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48. SKY Y1
SKY Y1의 연습실에 들어가자 하얀색 진열대 위에 즐비해 있는 우승 트로피가 제일 먼저 눈을 사로잡았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며 한쪽 벽에 붙어 있는 Y1의 마크를 쳐다봤다.
'정말로 SKY의 연습실이구나.'
너튜브 각을 잡고 싶긴 했지만 처음부터 다짜고짜 방송을 하겠다고 하는 건 좀 민폐인 것 같아서 꾹 참고는 천천히 내부를 둘러봤다.
전체적으로 밝은 인테리어였고 선수들이 언제든 먹을 수 있게 한쪽에는 식탁과 더불어 군것질할 수 있는 과자나 커피들이 마련돼 있었다.
내가 연습실 안을 유심히 보는 모습에 양중인 감독님은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연습실 구경시켜드릴까요?"
"어? 정말요?"
"어려울 것 없죠."
양중인 감독님의 말에 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런 내 모습에 양중인 감독님은 웃더니 나를 데리고 Y1의 연습실을 구경시켜주셨다.
"일단 여기가 선수들 연습실이고요."
입구에서 들어와 바로 좌측으로 꺾으니 선수들이 연습하고 있는 공간이 보였는데 상당히 넓은 공간에 벽 쪽으로 컴퓨터가 붙어 있어서 마치 PC방처럼 보였다.
"선수들이 근데 없네요?"
내가 조금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묻자 양중인 감독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지금은 개인 훈련 시간이라."
"아..."
"그리고 여긴 곧 선수들이 빠질 겁니다."
"에? 빠진다고요? 왜요?"
"강남 신사옥으로 들어가거든요. 여기보다 훨씬 환경이 좋을 겁니다."
"여기도 되게 좋은 것 같은데."
"거기보단 별로예요. 마음에 드실 겁니다."
벌써 내가 이 팀에 일원이 된 것처럼 말씀하셔서 기분이 묘했다. 난 볼을 긁적이며 친절한 양 감독님 덕분에 양껏 연습실 구경을 끝내고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 앉았다.
그럼 이제 입단 테스트 시작인가? 난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손도 풀고 하고 있었는데 양중인 감독님이 서류를 가지고 나오신다.
"에?"
나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기울이며 쳐다봤는데 그런 내 반응이 귀여웠는지 미소를 짓곤 반대편 의자에 앉는다.
"계약 서류입니다."
"계약 서류요? 입단 테스트나 뭐 그런 거 보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양 감독님께선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굳이 별도로 입단 테스트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챌린저까지 90% 가까운 승률로 올라오셨죠. 주 라인은 미드지만 간혹 다른 라인을 하실 때의 승률도 무척 높으시더군요. 특히 서포터는 판 수가 적지만 100%시고요."
양 감독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계약서 서류를 내게 밀어주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특히나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그러셨는지 서포터를 하실 때 진행되는 게임에 대해 분석하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제 생각과 거의 일치하더군요."
"아... 그래서 메인 오더를..."
양 감독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말했다.
"또한 전 윤세나 선수가 올라운더 플레이가 가능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어느 라인에 가셔도 1인분 이상을 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 아주 뛰어난 감독이네. 나를 아주 제대로 봤어. 담언을 1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끌어올린 게 결코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결정은 꼭 지금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모님과 상의도 해보셔야 할 거고.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 숙소 생활도 하셔야 하니까요."
감독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를 천천히 읽어봤다. 프로게이머 계약이었고 계약서 상에 별다른 문제가 되는 조건은 없었다.
"계약기간은 1년, 당연한 얘기지만 1군 계약이고 연봉은 최저연봉인 6천만 원입니다."
"6천만 원이요? 최저연봉이 6천만 원이나 돼요?"
내가 놀라서 묻자 양중인 감독님이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윤세나 씨께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1년 후 연봉은 더 높아질 순 있어도 떨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거야 재계약을 했을 때 얘기 아닌가요?"
"노련하시네요."
1년 계약이라... 적어도 2년은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뭐, 부모님께는 계약기간이 2년인 것보다 1년인 게 더 설득하기 쉽긴 하겠다.
2년 해본다는 말과 딱 1년만 해보겠다는 말은 엄연히 다를 테니까.
"좋아요. 계약 할게요."
내 말에 양중인 감독님이 조금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본다.
"부모님과 상의해 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일단 저지르고 봐야죠. 이거 계약 파기하면 되도록 많은 위약금 물게 해주실 수 있나요?"
내 말에 양중인 감독님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거야 뭐... 가능합니다만... 계약서 검토도 해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보다 그런 건 제가 잘 합니다. 계약서 상에 문제될 건 하나도 없네요."
내 말에 양 감독님께서 의아한 표정을 짓기에 눈을 가늘게 뜨곤 말했다.
"제 방송 제대로 안 보셨네. 저 한국대 법대라는 거 모르시네요."
내 말에 양중인 감독님이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본다.
"한국대 법대요?"
"네."
내 말에 양중인 감독님이 정말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보기에 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계약서 수정해 주시면 바로 서명할게요."
난 양중인 감독님께 계약서를 밀었고, 양중인 감독님은 내가 밀어준 계약서를 들고 깔끔하게 찢어버리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바로 준비해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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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의 효력은 즉시 발휘가 됐다. 나는 계약서에 명시된 것처럼 내일 곧바로 1군 선수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난 일을 다 저지른 후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일단 적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지원군을 모집하고 내부에 강력한 아군을 만들어야 한다.
난 가방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정후와 수정이에게 동시에 그룹 콜을 걸었다.
[여보세요!]
[뭐야? 웬 그룹 콜이야.]
예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수정이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받는 정후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난 둘에게 다짜고짜 용건부터 말했다.
"둘 다 지금 시간 있으면 나랑 속초에 좀 가자."
[에? 갑자기? 지금? 부모님한테 가는 거야?]
[속초? 속초는 갑자기 또 왜? 너 사고 쳤냐?]
"아아, 사고라면 사고일 수도 있지."
난 그렇게 대답하곤 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헐... 진짜 프로게이머가 된 거야? 축하해!]
[프로 1군 계약을 했다고? 부모님이랑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이거 미쳤네.]
"하여간 둘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 말에 수정이는 기합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 이 언니가 도와줄게. 아버님은 내가 맡으면 되고 어머님은 정후 네가 맡아라. 그럼 승산이 있다.]
[내가 봤을 때 이거 그냥 다 죽는 각인데.]
"야야. 괜찮아. 설마 죽이기야 하시겠냐. 나한텐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내 말에 둘 다 궁금했는지 묻는다.
[뭔데?]
[비장의 무기?]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연봉."
정후나 수정이처럼 부잣집 딸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대학교 등록금도 장학금으로 다니고 있었다. 어머니는 속초에서 갈비집을 운영하시고 아버지는 고물상을 하고 계셨는데 솔직히 경기가 어려워 금전적으로 많이 힘드신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1년 연봉 6천만 원이라는 건 사실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다. 물론, 이 둘이야 자기가 타고 다니는 차가 세 배? 네 배인가? 하여간 그런 가격의 차를 타고 다니니까 별다른 감흥이 없겠지만 나 같은 서민에겐 엄청난 금액이다.
'조금 반칙성 플레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막내 버프에 정후, 수정이까지 함께 한다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다.
거기다가 내부의 아군 섭외. 이건 어차피 전화만 걸면 끝나는 부분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마다 도와주신 큰엄마.
진짜 피가 섞인 큰엄마는 아니었지만 진짜 피가 섞인 사람들보다 더 우리에게 잘해주시고 베풀어주신 분이다.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큰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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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큰엄마도 미리 포섭했고 수정이와 정후도 함께 속초로 내려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룹 콜에도 응한 둘에게 난 휴게실에서 맛있는 식사 대접을 약속했다.
"오랜만이다. 버스 타고 가는 거."
수정이는 잔뜩 설레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정후는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냥 내 차 타고 가자니까."
"오랜만에 버스 타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기차도 난 좋은데. 기차는 너무 오래 걸리지?"
"기차는 좀 더 걸리긴 하지. 강릉에서 또 버스로 갈아타고 가야 하고. 좀 불편해."
내 말에 수정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조금 아쉽네. 기차도 안 타본 지 오래됐는데. 그나저나 요즘 버스 괜찮다."
수정이의 말에 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비싼 버스야."
내 말에 수정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확실히 좀 고급 지긴 하다."
귀하신 분들이 속초에 함께 가주시니 프리미엄 버스로 표를 끊었는데 사실 나도 고속버스만 타고 가서 이런 프리미엄 버스는 처음이었다.
뉴스에서 뭐 간혹 기사로 보기나 했지 직접 타볼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우등보다 30% 더 비싼 가격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평일 오전 시간 때라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버스에 타는 사람은 우리 말고 없었다.
덕분에 우린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옆자리에는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놨다.
"오... 이거 대박이네."
자기 좌석에 앉은 수정이가 좌석 뒤편을 열심히 손가락으로 눌러보고 있어서 내 앞좌석을 봤더니 모니터가 붙어 있었다.
"오."
나도 탄성을 내지르며 수정이처럼 연신 눌러보기 시작했다. 어떤 기능이 있나 궁금해서 확인해 봤는데 생각보다 여러 기능이 있었다.
"이거 케이블 TV도 볼 수 있다. USB가 있으면 파일 재생도 가능한 것 같은데?"
"그렇네. 이게 출발 시간이고 이건 도착 예정 시간인가 보다. 오... 네비게이션 기능까지 있네."
우리가 어디쯤 이동하고 있는지도 볼 수 있고 도착 예정 시간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정보가 제공됐다.
"화장실 버튼이랑 응급 버튼도 있네."
버스를 탈 때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휴게실에 들어갔는데 이 버스는 승객이 원할 때 휴게실에 갈 수 있는 모양이다.
"이거 좋네."
확실히 좋은 기능이다. 프리미엄 버스 괜찮네. 거기다 TV 밑에는 작은 테이블을 꺼낼 수 있게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견고하고 넓어서 노트북 같은 거로 작업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각종 음료를 넣을 수 있는 홀더도 있었고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단자가 있었다.
"그냥 올리면 자동으로 충전되네."
내 말에 수정이가 나를 따라서 곧바로 핸드폰을 충전시켜보더니 오오! 하며 소리를 낸다.
"진짜 충전 된다. 무선 충전기인가 보네."
좌석도 전자식으로 조절할 수 있었는데 무척이나 편리한 기능이었다. 버스 안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라면 솔직히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정후처럼... 정후는 버스에 타자마자 의자를 뒤로 양껏 젖히고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내가 쳐다보자 날 힐끗 보더니 커튼을 친다.
"갑자기 불러서 삐졌나?"
"삐지긴 네 핑계 대고 일 안 하니까 좋지. 됐어. 신경 쓰지 마. 으흠, 지금 11시니까 한 12시나 1시쯤에 휴게실 버튼 한 번 눌러서 맛있는 거 먹고 가자. 근데 쉬는 시간도 우리가 마음대로 쉴 수 있나?"
"우리밖에 없으니까 되지 않을까?"
내 말에 수정이가 버스 안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아무도 타지 않으면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아무도 안 탔으면 좋겠다."
수정이의 말에 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우린 장난스럽게 두 손을 빌며 간절히 기도했고 그 기도가 통했는지 버스는 우리 셋만 태우고 출발했다.
"출발!"
"출바알!"
우린 장난스럽게 소리를 내며 케이블 TV를 보며 이동했는데 놀랍게도 모든 게 무료였다. 단순히 케이블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더니 맙소사! 다시 보기가 가능하다.
난 이 좋은 소식은 얼른 수정이와 공유했고 수정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얼른 못 봤던 드라마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영화! 영화도 공짜야!"
난 눈을 동그랗게 떴고 수정이도 나를 쳐다보더니 나보다 더 크게 눈을 뜨고 날 쳐다본다.
"대박!"
"대박!"
수정이와 나는 동시에 소리치며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보고 싶은 걸 찾았고 우린 입가에 미소를 걸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우리 예정보다 좀 더 이른 식사를 하자고."
수정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뭔가를 집어 먹는 시늉을 했고 난 배시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먹을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