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62. 첫 휴일 (62/95)



〈 62화 〉62. 첫 휴일

프로게이머는 토, 일요일이 따로 없다고 했다. 평범한 회사원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토, 일요일에 쉬지만 프로게이머는 경기가 끝나고 다음 날이 빨간 날이라고 했다.


첫 경기 거기에 POG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잔뜩 흥분해 버려서 그런지 늦게 잠들었다. 비몽사몽 한 얼굴로 밥을 먹으면서 진선 오빠에게 물었다.

"찬동이는 왜 안 나와?"

찬동이 빼고는 모두 다 나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직 자고 있나 싶었다. 남자였으면 깨우러 가도 진작 갔지만 여자라 아무래도 좀 민망한 상황을 마주할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찬동이 어제 저녁에 나갔어."
"에? 어제 저녁에?"

진선 오빠의 말에 난 안 떠지는 눈을 간신히 뜨며 찬동이가 있는 방을 쳐다봤다.

"아침 일찍 여자 친구 만나기로 했다던데."

우찬 오빠의 말에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곤 말했다.


"에에? 걔 여자친구도 있어요?"
"어. 아, 너 혹시 알 수도 있겠다. 꿀해라고 BJ야."


나도 BJ라곤 하지만 사실 BJ 전부를 아는 게 아니라서...

내 반응에 우찬 오빠가 말한다.

"모르는구나."
"응, 나도 BJ한지는 얼마 안 돼서."

그나저나 찬동이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좀 충격적이네. 고개를 갸웃하며 우찬 오빠에게 물었다.

"예뻐?"


내 물음에 우찬 오빠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시지."

 고개를 돌려 진선 오빠를 쳐다봤다. 진선 오빠는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고, 상현 오빠도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예쁘신 것 같던데."

남자 셋이 예쁘다는 거 보면 정말 예쁜 것 같은데 난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하곤 말했다.

"어떻게 찬동이한테 예쁜 여자친구가 있을 수 있지?"


내 말에 다들 피식 거리며 마저 남은 식사를 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별다른 말이 없는걸 보니 다른 선수들에게도 찬동이에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다는 게 의문스럽긴 한 모양이었다.

"오빠들은 보통 쉬는 날 뭐해?"

프로게이머가 되고 받은 첫 휴일이라 솔직히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언니와 헤어진 것도 얼마  됐고...


그나마 친한 친구라고 둘 있는 것들도 바쁘신 몸들이고. 사실 오늘도 찬동이를 괴롭혀 어디를 놀러 나갈까 하고 생각했는데 여자친구가 있다니 앞으로 그럴 수도 없을 것 같고.


"집이 서울이면 보통은 집에 가고 그게 아니면 친구들 만나서 놀거나 할 일이 있으면 일 처리하고 연습실 가서 그냥 연습하는 경우도 있고."

난 진선 오빠의 말에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헐. 쉬는 날까지 연습을 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물음에 진선 오빠는 자연스럽게 상현 오빠를 쳐다봤고 우찬 오빠도 고개를 돌려 상현 오빠를 쳐다본다.

무언의 눈빛으로 쉬는 날까지 연습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말해주는 둘을 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실력이 그냥 나올 리가 없지."


새삼 대단하단 표정을 지으며 상현 오빠를 봤는데 그런 내 눈빛에 상현 오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가끔 책 보거나  사러 가기도 해."


자기를 너무 게임만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게 싫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연습벌레 이미지가 싫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심하게 그렇게 대꾸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니, 눈빛으로 때리는 느낌을 받아서."

프로게이머라 그런가 감각이 있네. 난 살짝 웃으며 상현 오빠를 보며 말했다.


"나도 책 읽는 거 좋아하는데."
"어, 그래? 안 그래도 나 오늘 책 사러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갈래?"
"어? 진짜? 오빠가 사주는 거지?"


내 물음에 상현 오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럼 밥은 내가 산다. 근데  책 사는 데 되게 오래 걸리는데 괜찮아?"
"나도 올래 걸리는데."
"그래? 그럼 됐네."

책을 살  미리 정해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이것저것 집어서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사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책을 살  보통 상당히 오래 걸렸는데 난 그러한 시간들이 상당히 좋았다.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도 좋았고.

누군가는 서점을 죽은 책의 무덤이라고 표현했지만 내겐 그 어떤 곳보다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그럼  먹고 준비하고 나올게."
"그래."


상현 오빠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난 밥을 빠르게 먹고 방 안에 들어가서 준비했다. 옷도 사실 몇 벌 없어서 있는 걸 대충 걸쳤고 화장도 대충 찍어 바르곤 나왔다.


'씻는 시간이 그나마 오래 걸리네.'

남자일 때보다 몸은 줄어들었는데 머리카락이 길어져서 그런가 씻는 시간이 배로 늘어난 것 같다. 특히 감는 것도 힘들지만 말리는 건 더 힘들었다.

엉커지 않고 부드러운 머릿결을 선호했기 때문에 빗는 것도 엄청 오래 걸렸다.


역시나 내가 준비를 끝내고 나갔을 땐 이미 상현 오빠가 거실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역시 나보다 빨리 나와 있었네."


상현 오빠는 나온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  했어?"
"어."

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방문을 닫고 나왔다. 밖에 날씨가 좀 풀렸다고 해서 조금 가볍게 입었는데 어차피 밖에 있는 시간이 긴 게 아니었으니까 상관없을  같았다.


"가자."


 상현 오빠와 숙소를 나섰는데 숙소를 나서자마자 상현 오빠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상현 오빠를 알아본 사람들이 몰려 들어서 사인이나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구했다.


"어? 세나 씨죠! 이번에 데뷔전 하신! 맞다! 맞다! 꺄아! 너무 예쁘시다! 진짜 어쩜 이렇게 피부가 좋아요? 경기 너무 잘 봤어요."
"여기 윤세나도 있다!"
"가디스! 가디스다!"
"어? 한국대 여신님이다! BJ한국대 여신님이다!"

상현 오빠를 알아보고 다가온 사람들이 옆에 있는 나도 덩달아 알아보고 놀라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정말 걷다가 서다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우여곡절 끝에 보교문고에 왔는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어... 이거 왠지 불길한데."

상현 오빠야 당연히 많이 알아봤고 문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꽤 많다는 거였다. BJ, 너튜브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알아보기도 했고 Y1은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팀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어쩌지.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한테 너무 민폐인 것 같은데."

서점 안에 들어가서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에 상현 오빠도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고.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쩔  없지."

앞으로도 내가 감수해야  일이다. 아메리카 TV나 너튜브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솔직히 완전 김칫국이긴 했지만 뭐, 어쨌든 지금은 현실이 됐으니까. 하여간 그때도 마음 편하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내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선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경기에서 POG를 받으면서 나에 대한 이적에 대해  좋은 기사들은 많이 없어지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여전히 의문을 표하는 기사들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그 밖에도 내가 감수해야만 하는 수많은 일들이 많았다.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면 그러한 부분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뭔가  너랑 같이 있으니까 적게 오는 것 같긴 하다."
"그래?"

아무래도 양쪽으로 나눠져서 그런 걸까? 뭐, 안에 들어가서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감안하고 나온 거니까. 오빠도 나도.

나와 오빠는 서점 안으로 들어갔고 역시나 우리 둘을 알아보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이곳에 올 때처럼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실내라서 그런가 다가오지 않네?"
"얼마 안 갈걸?"

상현 오빠의 말에 난 살짝 웃고는 최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이동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서점이라 그런지 우리보다는 책에 관심이 많은  같았다.


그래서 나와 오빠를 알아보는 사람이 더 적은  같기도 했다. 하여간에 우리도 덕분에 집중해서 책을 고를 수 있었다.

난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뽑아서 아무 자리나 털썩 주저앉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음에 들면 챙기고  다른 책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오빠 차라리 갈라졌다가 다시 만날까?"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상현 오빠에게 물었는데 오빠도 내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 그러자."
"책 읽는 취향이 아무래도 다를 수 있으니까."

 말에 상현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하기 무섭게 상현 오빠는 바로 사라졌고 난 다시 마음에 드는 책을 찾기 시작했다. 제목이 괜찮으면 꺼내 보고, 표지가 예쁘면 꺼내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세  정도 챙겼을까? 책을 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상현 오빠는 어디 있나."


평일이라 사람이 적을  알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많아서 놀랐다.

"평일도 이 정도인데... 토, 일요일은 오면  되겠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상현 오빠를 찾으러 서점을 돌기 시작했다. 서점 규모가 커서 그런지 찾는 것도 꽤 힘들었다.

"어디 숨은 거야?"

책을  진득하게 집중해서 읽고 싶은 마음에 나도  구석에 숨어서 읽었기 때문에 상현 오빠도 아마 그렇게 읽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그럴법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 있냐..."

간  아니야? 난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바퀴 돌아봤는데 의외로 굉장히 탁 트여 있는 곳에 있어서 놀랐다.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다니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책을 읽고 있었다. 주변을 보아하니 상현 오빠를 알아본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책을 집중해서 보고 있어서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듯 보였다.


'확실히 책을 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조금 눈치를 보는구나.'


밖에 있을  그냥 막 다가왔는데. 사진이나 사인 좀 해달라고.  조심스레 상현 오빠에게 다가가 말했다.

"다 골랐어?"


오빠 옆에 책이 몇 권 쌓여 있기에 난 아무래도 오빠가 책을 다 골랐을 것 같아 물었다.

"아, 어."


내 물음에 상현 오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날 쳐다본다.


"너도 다 골랐어?"

상현 오빠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렇게 세 권."

상현 오빠는 내가 고른 책을 보더니 말한다.


"더 골라도 괜찮은데."
"아니야. 이거  권이면 충분해. 오빠는 엄청 많이 골랐네."
"여섯 권 정도? 아, 이것까지 일곱 권. 한 번 나오면 다시 오기가 힘들어서 많이 사 가는 편이야."
"확실히 오빠는 돌아다니기 힘들겠다."
"너도 그래 그렇던데. 다른 애들보다 네가 더 인기가 많은  같아."
"에이, 그 정도는 아니고."

 미소를 지으며 상현 오빠와 함께 계산대로 이동했다. 줄이 조금 늘어서 있어서 난 한쪽에 오빠와 함께 섰다.

줄을  사람들 중에 우리를 알아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드렸다.

그렇게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오빠나 나나 책을 고르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서점에만 하루 종일 있으라고 해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배고프지?"
"조금?"
"내가 여기 아는 곳 있어. 아. 혹시 오빠 꼬막 먹어?"
"먹지. 내가 할머니랑 같이 살아서  입맛이 할머니 입맛이야."
"좋네."

간혹 해물을 못 먹는 사람이 있어서 물어봤는데 다행스럽게도 먹을 수 있다니 기분이 좋았다.


"아까부터 꼬막 비빔밥 먹고 싶었거든."
"이 주변에 꼬막 비빔밥 하는  알고 있어?"
"검색해 봤지."

검색하니까 바로 나오던데. 여기서 얼마 멀지 않으니까 계산하고 이동하면 금방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상현 오빠는 약속대로 내가 고른 책  권을 전부 사줬다.  책을 받아 들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고맙긴. 대신 밥은 내가 얻어먹잖아."
"이게 밥보다 비싸잖아. 좋아. 내가 커피도 쏠게."
"커피?"
"응. 밥 먹고 아메리카노도 한잔 하자."

내 말에 상현 오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는데 뭔가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왜? 따로 약속 있어?"
"아니야. 없어.  그거 안 무거워?"

상현 오빠는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들어주려고 하는지 손을 내밀었는데 난 그 손을 피해  엉덩이 뒤로 숨겼다.

"괜찮아, 괜찮아. 책도 사줬는데 들어주기까지 하게? 오빠야말로 무거워 보이는데 괜찮아? 내가 좀 들어줄까?"

상현 오빠가 든 책은 많기도 많았고 두꺼운 책도  권 있어서 두 개의 가방에 담아줬는데 나보단 훨씬 무거워 보였다.


"난 괜찮아, 너도 진짜 괜찮아? 한 권은 엄청 두꺼워 보이던데."
"응, 괜찮아. 별로 안 무거워."

난 괜찮다는 의미로 책이 든 종이 가방을 자유롭게 흔들어 보였다. 솔직히 조금 무겁긴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