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7. SN 엔터테인먼트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나요?"
SN 엔터테인먼트 내부를 정말 우리가 원하는 만큼 촬영하게 해주고 바쁜 시간을 쪼개 직접 본인이 나서 가이드 역할도 해주고 도무지 거절할 수 없게 만든 후 내게 말한다.
'예상은 했지만... 뭐, 나도 바라는 바다.'
세연 언니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부탁인가요?"
이진욱 매니저님은 세연 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좋은 경험한다고 생각하시고 오디션 한 번 봐보실 생각 없으세요?"
"오디션이요?"
세연 언니는 반문하며 재미있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런 언니의 표정에 피식 웃었다. 뭐, 이미 반쯤 언니는 넘어간 것 같고.
나도 뭐 딱히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시험해 보기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세나야, 하자."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와 언니 모두 승낙하자 이진욱 매니저님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곧바로 안내했다.
사실 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연예인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재미 삼아서 오디션을 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에에... 오늘이 오디션을 보는 날이에요?"
상당히 많은 인원들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에 난 두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네. 오늘 SN 정기 오디션이 있는 날이에요."
이진욱 매니저님은 그렇게 말하더니 오디션 진행을 맡은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분에게 뭔가 말을 한다.
그 여자분은 우리 둘을 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 앉아 계세요."
이진욱 매니저님은 우리 둘을 맨 앞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앞에 들어간 사람이 나오면 바로 들어가실 거예요."
"에에? 벌써요?"
언니는 오자마자 들어가게 될 줄 몰랐는지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고 난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내 간결한 대답에 이진욱 매니저님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고 언니는 날 보며 말한다.
"넌 떨리지도 않냐?"
"우리가 뭐 진짜 여기 연습생 하려고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 삼아서 보는 건데 그렇게 떨 필요가 뭐 있어.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어차피 떨어질 텐데."
내 말에 언니가 그건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떨림이 진정이 된 모양이다.
"뭐야, 언니 설마 제대로 볼 생각인 거야? 연예인 하려고?"
내 물음에 언니는 실소를 흘리며 말한다.
"내가 연예인은 무슨."
세연 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손에 들더니 영상이 잘 나왔다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디션을 바로 코앞에 둔 사람이라곤 볼 수 없는 행동에 난 작게 웃음을 터뜨렸고 그런 우리 모습이 오디션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에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는데 순서도 안 지키고 바로 들어가니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었을 거다.
"윤세연 씨."
"네?"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 네."
언니는 막상 자신의 차례가 되자 조금 떨리는지 안으로 들어갔는데 카메라를 그대로 목에 건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뭐라고 말을 할 틈도 없이 들어가 버려서 입맛을 다시곤 언니가 나오길 기다렸다. 이진운 매니저도 오디션장 안으로 따라 들어갔는데 나도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아마 다음 차례는 나인 것 같은데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정말로 연예인이 될 생각으로 보는 오디션도 아니었기에 부담감이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내겐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악기면 악기, 노래면 노래, 작곡이면 작곡 솔직히 어느 것 하나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S급이 그 정도면 A급이라도 꽤 뛰어날 것 같은데.'
난 이미 S급, B급의 능력을 확인했다. S급은 LOM을 통해서 B급은 어두운 골목에서 다섯 명의 학생들 상대로 확인했다.
B급만 보더라도 여자의 신체를 가진 내가 고등학생 남자 다섯을 상대로 제압이 가능했다. 물론, 일반인 그것도 미성년의 남자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 아무리 못해도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준다는 얘기인데...'
솔직히 나도 궁금하다. 이 음악 능력이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지. 프로게이머가 우선순위에 있긴 했지만 가수라는 꿈도 한편에 있었기 때문에 내겐 이 자리가 꽤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언니가 밝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고 이진욱 매니저도 입가에 미소를 걸고 나왔다.
"윤세나 씨."
내 이름이 불렸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언니에게 물었다.
"뭐야? 어떻게 됐어?"
"일단 네 차례니까 들어가 봐."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게 하면 실례지. 내가 오디션장 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이진욱 매니저님이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니 책상이 길게 늘어서 있고 심사위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다섯 명이 앉아 있었는데 내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서 황급히 입을 막았다. 오디션장 안 분위기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뭔가 조심스러웠다.
나에 대한 서류가 없어서 심사위원들은 서류를 보는 게 아니라 모두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SN 엔터테인먼트에 대표이신 이만수 대표님. 거기다가 아까 방금 기웃거렸던 보안 이사님이 계셨고 배우이신 이희연 님도 보였다. 나머지 두 분은 잘 모르는 분이었다.
'춤이나 노래를 보는 분이려나?'
다섯 분 모두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과 실물을 번갈아 쳐다보셨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끼리 얘기를 했는데 거리가 좀 있어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들리진 않았다.
다만, 표정들이 좋아 보이는 게 나에 대해서 나쁘게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나쁘게 얘기할 수가 없지.'
누구보다 나 자신에 객관적일 수 있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난 진짜 예뻤다. 몸매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솔직히 외적인 부분만 따지자면 그 어떤 아이돌이나 배우와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뭐, 언니도 예쁘긴 했지만 가족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청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는 한다. 아마 내가 가족이라 그런 것 같은데...
남동생이었던 내 입장에서 누나가 그래도 예뻐 보인다면 그건 대단히 예쁜 거 아닐까? 언니의 표정도 밝게 나온 걸 보면 결과가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이만수 대표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한다.
"이진욱 매니저님이 데려오신 분 맞나요?"
"네, 맞습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진욱 매니저님을 보곤 난 살짝 웃었다. 이만수 대표님은 나를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예인이 되실 생각은 없는데 오디션을 보러 온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언니에게 대략적인 내용을 들었는지 아니면 이진욱 매니저님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오디션을 재미 삼아 본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 이진욱 매니저님께 당해서요."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며 날 쳐다보시기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SN 구경시켜주신다고 해서 왔는데 갑자기 오늘이 마침 오디션 날이니까 좋은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한 번 봐보라고 해서요. 오늘 덕분에 SN 잘 구경했는데 거절하기가 곤란해서 왔습니다."
내 말에 다들 작게 미소를 지었고, 이희연 배우님 이진욱 매니저님을 보더니 말했다.
"저 방법을 아직도 쓰시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진욱 매니저가 데려온 사람이니까 뭔가 있겠지? 이번에도 그 직감인가?"
이만수 대표님의 물음에 이진욱 매니저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번엔 그냥 홀려서 데리고 왔습니다."
매니저님의 대답에 이만수 대표님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뭐, 확실히 그럴만 하네. 혹시 우리를 위해 노래 한 곡 불러줄 수 있나?"
와... 굉장히 자연스럽게 내게 오디션을 보도록 요구하시네.
"그럼요. 부족하겠지만."
난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고는 한쪽에 늘어서 있는 악기들을 바라봤다. 내 시선이 악기에 닿자 이만수 대표님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나?"
"아, 네. 뭐... 조금씩은 다 할 수 있어요."
내 말에 다들 별 기대하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 겨우 다룰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아득히 넘어설 것 같은데.
생전 악기를 다뤄본 적 없었지만 난 스킬빨을 믿고 자신있게 통기타를 집어 들었다.
크... 벌써 그림 나오네.
긴 생머리의 여자가 통기타를 들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선다.
음... 이쪽이 더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 난 옆에 있는 낮은 의자를 보고 말했다.
"혹시 여기 앉아서 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난 의자에 앉아 척! 다리를 꼬고 앉았다. 기타를 처음 잡아봤지만 익숙했다. 그냥 머릿속에서 노래를 떠올리자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무엇이 그댈 아프게 하고 무엇이 그댈 괴롭게 해서
아름다운 마음이 캄캄한 어둠이 되어 앞을 가리게 해』
노래를 시작하니 순식간에 몰입하게 된다. 손가락이 리드 줄 위를 부드럽게 유영한다. 한 음, 한 음은 정확했고 노래에 맞는 감정이 발산된다.
순식간에 오디션장 안을 완벽하게 내가 장악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마주친 심사위원들은 이미 내 감정에 동화된 상태였다.
『사라지지 말아요 제발 사라지지 말아
고통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나 덜어줄 텐데
도망가지 말아요 제발 시간의 끝을 몰라도
여기서 멈추지는 말아요』
감정에 민감한 여자인 권보안 님과 이희연 배우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셨고, 이만수 대표님의 눈가도 촉촉히 젖어 있었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을까?
『사라지지 말아요 제발 시간의 끝을 몰라도
여기서 멈추지는 말아요』
...
노래가 끝나고 난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걸고 심사위원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검은색 긴 생머리가 폭포수처럼 앞으로 쏟아진다. 난 고개를 세차게 들어 머리를 뒤로 넘기고 얼굴을 가린 앞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이 정도면 제대로 당해드린 것 같은데... 충분하죠?"
내 물음에 이진욱 매니저님은 입을 쩍 벌린 상태에서 날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곤 박수를 친다.
갑작스러운 박수에 난 '뭐야?' 하는 표정으로 두 눈을 깜빡였는데 별안간 심사위원 쪽에서도 하나, 둘 박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굉장하네요."
이만수 대표님의 말에 나도 속으로 말했다.
'그러게요.'
나쁘지 않은 능력을 보여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기타라곤 칠 줄 모르고 노래라곤 그저 노래방에서 소리 나 좀 질렀던 수준인데.
이건 아무리 나쁘게 봐줘도 어느 것 하나 아마추어 실력이라고 볼 수 없었다.
"어우, 진짜 너무 잘 들었어요. 노래가 너무 좋네요. 음색이 정말 너무 좋아요."
권보안님이 나를 극찬하시며 눈가에 눈물을 닦으셨고 이희연 님도 고개를 마구 끄덕이시며 동의를 표했다.
내가 잘 모르는 두 분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이셨고 한 분은 내게 기타를 굉장히 잘 친다면서 혹시 다른 악기도 이 정도 수준으로 다루냐고 물었다.
"음... 아마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내 말에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분이 물었다.
"음대생이세요?"
"아니요. 한국대 로스쿨에 다니고 있습니다."
내 말에 다들 눈이 커진다. 갑작스러운 끝판왕 학벌에 놀란 모양이다. 난 배시시 미소를 짓고는 기타를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놨다.
"이제 충분히 당한 것 같은데. 이제 나가도 되나요?"
내 물음에 이만수 대표님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으셨다.
"데뷔할 생각 없어요?"
이만수 대표님의 말에 심사위원 모두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진욱 대표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이만수 대표님의 직접적인 물음에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는 데뷔할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연습생을 뽑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다짜고짜 데뷔할 생각이 없냐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데... 데뷔요?"
내 물음에 이만수 대표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습생이 아니라 데뷔요. 물론, 연습 기간을 거쳐야 하긴 하겠지만 지금 윤세나 양이 보여준 거로 보면 1년? 아니, 6개월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난 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날 보며 이만수 대표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권보안 이사 이후로 SN의 솔로 여가수의 맥이 끊겼는데 솔직히 말해서 탐나는 인재네요. 윤세나 양."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일 줄 몰랐는데? 생각 이상의 제안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만수 대표님은 깍지를 끼고 턱을 괴시더니 눈을 빛내며 내게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데뷔. 할 생각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