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41. 챌린저
난 생각난 김에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방송이 끝날 때 세 명 모두가 게임에 접속해 있었으니까 늦은 시간이지만 전화를 해도 괜찮을 거다.
'아, 문자를 할까?'
매니저분들의 상황이나 환경을 모르니까 민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에서 문자로 급선회했다.
"지금 하려고?"
내가 핸드폰을 꺼내자 언니가 묻는다.
"응."
난 그들에게 챌린저 달성 기념 + 매니저분들의 노고에 감사해서 파티를 할 생각인데 참석해 줬으면 대단히 감사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참석 가능한 편한 시간을 알려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내일 정후한테 전화해서 부탁하면 되겠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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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정후에게 전화했다.
"야! 이정후. 너 어디냐?"
[나? 집이지. 왜?]
"어디서 일하고 있는데?"
[나? 호텔무진에서 일하고 있는데. 왜?]
"오, 그래? 잘 됐다."
[뭐가?]
"나, 그 호텔 예약 좀 해주라. 싸게."
다짜고짜 아침부터 호텔을 예약해 달라고 하니 의아한 목소리가 넘어온다.
[갑자기 호텔은 왜? 호텔에서 자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요즘 방송을 하거든."
[방송?]
"어. 아메리카TV에서 방송을 하고 있는데. 매니저분들 식사라도 좀 대접해 드리려고 하거든? 직원가로 좀 부탁한다."
내 당당한 부탁에 정후는 실소를 흘리며 말한다.
[갑자기 네가 뭔 방송이야? 아니, 네가 진짜로 아메리카TV 방송을 한다고?]
"어. 너튜브도 하니까 구독 박고. 한국대 여신님 쳐 봐."
내 말에 정후는 정말로 검색을 하는지 핸드폰에서 글을 칠 때 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타닥 타타닥 타다다닥
[뭐야? 97만?]
"오! 나 구독자가 벌써 97만이야?"
확실히... 대기업들의 힘이 크긴 큰가 보다. 어떻게 된 게 벌써 97만이냐. 너튜브 개설한지 두 달? 그 정도 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하하... 뭐야? 너 LOM 방송도 하냐?]
"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호텔에서 식사 대접할 거니까 네가 알아서 좀 잘 준비해 줘. 내가 날짜랑 시간 보낼 테니까. 싸게. 알았냐?"
난 그렇게 말하곤 정후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그냥 끊어버렸다. 귀찮게 이것저것 질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후와는 남자였을 때도 사실 거의 연락을 서로 안 했다. 학기 때는 좀 하는 편이고 방학때는 전혀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근황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수정이와는 방학 때라도 간혹 만나거나 연락을 했기 때문에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좋아, 연락 했고. 문자 보내자."
난 문자를 보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와 인사를 나누고 난 간단하게 씻은 후 바로 아침 식사를 마치곤 곧바로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자자, 1등까지 쭉쭉 가자."
난 아침부터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무섭게 랭크 게임을 시작했다.
#
내 하루는 챗바퀴처럼 돌아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컴퓨터를 켜고 LOM을 실행시킨다. 녹화를 켜놓고 솔로랭크를 돌리고 점심을 먹는다.
언니가 있으면 언니와 함께 편집 작업을 하고 끝나면 바로 컴퓨터 의자에 앉아 솔로랭크를 돌린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방송 준비를 한다.
오후 8시가 되면 방송을 켜고 솔로랭크 방송을 한다.
그러니까 하루 온종일 거의 솔로랭크만 돌린다고 생각하면 됐다.
그렇게 하루도 지각한 적 한 번도 없이 성실하게 방송을 했는데 방송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휴방을 공지했다.
"어, 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은 방송을 좀 쉬려고 해요."
[헐!]
[빠졌다. 빠졌어.]
[이제 대기업이라 이거지.]
[안 돼요... ㅠㅠ 언니... 방송해 줘요.]
[그럼 내일은... 방송 못 보는 건가요? ㅜㅜ]
[아쉽다...]
[그럼 너튜브나 돌려 봐야지.]
[ㅠㅠ.]
[이틀이나 방송을 쉰다고요? 이럴 수가...]
[왜요?]
[휴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아, 내일 호텔무진에서 매니저님들과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거든요. 아마 술도 조금 마실 것 같고... 일요일에는 GOAL 어패럴 행사가 있어요."
[오오! 신상품 공개인가요?]
"네, 맞아요. GOAL 어패럴 2021 신상품 공개 행사인데 꼭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요. 언니랑 함께 가기로 했어요."
난 입가에 손을 대고는 속삭이며 말했다.
"반응이 생각보다 엄청 좋은가 봐요."
[모델이 다 했지.]
[솔직히 여신님이 모델인데 당연한 결과죠.]
[진짜 사고 싶을 듯.]
[ㅆㅇㅈ]
난 좋은 말만 해주는 시청자들의 말에 손을 휘저으며
입술을 깨물곤 말했다.
"에이, 아니에요. 이번 신상품이 진짜 다 예쁘다니까요. 옷이 날개라는 말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죠."
[겸손하시긴.]
[부끄러워하신다. 여신님 ㅋㅋ]
[귀요미 ㅋㅋㅋ]
"하여간. 안타까운 소식 전해드리면서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모두 잘 자요!"
난 양손을 흔들며 마무리 하곤 방송을 종료했다.
"후..."
방송을 끈 뒤 한숨을 내쉬고 난 컴퓨터를 종료했다.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끄곤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오늘 날씨가 난방을 켜기에 애매해서 안 켜고 자기로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방 안의 온도가 약간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난 이불을 말아쥐고 몸을 웅크렸다. 오랫동안 게임을 해서 그런지 다른 곳보다 손이 좀 시려웠다.
난 허벅지 사이에 손을 끼곤 스르륵 눈을 감았다.
#
새벽에 언니가 추워서 난방을 켠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방 안의 온도가 훈훈했다. 오늘 점심 호텔에 가서 먹는 날이지?
'아침은 간단히 먹기로 했지?'
언니와 어제 얘기를 나눴는데 호텔에서 식사하니까 아침은 간단히 먹자고 합의를 봤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이미 아침 식사가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었다. 식빵 토스트와 발라서 먹을 잼이 두 종류가 있었고 우유가 컵에 가득 담겨 있었다.
'계란도 있네.'
먹기 좋게 달걀프라이까지 식탁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상당히 맛있어 보였다.
언니는 핸드폰을 보며 토스트를 먹고 있었는데 방에서 나온 나를 보며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을 들어보이며 말한다.
"일어났어? 씻고 아침 먹어."
"응."
난 언니의 말에 예쁘게 대답하고는 세면대에서 빠르게 손을 씻고 나왔다. 난 반쯤 감긴 눈으로 식탁에 앉았는데 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머리를 정리해 줬다.
"잘 먹겠습니다."
난 고개를 꾸벅 언니에게 숙여 감사를 표하곤 식빵에 딸기잼과 땅콩잼 두 가지를 보고 고민하다가 땅콩잼을 발랐다.
"간단하게 먹고 점심 맛있게 먹자."
"응."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식빵을 물었다. 오물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에 언니는 작게 웃더니 날 보고 '귀여워.'라고 중얼거린다.
남자였을 땐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늘 느끼는 거지만 남동생이었을 때보다 여동생이었을 때 받는 사랑이 훨씬 큰 것 같다.
내가 남자였을 땐 서로 원수였지. 언니가 나를 대하는 게 여자가 되고 나서는 전혀 딴판이라... 나도 뭐 언니를 막대하진 않았다.
'오는 말이 고운데 가는 말도 곱게 해야지.'
언니는 내 머리카락 정리를 끝내고는 내게 물었다.
"오늘 매니저분들 다 온다고 했어?"
"응. 약속 시간에 맞춰서 다들 온다고 했어. 혹시 일정에 문제가 생기면 연락달라고 했는데 아마 다 올 것 같아."
내 말에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들일까 되게 궁금하다."
방송을 하면서 아니면 전화나 문자로는 서로 연락을많이 주고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고 세연 언니도 은근히 설레는 기분이었다.
"그러게. 다들 착한 사람들 같던데."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것 같긴 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던 언니가 그렇게 느꼈다면 아마 그럴 거다.
물론, 사람을 어떻게 다 알겠냐마는 느낌이라는 게 다들 나쁘지 않았다.
"만나서 점심 식사 하고 디저트 먹고, 그리고 커피 한 잔 가볍게 한 다음에 호텔 스위트 룸에서 좀 쉬다가 가볍게 와인 한 잔 하면서 방송 관련해서 의견 좀 나누고. 맞나?"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나저나 호텔 스위트룸까지 빌렸어?"
"아아. 난 빌릴 생각 없었는데 정후가 빌렸어. 오랜만에 만나서 놀자고. 아, 수정이도 온다고 했어."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정후랑 수정이도 오랜만에 보겠네."
학교를 다니면야 언니도 서로 마주칠 때도 있고 우리 집에 찾아오는 빈도가 좀 많았지만 방학 때는 확실히 만남의 횟수가 줄어든다.
"그렇겠다."
"잘 됐네. 너도 휴방이고 하니까 이번 기회에 푹 쉬자. 거기 야외 풀도 있다면서?"
"응."
"그럼 수영복 같은 것도 가지고 가야겠네. 오시는 분들한테도 알려줬어?"
"응. 알려줬지."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네."
비용이야 정후 찬스를 써서 굉장히 싸게 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정후가 내겠다고 해서 내가 나도 그 정도는 이제 낼 수 있다고 했더니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둘 다 금수저 집안의 자식인 줄 몰랐는데 친해지고 보니 둘 다 엄청난 금수저였다.
둘 모두 자신의 집안을 밝혔을 때 어찌나 놀랐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가슴이 벌렁거린다.
"오늘도 가기 전까지 LOM할 거야?"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아직 1등 못 찍었는데."
꾸준히 솔로랭크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내 순위는 무섭게 상승하고 있었다. 1위가 정말 꿈처럼 느껴졌을 때가 있었는데 내 능력 앞에선 정말 별거 아닌 일이 됐다.
솔직히 1위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페이크 선수가 아무리 잘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내가 가진 능력을 초월할 정도로 잘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난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곤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LOM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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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다 했어?"
언니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했어."
난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챙겨서 거실로 나왔다. 언니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챙길 게 많은 건지 캐리어를 들고 나왔다.
"그... 그렇게 많아?"
하루만 있으면 되는데 도대체 뭐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속옷과 수영복, 그리고 집에서 편하게 입는 옷 말고는 필요한 게 하나도 없는데.
"약소하게 챙겼는데 뭐가 많아."
언니의 말에 난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후는?"
"아, 오면 전화 준다고 했어."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호텔에 갈 예정이었는데 정후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다.
정후의 말에 난 얼싸 좋구나 승낙했고 언니도 덩달아 쾌재를 불렀다. 이 짐을 가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호텔에 가는 게 절대로 쉽지 않았으니까.
택시를 타고 가도 되긴 하지만 돈이 좀 아깝잖아...
하여간 정후 덕분에 돈이 많이 굳었다.
언니는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고 나도 가방을 소파에 던져 놓고는 앉아서 TV를 봤다.
한참 TV를 보고 웃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정후?"
언니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어."
난 전화를 끊었고 언니는 그런 나를 쳐다보며 피식 웃는다.
"뭔 전화가 그렇게 쿨하냐?"
"원래 이래."
내 말에 언니가 작게 웃더니 소파에서 일어났다.
"가자."
"응."
난 언니와 함께 짐을 들고는 아래로 내려갔고 우리가 내려오자 정후는 차에서 내려 언니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누나."
"그래. 오랜만이다."
정후는 내 가방과 언니의 캐리어를 받아서 트렁크에 실었다.
"타세요. 타."
정후의 말에 나와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탔다. 언니는 뒷좌석에 탔고 난 조수석에 탔는데 정후가 벨트를 매줬다.
"땡큐."
여자가 되고 나니까 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다. 정후 이 자식한테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난 피식 웃으며 정후에게 말했다.
"열 시트 좀 켜줘."
내 말에 정후는 착실한 머슴처럼 버튼을 조작한다. 난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했어."
내 칭찬에 정후는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아주 내가 네 머슴이지."
"새삼스럽게 뭐 그런 걸 다 묻고 그래."
내 대답에 정후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고 난 얼굴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앞에 보고 운전해라. 나 오래 살고 싶다."
난 그렇게 말하며 안전벨트를 세게 당겨 성능 시험을 해봤다.
"음, 잘 되네."
난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언니는 뒷좌석에서 뭐가 그렇게 웃긴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고 정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날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뭐?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