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55. SKY Y1
선수들 전부 얼굴이 밝았다. 내가 오늘 입단한 덕분에 연습도 하루 합법적으로 쉬고 회식까지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뭐든 남의 돈으로 많이 먹는 게 맛있긴 하지.'
회식을 하기 위해 이동한 곳은 숙소와 굉장히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정균 족발이라는 곳이었다. 내가 알기로 Y1 감독님 중에 김정균이라는 감독님이 있지 않았나?
내 물음에 앨림이 웃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 김정균이 아니라 김정군 감독님. 초창기 SKY 감독님 이름이지."
"아, 김정균이 아니라 김정군이었구나."
우리들은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고 미리 전화를 해뒀기 때문에 테이블에 준비가 돼 있었다.
푸짐하게 올라온 족발과 야채와 비빔면의 모습에 군침이 돌았다.
"와... 맛있겠다."
팀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빠르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감독님들과 코치님도 모두 착석하셨다. 나도 얼른 한자리 차지해 앉았는데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앨림과 찬동이가 앉았다.
동갑 라인을 구축한 나는 앨림과 찬동이를 보며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반대편을 바라봤다.
"스읍... 너 꼭 여기 앉아야 하니? 오빠도 여기 앉아야 해?"
난 내 맞은편에 앉은 우재와 진선 오빠를 보며 물었고 둘은 내 물음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본다.
"아, 둘이 많이 먹을 것 같은데."
찬동이랑 앨림은 딱 봐도 잘 못 먹을 것 같은데 우재랑 진선이는 엄청 먹게 생겼다. 일단 덩치가 크잖아.
꼭 덩치가 크다고 해서 잘 먹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우재는 100%다. 뼈도 싶어 먹는 18살이라는 나이에 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먹성을 봐라.
'쟨 무조건 많이 먹는다.'
내 눈총에 진선 오빠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난 고기 못 먹어. 내가 지병이 있어가지고."
"지병?"
"어, 궤양성 대장염이라고. 마음 놓고 많이 먹어."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굉장히 미안하네.
"완치가 안 되는 병이야?"
"어. 안 돼."
딱 잘라 말하니까 뭔가 더 미안해진다. 족발을 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니. 진짜 고통스럽겠다. 고기를 먹을 수 없는 병이라니. 끔찍하잖아!
내가 세상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진선 오빠는 웃음을 터뜨렸다.
"뭘 그렇게까지 봐."
"아니, 고기를 못 먹는다니... 진짜 슬픈 일이잖아."
찬동이는 팔짱을 끼며 우재를 바라보곤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 먹는 편인 것 같은데. 지금까지 적당히 먹었다는 소리냐?"
찬동이의 추궁에 우재는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해 졌어. 이 자식은 요주 인물이야. 난 턱 짓으로 다른 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재는 울상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말 다른 자리로 옮기려고 하기에 웃으며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앉아, 앉아. 농담이야. 농담. 아, 우재 왜 이렇게 놀리고 싶지."
"진짜요?"
우재는 내 말에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며 묻기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래, 장난이야. 장난."
"그렇다고 하기에 표정이 너무 진심이었는데."
앨림의 말에 난 어깨로 앨림을 밀쳤다. 우재는 다시 밝아진 모습으로 앉아선 세상 행복한 표정을 하고 테이블 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마치, 곰이 사냥감을 탐색하기 위해 준비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자, 세나 입단 다시 한번 축하하고. 술은 적당히 자신이 잘 조절해서 마셔서 내일 정상적인 팀 스케줄 소화할 수 있게 해주고 오늘 회식 자리는 법카를 사용할 테니 전투적으로 먹어도 좋다."
양중인 감독님이 법인 카드를 꺼내서 흔들며 말했고 팀원들은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다.
법인 카드면 눈치 안 보고 양껏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법카의 등장에 눈빛부터가 달라진 느낌이다.
"자, 그럼 맛있게 먹자."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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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어린 나이에 프로가 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과도하게 음주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자기 두 발로 숙소에 걸어서 도착했고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질 정도만 마셨기 때문에 거의 멀쩡한 상태였다.
숙소에 돌아와 언니와 잠깐 통화를 하고 걱정하실 부모님께도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저녁을 먹고 일찍 숙소에 도착했는데 시계가 벌써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자신의 방에 컴퓨터가 있어서 솔랭을 돌리거나 자신이 하고 있는 다른 게임을 한다거나 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보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난 아무것도 없어 그냥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씻고서 잠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11시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로 거실로 나왔다. 아침 식사가 이미 준비가 된 상태였고 식사를 준비해주신 어머니와 난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드렸는데 그런 날 보곤 어머니께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이고, 예뻐라. 이번에 새로 Y1에 온 윤세나 선수구나."
"아, 네."
"여자 선수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이고.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살려면 고생 좀 하겠다."
어머니의 말에 난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에 올라온 음식들을 바라봤다.
진짜 딱 봐도 집 밥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반찬들과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국이 시선을 끌었다.
"여기 밥 있으니까 먹을 만큼 퍼서 먹으면 돼요."
"아, 네. 감사합니다."
난 어머니의 말대로 밥을 양껏 퍼서 자리에 앉았는데 그런 나를 보며 어머니께선 깜짝 놀라신다.
"아이고, 그거 다 먹을 수 있어요?"
"네!"
난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난 자리에 앉았고 어머니는 다른 선수들 방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얘들이 언제까지 자려고 이래.'라고 하시며 팀원들의 방을 돌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숙소에서 사는 건 1군 선수들만이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선수들인 아카데미 선수들은 집에서 출, 퇴근을 한다고 했다.
또 집이 좀 가까운 1군 선수들도 숙소 생활을 하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굉장히 숙소를 넓게 사용하고 있었다.
고로 이 숙소에서 사는 사람은 페이크, 이상현 선수 그리고 탑 칸느, 찬동이. 그리고 정글은 켜즈, 문우찬 오빠. 원딜은 태디 박진선 오빠 이렇게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었다.
"하이!"
가장 먼저 나온 찬동이를 보며 난 손을 들어 보였고 찬동이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손을 들어 보이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눈 떠, 눈."
난 잠에 취한 찬동이를 보며 피식 웃곤 말했고 찬동이는 내 말에 눈을 여전히 감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확실히 어제 술이 조금 들어가고 적극적으로 내가 어색함을 풀려고 다가갔더니 어색한 느낌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려나?'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어색한 감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어머니의 순회공연으로 팀원들이 모두 거실에 나와서 각자 밥그릇에 밥을 담기 시작했는데 그동안에도 찬동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야, 얼른 밥 먹어."
난 찬동이의 등짝을 세게 때리며 말했고, 찬동이는 갑작스러운 내 공격에 지렁이처럼 온몸을 비틀며 등을 쓰다듬으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난 그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안 닿을걸?"
진선 오빠는 몸을 배배 꼬는 찬동이를 보며 말했다.
"오징어 다리 라이터로 지지면 꼭 저런 모습이던데."
굉장히 적절한 비유에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찬동이는 등짝을 때린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난 그런 찬동이의 눈빛에 움찔하면서 등을 쓰다듬어주곤 말했다.
"얼른 밥 먹으라고. 따듯할 때 먹어야 맛있지. 이거 국 진짜 맛있는데 식으면 아깝잖아."
내 말에 찬동이는 국을 힐끗 보더니만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푸기 위해 움직인다.
난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킥킥거렸다. 식사 시간은 굉장히 조용했는데 다들 기계적으로 밥만 먹어서 굉장히 지루했다.
중간, 중간 내가 팀원들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다들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난 그릇을 싱크대에 담고 어머니께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 인사를 했는데 그런 내가 예뻐 보였는지 내 등을 쓰다듬으시며 말했다.
"많이 먹었어요? 입에는 좀 맞았어요?"
"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난 양손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고 그런 내 칭찬에 어머니께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시더니 슬쩍 테이블에 앉아 있는 다른 선수들을 보며 내 귓가에 속삭이 듯 말한다.
"그나저나 애들이 팀에 예쁜 여자가 들어와서 그런가 얌전히 먹네."
"아, 그래요?"
난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곤 다시 어머니를 쳐다봤는데 어머니께선 굉장히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애들이 밥 먹을 때 얼마나 시끄럽게 먹는데. 장난도 많이 치고. 세나 씨가 있어서 그런가 다들 얌전히 먹네."
"제가 안락한 아침 식사에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요."
미간을 좁히실 정도로 말하는 걸 보니까 아침 식사가 거의 전투나 다름없었던 모양이다. 특히나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더 했다니까 상상이 가질 않았다.
지금은 굉장히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식사였는데. 맛있는 것도 난 크게 경쟁적으로 먹을 필요도 없었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난 고개를 꾸벅 숙이곤 내 방으로 들어와서 연습실에 갈 채비를 했다. 오늘 처음으로 팀 스케줄을 소화하게 됐는데 조금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잘 따라가야 할 텐데.'
적응을 잘 해서 빨리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챙겨 온 옷이 많지 않아서 난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는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았다.
SKY에 주장이자 구단주인 상현 오빠가 팀원들을 모두 이끌고 연습실로 이동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난 핸드폰을 만지며 모두가 나오길 기다렸다.
내가 아침 식사를 먼저 했기 때문에 준비도 빨리 끝났고 그래서 내가 1등으로 나온 것 같았다.
"어? 빨리 나왔네."
진선 오빠가 2등으로 나오며 이미 나와있는 날 보더니 놀라셨고 난 핸드폰을 만지나 진선 오빠의 말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아침 1등으로 먹었잖아. 그러는 오빠도 빨리 나왔네."
아침을 늦게 먹었는데 일찍 나온 진선 오빠를 봤는데 Y1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난 오빠의 유니폼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들고는 흔들며 말했다.
"나는 유니폼 언제 주려나."
진선 오빠는 내 손가락이 닿은 자신의 어깨를 보더니 다시 날 쳐다본다.
"아, 너 유니폼 아직 없구나."
난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 지퍼를 잠그지 않은 패딩을 진선 오빠에게 젖혀 보이며 말했다.
"그래서 어제 입었던 거 또 입었어. 이게 제일 편해서."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진선 오빠가 화들짝 놀라며 말한다.
"어후, 야. 깜짝 놀랐잖아."
진선 오빠의 말에 난 풋! 하곤 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때렸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무슨 바바리걸도 아니고. 이상한 분이네. 내가 가늘게 눈을 뜨며 째려보자 진선 오빠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갑자기 패딩을 확 젖혀서 그렇지. 그렇게 입으면 배꼽 안 시리냐?"
크롭후드티긴 했지만 그렇다고 배가 다 드러난 게 아니라 정말 아주 살짝 보일 듯 말 듯 드러나 있어서 엄청 춥거나 하지 않았다.
난 고개를 숙여 쳐다봤는데 매끈한 복근이 살짝 보이긴 했지만 정말 아주 조금이었다.
"에이, 뭐 이 정도는 괜찮아. 연습실은 조금 덥던데 뭐."
사람도 많고 난방도 해서 그런지 연습실 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웠다.
연습실까지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아서 날이 좀 풀린 경우에는 진선 오빠처럼 겉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유니폼만 입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거 얆은데 괜찮아?"
겉에 걸친 저지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더니 진선 오빠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뭐 멀지도 않은데. 날씨도 많이 풀렸고."
난 추운 게 싫어서 패딩의 지퍼를 목까지 잠궜다. 그런 내 모습에 진선 오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들이 거실로 모이기 시작했고 우린 모두 소파에서 일어나 연습실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자 아침이라 그런지 확실히 좀 추웠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옷을 두툼하게 챙겨 입은 선수들은 느긋하게 걸었지만 진선 오빠처럼 대충 걸치고 온 선수들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엄청 뛰네."
찬동이가 어느새 내 옆에 서더니 말했고, 난 열심히 다리를 놀리는 몇몇 선수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풀렸다고 해도 날이 춥긴 춥네. 패딩 입고 오길 잘했다."
찬동이도 나처럼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상당히 따뜻하게 보였다.
"이거 엄청 두껍다."
내가 찬동이의 패딩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날 보더니 말한다.
"100% 오리털."
난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상현 오빠를 봤는데 유니폼만 입고 있었지만 느긋하게 걷고 있는 모습에 물었다.
"오빠는 안 추우세요?"
내 물음에 상현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은데."
크, 역시 페이크! 당신은 도데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