팬이 되시겠다?


여동생이 있는 팀을 우승해도 모자랄 판에 이건 무슨 소리야? 내가 날카롭게 째려보자 언니는 슬쩍 내 눈빛을 피하며 말했다.

"대프트가 귀여워서?"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에겐 우재가 필요하다.'


#


언니와 함께 TV를 보다가 난 먼저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잠에서 깨 밖으로 나오니까 거실 위에는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언니!"

난 식탁으로 향하며 언니를 불러봤지만 집 안은 고요했다.


"뭐야? 벌써 나갔어?"

시간을 확인하니 8시가 안 넘은 상태였다. 학교 수업은 보통 아무리 빨라도 9시 시작이니까 학교의 거리로 봤을 때 언니가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건 좀 이상했다.


난 핸드폰을 열었고 언니에게 온 문자를 볼  있었다.


[아침 차렸으니까 먹고 쉬고 있어. 언니 아침 운동하고 바로 학교 갔다  테니까.]


엥? 운동? 메시지에 분명 아침 운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숨쉬기 운동만 할 줄 알았던 언니가 갑자기 운동을 한다고?

"어디 몸이  좋은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난 간지러운 배를 긁적이면서 식탁에 앉아 언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다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도 언니에겐 전화가 없었는데 운동할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핸드폰을 아예 확인하지 않는  같았다.

"갑자기  운동이야?"

난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뭐 운동이야 좋은 거니까 동생으로서 적극 권장할 만한 일이다. 어제도 계속 TV를 볼 때마다 날씬하고 예쁜 배우들이 나오면 자기가 살찐 것 같다고 앵무새처럼 말하기도 했고.


'운동까지 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침 운동까지 나갈 정도면 굉장히 적극적인 것 같았다. 학교 끝나고도 하나 그럼?


하여간 오늘은 내가 집에 있어서 남자친구를 만나는 게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설마 내가 집에 있는데 김주원 대표님 만나러 가진 않겠지? 언니가 만나자고 해도  만나야 맞지.


"아, 심심해."


난 소파에 앉아서 TV를 켜곤 열심히 다시보기 검색을 했다. 무료 위주로 돌려가며 마음에 드는 드라마다 영화를 찾았다.

오늘 하루는 진짜 아무것도  할 거다.


난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고 있는데 별안간 전화가 걸려온다. 난 핸드폰 화면을 봤고 등록된 번호가 아니었다.

"스팸인가?"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왔기에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혹시나 내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자 밝은 목소리의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혹시 윤세나 씨 핸드폰 맞나요?]
"아,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아,  SN엔터테인먼트 소속 차유라 매니저라고 합니다.]
"매니저요?"

아니, SN엔터테인먼트랑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 뭔 매니저야? 사람을 보내겠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네네, 오늘 쉬는 날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지금 제가 찾아봬도 될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