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38. 챌린저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의 이만수 대표님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물론, 예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일 줄 몰랐다.
"어...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건가요?"
내 물음에 이만수 대표님이 물었다.
"문제가 있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해결하고 싶은데 연예인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죠?"
"어... 연예인이 아니라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내 말에 이만수 대표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프로게이머?"
"네. 연예인을 하면서 병행하는 건 힘들 것 같아서요. 합숙도 해야 할 거고... 연습도 해야 할 텐데. 프로게이머가 되면 그러기가 힘들 것 같거든요."
내 말에 이만수 대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쉽네요. 정말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도 음악 활동 꼭 계속 이어가길 바랄게요. 취미로 하기엔 너무 아깝네요."
"아, 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할게요."
난 그렇게 말하곤 밝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SN으로 오세요."
이만수 대표님의 말에 난 미묘한 웃음을 띠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이만수 대표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경을 벗으시며 몸을 뒤로 젖히신다. 콧등을 꾹꾹 누르시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며 말한다.
"이진욱 매니저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재능 있는 친구들을 매번 데리고 와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지 모르겠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오늘만큼 후회되는 적이 없네요."
정말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진욱 매니저님을 보며 난 미소를 짓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거기다 아마 우리 부모님은 절대로 허락 안 하실걸요?"
내 말에 이진욱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프로게이머는 허락하신다는 겁니까?"
"남자들 군대 2년 가는 것처럼 저도 2년만 갔다 온다고 생각하라고 하면 돼요. 프로게이머는 선수 생활이 짧거든요."
내 말에 이만수 대표님은 안경을 다시 고쳐 쓰시곤 눈을 빛내며 몸을 바짝 앞으로 붙이신 후 말씀하신다.
"그럼 그때 오면 되겠네요."
"네?"
난 헛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는데 농담인 줄 알고 웃은 거였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진심이세요?"
"지금까지 제가 했던 말이 모두 거짓말 같습니까?"
이만수 대표님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이 사람은 진짜 나의 재능... 그러니까 나의 능력을 꿰뚫어 보고 있는 거였다. 정말로 단 한 번의 노래를 듣고. 단 한 번의 연주를 듣고 내가 가진 실력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거다.
정말로 뛰어난 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 거다.
'괜히 거대 기획사 대표가 아니라는 건가?'
난 여전히 진지한 그의 태도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땐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 말에 이만수 대표님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좋네요. SN 연습실도 구경시켜줬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진욱 매니저의 짧은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날 쳐다본다.
"출입증을 줄 테니까 언제든 와서 연습하거나 놀러 와요. 나한테 와서 차나 커피 얻어먹으러 와도 좋고."
난 이만수 대표님의 말에 목덜미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너무 저한테... 어... 과분한 처사인 것 같은데요."
내 물음에 이만수 대표님은 다른 심사위원들을 양쪽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 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성형외과 전문의에 소견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음악을 잘 모르지만 세나 씨가 음악 활동 하시는 걸 보고 싶네요. 진심으로."
아... 성형외과 전문의? 와... 무슨 오디션장에 저런 분도 오나? 누군지 잘 모르는 두 분의 정체 중 한 명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기타 연주가 수준급이었습니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은 아마 악기에 관련된 심사위원이신 것 같다.
"자기를 자기만 모르네. 노래는 더 훌륭했고요."
권보안 이사님의 말에 난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이희연 님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미운 오리 새끼인가?"
그녀의 말에 다들 퍽 어울렸다고 생각이 드는지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너무 예쁜 얼굴이라 배우하기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이희연 님의 말에 난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 이희연 님도 배우시잖아요."
내 말에 묘한 표정을 짓더니 손으로 수줍게 입가를 가리곤 미소를 짓는다.
"아부도 수준급이고. 도대체 어디서 데리고 온 거예요?"
이희연 님의 말에 이진욱 매니저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삼겹살집에서요."
#
면접이 끝나고 난 뒤 난 SN 밖으로 나왔는데 내 손에는 SN을 마음껏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이 쥐어져 있었다.
"이게 말이 돼?"
거기다 더 놀라운 건 내 핸드폰에 선명하게 적혀 있는 세 명의 번호였다. 이만수, 권보안, 이희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언니는 진짜 필요 없어?"
내 물음에 언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그거 받아서 뭐 하냐."
하긴... 언니도 연예인이 된다던가 하는 거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진짜 순수하게 재미 삼아서 오디션을 본 거였다.
"일단 오늘 영상이 잘 나와서 만족이야."
언니는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의 SN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부분에서 기뻐했다.
아니, 뭐... 물론 그것도 기뻐할 일이긴 하지만. 정작 기뻐해야할 건 3대 기획사 중 하나라는 SN에서 우리를 굉장히 좋게 봐줬다는 거 아닌가?
언니도 배우해 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카메라를 너무 잘 받는다고. 언니는 그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안 하겠다고 했단다.
자기는 실물이 더 좋다면서... 그래서 빨리 나왔구나. 하여간에 SN에서는 우리 둘 모두에게 출입증을 쥐어주고 전화번호까지 교환하려는 노력으로 인연의 끈을 연결해 두려고 했지만 언니는 단칼에 거절했다.
언니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코털만큼도 없다는 게 주된 이유라고 했지만 내 생각엔 좀 삐진 것 같다.
"가자. 영상 편집해야 돼."
이제는 프로 편집러가 다 된 느낌이다.
"응."
#
집에 돌아와 언니와 함께 편집을 하고 저녁을 먹고 방송 준비를 했다.
제목을 '챌린저 100점 남았다'로 올려놓고는 카메라를 점검한 이후에 시계를 봤다.
'3분 정도 남았네.'
난 거울을 통해 마지막으로 내 옷차림을 살폈다. 항상 입는 박스티 한 장에 돌핀 팬츠. 대충 BB크림만 치덕치덕 바른 뒤 난 컴퓨터 의자에 다시 앉았다.
"오케이."
난 정시에 방송을 켰다. 방송이 켜지자마자 우르르 밀려오는 시청자들에게 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흔들었다.
"어서들 오세요!"
[오오오! 챌린저 100점 남으셨다니!]
[오늘 챌린저 가는 거 보나요!]
[지금 여자 중에 챌린저 올라간 사람 없지 않나?]
[챌린저는 없지.]
[와... 대박... 챌린저라니. 100점 남았다고요?]
[오늘도 예쁘신 여신님.]
[SN에서 오디션 보셨다면서요?]
"아, 네. SN에서 오디션 봤고. 그쪽에 부탁드려서 오디션 영상 파일을 받았거든요. 아마 조만간에 제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되지 않을까 합니다."
[오디션 어떠셨어요?]
[갑자기 웬 오디션이요?]
[잉? 오디션? SN에서 오디션을 보셨음?]
[SN엔터 관상이긴 하심.]
"네네.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는데 SN에서 현직 매니저로 일하고 계신 분이었어요. 뭐, 하여간 재미있었어요. SN 관련된 영상 올라갈 예정이니까 많이 봐주세요."
난 짝! 하고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킨 뒤에 말했다.
"그럼... 오늘 챌린저 달성을 목표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가 혹시 너무 게임에만 집중해도 오늘만은 좀 이해해 주세요."
[여신 is 뭔들.]
[아, 그럼요! 게임에 집중하세요!]
[저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신님!]
[언니, 꼭 챌린저 올라가세요!]
난 시청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게임을 돌렸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 그동안 수다를 떨었다.
"잡혔다!"
게임이 잡히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소중한 밴, 픽 창에 난 신나게 인사를 갈겼다.
-안녕하세요! 우리 모두 잘해봐요!
선 인사를 박고 팀원들을 살폈는데 아쉽게도 프로는 섞여 있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다시 표정을 회복하고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상대팀에도 없으면 됩니다."
[있을 것 같은 예감.]
[원래 꼭 우리 팀에 없으면 상대팀에 있는 법이죠.]
[ㅋㅋㅋㅋ 상대 프로 있다.]
[리얼?]
[나 지금 롤 방송 세 개 틀어놓고 보고 있는데 상대
바텀 둘 다 프로야.]
난 갑작스레 날아온 비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악! ㅋㅋㅋ 귀요미!]
[ㅋㅋㅋㅋㅋ 너무 귀엽잖아! 뭐야! 저 표정은!]
[현실 부정 ㅋㅋㅋ]
[진짜 상대 바텀 둘 다 프로야?]
[ㅇㅇ 진짜, 다 걸고.]
[아니... 왜 우리 언니에게 이런 시련을...]
일단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저 사람이 착각한 걸 수도 있고... 그래, 우리 팀에 알려지지 않은 프로 부캐가 있을 수 있는 거잖아.
실낫 같은 희망을 품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바텀을 억제할 수 있는 픽을 가져가는 게 좋겠네. 난 고민을 거듭하다가 갈리온을 골랐다.
"좋아, 갈리온 출격이다."
내가 갈리온을 고르자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에니비아를 고른다. 요즘 상당히 미드에서 승률이 좋은 1티어 챔피언이었는데 갈리온을 상대로 확실히 나쁘지 않은 픽이었다.
아니, 뭐... 솔직히 카운터 픽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에니비아가 갈리온 상대로 좋은가?]
[좋지 않나?]
"에니비아 좋죠. 갈리온 상대로 되게 좋은 픽이에요. 어떻게 보면 카운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상대하기가 좀 까다로운 챔피언이에요."
내 말에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난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게임에 집중했다. 직접 보여주면서 얘기하는 게 더 잘 이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임에 들어가고 라인전 단계에 들어가자 당연한 얘기겠지만 에니비아는 원거리 챔피언의 이점을 잘 살렸다.
평타를 섞으며 견제를 했고 난 스킬만 피하며 CS를 가능한 최대한 수급했다.
[Q 쓰고 E 뒤로 쓰시면 라인 클리어 빠르게 할 수 있는데.]
누군가의 훈수에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면 죽어요. 에니비아 스킬 중에 W가 벽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 스킬 하나 때문에 사실 갈리온이 엄청 힘든 거예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지? 난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지금 6렙 이전 단계고 정글 방금 바텀 보였으니까 한 번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닐 것 같아서."
난 그렇게 말하며 Q 스킬을 사용하곤 앞으로 무빙을
치며 E를 뒤로 사용했지만 라인 클리어를 할 수 없었다.
에니비아가 벽을 쳐서 막았기 때문이다. 벽 위치와 내 움직임을 예상해서 Q를 날렸지만 난 무빙으로 가볍게 피해줬다.
평타로 피가 조금 남은 미니언을 때려서 제거했고 도발을 사용할 것처럼 위협을 줬다.
에니비아는 E라도 날리고 평타를 섞어서 열심히 때렸지만 소모 값에 비해 얻은 이득은 미비했다.
"이러면 제가 나쁘지 않아요. 에니비아가 마나가 엄청 귀한 챔피언이라서. 방금 거로 이제 아시겠죠? 왜 안 되는지."
에니비아랑 라인전을 서면 이런 게 아쉽다. 라인 클리어가 좀 느려진다는 점과 퇴로가 제대로 확보가 되지 않는다는 점.
에니비아가 잘 못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구간에서 자기가 뽑은 챔피언을 잘 모를 리가 없다.
챔피언의 특성을 잘 알고 갈리온을 상대로 뽑았을 거다.
"에니비아가 좀 하는 사람 같죠? 이러면 피곤해요. 6레벨 이후에는 라인전이 더 힘들어요."
라인 클리어 자체가 힘드니 라인 주도권도 떨어진다.
다만 다른 라인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건 에니비아보다 갈리온이 더 컸기 때문에 난 라인전에서 손해를 보는만큼 이득을 봐야 한다.
[오오... 메모. 메모. 갈리온은 저렇게 하는 거다.]
[이렇게 보니가 진짜 에니비아가 갈리온 입장에서는 엄청 짜증나겠는데?]
[벽이 개 사기네.]
[에니비아 솔직히 궁도 한타 때 나쁘지 않음.]
[ㅇㅇ 진형 다 깨짐.]
[근데 챔피언 자체가 숙련도가 좀 많이 필요하던데.]
[에니비아 좀 어렵긴 함. 잘하는 사람 별로 못 봄.]
6레벨을 찍자 블루까지 먹고 온 에니비아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졌다. 라인을 최대한 밀어 넣으면서 내가 다른 라인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힘을 쓰는 게 보였다.
"상대방이 Q나 W를 좀 어설프게 써주면 제가 딜 교환 이득을 볼 수 있거든요? 심리전 한 번 걸어보겠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며 내 포탑 쪽으로 밀려오는 미니언을 정리하기 위해서 Q를 날리고 뒤로 E를 사용할 것처럼 연기했다.
양쪽 부시에 시야가 잘 잡혀 있어서 에니비아는 겁도 없이 느린 날개짓으로 전진했고 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제가 몇 번 당해주니까 이번에도 또 당할 줄 알았겠죠?"
난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가 아닌 에니비아에게 돌진 스킬인 E를 날렸다.
공중에 붕뜬 에니비아. 이젠 맞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