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30. 합방을 준비합시다! (30/95)



〈 30화 〉30. 합방을 준비합시다!

"세나 너랑 대화하는  되게 편하다."


BJ탈논... 아니, 현성 오빠가 나와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합방에 관련된 사전 대화가 모두 끝나고 난 이후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도 여자보다는 남자와 대화를 하는 게 더 편하다. 아무래도 관심사라던가 취미라던가 그런 것들이 남성향이었으니까.


특히나 같이 방송을 하는 사람이고, 물론. 하늘과 땅 차이였긴 했지만.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교집합스러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아아, 나도 언니들 하고 대화하는 것보다 오빠랑 얘기하는 게  편하네."


언니들이나 또래 여자와의 대화를 많이 해본 건 아니었지만 남자와의 대화보다 훨씬 피곤하다는 건 확실히 느꼈다.

일단 대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까 힘들다.

언니가 통화를 하는 것도 가만히 보면 1시간은 우습고 2시간도 종종 봤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그렇게 전화 통화를 하고 끊으면서 하는 말이 중요한 얘기는 만나서 하잔다.


'끔찍해.'


남자로 살아왔으니 불편할 수밖에 없다. 모든 대화 주제가 나와는 무관한 부류니까. 화장이나 화장품, 신발이나 옷은 어찌나 그렇게 종류가 많은지.

반 팔이면 그냥  팔. 치마면 그냥 치마지... 내가 너무 모른다 싶어서 공부를 해볼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같은 치마라고 해도 길이별에 따라 미니 스커트, 미디스커트, 롱스커트, 맥시스커트로 나뉘고 라인별에 따라 A라인, H라인, 머메이드라인 스커트로 나뉘고
심지어 주름 및 단에 따라 플리츠, 플레어, 고어드, 개더, 아코디언, 풀, 드레이프트 그밖에도 어찌나 많은지...


'결국 포기했지.'


치마면 그냥 치마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꼭 여자라고 해서 이런  다 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니야 의상 쪽 일을 하니까 저렇게 잘 아는 거지. 보통 대부분의 여자들도 나처럼 구분을 못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는 상태다.

"그럼  틀은 이렇게 가는 거로 할까, 오빠?"

 물음에 현성 오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뭐 추가적으로 아이디어 있으면 더 얘기해 줘."
"응, 그렇게 할게."


난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현성 오빠도 나를 따라 일어난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했던가?  입에서 언니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꽤 어려웠는데 오히려 오빠라는 말은 의외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따지고 보면 언니라는 말보다는 오빠라는 말이 더 어려워야 정상 아닌가? 으... 오빠라니. 내가 말을 하고도 짜증스러운 감정이 커피 찌꺼기처럼 걸려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뭐, 그것도 잠시라고 할까? 처음보다는  번이 쉽고 두 번보다는 세 번이 쉬운 것처럼 이제는 그냥 자연스럽게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간이  애매한데 어디서 놀다가 같이 저녁이나 먹을래? 사전 합방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아, 거리 돌아다니면서?"
"응, 저녁 먹는 거 찍어도 좋고.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방송하는  해봤어?"

현성 오빠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집에서  방송만 해봤지. 밖에서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뭔가 좀... 쑥쓰럽다고 해야 할까..."

집에서 방송하는 것과 밖에서 방송하는 거. 그러니까 야방을 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일단 가장  차이점은 나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거. 집에서 방송할 때도 물론 날 보는 사람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내가 대면하는  아니었다.


그래서 집에서 방송하는 건 좀 편하게 할 수 있지만 밖에서 하는 건... 그러니까 굳이  시청자가 아니더라도 캠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내겐  민망했다.


"에이,  방송하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나중에는 네가 직접 MC도 보고 그럴지도 모르는데."
"에에? 내가?"
"그럼, 너 축구도 좋아한다면서. 그럼 그쪽에서 섭외하려고 할지도 모르는 거지. 린카 몰라? 린카?"
"아, 알아. 그 프랑스어 잘하시는 분."
"그래, 그분도 그런 거 하더만. 그리고  목표가  프로게이머라면서. 그럼 인터뷰 같은 거 하지 않겠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너무 멀리 가시네."

내 말에 현성 오빠는 웃더니 말한다.

"내가 봤을 때 네 실력이면 진짜 프로에 가도 성공할 것 같은데. 아직 연락 받은 건 없어?"
"응, 아직."
"프로게이머 상대로도 라인전 이기고 그랬다면서?"
"응,  오늘 DBB선수랑도 했다."
"에에? DBB? 그 Ken.G 미드?"
"어어. 내가 완전 발랐음."

내가 의기양양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자 불신 가득한 눈초리를 보낸다.


"뭐야? 지금 내   믿는 거야?"

나와 오빠는 카페에서 나와 길거리를 걸었고, 오빠는 방송을 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 방송하고 있었이면 증인이 수 천 명이 있었을 텐데. 녹화만 해놔서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네."
"믿어, 믿어. 네가 거짓말 해봐야 뭐 얻는 게 있겠어.
전적 검색만 해도 다  수 있어."
"아! 맞아, 그게 있지! 전적 검색해봐. 그거 플레이한 것도 볼 수 있지 않아?"
"볼  있지."
"그럼 딱 보면 알겠네. 내가 라인전 이겼는지 졌는지."


오빠는 방송 장비를 꺼내 들어 보이며 말한다.

"방송 켜도 진짜 괜찮지? 오늘 원래 방송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면서 챙겨는 오셨어?"
"아니, 뭐. 유비무환이라는 말도 있잖냐."

현성 오빠의 말에 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결론적으론 좋게 작용했네."

점심을 먹고 좀 친해진 다음 카페에 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방송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짰다.

생각보다 그 시간이 오래 걸려서 5시가 됐는데 뭔가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다.


조금 더 놀다가 저녁까지 해결하고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야방이라는 것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첫 야방인가?"
"음... 그렇다고 봐야지. 오늘이 처음이지."
"이야, 그럼 내가 첫 야방에 처음으로 함께 한 사람이네."

  말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진 마."


내 말에 뻘쭘한 표정을 짓는 현성 오빠의 모습에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자, 그럼 시작한다."

현성 오빠는 방송을 켰고 확실히 대기업답게 순식간에 사람들이 밀려드는 게 보였다.

정신없이 떠오르는 입장 멘트에 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로 오! 하고 만들어 보이자 현성 오빠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대기업은 대기업이네. 와... 사람 진짜 엄청 많이 들어온다."
"너도 많이 들어오잖아."
"아니, 난 근데 이렇게 빨리 많이 들어오진 않아. 시간을 정해서 방송을 켜고 하는데도. 오빠는 지금 그냥 아무런 사전 공지도 없이 라이브로 그냥 켠 거잖아."

내가 이렇게 켜면 현성 오빠만큼 사람들이 와줄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나에 대한 관심보다야 현성 오빠에게 갖는 사람들의 관심의 수준이 훨씬 크고 오래된 것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뭐야? 여신님이 왜 여기서 나와?]
[아, 합방한다고 하긴 했었음.]
[뭐야? 공지도 없지 이걸 그냥 한다고?]
[오늘 만난다고 어제 하지 않았나? 합방 관련해서 얘기하러 만난다고.]
[결국 그  입고 나갔네. 옷 몇 번을 갈아입더니.]
[이거 정식 합방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님, 아님. 이거 그냥 오늘 만난 김에 켠 것 같음.]
[안녕하세요, 여신님!]
[우와... 엄청 예쁘시다.]
[진짜 미모 원탑.]
[여신님... 여신님이다!]
[와... 뭐냐? 진짜 예쁘네.]
[개부럽다. ㅅㅂ!]
[내 꿈은 탈논!]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창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정말 나와는 비교도  될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창에 감탄이 나온다.

"우와... 채팅창 엄청 빨라."
"너도 이 정도는 되잖아."
"안 된다니까. 이렇게 빨리 올라가진 않아. 아니, 이걸 어떻게 읽어? 읽을 순 있어?"
"그럼 난 다 읽지."


오빠는 그렇게 말하면서 엄청나게 빨리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면서 소통을 했는데 확실히 프로는 프로였다.


진짜 중요한 부분, 재미있는 부분의 글들만 읽으면서 대꾸를 해주고 있었는데 진짜 프로 방송인처럼 능숙했다.

'그것보다 이걸 진짜 읽을  있다는 게 신기하네.'

채팅창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는데 그걸 어떻게 읽고 하나하나 얘기를 한다는 거 자체가 신기했다.

난 너무 빨리 올라가서 제대로 읽기도 힘들었다.

"아, 얘. 여기서 하꼬 티가 나네."

[한국대 여신님이 하꼬라고 봐야 되냐?]
[아니  하꼬야. 어쩔 땐 3대장보다 많이 보던데.]
[ㅇㅇ 노잼 방송하고 있으면 차라리 여신님 롬하는 거 보는 게 더 이득임.]
[그건 맞지. ㄹㅇㅋㅋ]
[아니, 방송 시작한 기간으로 보면 하꼬 맞지 않냐?]
[기간만 하꼬.]
[ㅋㅋㅋ 진짜 최단기간 급성장한 BJ로는 원탑일 듯.]
[전 세계 원탑일 것 같은데.]
[와... 진짜 근데 왜 이렇게 예쁘냐. 빛이 나네. 빛이.]
[여신이잖슴. 당연히 빛이 나는 게 정상.]
[아이고... 진짜 탈논, 무슨 복이냐 저게. 진짜...]
[저 와꾸로 여캠들 만나러 다니는 거 부럽긴 했는데 오늘이 제일 부럽네.]
[ㅋㅋㅋㅋ ㅇㅈ]

"하, 야. 나 정도면 괜찮은 얼굴이지. 뭔 개소리야."

[응, 아니야.]
[?]
[?????????????????????????]
[약 먹을 시간인가.]
[야야, 얘들아 그냥 그렇다고 해주자.]
[그래, 여신님 앞에서 가오 상한다.]
[오늘 방송 컨셉은 여신과 트롤인가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트롤이야?"


[현실도 게임도 트롤은 맞는 듯.]
[여신님보다 못하면 트롤이지.]
[솔직히  탈논 빼고 다 개트롤임.]

이야... 채팅창이 살벌했다.  방송과는 전혀 다른 온도에 조금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원래 이렇게 다들 공격적이신가?


[여신님 깜짝 놀라신 듯.]
[야야. 말들  순화해라.]
[그래, 여신님 놀라신다.]
[애들 오늘 그래도 여신님 왔다고 자제 중인데?]
[ㅋㅋ 좀 그런 느낌이긴 함.]

도대체 어떤 싸움을 하고 계셨던 거야? 거의 대화 대부분이 현성 오빠를 까는 내용이라 당황을 넘어 조금 당혹스러웠다.


"이게 약한 거라고?"

내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현성 오빠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오늘 그래도 너 있다고 좀 덜하네."

중간, 중간 얼굴이 찌푸려지는 악성 댓글들도 올라왔는데 그걸 보고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표정을 지어서 새삼 대단해 보였다.

[뭐냐? 벌써 말 놨네.]
[하하... 여신님.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자나 깨나?]
[탈논 조심!]
[탈논 조심!]
[ㄹㅇㅋㅋ ㅌㄴㅈㅅ]
[ㅌㄴㅈㅅ]
[탈논 조심! ㅋㅋㅋㅋ]
[오늘 처음 만난 거 아님? 왜 이렇게 친해 보임?]
[이미 탈논의 늪에 빠진 거지... 하...]
[아,  돼... 우리 여신님은 안 된다고!]

마치 나를 탈논님이 납치라도  것처럼 얘기해서 웃음이 나왔다. 마음을 납치하는 거라면 또 맞는 말인가?

"나 근데 왜 오빠 조심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나? 왜?"

현성 오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기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뭐라고 할까... 사람을 되게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뭔가... 마력이 있다고 할까? 그래서 인기가 많은가 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뭐, 주관적으로 봐도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준수한 외모는 됐고. 훤칠한 키에 근육질 몸은 아니었지만 멸치는 아니시고.


부드러운 인상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보고 있자니 확실히 호감이 가는 얼굴이  하다. 뭐라고 할까? 부담스럽지 않다고 해야 하나?


동네에서 흔히 보는 옆집 형처럼 생겼다고 하면 뭔가 딱 맞는 얘기일 것 같았다.

"나 인가 별로 없는데. 뭔 소리야."
"아, 그리고 그거 있어요. 방송할 때 이미지랑 그냥 개인적으로 만났을  이미지랑 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이건 뭐 공통적인 의견이네.]
[이중인격자라고 인증.]
[뭐가 다름?]


"방송 안 할 때는 뭐라고 할까? 조금 차분한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 톤도 지금 보다 훨씬 낮아요. 그리고 분위기 자체가 뭔가 다른 것 같아요."

뭔가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는데 확연히 방송할 때의 모습과 방송을 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카메라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뭔가 다른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뭐 엄청 심하진 않았지만. 연예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막상 내가 직접 어떤 느낌인지 경험해 보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하여간 그런 게 있어요.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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