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45. 챌린저
정후 말고는 내가 제일 먼저 나왔는지 풀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탁 주변은 온풍기 열로 훈훈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약간 쌀쌀한 감이 있었다.
"이거 다 준비되려면 좀 걸리지?"
내 물음에 정후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좀 걸리지."
정후의 말에 난 잘 됐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곤 풀장으로 향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어서 난 발을 살짝 집어넣어서 온도를 확인했다.
"오, 따듯하네."
딱 적당한 온도였다. 난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풀장에 뛰어들었다.
풍덩! 하는 물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난 밝게 웃으며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미역처럼 얼굴에 붙어 남들이 보면 물귀신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을 터뜨렸다.
"좋냐?"
정후는 어느샌가 풀장에 다가와 날 보며 웃더니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갛게 웃었다.
"응, 엄청 따듯하다."
난 손짓으로 정후를 부르며 말했다.
"너도 들어와."
내 말에 정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싫으면 말아라."
따듯한 물에 들어오니 몸이 노곤곤해지는 게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난 미소를 지으며 힘을 빼고 물에 누웠다.
"와, 맛있는 냄새!"
언니는 풀장에 나오자마자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연두는 풀장에 있는 날 보며 얼른 다가오더니 말한다.
"어? 세나 언니는 벌써 풀장에 들어갔네?"
"연두야 너도 들어와. 물 엄청 따듯해."
내 말에 연두가 미소를 짓더니 쭈그리고 앉아서 물에 손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더니 물 온도가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난 그 모습이 귀여워 작게 웃었는데 연두의 시선이 어째 좀 불손한 느낌이 들었다.
입을 살짝 벌리고 살짝 헤... 하며 바라보는 게 내 가슴이라는 게 느껴졌다. 난 턱을 살짝 당겨 눈을 아래로 깔았다.
'대박...'
남자일 때와는 전혀 다른 뷰에 나도 모르게 연두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두 언덕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배영을 하니 마치 돌고래의 꼬리처럼 두 언덕이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생각보다 야하다고 할까?
하하...
난 몸을 바로 하고는 연두를 쳐다봤고 연두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두둑이 제 발 저린다고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더니 괜히 다른 소리를 한다.
"와! 냄새가 정말 좋네요!"
요리사분들을 쳐다보면서 손뼉까지 열심히 치면서 얘기해봤지만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팔짱을 낀 상태로 쳐다보자 내 눈치를 살짝 본다.
"헤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쳐다봤죠."
결국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하기에 난 피식 웃곤 말했다.
"아니야. 뭐... 좀 색다른 기분이긴 하네."
"네?"
내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기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여자도 여자 가슴을 보는구나. 내가 느낀 색다른 감정이 그거였다. 보통은 남자들이 굉장히 쳐다보는 게 느껴지는데.
음, 지금도 사실 슬쩍, 슬쩍 내게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열심히 요리를 하시면서도 날 바라보는 몇몇 요리사분들이 계셨고.
정후도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내가 여자가 되고 나서 느낀 점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는 거였다.
특히나 남자. 간혹 여자들이 나를 보는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 연두처럼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는 건 처음이라 조금 색다른 기분이었다.
"와! 정말 좋네."
가장 마지막에 나온 한철 오빠와 서유리 씨를 쳐다봤다. 한철 오빠는 경호원답게 굉장히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누가 보더라도 몸 좋다는 소리가 나올만했다.
그 옆에 선 서유리 씨도 굉장히 몸매가 좋으셨는데 운동으로 열심히 가꾼 것 같은 티가 났다. 30대 중후반의 농밀한 여체는 확실히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모양이다.
'비키니를 입어서 그런가?'
스트라이프 형의 비키니를 입으셨는데 요리사분들이 요리에 제대로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니는 붉은색 계통의 다운 비키니를 입고 있었고, 풀장에 오자마자 대표님께 사진을 찍어서 보내줄 거라면서 오도방정을 떨었다.
연두는 하얀색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있었는데 많이 마른 체형이라 그렇지 절대로 몸매가 안 좋은 건 아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까 뭔가 정후가 제일 이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후가 계탔네."
내 말에 고개를 돌려 연두가 날 쳐다보더니 곧 내 말이 이해가 갔는지 입을 가리곤 웃음을 터뜨린다.
난 가볍게 풀장 안에서 수영을 했다. 수영을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난 자유형으로 풀장을 왕복하기도 하고 퀵턴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또 배영을 하고...
"와아!"
연두의 탄성에 배영을 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더니 연두 말고도 서유리 씨와 강한철 씨 그리고 세연 언니까지 날 보고 있었다.
"수영 엄청 잘하네요."
서유리 씨의 말에 난 배영을 멈추고 발을 바닥에 딛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남자일 땐 머리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없었는데 여자일땐 긴 머리카락 때문에 되게 불편하다.
뭔가 살짝 무거운 추를 머리 끝에 달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처음에 여자가 되고 느꼈던 머리카락의 무게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하지만 지금처럼 머리카락이 물을 섭취하면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무게다. 거기다 커튼처럼 얼굴에 드리워 미역처럼 달라붙는... 이 느낌은 시간이 지나도 영 적응이 안 된다.
"아, 수영하는 거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배웠거든요."
내 말에 세연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 끝나며 바로 수영하러 가고 그랬어요."
"그래서 몸매가 좋구나."
내 말에 서유리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날 쳐다봤고 강한철 씨는 그런 날 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수영하신 것치고는 어깨가 좁으신 편이네요."
"아, 오랫동안 꾸준히 한 건 아니라서요."
내 말에 강한철 씨는 그제야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그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읏차."
귀여운 소리를 내며 계단을 밟고 풀장 안으로 들어오는 연두를 보며 난 미소를 짓곤 수영을 해서 다가갔다.
연두는 내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는데 딱 보니까 물과 친한 편은 아닌 것 같았다.
"연두 물 무서워하는구나."
내 말에 연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수영할 줄 모르겠네?"
내 물음에 역시나 연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정후의 말에 다들 풀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연 언니도 어렸을 때 함께 수영장에 다녔기 때문에 수영을 어느 정도는 하는 편이었다.
풀장 안으로 들어온 서유리 씨도 그렇고 강한철 씨도 그렇고 수영을 아예 못하는 분들이 아니었다. 풀장 안이 그렇게 좁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부딪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며 노는 모습이 보였다.
"와..."
연두는 그런 모습에 그저 감탄하며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저 통통 걸어 다니면서 한쪽에 서 있기만 했는데 난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내가 수영 좀 가르쳐 줄까?"
내 물음에 연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날 쳐다본다.
"수영이요?"
"응."
"잠깐 배운다고 제가 수영을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못하지."
내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는 연두를 보곤 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대신 수영 비슷하게 할 순 있어."
내 말에 다시 고개를 들곤 날 쳐다보는 연두의 모습에 기대 어린 눈빛을 보곤 웃으며 말했다.
"자."
난 연두에게 손을 내밀었고 연두는 조심스레 내 손을 붙잡았다. 난 연두를 데리고 풀장 끝으로 다가갔다.
"음... 일단 이거 한 번 붙잡아봐. 내가 잡아줄게."
내 말에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풀장 끝에 손을 집는다.
"그리고 다리를 천천히 띄워서 물을 차 봐."
내 말에 연두는 곧잘 발로 물을 찬다.
"오, 잘 하네!"
내 말에 연두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더 열심히 물을 찬다. 약간 허우적 거리는 느낌이 나긴 했지만 어쨌든 아예 수영을 못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감은 있는 것 같은데... 됐어. 힘들지?"
내 말에 연두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조금 헥헥 거리는 것 같은데? 난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해보자."
난 연두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자, 이렇게 붙잡고. 고개만 숙여서 숨참기. 음, 파, 하. 이렇게 하면 되거든."
"음, 파, 하요?"
연두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기에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응. 어떻게 하냐면 이렇게 물에 들어가서 음. 하고 코로 공기방울이 나오게 뱉는 거야."
난 물에 직접 들어가 연두에게 보여주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물 밖으로 나와서 파! 하고 남은 숨을 내뱉고 하! 하고 뱉은 후에 다시 하! 하고 숨을 마쉬는 거야. 숨을 크게 마신 만큼 내뱉어 주는 거야. 이게 가장 기본적인 거야."
내 말에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한 번 해볼게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난 연두가 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이번엔 뒤로도 해보자."
내 말에 연두는 손을 뒤로 뻗어 붙잡고는 잠수해 똑같은 방식으로 몇 번 반복했다.
"잘 하는데? 수영할 줄 알면서 못하는 척하는 거 아니야?"
내 말에 연두는 수줍은 미소를 띄며 손을 살랑 흔들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 어렸을 때 바다에서 놀다가 빠진 적이 있어서 물을 되게 무서워 해요. 지금도 엄청 겁나는데 언니 믿고 하고 있는 거예요. 뭐, 물도 그렇게 깊지 않고."
"아, 그랬구나. 어쩐지..."
물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물에 관련된 안 좋은 기억이 있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난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확실히 그러면 물이 좋을 수가 없지. 그래도 수영은 내 생각엔 배워두면 좋다고 생각하거든. 사람이 살면서 무슨 일을 겪을 줄 모르니까. 진짜 수영을 못 하면 죽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잖아."
내 말에 연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수영이야 배워두면 나쁠 거 하나 없긴 하죠. 언제고 써먹을지도 모르고."
"좋은 자세야. 그럼 계속 해볼까?"
"네, 언니."
병아리처럼 대답하는 연두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난 수영을 하기 전에 기초적으로 배워야할 것들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줬다.
"숨을 생각보다 잘 참네?"
"헤헤, 제가 걷기나 달리기 같은 거 많이 하거든요."
"아, 그래? 어쩐지... 그래서 말랐나 보다. 운동하는 거 평소에 좋아하는구나."
내 말에 연두가 웃으며 도리질을 친다.
"아니요.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집에 강아지가 있거든요."
"아아..."
연두의 말에 난 단번에 이해가 됐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면서 본인도 자연스럽게 운동이 하는 모양이었다.
"좋네. 강아지가 충견이네, 충견이야."
내 말에 연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한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자."
내 말에 연두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네!"
물에 뜨는 방법 중 해파리 뜨기, 엎드려 뜨기도 했고 벽에서 손을 떼고 이젠 내 손을 붙잡고 진짜 수영을 시켜볼 생각이었는데 정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 많으니까 나와서 먹고 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영을 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이 풀장에서 다 나갔는지도 몰랐다. 풀장 안에는 나와 연두만 있었고 정후는 예쁘게도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다 됐어?"
내 물음에 정후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하고는 계단이 있는 방향 쪽으로 걸어간다.
난 그런 정후를 빤히 쳐다보며 계단이 아닌 그냥 벽 쪽으로 향해 양팔을 걸치곤 점프를 해 올라왔다.
"그쪽으로 나올 생각이었으면 미리 말해줄래?"
정후는 그렇게 말하더니 걸음을 다시 돌려 내게 다가왔고 수건을 걸쳐줬다. 난 몸을 돌려 연두에게 손짓했다.
"연두야, 먹고 하자."
"네!"
연두는 밝은 표정으로 내 손짓에 아장아장 물속을 걸어온다. 난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고 정후를 쳐다보며 물었다.
"수건은?"
"뭔 수건?"
"연두 수건."
내 말에 정후는 날 쳐다보며 두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돌려 직원을 쳐다본다. 직원은 정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빠르게 연두에게 다가간다.
난 연두가 나오는 걸 도왔고 직원은 수건을 건네준다.
"감사합니다."
연두가 직원에게 수건을 받으며 감사를 표했고 물기를 닦으며 날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언니랑 같이 수영 배우니까 되게 재미있어요."
"그래? 나도 잘 배우니까 기분이 좋네. 운동 신경이 원래 좀 있는 편인 것 같은데?"
내 말에 연두는 살짝 수줍어 하면서도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제가 그런 얘기는 좀 듣는 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