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27. 합방을 준비합시다! (27/95)



〈 27화 〉27. 합방을 준비합시다!

10시가 넘어가자 언니가 집에 들어왔다. 한창 방송 중이던 나는  방에 들어온 언니를 반기며 미소를 지었다.


"왔어?"
"어, 저녁은?"

언니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집에 오자마자 내 방으로  것 같았다.

"치킨 시켜 먹었어."

언니는 내 옆으로 다가와 모니터를 보더니 물었다.

"방송 중이야?"
"응."

[오우. 언니 오셨다!]
[와... 뭐냐? 이 집안 유전자 왜 이렇게 우월하냐?]
[언니도 미인이시네.]
[이야... 미녀다.]
[여신님 언니도 여신이네.]
[이 집안 뭐냐?]

언니는 채팅을 읽으며 미소를 짓다가 피곤했는지 내침대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대표님이랑 뭐 했어?"
"그냥 밥 먹고,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그랬지."
"으음... 좋았어?"
"응, 좋았어. 괜찮은 사람이더라. 뭐, 만난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매너 있고 좋은 사람이더라. 돈도 많고."

언니는 그렇게 얘기하며 슬쩍 내 눈치를 살폈는데 내가 나이가 많아서  된다고 했던 게 좀 걸리는 모양이다.


 그런 언니를 보곤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뭐, 언니가 좋으면 좋은 거지."


난 그렇게 심드렁하니 대꾸하고는 시청자분들에게 오늘 언니가 대표님과 식사를 함께 했다는 말을 했다.


내 생각엔 대표님이 100% 언니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고 언니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슬쩍 말을 더한다.


"그렇다고 아직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여자의 자존심인가? 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남자가 엎드려 절해야 하는 거 아님?]
[맞지. 9살 차이? 와... 부럽네. GOAL 어패럴 대표...]
[역시... 돈이 많아야 하는 건가...]

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언니  씻고 쉴게."
"응."

[저도 같이...]
[미친 ㅋㅋㅋㅋ]


"아, 너 시켜 먹을 때 언니가 쓰라고  방법 썼어?"

언니의 말에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방법?"

난 처음 듣는 말에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더니 언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배달 음식 혼자 시켜 먹을 때 언니가 말했잖아."


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는 모습에 난 몸을 움찔 떨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그렇게 했지."


 말에 언니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어."

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방에서 나갔고 난 그런 언니를 잠시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방법을 말하는 거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피식 웃곤 시청자분들에게 말했다.

"배달 음식 혼자 시켜 먹을  무슨 방법이 있어요?"

이해가 가지 않는 언니의 말에도 시청자들은 언니가 살짝 화내려는 모습이 섹시하다며 난리였다.

"아, 좀!"


내가 화를 내자 그제야 하나, 둘 말하기 시작한다.


[여자 혼자 음식 시켜 먹을  그런  있잖아요. 배달 음식 시킬 때 일부러 남자 이름으로 시킨다거나 남자 속옷 걸어 놓고, 남자 신발도 현관에 두고 샤워기 틀어 놓고 그런 거요.]

난 그 말에 에에? 하며 소리를 냈다.

"왜 그렇게 해요?"


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음식을 그렇게 시켜 먹어본 역사가 없는데. 뭘 그렇게 번거롭게 하냐?


[이거  분 큰일 날 분이네...]
[뭐, 그렇게까지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조심은 해야 한다고 봄. 여자 혼자 뭐 시켜 먹는  조금 위험함.]
[ㅇㅇ 그래서 우리 누나도 나 있을 때만  시켜 먹음. 아니면 나보고  오라고 함.]
[아빠도 음식 뭐 오면 무조건 나보고 나가라고 함. 누나 안 시킴.]
[언니, 전 무조건 내려가서 받아요. 집까지 오게 안 해요.]
[언니 저는 혼자 자취할 때 배달원이 집 쓰윽 훑어보고 한달 뒤인가 계속  집에 있는데 문따는 소리 들리고 그랬음. 개무서움.]
[이런 거 남자들은 이해 못함.]
[시부레, 사는 게 아니라 살아 남는 거다.]
[언니처럼 예쁘고 몸매 좋으면 더 조심해야 함.]


"으엉?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아, 진짜?"


 처음 듣는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난 두 눈을 깜빡이다 아까 배달원을 생각해 봤다.


"어?"

뭔가 소름이 돋았다.

"나 아까 치킨 시켰을 때  배달하시는 분이 치킨은  주고 멍하니 쳐다보는 거야."

[예뻐서?]
[자기 자랑한다.]
[에이, 솔직히 언니 정도면 웬만한 남자들은 그렇지]
[솔직히 ㅇㅈ]
[하아... 배달원 ㄱㅅㄲ 존나 부럽다.]
[나도 여신님 집에 365일 배달 가고 싶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아니, 뭐... 내가 예뻐서 본 건가? 뭐 그렇겠지? 하여간에 그래서 치킨 달라고 손 내밀죠.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주더라고. 근데 치킨 받고 문 닫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틈 사이로 손을 쑥 집어 넣는거야."

[ㅅㅂ 소름...]
[꺄아아악!]
[도망쳐!]
[왜요?]
[무를 안 줬네. 무를.]

"오! 맞아. 아, 근데 처음엔 그 얘기를  했고. 계산을 했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배달 앱으로 시킬 때 결제 안 하셨어요?]

"아니, 했죠. 했는데. 안 됐나요?  이렇게 물어봤죠. 그랬더니 자기가  착각했다면서 이번엔 무를 넣는지 헷갈린다는 거야."


[무는 페이크고 무 확인할 때 집 스캔하기.]
[까아아악! 무섭게  그래요!]
[혼자세요? 이러면 개 무섭겠다.]
[와... 소름... 나 여잔데 배달 음식 시켜 먹을 때 문 열어 놓고 다리 떨면서 기다리는데. ㅋㅋㅋㅋㅋ]
[엌 ㅋㅋㅋ 나도. 이제 오나 언제 오나 오매불망 ㅋㅋ]
[헐... 그러지 마세요...]
[너무 안일하게 살았나...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문 열어주고 음식 받았는데.]
[그래서요?]

"그래서 뭐 무 찾아봤죠. 치킨에 무가 없으면 안 되잖아. 나  진짜 좋아한단 말이야. 치킨무. 그래서 엄청 열심히 찾았다고. 보니까 있더라? 그래서 치킨무 들고 흔들면서 말했지. 여기 있다고."

[아, 이거... 내가 봤을 때 치킨무 들고 흔들면서 엄청 기쁜 표정 지었을 것 같은데... 그럼 스님이라도 뻑이 가지.]
[아아... 그건 ㅇㅈ. 바로 파계승 됨.]
[언니 세상 기쁜 표정으로 치킨무 흔들고 웃어준 건 아니죠?]


"어... 맞는데."

 말에 다들 왜 그랬냐고 아우성이다.  남자가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집에도 혼자 였고 문 닫으면 밖과 완전히 차단되는데.

"흠... 치킨 배달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을 텐데..."


[아니, 이건 또 무슨 논리야.]
[치킨이 착한 거지 배달원까지 착한 건 아니라고!]
[하...  언니 답답하네.]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그렇게 얘기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무 피해 망상 아닌가?  배달원이 그냥 정말 계산  했는지 착각했을 수도 있고. 치킨무를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헷갈렸을 수도 있잖아요."


[멍청한 거야... 순진한 거야...]
[계산이야 물어볼 수 있다고 봐. 근데 배달원이 치킨무 넣습니까? 그 매장에서 받아오기만 할 텐데.]
[어? 그렇네. 보통 배달원들은 받아 오기만 하지.]
[ㅇㅇ 메뉴만 확인하고. 그 남자 조금 이상함. 나 배달원인데. 확실히 이상함. 조심해야 할 듯.]

"에이. 너무 가신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남자를 잠정적 범죄자로 보는 거 아니야? 저건 자칫하면 모든 배달원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수도 있다.


어쨌든 끝없이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조심할게요. 나도 알거든요? 세상이 온통 막 핑크빛이고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하지 않다는 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는데 그렇게 정신없이 얘기를 하다 보니까 방종 시간인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 12시네?"


[아... 신데렐라 여신님...]
[벌써 12시야? 미쳤네!]
[엥? 12시라고?]
[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봤네.]
[아,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망했다.]

당행스럽게도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다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방송을 봤다는 말이  어떤 말보다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다들 늦게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내일 또 8시에 만나요! 아, 합방! 여러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합방을 원하시는 것 같아서 조만간에 합방 스케줄 잡고 따로 공지해드릴게요. 그럼 됐죠?"


[언제쯤 생각 중이세요?]
[언제요?]
[합방 날짜가 정확히 정해진 건가요?]


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합방에 대해 정확하게 정해진  없고요. 다만, 몇 번 얘기가 오고 가긴 했어요. 서로 합방 의사가 있다는 것만 얘기가 됐고 정확한 합방 날짜까지는 정하지 않았어요."

난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합방을 하면  하면 좋을지, 또 언제가 좋을지 그런 세부적인 사항들도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고... 하여간 조율할 사항들이 아무래도 좀 있을 것 같아서 단박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야 뭐 이제 방학이라서 좀 놀겠지만 다른 방송하시는 분들은 바쁘실 거 아니에요."

[걔들은 맨날 노는데.]
[ㅇㅇ 방송하면서 맨날 놈.]
[맨날 게임이나 처하는 놈들인데 여신님이 더 바쁘면 바빴지 절대 걔들이 바쁘진 않음.]
[인정.]
[한국대도 못 나온 놈들이 어딜.]
[.... 솔직히 여기 한국대 있냐?]
[쟨  자폭하냐?]

"하여간에 아직 뭐 확실하게 정해진 사항은 없으니까 과도한 기대는 자제 부탁드립니다. 어... 정해지면 바로 공지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내 말에 시청자들은 예쁘게 대답했고 난 그러한 채팅들을 읽으며 만족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그렇게 말하곤 방송을 종료했고 방송이 종료되자마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온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 번호를 교환했던 BJ탈논님이었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세나 씨. 밤늦게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방송 끝나는 거 보고 바로 전화드렸는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통화 가능할까요? 지금 방송하고 있는  아니에요.]
"물론이죠."
[다름이 아니라 합방 때문에 전화를 드렸는데 하실 생각이 정말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아, 저야 무조건 환영이죠."
[정말요?]
"네네. 솔직히 제가 이렇게 떡상한 것도 다 탈논님 덕분인데 보답도 해드리고 싶고. 한 번 만나 뵙고 싶기도 하고. 또 방송적인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을  같아서요."

 말에 탈논님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후, 저한테 뭐 배울 게 있겠습니까? 저보다 훨씬 더 잘하시고 거기다 한국대도 나오셔서 똑똑하시고 하신데.]
"에이, 공부 머리랑 방송 잘하는 거랑 어디 같나요."
[어... 그럼 내일 시간 괜찮으시면... 우리 만날까요?]

탈논님의 말에  보이지도 않는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좋아요. 전 아무때나 시간 괜찮은데 탈논님은 바쁘시지 않나요? 방송 굉장히 오래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
[내일은 좀 적게 하면 됩니다.]

단박에 나오는 대답에 난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 네. 그럼 내일 제가 어디로 나갈까요?"
[혹시 망원동 아세요?]
"당연히 알죠."


서울 사는데 망원동도 모를까봐? 난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탈논님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럼 망원역에서 만날까요? 혹시 오시는 게 불편하시면 제가 직접 모시러 가도 되는데.]
"아이고,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까지 없어요. 그냥 지하철 타고 망원역 가면 금방 가요."
[아, 네. 어... 그럼 내일 오후 12시에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고 합방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볼까요?]
"네네, 좋아요. 그럼 내일 12시에 뵙겠습니다. 망원역에서."
[네, 망원역에서.]


그리고... 대화가 어색하게 끊겼다. 전화가 끊겼나?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바라봤지만 여전히 통화중이었다.


[....]


난 고개를 갸웃했고 탈논님이 말을  때까지 기다렸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신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끊을까요?"
[네? 아.. 네. 끊어.. 네, 어... 끊어아죠. 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긴다. 난  눈을 깜빡이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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