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51. SKY Y1 (51/95)



〈 51화 〉51. SKY Y1

집에 돌아와  이 기쁜 소식을 곧바로 세연 언니를 비롯해  주변 지인들에게 전했다. 언니는 내가 집에 와서 허락을 받았다는 말에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기 바빴다.


"어디 맞았어? 괜찮아? 멍은 안 들었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연 언니를 보며 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안 맞았어. 생각보다 쉽게 허락받았어."

내 말에 세연 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진짜? 와... 대박이네. 나였으면 아마 3일 밤낮으로 맞았을 것 같은데."
"수정이랑 정후도 데리고 갔고 큰엄마도 미리 포섭했지. 거기다가 각개격파. 엄마랑 먼저 1:1로 대면해서 허락받고 아버지를 마지막에 만났지."


내 말에 세연 언니는 턱을 쓰다듬으며 놀랍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호오. 완벽한 설계였네."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내가 짐을 좀 싸야 하거든."

내 말에 언니가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본다.


"응? 짐? 짐은 왜?"
"프로게이머니까 당연히 숙소에서 생활해야지."

내 말에 언니가 아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말한다.


"거기서 먹고 자고 다 하는 거야?"
"응, 그런다고 봐야지."

연습실이랑 숙소가 5분 정도 거리니까 여기서 연습실에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내가 숙소로 들어가는  낫다.


"1인 1실이지?"
"당연하지."

내 말에 언니는 그나마 조금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이다.

"숙소는 가 봤어?"
"아니, 연습실만."

  방에 들어가 짐을 꾸리기 시작했는데 캐리어 하나에 당장 필요한 물건들 위주로만 챙겼다.


속옷부터 시작해서 편한 옷들과 혹시나 할지도 모르는 외출을 대비해서 나갈  입을 옷과 화장품 몇 가지를 챙겼다.

가장 중요한 건 머리끈이지. 그렇게 차곡차곡 필요한 물건들은 캐리어에 넣었고 언니도 옆에서 내가 혹시나 빠뜨린  없는지 확인해 줬다.


"거진  챙긴 것 같은데?"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필요한  있으면 언니가 보내줄게. 주말에는 그래도 집에 오는 거지? 아니면 그냥 여기서 출, 퇴근하기엔...  힘든가?"
"응, 주말엔 집에서 자. 뭐, 힘든 건 아닌데... 그래도 다 숙소 생활하는데 나만 특혜 받는  좀 그렇잖아."

내 말에 그것도 맞는 말이라 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긴 하지.   챙겨간 거 있으면 언니한테 전화해. 내가 택배로 보내줄 테니까."
"주말에 집에 오잖아. 그때 챙겨가면 돼."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캐리어를 챙기고 집을 나서니까 어쩐지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언니와 함께 지내던 곳에서 아무래도 낯선 곳으로 가서 그런지 마음이 뒤숭숭했다.


"캐리어가 그래도 꽤 큰데 택시 타고 가."

언니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기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 돈 있어. 안 줘도 돼.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집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이 캐리어를 끌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기엔 좀 거리가 있어서 애초에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받아. 언니가 줄 땐 그냥 받는 거야."


세연 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기어이 내 주머니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집어넣는다. 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고맙긴. 언니 심심하니까 주말엔 집에 꼭 와라."
"알았어."


 그렇게 말하곤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언니에게 말했다.


"나 가니까 가끔 좋은 시간 보내."

내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에 말했다.

"김주원 대표님 말이야. 나도 없고 하니까 집에 가끔 초대해서 오붓하게 둘이 어. 침대에서. 어."
"야!"


언니가 얼굴을 확 붉히며 날 때리려고 하기에 난 얼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난 키득거리며 안전거리 밖에서 언니에게 손을 흔들곤 얼굴에 잔뜩 힘이 들어간 표정으로 열심히  하라고 파이팅 포즈를 취해줬다.


"으이구."


언니는 손을 들어 보이며 날 째려봤고 난 웃음을 터뜨리곤 즐거운 마음으로 캐리어를 끌고 택시를 탔다.

숙소에 도착해 난 양중인 감독님이 알려주신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양중인 감독님이 말씀하시기를 아침, 저녁으로만 식사를 차려주시는 어머니가 한 분 계시고 그 이외 시간은 비어있다고 했으니 지금은 숙소에 아무도 없을 거다.


"짐 정리하고 바로 연습실로 오라고 했지?"

연습실과 숙소의 거리가 5분 정도 밖에 안 됐기 때문에 난 느긋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 앞에 도착했다.

다시 한 번 알려준 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양중인 감독님께서 사전에 내 방을 사진으로 보내줬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숙소 안에 있는 내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구나."


숙소 안방을 내게 내준 것 같았는데 원래는 SKY Y1의 전 서포터 올프 선수가 쓰던 방이라고 했다.

"오, 넓네."


방 안은 상당히 넓었는데 옷장도 많았고 수납할  있는 공간도 많았다. 심지어 화장대도 하나 놓여 있었다.

"에? 에어컨도 따로 설치돼 있네?"


거기다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하나 딸려 있어서 굉장히 편할 것 같았다.

"올프 선수 엄청 좋은 방 쓰셨네. 침대도 엄청 푹신하네."

다 올프 선수가 쓰던 건지 아니면 원래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인테리어도 심프하니 내 취향이고 가구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번잡하지도 않고. 근데 컴퓨터가 없다는 게 조금 흠이네.

연습은 집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선수들도 숙소에선 게임 안 하시나?

"물어봐야겠다."


얼마 쓰지도 못한 성능 좋은 컴퓨터가 집에 있는데 그걸 가지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캐리어에서 짐을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난 적당히 자리를 잡아 정리를 하고는 캐리어를 한곳에 세워뒀다.


"됐다."


 고개를 끄덕이곤 옷을 갈아입었다. 입고 온 외출복을 가지런히 옷장에 정리하고는 상의는 아이다스 흰색 크롭 티와 검은색 레깅스를 입고 그 위에 검은색 롱 패딩을 걸쳤다.


난 지퍼를 쭉 올리고 모자까지 쓴 뒤 숙소를 나섰다. 연습실이 가까워서 좀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옷을 입었는데 이동하는 동안은 조금 추운 건 감수해야 했다.

"음, 괜찮네."

따듯한 곳에 있다가 방금 나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춥지는 않았다. 난 걸음을 재촉해 빠르게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 건물로 들어간 나는 모자를 벗고 벨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TV에서나 보던 뱅기 코치님의 모습이 보였다.

"오! 정글 그 자체!"

내 말에 뱅기 코치님은 화들짝 놀라며 미소를 지었는데 양중인 감독님께  소개를 받았는지 아니면 내 얼굴을 익혔는지 날 바로 알아보셨다.


"아, 한국대 여신님. 윤세나  맞으시죠?"
"네. 윤세나 맞습니다!"


내 말에 뱅기 코치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누군가에게 말하며 문을 열어주신다.

"윤세나 씨 왔습니다."


인터폰의 화면이 꺼져서 누구에게 내가 왔다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양중인 감독님이 아닐까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연습실로 향했는데   와봤는데 그때완 뭔가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순수하게 견학을 위한 느낌. 그러니까 팬의 입장에서 방문했다면 지금은 선수로서 방문해서 그런지 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수많은 우승 트로피가 반겼고 선수단 전원이 일렬로 주르륵 서 있었다.


양중인 감독님이 제일 먼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환영해요. 윤세나 선수."


선수라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양중인 감독님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감독님은 천천히 코치진과 선수단을 소개했고 난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눴다. 특히나 페이크 선수와 인사를 나눌 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꺄악! 페이크 선수!"

내 격렬한 반응에 페이크 선수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엄청 미인이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페이크 선수와 악수를 나눴다. 오... 페이크 선수랑 손잡았다. 헤헤. 1군 선수들은 물론 연습생 선수들과도 모두 인사를 나눴는데 생각보다 다들 환대해 줘서 마음이 놓였다.

텃새가 있다거나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그런  없는 것 같았다.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연습을 할 때 모두가 함께 모여서 한다고 했다.


마치 PC방처럼 컴퓨터가 마련돼 있었는데 난 그중에서 올프 선수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사용하게 됐다.


"혹시 평소에 사용하던 장비 가지고 왔어요?"


양중인 감독님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내 자리를 보니까 마우스와 키보드가 보이지 않았는데 올프 선수가 팀에서 나갈 때 가지고 나갔단다.

"아니요. 딱히 주로 사용하는 장비 같은 건 없는데..."
"아, 애용하는 마우스나 키보드 없어요?"
"네."

내 말에 양중인 감독님은 잘 됐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말했다.


"잘 됐네요. 그럼 우리가 마우스랑 키보드 줄 테니까 한 번 사용해 보세요. 정 본인한테 맞지 않으면 얘기하시고요."


양중인 감독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양중인 감독님은 코치진 한 분에게 내 자리 장비 세팅을 부탁하신 뒤 날 보곤 말했다.

"잠깐 저  볼까요?"
"아, 네."


이게 그 선수단 면담인가! 오오... 양중인 감독님은 감독이라고 해서 별도로 감독실 같은 게 없었는데 선수들이 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계셨다.

"앉으세요.  마실래요?"
"아, 괜찮습니다."

난 감독님께서 권한 자리에 앉았는데 중, 고등학교 시절에 교무실에  학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이 컴퓨터 앞 책상에 앉아 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딱  모습과 일치해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일이 잘 풀린 모양이에요?"

양중인 감독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보다 부모님이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꿈에 그렸던 프로게이머. 거기다 롤드컵 3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 프로팀. SKY Y1에 입단했으니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정식으로 입단한 거 다시 한 번 축하해요."
"아, 감사합니다."


난 고개를 꾸벅 숙였는데 입고 있는 패딩이 살짝 불편했다. 그러고 보니까 바보같이 패딩을 계속 입고 있었네.

난 패딩을 벗는 시늉을 하며 감독님께 말했다.


"혹시 옷을 벗어 놓고 올 수 있나요?"
"아, 그럼요."
"죄송합니다. 금방 올게요."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자리에 갔다. 코치 한 분께서 열심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하고 계셨는데 난 그런 코치 분을 보며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면담은 벌써 끝나셨어요?"
"아직이요. 패딩이 불편해서."

난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패딩을 벗어 걸어 두려고 했는데 코치분께서 내게 말한다.

"아, 옷은 저기 걸어 두시면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옷을 걸어두는 곳이 있었구나."

난 코치님이 가르쳐준 옷걸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선수들 것으로 보이는 두꺼운 겉옷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옷걸이를 꺼내 패딩을 벗어 걸어 놓은 뒤 다시 감독님께 향했다.

감독님께 가면서 슬쩍 날 바라보는 선수들을 볼  있었는데 간혹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붉히며 피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엄청 쳐다보네.'


남자였을 땐 느낀 적 없던 시선들이 여자가 되고 나서는 상당히 많이 느껴진다.


노출이 심한 옷은 아니었지만 몸매가 조금 드러나는 옷이라 아무래도 시선이 갈 수밖에 없긴 하겠다. 그렇다고 훈훈한 연습실 안에서 땀띠 나게 입을 수도 없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감독님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말에 감독님은 유심히 나를 쳐다보더니 묻는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요?"


감독님의 말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냥 뭐... 부담감도 좀 있고... 내가 잘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래도 이쪽 바닥이 남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니까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고요."


내 말에 양중인 감독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제가 전부를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일정 부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예를 들자면 발레 하는 남자라던가 미용업에 종사하는 남자라가 겪는 어려움과 아마 맞닿아 있겠죠?"
"음... 저도 완벽하게 그게 맞다고 할  없겠지만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요?"

내 말에 양중인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저도 윤세나 선수를 영입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고민을 한  사실이에요. 계약 자체도 처음인 거 아시죠?"
"아, 네. 기사 봤어요."

LCK 역사상 최초의 여성 프로게이머. 나라는 사람을 프로게이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여자라는 부분에 무척 집중한 듯한 기사들이 수두룩했다.


"어... 그럼 그 기사도 보셨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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