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61. 첫 휴일
유쾌했던 첫 POG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의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그렇다고 너무 들떠 있진 않았는데 나이는 어려도 프로는 확실히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경기가 담언이었기 때문인데 공교롭게도 담언 감독님께서 Y1의 부흥을 이끌었던 김정군 감독님이셨다.
감독님께선 은연중에 담언을 꼭 이기고 싶다는 자신의 심정을 내비치셨고 선수들도 담언을 이겨야 우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마냥 들떠있지 않았다.
"잘한다."
작년 시즌 담언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딱 저 한 마디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풀 경기 영상을 빠르게 돌려 보고 있었는데 작년 시즌이긴 했지만 저 세상 경기력이었다. 보아하니 상대 전적도 Y1이 상당히 밀리고 있었다.
'쉽지 않겠다.'
작년 롤드컵 우승팀이기도 했고 쇼메이크라는 걸출한 미드 플레이어도 있고. 준현이도 물론 잘하는 선수지만 쇼메이크 선수를 상대로는 좀 힘들지 않을까?
'설마 이번 라인업 그대로 담언을 상대하시진 않겠지?'
1군 선수로 등록된 서포터가 나 혼자라서 나야 무조건 출전하겠지만 다른 포지션은 그렇지가 않았다.
어제 뛰었던 선수가 전원 교체된다고 해도 솔직히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냉정한 말로 어제 뛴 선수들은 1.5군 성향이 짙었으니까.
"뭔가 조커 픽이 필요할 것 같은데."
담언을 상대로 이기려면 무난한 서포터 픽으론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이랑 코치님이랑 상의를 좀 해봐야겠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난 이 부분에 관해서 얘기를 좀 나눠볼 생각을 가졌다.
우린 연습실에 돌아와 곧바로 경기에 대한 피드백을 끝낸 뒤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든 순간이 처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것도 LCK에 나서는 것도 POG를 받은 것도 인터뷰를 한 것도. 꿈만 같았다.
내가 프로게이머로서 데뷔전을 가졌다는 사실도 얼떨떨하고 승리했다는 건 더 얼떨떨했다. 거기다가 첫 경기에 POG를 받다니.
난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멤버들과 숙소로 이동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에게서 축하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걸려온 게 보였다.
"와... 대박."
내가 놀라며 핸드폰을 바라보자 옆에 있던 찬동이가 말을 건다.
"왜?"
"아, 문자랑 전화 엄청 많이 와서."
"아. 오늘 데뷔전이었지?"
찬동이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명, 한 명씩 문자 메시지를 보내줬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때 핸드폰을 소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핸드폰을 켜고 확인했더니 엄청난 양의 문자와 전화가 왔다는 알림을 볼 수 있었다.
난 정신없이 일일이 감사 인사를 보냈고, 아버지와 엄마에겐 전화 통화를 해서 기쁨을 나눴다. TV로 내 모습을 다 봤다고 하셨고 굉장히 좋아하셨다.
큰 언니와 둘째 언니에게도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눴고 마지막으로 세연 언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언니!"
[축하해! 첫 경기부터 POG도 받고. 대단한데?]
"뭐, 이 정도야. 별거 아니지. 나 윤세나야. 윤세나."
내 허세에 옆에서 듣던 찬동이가 비웃음을 터뜨리기에 주먹을 들고 위협했더니 화들짝 놀라며 멀찍이 떨어진다.
[밥은 먹었어?]
"아니, 이제 숙소 들어가서 먹으려고."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따듯하게 입고 다니고.]
"응! 언니도 경기 봤어?"
[당연히 봤지. 그 안경 끼신 아저씨가 다음 경기가 엄청 중요하다고 하던데 그래?]
"아아. 응. 담언이라는 팀이랑 붙는데 그 팀이 작년에 전 세계에서 1등 했던 팀이야."
[와... 전 세계에서 1등? 그렇게 강한 팀이었어? 연습 열심히 해야 되겠다.]
"그래야지. 준비 잘 해서 연승해야지."
[그래. 팀원들이 잘 해줘?]
"응, 다들 잘 해줘. 친구들도 많아. 두 명이나 있어. 동갑이."
[그래? 그나마 좀 다행이겠다.]
난 언니와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면서 숙소로 이동했는데 숙소에 도착해서도 대화가 끊어지지 않았다.
원래 수다스러운 편도 아니고 언니랑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도 아니었는데 여자가 되고 나서는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
"다들 고생했어! 저녁 식사들 해라."
숙소에 도착하자 어머니께서 이미 식사 준비를 끝내 놓으신 상태였다. 상당히 많은 반찬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고기 반찬이 상당히 많았다.
"오, 고기반찬."
난 눈을 빛내며 말했고 세연 언니는 내가 숙소에 도착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말했다.
[숙소 들어온 모양이네? 저녁 맛있게 먹고. 잘 쉬어. 언니도 씻고 쉬어야겠다.]
"응, 알았어. 잘 쉬어."
[그래, 너도.]
언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난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입고 있던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빠르게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손만 씻고 바로 거실로 나왔다.
거실로 나오자 다들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난 빠르게 밥을 떠서 고기와 가장 가까운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먹었는데 평소에 먹던 시간보다 늦어서 그런지 조금 허기가 진 상태였다.
"뭐야? 벌써 나왔네."
숙소에서 사는 인원은 찬동이와 상현 오빠, 그리고 우찬 오빠, 진선 오빠.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었는데 가만히 보면 행동들이 다들 느긋했다.
"네가 느린 거야."
찬동이가 나와 밥을 뜨고 있으니 진선 오빠가 나왔다. 대기실에 갔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던 게 생각나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오빠, 얼른 와. 고추장 불고기 엄청 맛있어."
양념이 진짜 제대로였다. 상추와 깻잎도 있어서 쌈을 싸서 먹었는데 정말 꿀맛이 따로 없었다.
"맛있어 보이네. 근데 난 못 먹어."
"아, 맞다."
"이 정도면 일부러 그러는 것 같은데."
찬동이의 말에 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진짜 깜빡했어."
내 말에 진선 오빠는 주걱으로 밥을 밥그릇에 담으며 날 쳐다보더니 굉장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세나야."
"응?"
"너 한국대 아니지."
하. 여기서도 학력 위조의 의심을 받을 줄이야.
"내가 간헐적 멍청이라 그래. 오빠가 이해 좀 해줘.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다. 마음 상하지 마라."
내 말에 진선 오빠는 손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혹시나 기분이 상했으면 어쩌나 싶어 걱정했는데 괜찮아 보였다.
난 내 맞은편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리 와, 오빠. 여기가 명당이야."
내 말에 오빠는 밥그릇을 들고 다가오면서 웃더니 묻는다.
"여기가 왜 명당인데?"
"고기랑 가장 가깝잖아. 전략적 요충지나 다름없지."
내 말에 진선 오빠는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이긴 하네."
확실히 그렇다. 우측에는 고추장 불고기가 있었고 좌측에는 양념이 안 된 일반 불고기가 있었는데 당연히 더 맛있는 건 고추장 불고기다.
그렇다고 달달한 불고기 백반의 맛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일반 불고기를 포기할 순 없다. 고로 그 가운데 자리인 내 자리왜 내 맞은편 자리가 가장 전략적 요충지였다.
오빠는 내 맞은편에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나중에 나온 상현 오빠나 우찬 오빠는 고추장 불고기 또는 일반 불고기 중 하나를 택일해서 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 둘 다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지."
상현 오빠는 진지하게 고민했고 난 그 모습에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오빠, 내가 떠줄 테니까 아무 데나 앉아요."
"오, 땡큐."
상현 오빠는 내 말에 환하게 웃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고추장 불고기가 있는 곳이었다.
"고추장 불고기가 조금 더 좋으신가 봐요?"
내 물음에 상현 오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둘 다 좋아해."
아하. 순전히 내가 떠준다고 해서 아무 곳이나 앉으신 모양이다.
"앞접시 줄까? 상현이?"
"아, 네."
눈치 백 단이신 어머니께선 앞접시를 주셨고 상현 오빠는 그걸 받아 내게 건네준다.
난 자연스럽게 앞접시를 받아서 일반 불고기를 담아 상현 오빠에게 건네줬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페이크, 상현 오빠에게 내가 불고기를 드렸다는 생각에 한껏 뿌듯한 마음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진선 오빠가 젓가락을 입에 물고 굉장히 불편하단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무섭게 쳐다봐?"
"아니, 말 편하게 하기로 하지 않았어?"
진선 오빠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했다.
"나 오빠한테 편하게 말하고 있잖아."
"아니, 상현이 형한텐 존댓말 하잖아."
"아, 내가 그랬나?"
나도 모르게 뭔가 아우라에 눌렸나? 역시 페이크!
"말 편하게 해, 세나야."
상현 오빠가... 나한테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하셨다... 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니, 응!"
내 소녀 팬 같은 모습에 진선 오빠는 어딘가 굉장히 속이 거북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찬동이는 손가락을 억지로 입안으로 집어넣어서 정말로 토를 하려는 시늉을 했다.
우찬 오빠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그 모습을 보며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하여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했는데 어머니께선 확실히 여자가 집 안에 한 명 있으니까 분위기가 확 산다면서 좋아하셨다.
"여기 정리 혹시 세나가 했니?"
주방과 TV 주변 그리고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씀하시기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시간이 좀 있어서 정리해놨어요. TV는 뒤쪽이랑 화면, 그리고 아래쪽에 먼지가 좀 쌓여 있어서 털었고요."
"아이고, 아줌마가 할 테니까 세나는 하지 마."
"에이, 뭐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닌데요."
내 말에 어머니께선 어디서 이렇게 예쁜 애가 들어왔을까 하시며 좋아하셨는데 사소한 일이긴 했지만 일을 덜어드리니 좋으신 모양이었다.
"뭐 힘쓰는 거 있으면 오빠들 시키고 그러세요."
"아이고, 어떻게 그래. 내가 해야지."
"허리 안 좋으시잖아요. 뭐, 몇 시간 걸리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 같은 건 나가면서 저희가 버려도 괜찮으니까 내놓으세요."
내 말에 어머니께선 깜짝 놀라시며 날 쳐다본다.
"내가 허리 안 좋은 건 어떻게 알았어?"
"허리를 자주 두드리셔서요. 많이 안 좋으세요?"
"아니야, 괜찮아."
"그래도 너무 무거운 건 들지 마세요."
내 말에 어머니께선 진심으로 고마워 하셨다.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때론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잘 숨기신 건지 아니면 이 남정네들이 관심이 없는 건지 어머니께서 허리가 안 좋으시다는 말에 다들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허리가 안 좋으셨어요?"
우찬 오빠는 진심으로 놀랐는지 어머니께 물었고 그런 걱정 어린 눈빛이 부담스러우셨는지 손사래를 치시며 말한다.
"아이고, 괜찮아.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어머니께선 극구 괜찮다고 하셨지만 팀원들은 밥을 챙겨주시는 정말 어머니 같은 분이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 두 팔을 걷어붙였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갑작스러운 상현 오빠의 설거지 선언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이고. 그렇게 안 해도 된다니까 그러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푹 쉬어. 아줌마가 여기 있는 이유가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건데 그러면 안 되지. 얼른 밥 먹어."
어머니께선 빨리 먹으라고 손짓을 하시며 말했고 나를 보시더니 역시나 상현 오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셨다.
"세나도 아줌마가 해야 되는 일 뺏지 말고 숙소에 있을 때는 푹 쉬어. 너희들은 쉬는 것도 훈련에 일부잖니."
어머니께서 감독님 같은 말씀을 하신다. 확실히 우린 쉬는 것도 훈련의 한 부분이긴 하다. 그래서 숙소에는 컴퓨터가 없는 거니까.
혹여나 밤 늦은 시간까지 다른 게임을 한다던가 아니면 다른 취미나 관심사에 시간을 투자해 잠을 자는 시간을 뺏겨 컨디션을 유지 못한다거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컴퓨터가 없어도 핸드폰이란 복병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스스로 알아서 잘 조절 해야 했다.
뭐, 핸드폰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긴 하니까. 그것도 아닌가? 요즘 핸드폰 게임도 엄청 재미있는 거 많던데.
거기다가 넷플릭스 같은 것도 엄청 재미있는 게 많다고 하고. 하여간에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핸드폰만 들고 있었도 많긴 했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감사하긴, 그게 내 일인데."
어머니께선 미소를 지으시며 말했고 우리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