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43. 챌린저
"챌린저 축하드려요."
강한철 씨도 예쁘장한 포장지에 담긴 선물을 내게 건네줬는데 난 넙죽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이거 뜯어봐도 되나요?"
내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묻자 강한철 씨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집에 가서 열어봐 주세요."
"헐... 저 복수 당한 건가요?"
난 고개를 휙 돌려 언니를 째려봤다.
'이게 다 언니 탓이야!'
언니는 자신을 째려보는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한다.
"아까는 선물 대신 준비해 줬다고 고마워했으면서 이젠 그렇게 예쁘게 째려보기야?"
난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내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서유리 씨는 시무룩한 나를 보며 말했다.
"제가 드리는 건 열어보셔도 돼요."
"진짜요?"
선물을 열어봐도 된다는 말에 바로 반색하며 좋아하는 나를 보며 또 다시 웃음을 터뜨리는 매니저분들을 보며 나도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받자마자 상남자스럽게 포장을 뜯는 나를 보면서 서유리 씨가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 생긴 건 예쁘게 생기셔서 포장 뜯는 건 상남자시네."
엣헴. 아무래도 내재된 남성적인 면모가 아직 남아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하여간 이러한 내 모습에 박력있다며 좋아하는 이연두 씨의 말에 난 조금 더 오버해서 뜯는 시늉을 했더니 다들 좋아라 해줬다.
"오. 향초?"
포장을 뜯으니 투명한 포장지 안에 또 포장돼 있는 초가 보였는데 딱 봐도 향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와.. 향 엄청 좋아."
포장된 상태였는데도 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난 코를 대고 냄새를 맡다가 옆에 있는 세연 언니에게 맡아보라고 줬다.
언니도 코를 가져자 대고 향을 맡았는데 확실히 냄새가 나는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인다.
"난다. 나. 와.. 엄청 좋은 향이다."
"어디서 많이 맡아본 향인데... 이게 뭐지?"
어디서 분명 맡아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 정확한 향의 주체를 모르겠다.
"아마 시중에선 맡아보지 못했을 걸요? 제가 직접 만들었거든요."
"아! 그래서 익숙한데 향이 좀 달랐구나. 너무 좋아요!"
내 말에 서유리 씨는 가슴에 손을 얹고 굉장히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정말 다행이네요.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너무 좋아요. 잘 쓸게요."
내 말에 서유리 씨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연두 씨는 다른 분들의 선물을 보며 자신의 선물이 조금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저기... 제가 학생이라 금전적으로 조금 부족해서 좋은 선물을 가지고 오진 못했어요."
난 연두 씨의 말에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에이, 마음이 중요하죠.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내 말에 조금 마음을 놓았는지 이연두 씨는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포장된 선물을 내게 내밀었다. 사이즈가 굉장히 작은 것으로 봐선 뭔가 액세서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지나 목걸이? 뭐 그런 건가요?"
내 말에 연두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척하면 척이죠."
난 배시시 미소를 지으면서 선물을 받고는 물었다.
"설마 집에 가서 뜯어보라고 하는 건 아니죠?"
내 물음에 연두 씨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잔뜩 기대 어린 표정을 지으며 포장을 뜯었다.
"오, 목걸이네. 이거 뭐라고 하더라?"
"초커 목걸이요."
"아, 맞아. 초커 목걸이."
밴드 형태의 목걸이였는데 금색 테두리에 중앙에는 검은색 장미 문양이 있었고 아래에는 마찬가지로 검은색 길쭉한 돌 형태의 로제타가 달려 있었다.
"예쁜데?"
서유리 씨의 말에 언니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비싸 보이고요."
스무 살 여자가 선물로 주기에는 비싸 보이긴 했다. 난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두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비싼 거 아니에요?"
내 물음에 연두 씨는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진짜 싼 거예요. 그러니까 부담 가지실 필요 한 개도 없어요."
"진짜죠?"
내가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흘겨보자 연두 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이에요."
그렇게 말하자 조금 안심이 됐다. 난 바로 초커 목걸이를 차고 핸드폰을 셀카 모드로 하곤 내 모습을 바라봤다.
"오, 예쁘네."
자화자찬이라고 할 수 있지만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보는 거다. 뭐라고 할까? 새하얀 피부에 검은색 초커 목걸이라. 묘하게 색기가 넘쳐 흐른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잘 어울리긴 엄청 잘 어울렸다.
"와... 진짜 예쁘시다."
연두 씨는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모두 들어 보였고 서유리 씨도 감탄하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진짜 너무 예쁘네."
정후야 뭐 심드렁한 반응이었고 강한철 씨는 입을 살짝 벌리고 반쯤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언니도 무척 잘 어울린다면서 초커 목걸이의 위치를 잡아줬다.
"아, 여기 언니분 것도."
언니도 똑같은 초커 목걸이였는데 나와는 조금 달랐다. 밴드 형태가 아니라 가는 줄의 형태였고 큐빅이 박힌 리본 스웨이드 형태의 초커 목걸이였다.
"와. 이것도 예쁘네."
난 언니의 초커 목걸이를 보면서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도 한 번 해봐."
딱 봐도 예쁠 것 같은데 어떤 느낌인지 보고 싶었다. 언니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양하지 않고 바로 해보고는 나처럼 역시나 핸드폰으로 확인한다.
"오, 괜찮네. 예쁘다."
언니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에 선물한 연두 씨도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두 분 다 너무 잘 어울리네요. 진짜 뿌듯하다."
그럼 선물도 다 교환했고. 난 환기 차원에서 손뼉을 짝! 치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들 점심 식사하러 갈까요?"
내 물음에 다들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자연스럽게 정후를 쳐다봤고 정후는 그런 내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자."
정후는 직원을 호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거실 쪽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점심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요."
내 말에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내하겠습니다."
간결한 대답에 우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을 따라 이동했다.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한다는 생각에 매니저분들은 들뜬 모양이었다.
"저 호텔에서 밥 처음 먹어봐요."
"저도요."
강한철 씨와 이연두 씨는 호텔에서 식사를 먹는 게 처음인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고 서유리 씨는 먹어본 적이 있는지 귀엽다는 듯 둘을 보며 웃었다.
"아, 여긴 따로 촬영 안 하시나요?"
연두 씨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쉬러 왔는데 쉬어야죠. 방송하면 또 방송에 집중해야 할 텐데. 여러분들 모셔 놓고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내 깊은 뜻에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매니저분들이 쳐다보기에 난 미소를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매니저분들에게 집중하는 게 예의죠. 방송하면 아무래도 방송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건 제가 싫어요."
"너무 감사한 말씀인데요?"
서유리 씨의 말에 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한 거죠."
난 그렇게 말하곤 직원을 따라 이동하면서 호텔 내부에 있는 예술품들을 보며 지나갔다.
"곳곳에 예술품들이 정말 많네."
"그러게요.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고급스럽네요."
벽에 별다른 인테리어가 들어가지 않아도 예술품 하나를 턱 걸어 놓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냥 멋진 인테리어가 된다.
"확실히 무진이 대기업은 대기업이네요. 미술품 하나, 하나 다 고가의 미술품들이에요."
서유리 씨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고가의 미술품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놀라운 건 가품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진품을 떡하니 다 걸어 놓고... 보안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강한철 씨의 말에 서유리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죠? 그리고 원래 이런 고가의 미술품들은 보험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요."
내가 알기로도 그렇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험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이런 고가의 미술품을 잔뜩 도배시켜 놓은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모를 훼손이나 파손이 두렵지도 않은가? 미술품의 원본이 망가지면 그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질 텐데.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직원에게 안내받아서 이동한 곳은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 곳이었다. 직사각형 형태의 테이블 위로 가지런히 식기가 올려져 있었다.
우리가 앉자마자 식전 빵과 스프를 들고 직원들이 안으로 우르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곳으로 우리가 이동한다는 걸 미리 연락한 모양이다.
"오오..."
빵과 스프 냄새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고소한 빵 냄새와 향긋한 스프 냄새에 코를 박고 직접 맡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난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앉아 바로 식기를 들고 말했다.
"다들 시장하셨을 텐데 얼른 드시죠."
내 말과 동시에 다들 식기를 들기 시작한다.
"전 여기서 맛있게 먹으려고 아침도 대충 먹고 왔거든요."
내 말에 연두 씨도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요. 사실 아까부터 배가 고파서 어질어질했거든요.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진짜 맛있어요."
"저도 간단하게 먹고 왔는데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한가 봐요."
서유리 씨의 말에 강한철 씨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식전 빵과 스프에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어 미소가 나왔다.
"아니, 식전 빵이랑 스프가 뭐 이렇게 맛있어?"
새삼 놀랍다는 표정으로 서유리 씨가 말했고 강한철 씨나 이연두 씨도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뭔가 달랐다. 호텔에서 먹기 때문에 내 기분이 다른 건지 아니면 정말 여기 빵이랑 스프가 유별나게 맛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 입맛에 확실히 맞았다.
끝임없이 밀려오는 수준급 요리들의 향연에 우리는 배가 부르는 것도 잊고 거침없이 입 안에 밀어 넣었다.
"내가 지금까지 뭘 먹고 살았던 거야."
"진짜 맛있어요..."
"눈물날 정도로 맛있네요."
매니저분들은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런 얘기들을 했고 나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맛있어도 너무 맛있는 음식들에 배가 불러도 계속 들어갔다.
그렇게 메인 요리에 디저트까지 꾸역꾸역 배에 밀어 놓고 나서야 몸을 축 늘어뜨리곤 눈을 감았다.
"아, 배불러..."
진짜 꼼짝하기 싫을 정도로 원 없이 먹었다. 이건 그렇게 먹을 수밖에 없는 음식들이다. 이게 원래 이 정도로 나오는 건지 아니면 정후가 있어서 특별히 더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너무 맛있었어요."
연두 씨는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감사를 표했고 서유리 씨와 강한철 씨도 지금까지 먹어본 것들 중에서 최고였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라 내심 정후를 보며 고맙게 생각했다.
"분에 겨울 정도로 대단한 음식들이었어요."
연두 씨가 두 손을 꼭 모으고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말하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너무 행복한 얼굴이었기 때문인데.
이미 위로 들어간 음식들의 맛을 다시 한번 느끼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 정도로 행복한 얼굴이었다.
"다들 맛있게 드셨다니 좋네요. 그럼 저녁 먹기 전까지 재미있게 놀아요. 저녁은 더 근사할 거니까 기대하시고요."
"저기..."
연두 씨가 조심스레 손을 들며 말하기에 난 마치 교수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저녁에도 와인을 마실 수 있나요?"
점심을 먹으며 와인을 살짝 곁들였는데 괜찮았던 모양이다.
"그럼요. 점심에 먹은 와인은 싸구려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내 말에 연두 씨를 비롯해 강한철 씨도, 서유리 씨도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싸구려라고 하기엔 와인 맛이 너무 훌륭했는데요."
강한철 씨의 말에 서유리 씨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제가 먹어본 와인 중 제일 맛있었어요. 아, 물론 와인을 많이 먹어본 건 아니지만요."
난 자신만만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점심 때 와인은 생각도 나지 않게 해드릴게요. 저녁엔 풀장에서 바베큐 파티를 할 거니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수영복 다들 가지고 오셨죠?"
내 물음에 다들 들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불타는 저녁을 위해 각자 취향에 맞게 잘 쉬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