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27. 합방을 준비합시다!
10시가 넘어가자 언니가 집에 들어왔다. 한창 방송 중이던 나는 내 방에 들어온 언니를 반기며 미소를 지었다.
"왔어?"
"어, 저녁은?"
언니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집에 오자마자 내 방으로 온 것 같았다.
"치킨 시켜 먹었어."
언니는 내 옆으로 다가와 모니터를 보더니 물었다.
"방송 중이야?"
"응."
[오우. 언니 오셨다!]
[와... 뭐냐? 이 집안 유전자 왜 이렇게 우월하냐?]
[언니도 미인이시네.]
[이야... 미녀다.]
[여신님 언니도 여신이네.]
[이 집안 뭐냐?]
언니는 채팅을 읽으며 미소를 짓다가 피곤했는지 내침대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대표님이랑 뭐 했어?"
"그냥 밥 먹고,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그랬지."
"으음... 좋았어?"
"응, 좋았어. 괜찮은 사람이더라. 뭐, 만난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매너 있고 좋은 사람이더라. 돈도 많고."
언니는 그렇게 얘기하며 슬쩍 내 눈치를 살폈는데 내가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고 했던 게 좀 걸리는 모양이다.
난 그런 언니를 보곤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뭐, 언니가 좋으면 좋은 거지."
난 그렇게 심드렁하니 대꾸하고는 시청자분들에게 오늘 언니가 대표님과 식사를 함께 했다는 말을 했다.
내 생각엔 대표님이 100% 언니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고 언니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슬쩍 말을 더한다.
"그렇다고 아직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여자의 자존심인가? 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남자가 엎드려 절해야 하는 거 아님?]
[맞지. 9살 차이? 와... 부럽네. GOAL 어패럴 대표...]
[역시... 돈이 많아야 하는 건가...]
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언니 좀 씻고 쉴게."
"응."
[저도 같이...]
[미친 ㅋㅋㅋㅋ]
"아, 너 시켜 먹을 때 언니가 쓰라고 한 방법 썼어?"
언니의 말에 난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방법?"
난 처음 듣는 말에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더니 언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배달 음식 혼자 시켜 먹을 때 언니가 말했잖아."
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는 모습에 난 몸을 움찔 떨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그렇게 했지."
내 말에 언니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어."
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방에서 나갔고 난 그런 언니를 잠시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방법을 말하는 거지?"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피식 웃곤 시청자분들에게 말했다.
"배달 음식 혼자 시켜 먹을 때 무슨 방법이 있어요?"
이해가 가지 않는 언니의 말에도 시청자들은 언니가 살짝 화내려는 모습이 섹시하다며 난리였다.
"아, 좀!"
내가 화를 내자 그제야 하나, 둘 말하기 시작한다.
[여자 혼자 음식 시켜 먹을 때 그런 거 있잖아요. 배달 음식 시킬 때 일부러 남자 이름으로 시킨다거나 남자 속옷 걸어 놓고, 남자 신발도 현관에 두고 샤워기 틀어 놓고 그런 거요.]
난 그 말에 에에? 하며 소리를 냈다.
"왜 그렇게 해요?"
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음식을 그렇게 시켜 먹어본 역사가 없는데. 뭘 그렇게 번거롭게 하냐?
[이거 이 분 큰일 날 분이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조심은 해야 한다고 봄. 여자 혼자 뭐 시켜 먹는 거 조금 위험함.]
[ㅇㅇ 그래서 우리 누나도 나 있을 때만 뭐 시켜 먹음. 아니면 나보고 사 오라고 함.]
[아빠도 음식 뭐 오면 무조건 나보고 나가라고 함. 누나 안 시킴.]
[언니, 전 무조건 내려가서 받아요. 집까지 오게 안 해요.]
[언니 저는 혼자 자취할 때 배달원이 집 쓰윽 훑어보고 한달 뒤인가 계속 나 집에 있는데 문따는 소리 들리고 그랬음. 개무서움.]
[이런 거 남자들은 이해 못함.]
[시부레, 사는 게 아니라 살아 남는 거다.]
[언니처럼 예쁘고 몸매 좋으면 더 조심해야 함.]
"으엉?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아, 진짜?"
난 처음 듣는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난 두 눈을 깜빡이다 아까 배달원을 생각해 봤다.
"어?"
뭔가 소름이 돋았다.
"나 아까 치킨 시켰을 때 그 배달하시는 분이 치킨은 안 주고 멍하니 쳐다보는 거야."
[예뻐서?]
[자기 자랑한다.]
[에이, 솔직히 언니 정도면 웬만한 남자들은 그렇지]
[솔직히 ㅇㅈ]
[하아... 배달원 ㄱㅅㄲ 존나 부럽다.]
[나도 여신님 집에 365일 배달 가고 싶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아니, 뭐... 내가 예뻐서 본 건가? 뭐 그렇겠지? 하여간에 그래서 치킨 달라고 손 내밀죠.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주더라고. 근데 치킨 받고 문 닫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틈 사이로 손을 쑥 집어 넣는거야."
[ㅅㅂ 소름...]
[꺄아아악!]
[도망쳐!]
[왜요?]
[무를 안 줬네. 무를.]
"오! 맞아. 아, 근데 처음엔 그 얘기를 안 했고. 계산을 했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배달 앱으로 시킬 때 결제 안 하셨어요?]
"아니, 했죠. 했는데. 안 됐나요? 뭐 이렇게 물어봤죠. 그랬더니 자기가 뭐 착각했다면서 이번엔 무를 넣는지 헷갈린다는 거야."
[무는 페이크고 무 확인할 때 집 스캔하기.]
[까아아악! 무섭게 왜 그래요!]
[혼자세요? 이러면 개 무섭겠다.]
[와... 소름... 나 여잔데 배달 음식 시켜 먹을 때 문 열어 놓고 다리 떨면서 기다리는데. ㅋㅋㅋㅋㅋ]
[엌 ㅋㅋㅋ 나도. 이제 오나 언제 오나 오매불망 ㅋㅋ]
[헐... 그러지 마세요...]
[너무 안일하게 살았나...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문 열어주고 음식 받았는데.]
[그래서요?]
"그래서 뭐 무 찾아봤죠. 치킨에 무가 없으면 안 되잖아. 나 무 진짜 좋아한단 말이야. 치킨무. 그래서 엄청 열심히 찾았다고. 보니까 있더라? 그래서 치킨무 들고 흔들면서 말했지. 여기 있다고."
[아, 이거... 내가 봤을 때 치킨무 들고 흔들면서 엄청 기쁜 표정 지었을 것 같은데... 그럼 스님이라도 뻑이 가지.]
[아아... 그건 ㅇㅈ. 바로 파계승 됨.]
[언니 세상 기쁜 표정으로 치킨무 흔들고 웃어준 건 아니죠?]
"어... 맞는데."
내 말에 다들 왜 그랬냐고 아우성이다. 그 남자가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집에도 혼자 였고 문 닫으면 밖과 완전히 차단되는데.
"흠... 치킨 배달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을 텐데..."
[아니, 이건 또 무슨 논리야.]
[치킨이 착한 거지 배달원까지 착한 건 아니라고!]
[하... 이 언니 답답하네.]
난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그렇게 얘기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무 피해 망상 아닌가? 그 배달원이 그냥 정말 계산 안 했는지 착각했을 수도 있고. 치킨무를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헷갈렸을 수도 있잖아요."
[멍청한 거야... 순진한 거야...]
[계산이야 물어볼 수 있다고 봐. 근데 배달원이 치킨무 넣습니까? 그 매장에서 받아오기만 할 텐데.]
[어? 그렇네. 보통 배달원들은 받아 오기만 하지.]
[ㅇㅇ 메뉴만 확인하고. 그 남자 조금 이상함. 나 배달원인데. 확실히 이상함. 조심해야 할 듯.]
"에이. 너무 가신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남자를 잠정적 범죄자로 보는 거 아니야? 저건 자칫하면 모든 배달원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걸 수도 있다.
어쨌든 끝없이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조심할게요. 나도 알거든요? 세상이 온통 막 핑크빛이고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하지 않다는 거?"
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는데 그렇게 정신없이 얘기를 하다 보니까 방종 시간인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 12시네?"
[아... 신데렐라 여신님...]
[벌써 12시야? 미쳤네!]
[엥? 12시라고?]
[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봤네.]
[아,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망했다.]
당행스럽게도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다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방송을 봤다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다들 늦게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내일 또 8시에 만나요! 아, 합방! 여러분들이 생각보다 더 많이 합방을 원하시는 것 같아서 조만간에 합방 스케줄 잡고 따로 공지해드릴게요. 그럼 됐죠?"
[언제쯤 생각 중이세요?]
[언제요?]
[합방 날짜가 정확히 정해진 건가요?]
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합방에 대해 정확하게 정해진 건 없고요. 다만, 몇 번 얘기가 오고 가긴 했어요. 서로 합방 의사가 있다는 것만 얘기가 됐고 정확한 합방 날짜까지는 정하지 않았어요."
난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합방을 하면 뭘 하면 좋을지, 또 언제가 좋을지 그런 세부적인 사항들도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고... 하여간 조율할 사항들이 아무래도 좀 있을 것 같아서 단박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야 뭐 이제 방학이라서 좀 놀겠지만 다른 방송하시는 분들은 바쁘실 거 아니에요."
[걔들은 맨날 노는데.]
[ㅇㅇ 방송하면서 맨날 놈.]
[맨날 게임이나 처하는 놈들인데 여신님이 더 바쁘면 바빴지 절대 걔들이 바쁘진 않음.]
[인정.]
[한국대도 못 나온 놈들이 어딜.]
[.... 솔직히 여기 한국대 있냐?]
[쟨 왜 자폭하냐?]
"하여간에 아직 뭐 확실하게 정해진 사항은 없으니까 과도한 기대는 자제 부탁드립니다. 어... 정해지면 바로 공지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내 말에 시청자들은 예쁘게 대답했고 난 그러한 채팅들을 읽으며 만족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난 그렇게 말하곤 방송을 종료했고 방송이 종료되자마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온다. 난 누군가 하고 봤더니 번호를 교환했던 BJ탈논님이었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세나 씨. 밤늦게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방송 끝나는 거 보고 바로 전화드렸는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통화 가능할까요? 지금 방송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물론이죠."
[다름이 아니라 합방 때문에 전화를 드렸는데 하실 생각이 정말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아, 저야 무조건 환영이죠."
[정말요?]
"네네. 솔직히 제가 이렇게 떡상한 것도 다 탈논님 덕분인데 보답도 해드리고 싶고. 한 번 만나 뵙고 싶기도 하고. 또 방송적인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서요."
내 말에 탈논님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후, 저한테 뭐 배울 게 있겠습니까? 저보다 훨씬 더 잘하시고 거기다 한국대도 나오셔서 똑똑하시고 하신데.]
"에이, 공부 머리랑 방송 잘하는 거랑 어디 같나요."
[어... 그럼 내일 시간 괜찮으시면... 우리 만날까요?]
탈논님의 말에 난 보이지도 않는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좋아요. 전 아무때나 시간 괜찮은데 탈논님은 바쁘시지 않나요? 방송 굉장히 오래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
[내일은 좀 적게 하면 됩니다.]
단박에 나오는 대답에 난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 네. 그럼 내일 제가 어디로 나갈까요?"
[혹시 망원동 아세요?]
"당연히 알죠."
서울 사는데 망원동도 모를까봐? 난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탈논님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럼 망원역에서 만날까요? 혹시 오시는 게 불편하시면 제가 직접 모시러 가도 되는데.]
"아이고,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까지 없어요. 그냥 지하철 타고 망원역 가면 금방 가요."
[아, 네. 어... 그럼 내일 오후 12시에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고 합방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볼까요?]
"네네, 좋아요. 그럼 내일 12시에 뵙겠습니다. 망원역에서."
[네, 망원역에서.]
그리고... 대화가 어색하게 끊겼다. 전화가 끊겼나?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바라봤지만 여전히 통화중이었다.
[....]
난 고개를 갸웃했고 탈논님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신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끊을까요?"
[네? 아.. 네. 끊어.. 네, 어... 끊어아죠. 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긴다. 난 두 눈을 깜빡이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