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56. 데뷔전 Y1 vs 한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11시에 기상하고 12시까지 식사를 하고 12시부터 가볍게 1시까지는 손을 푼다. 그리고 1시부터 4시까지는 스크림.
4시부터 5시까지 점심 식사를 하고 5시부터 7시까지는 솔로 랭크를 한다. 그리고 또 다시 7시부터 11시까지는 스크림.
11시부터 12시까지 식사를 하고 12시부터 4시까지 다시 솔로 랭크.
이걸 무한 반복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순조롭게 프로게이머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팀에도 잘 녹아 들었고, 나름 내 스스로 성공적으로 Y1이라는 팀에 안착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솔로 랭크 성적도 좋았는데 아무래도 미드에서 서포터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승률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게임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점수가 엄청나게 떨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문제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저 현상 유지만 된다는 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까?
미드로 했으면 진작 올라갔을 것 같은데.
하여간 난 솔로 랭크에서도 스크림에서도 서포터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감독님과 코치진들의 걱정을 조금 덜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팀에 서포터가 나 하나니까 걱정이 많았겠지.'
팀에 캐리아 선수를 영입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는데 내가 좋은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팀 내부에선 그런 얘기가 한 마디도 돌지 않았다.
그렇게 난 짧은 준비 기간을 걸치고 데뷔전을 갖게 됐다.
데뷔전을 하게 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모님께서 일이 생기셔서 내 데뷔전에 오실 수 없다는 점이었다.
"부모님이 못 오셔서 좀 아쉽겠다."
감독님도 그 부분이 조금 신경이 쓰이셨는지 내게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짓곤 말했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방송으론 볼 수 있으시다니까. 그거로 위안 삼으려고요."
내 말에 감독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본래는 부모님께서 오시기로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오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선수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고 감독님과 코치분들은 모여서 경기를 준비하고 계셨다.
버스가 넓어서 두 자리를 한 선수가 모두 차지하고 앉아서 이동할 수 있었는데 프리미엄 버스 저리 가라였다.
'대기업이라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SKY가 대기업이라 그런지 확실히 환경적인 부분에서 되게 좋았다. 특히나 이번에 강남에 있는 신사옥으로 옮긴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곳 시설이 엄청나게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나로선 환영할 일이다. 거긴 숙소도 개개인 별로 주어진다고 하고 연습실도 지금의 몇 배는 더 커진다고 했다.
"후우."
난 깊게 호흡을 고르며 눈을 가만히 감았다. 수많은 스크림과 솔로 랭크 경기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사실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내가 받는 피드백은 거의 없었다. 능력 덕분에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늘 보여줬고 오더 능력도 감독님과 코치분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부담 되네.'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잘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LOM은 팀 게임이다.
개인이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명확했고 서포터라는 포지션은 그것보다 더 한계가 존재하는 포지션이었다.
훈련하면서 많이 맞춰봤고 호흡도 좋았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크림, 연습이었다. 실전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내 오더에 팀원들이 얼마만큼 믿고 따라줄지가 관건이네.'
명확하게 수치로 규정할 순 없지만 팀원들이 내 오더를 믿는 최대치가 100이라고 하면 그래도 한 80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 이상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솔직히 감독님이 강제한 거나 다름없지.'
나를 믿고 따르는 팀원들도 분명 있기야 하겠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감독님이 내 오더를 들으라고 지시하니까 따르는 선수도 있을 거다.
단순하게 감독님 지시에 의해 따르는 것과 정말 나를 믿고 내 오더에 따라 움직이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엔 내 오더를 듣고도 주춤할 수 있는데 반해서 후자의 경우는 내 오더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할 거다.
0.1초 차이로 죽고 사는 게 결정되는 LOM이라는 게임 특성상 미묘한 부분도 나비 효과처럼 폭풍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전자의 경우에는 안 좋은 쪽으로 나타나겠지.'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내가 플레이를 하면서 믿음을 주는 수밖에. 어차피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루아침에 당장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명상에 빠져 있었더니 구단 버스는 경기장에 도착했고 감독님께서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자, 내리자!"
선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팀 대기실로 이동했다. 생전 처음으로 들어간 선수 대기실에는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고 대기실에서 경기를 볼 수 있게 대형 모니터가 2개나 설치돼 있었다.
선수 대기실 안에 들어와본 게 처음이라 신기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마음을 가질 겨를도 없었다.
곧바로 경기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는데 감독님과 코치분들은 모니터를 통해 우리와 처음으로 붙게 된 한하생명e스포츠 팀의 분석 결과를 브리핑 하기 시작했다.
"한하는 거의 새로운 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 팀이야."
감독님께선 상대팀의 명단을 띄워 놓으시곤 말씀하셨는다.
"서포터 Bsta를 제외하고는 모든 라인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해도 무방해. 아마 조직력 부분에서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하지만 개개인의 실력으로만 따지면 지금의 선수들이 훨씬 좋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난 감독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드의 초비 선수도 그렇고 대프트 선수야 워낙에 유명한 원딜이시고.
"무엇보다 팀의 면면을 보면 좋은 성적을 내던 선수들이 많지. 케스파 컵에서 준수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확실히 대거 변화가 있는 팀이긴 했지만 쉽지 않은 팀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린 코치님과 상대방 플레이가 담긴 영상을 시청하기도 하고 우리 스크림을 하며 문제가 됐던 장면들을 보면서 차분하게 경기를 준비했다.
첫 경기가 주는 부담감이 생각보다 커서 부담감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물을 마셔 보기도 하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많이 떨려?"
찬동이의 물음에 난 손가락으로 조금이라는 표시를 하곤 말했다.
"약간?"
내 말에 찬동이가 웃으며 말했다.
"스크림 때 잘하던데 그때처럼만 하면 되겠던데 뭐."
"그게 말이 쉽지. 마음처럼 되냐?"
내가 자신을 흘겨보면서 말하자 찬동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스크림 할 때 보니까 한 3~4년 차 프로게이머처럼 하던데. 지금도 긴장하는 척하는 거 아니야? 예의상?"
"얘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야, 나 지금 손 떨리는 거 안 보이냐?"
난 손을 들어서 찬동이에게 보여줬다. 내 손은 겨울에 추위라도 느끼 듯 정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긴장할 줄 상상도 못했다. 내가 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떠는 게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막상 게임에 들어가면 이러다가도 떨지 않을 것 같기는 했는데 혹여나 떨림이 멈추지 않아 경기에 지장을 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됐다.
"하. 청심환이라도 먹고 왔어야 했나."
내 말에 찬동이는 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한다. 난 그 모습에 설마하는 표정으로 찬동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에이, 설마... 아니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살짝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 되게 뜸 들이네.'
난 눈을 반짝이며 찬동이를 바라봤고 찬동이는 그런 내 모습을 충분히 즐기다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오빠의 사랑이 만병통치약이지."
어처구니없게도 찬동이가 내게 꺼내 보여준 건 손가락 하트였는데 진심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뒤지고 싶냐?"
내 살벌한 반응에 화들짝 놀란 찬동이가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고 그런 내 모습을 본 우재가 슬쩍 뒤로 물러난다. 나와 얼떨결에 눈이 마주친 클로서, 준현이가 맹렬하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니, 너 말고."
준현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고, 찬동이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몹시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찬동이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뒷골목으로 끌고 가는 무서운 누나처럼 말했다.
"찬동아, 죽고 싶냐?"
찬동이는 내가 살벌한 목소리로 속삭이자 고개를 빳빳하게 힘을 주더니 고개를 짧게 끊어서 젓는다.
뱀 앞에 쥐처럼 잔뜩 떨고 있는 찬동이의 어깨에 걸친 팔을 풀어주곤 등을 몇 번 토닥이면서 말했다.
"잘 하자."
"네!"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고개까지 숙이며 말하는 찬동이를 보며 난 웃음이 나왔지만 차가운 표정을 유지한 채 아까부터 날 보고 있던 진선 오빠를 쳐다봤다.
"오빠 왜?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아, 이거 주려고."
진선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했고 그 모습에 찬동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양팔과 고개를 열심히 저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진선 오빠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굴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내민다.
"어?"
"어?"
나와 찬동이는 동시에 놀라며 소리를 냈다.
"이거 청심환이에요?"
"형, 이거 청심환이에요?"
마치 짠 것처럼 질문하는 우리 둘의 모습에 진선 오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세나 너 주려고 하나 챙겼는데. 아까부터 보니까 많이 긴장하는 것 같더라."
진선 오빠의 모습에 난 고개를 돌려 찬동이를 보며 보고 좀 배우라는 눈빛을 보냈더니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린다.
"고마워, 오빠. 안 그래도 청심환 찾았거든."
난 얼른 청심환을 받아 뚜껑을 열었다. 청심환 특유의 향이 화악 퍼진다. 난 입에 쏙 넣고는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었고 그 모습에 진선 오빠가 웃더니 말한다.
"야, 박력 넘치는데. 오늘 경기를 씹어 먹어 주겠다는 의지의 표출 뭐 그런 건가?"
"뭐,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고. 오늘 나만 믿어."
내 말에 오빠는 웃더니 말한다.
"오늘 내가 나가면 믿어야지."
"엥? 오빠 안 나가?"
"민영이랑 나랑 둘 중에 누가 나갈지는 봐야지 알지."
"아아..."
1군 선수단 전원이 왔으니까 나를 제외한 다른 포지션은 누가 나갈지 아직 모르는 상황이었다.
"경쟁 선수가 없으니까 나는 무조건 선발이구나."
내 말에 진선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서 너를 아마 메인 오더로 지정하셨겠지."
"아..."
확실히 그런 부분 때문에 나를 서포터뿐만이 아니라 메인 오더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계속 훈련을 시키신 것 같다.
스크림을 하면서 내 오더에 따라서 좋은 결과가 거의 나타났는데 내 오더의 생각과 감독님의 생각이 100% 일치하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설명을 하면 대부분 내 의견을 따라 주셨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보면 내 판단이 그때마다 적절했다는 생각이 드셨을 거다. 능력 덕분에 난 어떤 상황이든 알파고처럼 최상의 최적의 수를 둔다.
그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차분하게 검토를 하다가 보면 거의 대부분 내가 내린 판단이 옳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그다음부터는 내 오더를 전적으로 믿어 주시고 팀원들에게도 내 오더를 적극적으로 따라주라고 하셨다.
물론,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오더를 전부가 100% 신뢰하고 믿고 따르는 건 아니었다. 간혹 내 의견에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고.
난 그럼 그때마다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팀원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편이었다. 팀원이 이미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면 뒤늦게 밀어붙여 시도해봤자 좋은 결과를 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글은 박 터지겠네."
내 말에 진선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이나 되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근데 장점도 많지."
"아아, 뭔지 알 것 같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 경쟁이 조금 더 치열하다고 할 수 있는 정글은 진짜 다른 포지션 선수들에 비해 연습량이 엄청나게 많았다.
아무래도 같은 팀에 정글이 많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았는데 팀 내에 경쟁이 없는 게 선수 본인에게 마음이 편할지 모르겠지만 발전하는 부분에 있어선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예외네.'
내 포지션에 다른 선수가 들어온다고 해도 나만큼 플레이할 수 있는 선수는 없을 테니까. 내 경쟁자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내 마음. 이 부담감만 떨쳐 낸다면 난 충분히 e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페이크 선수의 뒤를 쫓을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멀리 갔나? 킥킥.'
데뷔전이나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