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1. 합방을 준비합시다!
야방은 매끄럽게 진행됐다. 솔직히 현성 오빠의 방송을 관심 있게 본 게 아니었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놀라울 정도로 진행 능력이 좋았다.
말 솜씨가 좋다고 해야 할까? 야외 방송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소통을 하는 모습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허. 이상한 거 물어보는 사람들은 다 치세요."
[뭐냐! 왜 치냐!]
[초심을 잃었다!]
[뭐야? 사람 차별하는 거냐!]
[왜 이러냐, 얘? 약 먹었냐?]
[여러분들 자제하세요. 여신님 언니 무섭습니다.]
[언니도 예쁨?]
[존예.]
[여신 집안인 것 같음.]
[장난 아니심. 어후...]
[나 보러 간다.]
[나도.]
난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가늘게 눈을 뜨고 현성 오빠를 쳐다봤다.
현성 오빠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은 절대로 그런 거 궁금하다고 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믿음이 안 가는지 모르겠다.
"저도 정확하게 안 재봐서 모르겠네요."
[에이! 거짓말이다!]
[맞아! 밝혀라! 밝혀라!]
[자기가 모른다잖아. 진짜 너무들 하네.]
폭발적인 반응에 난 헛웃음을 지으면서 현성 오빠를 째려봤다.
[와... 째려보는 것도 예쁘네.]
[근데 딱 봐도 몸매 좋아 보임.]
[궁금하면 한국대 여신님 박스티 치면 나옴.]
저놈의 박스티는 진짜 두고두고 회자가 되는구나. 발끈해서 나도 모르게 인증한 거였는데 인터넷에 짤로 엄청나게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혹시 서로 우결 같은 거 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올라오는 질문들이 어찌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길거리를 걸으며 구경을 할 생각이었는데 방송을 켜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성 오빠가 핸드폰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채팅창을 보고 대신 읽어주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눈이 빠졌을 거다.
"우결 할 생각 없냐고 물어보는데."
"누구랑? 오빠랑?"
내 물음에 오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쩐지 내심 기대하는 표정이라 피식 웃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없습니다."
내가 남자랑 우결 각을 잡는다고? 하. 온몸에 소름이 돕는다. 아무리 콘텐츠에 하나고 가상이라곤 하지만 내가 남자랑 가상 결혼을 해서 꽁냥꽁냥 하는 짓이라니...
'하하...'
언젠고 겪을 일이라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여신님 화났다.]
[아, 진짜 너랑 여신님이랑 가당키나 한 일이냐?]
[그러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우리 언니는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언니이이이이! 절대 안 돼요! ㅠㅠ]
[난 이 결혼 반댈세.]
[전 반전세!]
[뭐냐, 저 드립은...]
[우리 집 커피 드립.]
[하... 진짜 탈논방 애들 수준 보소.]
[응, 너도 지금 탈논방에 있는 애들이고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진짜 내 방송에 오는 사람들은 다 선비구나. 무척이나 점잖은 거였어. 물론, 우리 언니 덕분이긴 했지만.
하여간에 이 방에 온 사람들은 뭔가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것 같다.
"뭐 좋아해?"
내가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앉았는지 얼른 먹을 거로 유혹하는 현성 오빠의 순발력에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아무거나 다 잘 먹어. 이왕이면 고기!"
내 말에 현성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로스트 피그라는 곳 있는데 거기 갈래?"
"뭐 파는 곳인데?"
"삼겹살 집인데 괜찮아. 맛있어."
메뉴를 듣고 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겹살이라면 맛이 없기가 더 힘든 음식 아닌가! 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아했다.
[고기 좋아하시나 보네.]
[고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냐? 게다가 삼겹살을?]
[어! 나 거기 가봤는데 추천! 엄청 고기 맛있음!]
[모든 고기는 맛있다니까 그러네.]
[야... 방금 좋았다. 고기로 관심 돌리며 기분 풀기]
[고급 스킬 하나 들어갔네.]
[끄덕, 끄덕.]
망원역 2번 출구를 지나서 시장 골목으로 오빠가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초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이미 문을 연 음식점들이 많이 보였다.
첫 번째 코너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더니 왼쪽에 영어로 Roast pig라는 간판이 보였다.
"여기?"
"어, 여기야."
밖에는 광고판 두 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으면 고기를 파는 곳이라고 보기 힘든 인테리어였다. 뭐라고 할까 오히려 카페처럼 생겼다고 할까?
하여간 밖에서 가만히 메뉴가 그려진 광고판을 봤는데 통 삼겹 바비큐 레스토랑이라고 적혀 있었다.
"잠깐만. 이거 들고 있어봐."
오빠는 자신의 핸드폰을 내게 넘기고 로스트 피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방송을 해도 되는지 묻기 위해서 들어간 것 같았는데 굉장히 편안한 표정으로 들어간 걸 보니까 이곳에서 방송한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께서 현성 오빠를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거의 버선발로 나와서 반기는 모습에 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홍보 엄청 되겠지. 누가 보면 이 집 사장 아들인 줄 알겠다.'
사장님께선 오빠의 손을 붙잡고 뭐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저기요."
"네?"
난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자 두 명이 내 앞에 서선 날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와, 씨. 대박이다. 대박."
귓속말을 저렇게 다 들리게 하시네.
"아, 저기요. 너무 예쁘셔서 그런데 혹시 번호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진짜 이런 사람이 아닌데... 정말 번호 안 받아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나와 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순박한 남자가 내게 번호를 따기 위해서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뭐라고 해야 할까... 미안하고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용기는 가상하나... 내가 남자라.
"아, 죄송합니다."
단칼에 거절하는 내 모습에 옆에 있던 남자는 팔뚝으로 옆구리를 찌르면서 말했다.
"야야, 일단 남자친구부터 있는지 여쭤봐야지."
"아! 남자친구가 있으시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무슨 내가 큰형님도 아니고... 고개를 90도로 연신 꺾어 인사하는 모습에 난 당황스러워 뒷걸음질 쳤다.
난 양손을 들어보이곤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남자친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거절하기엔 나쁘지 않은 핑계다. 모처럼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세나야!"
타이밍 좋게 나를 부르는 현성 오빠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돌리며 손을 들어 보였다.
"어! 잠깐만!"
현성 오빠는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무슨 일이 있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오려고 하기에 난 나오지 말라는 손짓을 해 보이곤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난 예의 바르게 내 번호를 따려던 남자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고 곧바로 몸을 돌리려고 했다.
"저기요, 잠시만요."
아니... 뭐야? 누가 짠 거야? 난 채팅창 반응이 궁금해
핸드폰을 한 번 들여다봤다.
[와... 클라스 보소... 남자 몇이 꼬이는 거냐.]
[지금 주변에서 여신님 엄청 노리고 있음.]
[ㅇㅇ 지금 다들 눈치 싸움하고 있음.]
[탈논아 뭐 하냐... 메뉴판 볼 때가 아니다.]
[근데 솔직히 진짜 나라도 번호 딸려고 할 듯.]
[언니... 저 여잔데. 여자도 괜찮은가요?]
[뭐냐? ㄷㄷㄷ]
[위... 위험하다. 지... 진정해 토머스!]
"아, 남자 친구분이 있으시다네요."
순박한 남자가 나를 대신해 그 남자를 막아 주려고 했지만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다가왔다.
"SN엔터테인먼트 이진욱 매니저입니다. 혹시 연예인 해 볼 생각 없으세요?"
"네? 연예인이요?"
SN엔터테인먼트. 우리나라 연예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곳인데. 그런 대형 기획사의 매니저가 나한테 길거리 캐스팅을 제의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남자였을 땐 간혹 피팅 모델 제의를 받긴 했지만 이런 대형 기획사에 길거리 캐스팅은 난생처음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생각 없어요."
난 양손을 저으며 말했지만 기어이 내 손에 자신의 명함을 쥐여주더니 말한다.
"혹시나 생각이 바뀌면 연락 주세요. 기획사 구경도 시켜줄게요. 혹시 SN소속 연예인 중에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없어요?"
"아... 아이돌 그룹이요?"
아니, 예쁘기로 소문난 아이돌 그룹은 죄다 있다는 SN이었다. 그런 곳에 구경을 갈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큰 메리트다.
내 물음에 화색을 띠며 이진욱 매니저가 말한다.
"네. 샤인이라는 그룹도 있고, NTC 알죠? EXU는 요즘 컴백 준비하느라 연습실에 거의 살거든요. 지금 가도 아마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둘의 대화에 두 남자는 뻘쭘한 표정으로 자리를 피했고, 난 미간을 찌푸리며 이진욱 매니저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남자 그룹 말고, 여자 그룹 볼 수 있나요? 블루 벨벳이나 아니면 숙녀시대라던가..."
내 물음에 이진욱 매니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 여자 걸그룹을 좋아하시는구나. 물론이죠. 앨범 활동은 안 하지만 각자 개인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으니까 두 그룹 전 인원 다 볼 수 있을 거예요."
이건 좀 구미가 당기는 말이다. 난 명함을 소중히 품에 안고 물었다.
"정말로 구경시켜주시는 거죠? 근데 저 진짜 연예인 될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내 물음에 이진욱 매니저는 씩 하고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마음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어... 그거야 그렇지만..."
뭐, 이 사람도 희망을 조금 느낄 수 있는 게 좋겠지. 어쨌든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제가 가까운 시일 내에 연락드릴게요."
내 말에 그는 꽤나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진욱 매니저는 그렇게 말하더니 미련 없이 돌아서 걸어간다.
'오... 쿨해.'
난 그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다시 핸드폰을 보면서 현성 오빠가 있는 자리로 향했다.
"누구야?"
"아, 처음 왔던 남자들은 내 번호 따려고 왔던 사람이고 다른 한 남자는 SN엔터테인먼트 이진욱 매니저님이래."
"야, 요즘도 길거리 캐스팅을 하나?"
"그런가 본데?"
난 그렇게 말하면서 명함과 함께 핸드폰을 건네줬다. 현성 오빠는 시청자들에게 내가 받은 명함을 보여주면서 채팅창을 읽고 있었는데 새삼 놀랍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말한다.
"네가 예쁘긴 예쁜가 보다."
"흠... 아무래도 그런가 봐."
"이야, 부정은 안 하네."
"그러는 게 더 재수 없어."
내 말에 현성 오빠가 웃음을 터뜨렸고 채팅창은 오빠만 보고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한 반응일 것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여기서 에이, 아니야. 내가 예쁘긴 뭐가 예뻐. 나보다 예쁜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이러는 게 더 재수 없다.
내가 봐도 내가 예쁜데. 뭐 어떻게 하나.
현성 오빠는 채팅창을 가만히 읽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러고 보니 좀 그런 것 같네. 진짜로 좀 시선을 많이 받는 것 같아. 나는 나 알아보는 사람이 오늘 좀 많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너 그 정도는 아님.]
[에이, 그래도 탈논 정도면 월클이지.]
[그건 맞지. 인정이지.]
[아니, 그래도 오늘 시선 많이 받는 건 너 님 때문이 아니라고요. 다 여신님 때문이라고요. 남자가 너를 왜 쳐다보겠냐.]
[그건 또 맞지. 유독 시선이 집중되긴 함.]
[원래 예쁜 여자들은 시선 많이 받지 않나?]
[ㅇㅇ 원래 많이 받는다고 함.]
[우리 과에 여신님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꽤 예쁘장하고 귀여운 애 있거든. 난 걔가 자기 돈으로 밥 사 먹은 걸 본 적이 없음. 맨날 선배들이 돌아가면서 사줌. ㅋㅋ]
[어디를 가나 주목받는 삶... 부럽다.]
[나도 하루만 언니로 살고 싶다. 어떤 기분일까...]
[와... 남자한테 번호 따이는 거 보고 ㅎㄷㄷ 했는데 SN이라니. 뭐야, 진짜 이 언니?]
"야, 채팅창 난리 났다. 난리 났어."
현성 오빠의 말에 나도 채팅창이 궁금해 손을 내밀었다.
"왜 오빠만 봐. 나도 보여줘!"
내 말에 현성 오빠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너 핸드폰 없어?"
"있지, 핸드폰이 왜 없어."
"그럼 그거로 내 방송 들어와서 채팅창 보면 되잖아."
현성 오빠의 말에 난 아아. 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핸드폰을 꺼냈다. 현성 오빠는 그런 나를 보더니 굉장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너 한국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