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66. Y1 vs 담언
부 계정을 만들어 연습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레벨 30을 찍어야 했고, 챔피언의 숫자도 적었다.
난 현금의 힘을 빌려 레벨을 빠르게 30까지 찍고 최소 필요한 챔피언들을 갖춘 후에 랭크 게임에 돌입했다.
미드가 아니라 서포터여서 승률이 높진 않았지만 난 착실하게 랭크를 올리고 있었다.
'연습이 안 되긴 하네.'
낮은 티어에서 게임을 하다 보니까 숙련도는 올라가지만 연습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쉽게 스킬을 허용하고 또 말도 안 되는 싸움이 자주 일어나서 난감한 상황을 자주 겪었다.
"어? 이걸 왜 들어가? 원딜아! 왜 그래! 네 템을 봐라!"
난 답답한 마음에 들리지도 않는 말을 참 많이도 했다. 그런 내가 웃긴지 주변에서 나를 보고 피식거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수가 없었다.
"하... 이걸 내 욕을 한다고?"
난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누가 봐도 들어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혼자 급발진 해서 들어가 놓고 내 탓을 하다니...
난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아무리 티어가 낮다고 하지만 이거 정도가 너무 심하잖아.
"그래도 플래티넘인데 원딜 상태가 왜 이러지?"
내 말에 진선 오빠가 웃으며 말한다.
"적어도 다이아는 가야 좀 편할걸?"
플래티넘 하위라서 그런가? 상위면 좀 다를까? 오빠 말대로 다이아에 가면 원딜 상태가 좀 괜찮아지려나? 하여간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도 게임에는 집중했다.
"절대 안 질 거야."
이걸 질 수 없다. 얼마나 우리한테 유리한 상황인데. 몇 번 원딜이 던졌다고 해서 질 게임이 아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고른 챔피언이 쟈이라였다.
충분히 한 타에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챔피언이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봤다.
"그래도 우리 미드랑 정글이 잘 해서 다행이네."
솔직히 미드, 정글만 잘해도 게임이 한결 수월하다.
난 좋은 말로 원딜에게 타이른 뒤 우리 미드와 정글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게 시야를 장악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빼라, 빼. 나 없잖아."
난 위험 핑을 찍으면서 빠르게 아래로 내려왔다. 바텀이 많이 힘든 상황이라는 걸 정글도 인지했는지 내가 시야를 장악하면서 아래로 뛰자 나를 따라서 내려온다.
한번 보자는 핑이 연신 찍혔고 난 제발 원딜이 먼저 급발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바텀의 신께 기도드렸다.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우리 원딜은 침착하게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됐다. 이거 됐다. 다 잡을 수 있다."
우리를 보고 황급히 자신의 포탑 쪽으로 도망가는 두 바텀 놈들을 보며 타이밍을 봤다. 두 명이 순간적으로 겹쳐지는 순간 난 점멸을 사용해 E 스킬을 날렸다.
"됐다!"
두 명이 전부 묶였고 난 바로 궁과 W, Q 스킬을 연계했다. 순간적인 폭딜이 들어갔고 정글과 원딜이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그림이 나왔다.
"아, 킬 차라리 정글이 다 먹는 게 좋은데."
원딜과 정글이 사이좋게 1킬씩 먹었는데 내가 봤을 때 원딜은 킬을 먹어도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초반 단계에서 차라리 정글한테 힘을 더 실어줘서 게임을 터뜨리게 하는 편이 더 승산이 높아 보였는데 아쉽게 됐다.
"아, 뭐 그래도 좋아. 나쁘지 않아. 이 정도면 충분해."
바텀도 한 번 풀어줬고 안 그래도 잘 커버린 우리 정글은 내가 타이트하게 잡아 놓은 시야 주도권을 바탕으로 열심히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전체 채팅으로 상대 정글이 욕설을 뱉을 정도로 상당히 잘했는데 플레이하는 걸 가만히 보니까 플래티넘이 아닌 것 같았다.
"너무 잘하는데, 우리 정글? 이거 부 계정인가?"
동선이나 갱 타이밍, 오브젝트 컨트롤 모든 게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척척 맞물려 돌아간다. 플래티넘이 이 정도 플레이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됐다.
"나중에 게임 끝나고 물어봐야지."
잘하는 정글 유저 하나 열 원딜 안 부럽다더니. 게임은 정말 미끄러지듯이 굴러갔다. 정글 차이라는 말이 우리 팀에서도 상대 팀에서도 나올 정도로 수준급의 플레이를 보여줬고 덕분에 우린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었다.
"정글 게임 안 하네."
난 웃음을 터뜨리며 계속 보이지 않는 상대방 정글에게 위로를 건네줬다.
[진짜 개 ㅁㅊㄴ이네. ㅅㅇㅋㅍㅅ냐?]
[힘내세요...]
우리 팀이 봐도 안쓰러웠지 상대 정글에게 한 마디씩 위로를 건네는 걸 보니 우리 정글이 지독하긴 했던 모양이다.
[근데 아무리 봐도 우리 정글 형 플래티넘은 아닌 것 같은데. 부 계정이야?]
[ㅇㅇ 원래 그마임.]
[하. 어쩐지. 역시 뭔가 다르더라.]
난 채팅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그마인가? 그마면 이거 무조건 친추해서 듀오 해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상대방 정글이 게임을 하지 않아서 서렌을 쳤고 난 게임이 끝나자마자 바로 나와서 상대방 정글에게 슬쩍 친추를 걸었다.
"네가 그마라면 날 알아봤겠지?"
내가 다 자기가 플레이하기 편하게 판 다 깔아주고 슈퍼 플레이도 몇 번이나 보여줬으니까 내가 현지인이 아니라는 거 알겠지?
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렸다는데 다행스럽게도 내 친추를 받아줬다.
난 바로 채팅을 보냈다.
[듀오 하실래요?]
[아, 쟈이라님이시구나. 잘하시던데 저야 좋죠. 킹텀은 피할 수 있겠네요. 원래 티어는 어디세요? 부 계정이시죠?]
[아, 네. 저 원래 챌린저요.]
내 말에 채팅이 끊긴다. 설마 안 믿는 건가? 방금 한 판은 충분히 챌린저스러웠다고 생각하는데. 뭐,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까 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난 조금 상위 티어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도록
그마 정글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 챌린저요? 지금 서포터 챌린저 몇 명 없는데...]
[거짓말 아니고 진짜예요.]
[네네.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시작할까요?]
[네!]
난 그마 정글 분과 함께 협곡을 누렸고, 연전연승을 거뒀다.
"야, 이렇게 편한 걸."
팀에 한 명이라도 이상한 사람을 줄이는 듀오가 내가 봤을 때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듀오가 답이다.
어차피 마스터부터는 듀오를 못하기 때문에 다이아까지만 가도 내가 봤을 때 성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하세요? 저 이제 나가봐야 하는데.]
오후 7시부터는 스크림이 잡혀 있어서 솔로 랭크를 할 수 없었는데 짧은 시간에 굉장히 점수를 많이 올렸다.
[아, 전 계속 할 거예요. 언제 또 하세요?]
[저 한 12시나 가능한데. 그때까지 하세요?]
[네네. 저 새벽까지 해요.]
[오, 그럼 그때 또 같이 해요.]
[네, 알겠습니다.]
난 약속까지 잡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스크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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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림에서 난 실험적인 서포터 픽을 가져가며 바텀 교전에서 우위를 가져왔다. 그 우위를 바탕으로 용 한 타에서 큰 이득을 많이 봐서 스크림 경기도 모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확실히 세나가 그런 부류의 챔피언들을 하니까 바텀 주도권을 꽉 쥐게 되네."
감독님의 말에 난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제가 스킬샷이 좀 정확해야죠."
나 잘난 척 재롱에 팀원들도 감독님, 코치님들도 다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그래. 우리 세나가 스킬샷은 정확하지."
감독님의 인정을 받은 나는 거만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양손을 떨면서 호응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런 내 모습에 팀원들은 착하게도 환호를 질러줬다.
"윤세나! 윤세나! 우유 빛깔 윤세나!"
"호오오오오오오!"
난 만족한다는 미소를 지으며 그만하면 됐다고 손을 들어 보였다.
"부 계정 키우는 건 어때?"
"재미있어요."
내 대답에 감독님이 웃으며 말한다.
"아니, 얼마나 키웠냐고."
"아, 지금 플래티넘 구간이에요."
"연습이 좀 되는 것 같아?"
"어... 숙련도 키우는 건 도움이 되는 것 같은데 상대방이 아무래도 티어가 좀 떨어지다 보니까 만족스럽진 않아요."
내 말에 감독님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쨌든 비밀리에 챔피언을 연습해야 하니까 숙련도라도 많이 키워. 티어야 어차피 계속하다가 보면 오를 테니까."
"네."
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감독님께선 스크림 했던 경기를 토대로 피드백에 들어갔고 우린 집중해서 감독님과 코치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모든 피드백이 끝나고 우린 숙소로 걸어갔다.
"끄응차!"
난 기지개를 켜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는데 그런 내 옆에 있다가 봉변을 당한 찬동이가 파다닥 거린다.
"아, 뭐야? 걸리적거리게. 넌 왜 자꾸 내 옆에 있냐? 내가 좋아?"
"뭔 개소리야. 나 여자친구 있거든."
"아, 그러니까. 여자친구 있는 애가 왜 자꾸 내 옆에서 알짱거리냐고. 네 여자친구한테 다 이른다?"
내 말에 찬동이는 흠칫 몸을 떨며 내게서 멀어지더니 말한다.
"뭐야? 너 내 여자친구랑 아는 사이야?"
"이 바닥이 뭐 다 거기서 거기지. 알려면 내가 못 알 것 같아? 네가 자꾸 내 옆에서 기웃거린다고 다 얘기한다?"
"아니, 기웃거리긴. 그냥 동갑이고 친구고 하니까 편해서 그런 거지."
난 눈을 가늘게 뜨고 찬동이를 바라봤다. 찬동이는 그런 내 눈빛에 어이가 없는지 기가 찬 표정으로 말한다.
"야. 내 여자친구가 너보다 훨씬 예쁘거든? 몸매도...
몸매는 뭐... 하여간. 친구한테 걸리적거린다는 게 뭐냐? 걸리적거린다는 게."
흠. 걸리적거린다는 말은 좀 심했나? 난 손을 들어 보이며 찬동이에게 순순히 사과했다.
"그래, 걸리적거린다는 말은 좀 심했던 것 같다. 내가 사과할게."
내가 순순히 사과하는 모습에 오히려 더 불안한 표정으로 찬동이가 날 쳐다본다.
"왜 그래?"
"뭐가? 사과해도 난리야."
난 다시 스트레칭을 하며 천천히 숙소로 걸어갔다. 숙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린 다시 연습실로 가서 솔로 랭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식사를 맛있게 마치고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가끔은 연습실에서 뭘 시켜 먹을 때도 있었지만 건강한 식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되도록 숙소에서 먹고 오는 걸 권장하셨다.
"오, 맛있는 냄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밀려드는 맛있는 냄새에 나는 코를 킁킁거렸다.
"오늘 메뉴는 갈비찜이네."
"LA 갈비 같은 느낌인데."
선수들은 저마다 메뉴를 예상하며 숙소로 들어갔는데 오늘 야식 메뉴는 갈비찜이었다.
"오, 갈비찜!"
난 눈을 빛내며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가 패딩을 던져버리곤 화장실에 들어가 후다닥 손을 씻었다.
바로 포슬포슬 잘 된 밥을 떠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먹기 시작했는데 내 움직임이 굉장히 돋보였던 모양이다.
"와, 진짜 빠르네."
"뭐야? 벌써 먹고 있어?"
난 손을 들어 보이면서 입안 가득 느껴지는 갈비찜의 풍미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맛있다. 어머니 진짜 맛있어요!"
이 늦은 시간까지 우리를 위해서 식사를 준비해주신 어머니께 난 깊은 감사를 드리며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갈비찜을 먹었다.
"먹고 더 먹어요. 많이 해놨으니까."
"네! 무조건 더 먹을 거예요!"
내가 너무 맛있게 먹자 배가 고파졌는지 다른 선수들도 얼른 밥을 퍼 오기 시작한다.
"이야, 밥 진짜 잘 됐다."
아침은 1군 선수들끼리만 먹어서 뭔가 조용하고 조촐한 느낌인데 확실히 점심과 저녁은 선수단 전원이 함께 먹으니까 굉장히 왁자지껄한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훨씬 좋긴 한 것 같다. 밥을 먹다가 보니까 갑자기 매일 혼자 밥을 먹을 언니가 생각나 뭔가 굉장히 미안해졌다.
"뭐야? 갑자기 왜 울라 그래?"
마주 않은 찬동이가 울먹거리는 날 보더니 물었고 난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안 우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하구만 뭘 안 울어."
"뭐야? 세나야. 갑자기 왜 그래?"
"엥? 누나 울어요?"
"갑자기 운다고? 왜?"
갑작스레 내게 몰린 관심에 당황스러웠다. 아니, 이렇게 여린 감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는데. 몸이 여자가 되니까 마음도 여려졌나?
"아니, 그냥... 언니 혼자 밥 먹고 그러는 게 뭔가 좀 미안해서."
내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린다. 아니, 이게 웃을 일인가? 난 진짜 심각한데. 난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는 팀원들을 봤는데 민영이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낸다.
"남자친구분이랑 먹고 있으실 거야. 그러니까 괜한 걱정 하지 마, 누나."
"에? 네가 우리 언니가 남자친구 있는 건 어떻게 알아?"
"딱 봐도 척이지. 전화 한 번 안 오던데 뭐. 그렇게 외롭고 누나가 그립고 했으면 밥 먹듯이 전화 왔겠지. 누나 최근에 전화받은 적 있어?"
"...."
하. 윤세연, 요것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