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54. SKY Y1
"이제 막 나이 제한 풀려서 경기 출전할 수 있는 애한테 너무 하네."
갑작스러운 태디 오빠의 면박에 난 이해가 가지 않아 눈을 깜빡거리다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
군대라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구나. 이제 막 나이 제한 풀려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아이에게... 군대 얘기를 했으니.
"아니, 근데 군대 미루면 은퇴하고도 갈 수 있으니까."
"너야 잘 모르겠지만 군대 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지."
태디 오빠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지... 대한민국 남자로서 누구나 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포장하지만 결국 2년 가까운 시간을 뺏기는 거니까...
그렇다고 자네 혹시 여자가 되고 싶은가?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흠... 내가 군대 가기 싫어서 여자가 엄청 되고 싶어했는데 뿅! 눈을 감고 떴더니 여자가 됐다고 할 수도 없고.
난 우재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 오지도 않는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 얼른 맛있는 거 사러 가자."
이럴 땐 맛있는 거로 풀어야 한다. 달달한 게 좀 들어가면 기분이 풀리더라고. 이게... 나한테만 통용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였을 땐 단 거 별로 안 좋아했는데 여자가 되고 나니까 이상하게 단맛에 중독이 된 느낌이다.
은근히 뭔가 더 많이 주워 먹는 것 같고. 다행이라면 남자였을 때처럼 먹는다고 살이 무작정 붙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그거 하나는 우리 가족 내력인 것 같은데 감사한 부분이다.
'아빠도 엄마도 언니들도 다 잘 먹는데 날씬하니까.'
딱히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살이 쪄도 뭐 감사한 부분만 살이 붙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본다.
빠져도 뭐... 그 부분만 빠지니까 문제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려나? 하여간 마른 몸매에 나올 곳은 심하게 나온 몸매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우재는 마트에 가니 기분이 좀 풀어진 느낌이다. 덩치 큰 레트리버처럼 빨빨거리며 먹을 걸 바구니에 담는데 되게 행복해 보였다.
"먹는 거 좋아하는구나."
내 물음에 우재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래, 그 나이에 뭔들 못 먹겠니. 쇠도 씹어 먹을 수 있는 나이라는데. 그래도 그렇지 너무 많이 사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는데 태디 오빠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자를 걸?"
이렇게 많이 사는데 모자를까 싶었는데 성인 남자. 그것도 혈기왕성한 나이 때의 남자들이 12명이나 있으니까 모자를 법도 하겠다.
"그럼 조금 더 살까요?"
"그래야 부족함 없이 먹을 것 같은데."
태디 오빠는 그렇게 말하더니 굉장히 큰 곽 과자와 대용량으로 포장된 과자 몇 개를 더 집어서 카트에
넣는다.
"음료수."
태디 오빠는 그렇게 말하더니 음료수 코너로 갔는데 내 생각엔 음료수만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다양한 음료수들을 패트병으로 카트에 담았다.
카트 하나가 과자와 음료수로 가득 차 있는 모습에 사람들이 간혹 쳐다보기도 했는데 때론 나와 태디 오빠를 알아보고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하는 분들이 계셨다.
그때마다 우재는 부러운 눈빛을 보냈는데 난 모습이 귀여워 웃고는 말했다.
"왜? 부러워 우재야?"
"네. 조금."
우재의 말에 태디, 그러니까 진선 오빠는 팔짱을 끼곤 선배미를 뿜뿜하며 말했다.
"너도 곧 이렇게 되니까 부러워할 거 하나 없다. 연습 열심히 하고 좋은 경기력 보여주면 네가 싫어도 사람들이 몰려들 거다."
그 말에 우재 선수는 감명 깊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팀에 탑이 칸느, 김찬동 선수와 하데스, 우재 둘이었는데 나이 제한이 풀려 우재가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탑 라이너간 묘한 기류가 흐른다는 것이다.
"그런 게 좀 있지. 아무래도 내 포지션에 경쟁자가 있으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
동감하는 우재를 보며 난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면에서는 내가 제일 마음 편하네."
1군 팀에 서포터는 나 혼자였기 때문에 잘하든 못하든 어쨌든 출전은 보장받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긴 했다.
감독님은 정말 날 믿고 팀에 데려와 주셨는데 달랑 혼자 있는 서포터가 제 기량을 발휘해 주지 않는다면 데려온 사람도 온 사람도 굉장히 뻘쭘한 상황이 된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주목하고 있기에 첫 경기가 사실 대단히 중요했다.
'첫 경기 망치면 아주 신나게 물어뜯겠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내가 부진하게 되면 기자들에게 좋은 먹잇감 하나 던져주는 꼴이 됐기 때문에 난 무조건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러야 했다.
"거의 다 산 것 같은데."
진선 오빠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더 담을 곳도 없어, 오빠."
내 말에 진선 오빠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진선 오빠의 말에 우재가 카트를 열심히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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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 온 과자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아무래도 내가 처음 왔기 때문에 대화의 주제는 나였다.
"근데 누나 원래 미드 아니세요?"
클로서, 이준현 선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미드 맞긴 한데. 서포터도 잘해. 감독님께서 내가 서포터일 때 승률이 엄청 높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서포터로 영입하신 거래."
"세나는 사실 전 포지션이 승률이 다 높아. 미드를 가장 많이 플레이하고 다른 포지션은 판 수가 적어서 표본이 적긴 하지만 유의미한 데이터긴 해."
그럴 수밖에 없지. 난 모든 포지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게임에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건 꼭 LOM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그 어떠한 종류의 게임을 해도 마찬가지다.
"누나 그 한국대 여신님이라고 그 롤BJ 맞으시죠?"
오너원, 문헌준 선수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내 방송 본 적 있어?"
"가끔 너튜브에서 봤어요."
"가끔이 아니던데. 볼 때마다 보고 있던데."
갑작스러운 칸느, 김찬동 선수의 제보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문헌준 선수의 모습이 보여 웃음이 나왔다.
켜즈, 문우찬 선수도 게임 하면서 ALT+TAP 계속 누르더니 그게 세나였나며 놀라워 했다.
내가 BJ, 그것도 꽤 잘나가는 롬 BJ라는 말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방송을 하고 있고 또 은퇴를 하면 방송 쪽으로 진지하게 나갈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방송에 관련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근데 진짜 어떻게 하다가 아메리카 3대장 분들이랑 다 알게 되신 거예요?"
우재의 물음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BJ탈논 오빠랑 게임하다가 만난 게 신의 한 수였지. 탈논 오빠가 아메리카 3대장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그렇죠. BJ탈논 그분이 멱살 잡고 끌어올려 주셨잖아요. 탐방이란 말도 BJ탈논님 때문에 생겼고."
"그렇지. 뭐,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냥 연결이 됐지. 덕분에 나도 덩달아 대기업 됐고."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운이 좋았다. 현성 오빠랑 롬에서 라인전을 하고 탈탈 털어서 멘탈 나가게 하고 정말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와 엮였다.
덕분에 진짜 하루아침에 아메리카 TV의 라이징 스타가 됐다. 방송을 켜면 2만 명 정도는 우습게 들어오니까 진짜 신기했다.
"근데 애들 너무 조용한 것 같다."
뱅기 코치님의 말에 재파 코치님도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말한다.
"세나 때문에 그렇지 뭐."
"애들이 방구석에 처박혀서 게임만 하니까 여자에 대한 면역이 없어. 면역이."
감독님의 말에 나도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생각해도 팀원들 중 몇 명은 과도하게 얼어붙어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 예뻐서... 솔직히 좀 다가가기가 어렵긴 하네요."
허벅지를 연신 쓰다듬으면서 말하는 켜즈 문우찬 선수의 말에 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도 예쁘니까 들이대세요. 저 성격 좋아요. 오빠."
내 갑작스러운 오빠 공격에 문우찬 선수가 심장을 달래는 시늉을 했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웃겼다. 선수들도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했다.
페이크 선수는 시종일관 과자를 먹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저 사람은 뭘 해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구나 싶었다.
"어,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도 편하게 대할게요. 괜찮으시죠?"
난 모두를 둘러보면서 말했고 내 시선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저랑만 정리하면 다 되는 거잖아요. 저보다 나이 어리신 분들은 저도 편하게 말을 할게요. 괜찮지, 우재야?"
내가 부르자 우재는 과자를 입에 넣었다가 다시 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네. 좋습니다."
우재의 대답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얼른 먹으라고 손짓했고 우재는 그런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과자를 다시 입에 가져간다.
'잘 먹네, 짜식.'
난 칸느, 김찬동. 앨림, 최앨림을 보며 말했다.
"찬동이랑 앨림은 나랑 동갑이라고 했고. 맞지?"
"어, 맞아."
칸느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말로 대답했고 앨림은 '네'라고 했다가 '응'으로 대답을 바꾼다.
"그래, 친구 적응하는데 잘 좀 도와주라."
"그래, 알았어. 뭐 물어볼 거 있으면 다 물어봐."
찬동이의 자신 있는 말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앨림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뭐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힘들거나 어려운 거 있으면 얘기해."
"그래, 친구끼리 돕고 그래라."
감독님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고 그 모습에 켜즈, 우찬 오빠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나는 친구가 없는데..."
"형... 저도 없어요."
클러서, 이준현 선수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고 둘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슬픔에 휩싸인다. 갑작스러운 둘의 행동에 페이크 선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들 이래."
친구가 없기는 페이크 선수도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뱅기 코치가 있으니까 그나마 좀 덜할 것 같기는 하다.
우재도 혼자인데 얜 과자를 먹는 모습을 보니까 외로움을 탈 녀석은 아닌 것 같다.
"운이 좋네. 팀에 친구가 두 명이나 있고. 우리 둘 말고는... 아, 민영이랑, 헌준이가 친구구나."
"네. 저희 둘이 동갑이요."
태디, 박진선 오빠도 혼자고. 생각해 보니까 팀에서 나이가 겹치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축복받았네.
팀에 친구가 있고 없고는 적응하는 부분에 있어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본다. 나이가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사람에 비해 아무래도 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고 그러한 부분이 분명 팀에 좀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본다.
"그래도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내 말에 양중인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한다.
"그래 아무래도 팀원 중에 동갑이 있으면 적응하기가 아무래도 좀 더 좋겠지. 팀에 하나밖에 없는 서포터이자 홍일점이니까 다들 적응 잘할 수 있게 도와줘. 알겠지?"
감독님의 말에 다들 기분 좋게 대답해 준다. 양중인 감독님은 대답하는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째 대답에 성의가 없는 것 같은데? 알겠지?"
감독님이 다시 묻자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팀원들이 대답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과자를 먹으며 난 팀원들의 대화를 듣기도 하고 내게 질문을 던지는 팀원들에게 대답을 해주며 시간을 보냈다.
확실히 어느 정도 대화를 섞자 어색함이 풀어졌고 생각보다 감독님과 코치분들이 팀원들간의 관계도 멀지 않게 느껴졌다.
굉장히 자유로운 대화가 오고, 가고 있었는데 게임에 관련된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생각보다 넓은 범위에서도 그랬다.
"찬동이는 여자친구랑 잘 만나고 있냐?"
감독님의 말에 난 고개를 돌려 찬동이를 바라봤다.
"에에? 찬동이 여자친구 있어요?"
"없게 생겼는데 의외지?"
감독님의 말에 찬동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머리를 매만지면서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찬동이의 표정은 가진 자의 여유가 흘러넘쳤다. 뭔가 다른 팀원들 잠깐 불쌍하게 본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연애만큼 폼도 좀 끌어올리자, 찬동아."
뱅기 코치님의 뼈 때리는 말에 찬동이가 상처를 받은 표정을 짓는다.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이걸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 하나?
"원래 얘가 폼이 좀 롤러코스터긴 해요."
앨림의 말에 다른 팀원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찬동이야 뭐, 솔직히 저번 시즌에도 갓느 아니면 간나였잖아."
페이크, 이상현 선수의 말에 박진선 오빠가 팔짱을 끼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갓느로 변신했을 때가 더 많긴 했지."
뱅기 코치님은 별안간 찬동이의 멱살을 붙잡더니 마구 흔들면서 말한다.
"우리 갓느 내놔. 간나 말고 갓느 내놓으라고! 이 간나 새끼야!"
찬동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며 종잇장처럼 뱅키 코치님에게 흔들려 팔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