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40. 챌린저 (40/95)



〈 40화 〉40. 챌린저

"17000명? 지금 시청자가 17000명 맞아요? 버근가?"

 입을 가리곤 놀란 얼굴로 화면을 가까이 바라봤다.


[어우야. 심쿵!]
[너... 너무 가까운 거 아니에요?]
[ㅋㅋㅋ 지금 LOM 하는 롬 BJ들 다 와서 구경 중 ㅋㅋ]
[와, 뭐야? 나도 이제 봤네. 17000명? 대박이네.]
[대기업 여신님.]
[아니... 1개월 차 BJ 아님?]
[정확히 따지자면 2개월 차.]
[그거나 그거나.]


지금 보니까 시청하는 인원만 많은  아니라 달풍선이나 미션 같은 것도 엄청나게 걸려 있었다.

"헐..  이렇게 많이 보는지 몰랐어요. 미션.. 헐...  이렇게 많이 걸려 있어요? 대박... 제가 오늘 12시 안에 챌린저 못 찍는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무조건 찍는다고 보고 선물 드리려는 거죠.]

"아하!"

난 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빠르게 찍고 걸려있는 달풍선을 받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어어. 그럼 빨리 게임 돌릴게요."

챌린저를 찍어야 하는 이유가 더 생겼다. 난 게임이 잡히는 동안 의자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을 했다.


근데 재미있게도 그게 반응이 좋았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의자를 뒤로 밀고 스트레칭을 해서 다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화면에 비친 내 다리의 모습은 내가 봐도  가늘고 쭉 뻗어 있어서 예뻐 보였다.

내 전체적인 피부 톤이 정말 눈처럼 하얗다는 비유가 딱 들어 맞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흠... 피부가 하얗다는 것만으로도 섹시한 느낌은 주는 것 같아.'


이건 내가 남자로서 느끼는 거니까 아마 나를 보는 남자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내 취향이 그런가?

[ㅗㅜ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와우...]
[노출이 없어도 섹시할 수가 있다니...]
[와.. 각선미...]
[ㄷㄷㄷㄷ 코피퐝!]
[제발 게임 늦게 잡히게 해주세요.]


그렇게 가볍게 스트레칭을 마치고 다시 의자를 당겨 앉았더니 세상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후... 이제 세 판? 운이 좋으면 두  정도만 이기면 아마 챌린저에 입성하지 않을까 싶은데... 으으... 너무 떨려."


난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며 마우스를 흔들었다.


[꼭 이기세요!]
[챌린저라니... 진짜 부럽다.]
[꼭 챌린저 달성하실  있을 거예요!]
[와... 여기 채팅방 순한 맛 됐네. 처음에 잠깐 들어왔을 때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미래의 법관이세요. 입조심하세요들.]
[그건 또 무슨 소리? 법대 다니심?]
[이번에 처음 온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네.]
[조금만 뉘앙스 마음에 안 들면 매니저들이 다 치네.]
[거의 단두대급임. 다리우스 궁 계속 갈김.]
[여신님 한국대 법대 다니심.]
[헐!]
[한국대 법대? 리얼?]
[대박이네... 저 얼굴에 저 몸매에 머리까지 좋고... 게임도 잘 해... 완전 사기 캐릭이네.]


"오, 잡혔다."


길고 길었던 대기 시간이 지나 게임이 잡혔고 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즐겁게 밴을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나를 알아보는 팀원들이 있었다.

-오! 여신님이다!
-헐! 나 지금 방송 보고 있는데! 오오! 대박!

"오! 시청자분 계신다."


게임상에서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보다 저렇게  시청자라고 해주는  기분이 더 좋았다.

-안녕하세요! 우리 싸우지 말고 잘 해봐요!

팀원들은  말에 긍정적으로 화답을 해줬다.


"좋아, 뭔가 이번에도 이길  같네."


난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마우스와 키보드의 위치를 정밀하게 조정했다.

#

"와아...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

챌린저에 입성 하느냐 아니면 미뤄지느냐에 기로에 선 세 번째 게임이었다. 초반에 분명히 유리했는데 무리한 바론 시도로 대참사가 일어났다.

분명히 우리 정글의 강타 성공률이 훨씬 높았는데 설마 뺏길 줄 몰랐다. 거기다가 뺏기고 나서 멘탈이 흔들린 상태로 한 타를 해서 그런지 너무 나쁜 구도로 싸워 모조리 전멸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불굴의 의지로 신들린 슈퍼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상대 팀의 추격 의지를 번번이 꺼뜨렸고 덕분에 이렇게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명경기를 탄생시켰다.

"으으... 힘들었다. 진짜 힘들었어."


[와... 이걸 이기네.]
[진짜 미쳐따리... 여신님 미쳤따리...]
[이게 바로 멱살 잡고 캐리 한다는 거구나.]
[와... 진짜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진짜 미쳤네.]
[그냥 존나 잘한다.]
[여신님이 여신님 한 것을 뭘 그리 호들갑인 게야?]
[이건 진짜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걸 이기지?]
[무조건 졌다고 생각했는데 대박이다.]
[역전시킨 것보다 포기하지 않은 게 더 대단한 듯...]
[솔직히 여신님 때문에 다들 멘탑 잡아서 이긴 거.]
[그건 ㅇㅈ...]
[상대방 아무리 봐도 방플 같다.]
[ㅇㅇ 바론 뺏을 때나 대처하는 움직임이 말이 안 됨.]
[100% 상대방 방플 했다고 본다.]

방플. 방송을 보며 플레이한다는 의미였는데 실시간으로 방송을 켜고 있기 때문에 만약에 상대방 중에 내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불리한 상황 속에서 게임을 하는 거다.

"나만 의심스러운  아니죠?"


  말에 시청자들 상당수가 동의를 표했다.

[시작과 동시에 방플한 사람 있다고 본다.]
[무조건이죠.]
[나라도 상대방에 BJ있으면 방플한다.]
[ㅇㅇ 내 얘기 혹시나 언급하나 싶어서 ㅋㅋ]
[ㅋㅋㅋㅋㅋ]
[너무 고생하셨어요 ㅠㅠ]
[언니, 진짜 수고했어요! 챌린저 축하해요!]

"눈물 날 것 같아... 나 진짜 챌린저인가?"


 딜 그래프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독보적으로 높았기 때문인데 그만큼 내가  게임의 승리에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지가 나타나는 부분이었다.

[딜 보소. ㅋㅋㅋ]
[그냥 그래프 뚫었네 ㅋㅋㅋㅋ]
[진짜 그래프에서 절실함이 느껴진다.]
[와... 그 와중에 최고 KDA네.]
[대박 ㅋㅋ]
[뭐냐?  딜 그래프는?]
[최소 피해, 최고 딜. 이게 말이 되는 플레이냐? ㅋㅋ]
[진짜 대박이다.]
[웬만한 프로보다 잘하는 듯.]
[ㅇㅇ 진짜 현역 미드 프로 상대로도  질 것 같은데.]
[이미 DBB이김.]


"아아... 진짜 챌린저 가나요?"

난 마우스에 힘을 꽉 쥐고 손가락으로 세게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러자 화면이 바뀜과 동시에 그랜드 마스터 인장이 휙! 날아가고 챌린저 인장이 똭!
하고 나온다.


"오오오! 대박! 챌린저어어어어어어어!"

갑작스러운 돌고래 소리에 시청자들이 악!  귀! 라고 난리를 쳤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 기쁨을 홀로 온전히 느낀 후에야 채팅창을 봤는데 수많은 후원 메시지가 가득했다.

거기엔 유명 롤을 하시는 유명 BJ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는데 당연히 BJ탈논, 그러니까 현성 오빠도 있었고 나는성윤이다님 BJ봉구님, 킴승태님, 귤스트님도 계셨다.


"아악! 후원들 너무 감사합니다!"

쏟아지는 달풍선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진짜 이 BJ를 하면서 느끼는  이렇게 쉽게 많은 돈을 벌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었다.


오늘 챌린저에 올라갔다고 받은 후원만 해도 아니, 꼭 오늘이 아니라 평범한 날에도 하루에도 시급 괜찮은 곳에서 풀로 일하는 것보다  많이 벌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와... 이렇게나 많이.. 진짜 감사해요. 다 이름 불러드릴게요."

아직 방송 종료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았는데 후원자만 불러도 다 못 부를 것 같았다.

난 계속해서 터지는 달풍선을 보며 한 명, 한 명. 정말로 진심을 담아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 목 아파."

내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자 소액으로 계속 후원을 하시는 분들이 더 생겨서 결국엔 정말 말 그대로 방송 종료 시간까지 계속 닉네임을 부르다가 끝이 났다.


"와.. 진짜 이런 적은 처음이네요."


후원이 1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들어왔던 적은 진짜 난생 처음이다. 이게 말이 돼? 하하... 난 직접 현실로 겪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방금 받은 후원금이 도대체 얼마야?'

단순 계산으로도 몇 천이 넘어가는 액수에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하여간 난 기쁜 마음으로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름 다 못 불러드려서 정말 죄송하고요. 후원 너무 감사합니다. 챌린저... 진짜 달성했네요. 굉장히 짧은 시간에 달성하긴 했지만 제겐 길게 느껴진 것 같아요. 어쨌든 최대한 빨리 1위를 찍어서 눈도장을 찍거나 오퍼가  오면 직접 구단에 연락을 취해서 입단 테스트를 볼 생각이에요."


[부모님껜 언제 말씀드릴 건가요?]
[지금 방송하시는 건 부모님이 알고 계시나요?]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방송하는 건 아직 셋째 언니 말고는 아무도 몰라요. 첫째 언니도, 둘째 언니도 모르고요."

그러고 보니까 방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정후와 수정이도 모른다.

뭐, 정후랑 수정이야 나와는 다르게 귀하고 바쁘신 몸이니까.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모두들 응원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럼 모두 잘 자요! 안녕~!"


난 방송을 종료하자마자 언니에게 향했다.


똑똑!


"어, 들어와!"


언니의 목소리에 난 언니 방으로 들어갔다. 세연 언니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내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는데 뭔가 심하게 현타가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왜 그래? 어디 몸이 안 좋아?"


심상치 않은 얼굴에 걱정스레 물었더니 언니는 종료된 내 방송 화면을 가리키더니 말한다.

"나도 방송이나 할까?"


갑작스러운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에? 갑자기?"


내 물음에 언니는 실소를 흘리며 손을 휘젓더니 말한다.

"농담이야. 방송은 무슨. 그냥 네가 받은 달풍선을 계산해 봤거든? 그러니까 갑자기 현타가 밀려오네."

언니의 말에 난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언니 침대에 엉덩이를 걸쳤다.

"언니도  많이 벌면서 뭘 그래."
"뭐, 나쁘게 버는 편은 아니지. 한국에선 한국대가 벼슬이고 돈줄이잖냐."


언니의 말에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라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한국대에 다닌다고 하면 일단 눈빛부터가 달라지니까.

"챌린저 축하해."
"고마워, 언니."


언니는 새삼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등을 기대곤  쳐다보며 말한다.


"진짜로 프로게이머할 생각이구나."

난 언니의 말에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뭐야? 언니    믿었어?"
"뭐.. 반신반의했지. 정말로 네가 챌린저가 될 줄도 몰랐고. 내가 이 게임을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대 들어오는 것만큼 어려운 거 아니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확실히 경쟁률은 이쪽이 더 세지."

수능을 보는 사람들 보다야 LOM을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거기다가 LOM에는 재수생 보다  무서운 트롤이라는 존재가 있으니까.

"1위를 목표로 계속할 거다 이거지? 일단은?"
"응. 그전에 입단 제의가 오면 테스트 볼 생각이고."

내 말에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면 그때 부모님 허락을 구하겠다."
"응. 계약도  끝내 놓고서."

내 말에 언니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하여간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때 가서 허락 아닌 허락을 받으면 된다.

"뭐, 엄마나 아빠나 다 너한텐 약하니까."

나도 어깨를 으쓱이며 긍정을 표했다. 막내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엄마나 아빠도 보통 부모님 중 한 분이었기 때문에 자식이 기를 쓰고 덤비면 져주실 수밖에 없을 거다.


원래 예로부터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다. 그러니 다짜고짜 저지르고 말하겠다는  말에도 세연 언니는 별다르게 반대하지 않았다.


"오늘 방송은 어땠어?"
"잘했어. 텐션도 너무 떨어지지 않고 소통도 이제 곧잘 하는 것 같고. 채팅창도 깨끗했고. 그 매니저분들 있잖아."
"매니저분들?"
"응. 그분들 언제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  아니야? 진짜 엄청 열심히 해주시던데."
"아, 안 그래도 나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언제  번 근사한 곳으로 가서 식사 대접하려고. 챌린저도 찍었겠다."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게. 언니가 용돈 좀 줄까?"
"아니야. 정산 받은 돈도 꽤 많고 모델료로 받은 돈도 아직 하나도 안 썼어. 나 돈 많아."


내 말에 언니가 작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네가 나보다 돈은 많은 것 같다."
"언니도 같이 가자. 언니가 따지고 보면 총괄 매니저인데."
"나도?"
"응. 근사한 호텔에서  한  내가 언니도 대접할게."

내 말에 언니가 눈을 빛내며 말한다.


"오호... 호텔까지?"

언니가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맛있는 거엔 사족을 못쓴다.

"부담스럽진 않겠어? 인원들이 그래도  많잖아.  명이지?"
"언니까지 하면 네 명이고 나까지 하면 다섯 명이지. 충분해. 걱정할  없어."

내 말에 언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너 또 정후 써먹으려고 하지?"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럴 때 써먹지 그런 언제 써먹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