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화 〉23. GOAL 어패럴 (23/95)



〈 23화 〉23. GOAL 어패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거야  큐피트가 알아서 하시겠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큐피트에겐 황금 화살과  화살이 있다. 황금 화살은 상대가 누구든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화살이고 철 화살은 그 반대의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화살이다.


기사님께선 내가 황금 화살이든 철 화살이든 날릴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인데 난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나이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언니가 좋다고 하면야 뭐 어쩔 수 있겠는가.

'뭐, 언니와 함께 부모님을 상대로 싸워줄 전우애는 없으니 그거야 언니가 알아서 하겠지.'

든든한 우군이 있으니, 뭐 어떻게 알아서 잘 헤쳐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에요?"
"대표님 말씀이십니까?"
"네."

내 말에 기사님은 흠... 하는 소리를 내며 턱을 쓰다듬더니 나를 보곤 말한다.

"돈 많고 착하신 분입니다."

난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훌륭하네요."

내 대답에 기사님도 역시나 미소를 지으셨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담소를 나눴는데 이미 나와 언니를 GOAL 어패럴의 소속 식구처럼 대해서 조금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다. 진짜 괜찮다고 했죠? 걱정하지 말라고 제가 했습니까,  했습니까."


김주원 대표님은 촬영이  끝나고 왔으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지켜  사람처럼 얘기했다.

"아니, 대표님은 스튜디오에 늦게 오셔 놓고 다 본 것처럼 말씀하시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타박을 줬고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들어보니까 다들 칭찬하니까 그러는  아닙니까. 제가 처음에 일반인 두 명을 데리고 온다고 했을 때 반대하던 사람들 제가 다 얼굴 압니다."


대표님은 그렇게 말하더니 세연 언니와 나를 보면서 자신을 타박한 사람을 슬쩍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저보고 뭐라고 한 사람도 두 분 반대하신   하나입니다."

그 말에 엉겁결에 우리 둘의 시선을 받게 된 분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 대표님. 저만 반대했습니까? 사실 여기 메이크업 팀도 그렇고 헤어도 그렇고 의류팀  솔직히 여기 반대 안 했던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전 안 했는데요."
"저도요."
"저도 안 했습니다."
"어?  찬성했는데요? 대표님이 어디 건성으로 알아보고 오셨겠습니까? 누구보다 사활을 걸고 계신 분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야.. 대표님을 못 믿으셨네. 저도 반대  했습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입술이 바짝 타시는지 침을 바르며 눈치를 살피신다. 생각보다 반대 안 하시는 분들도 꽤 있으시네?


"아니, 그러니까 나는... 전문 피팅 모델도 아니고... 홍대에서 친구분들이랑 술 마시다가 마음에 들어서 다짜고짜 번호를 땄다고 하시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좀 고민이 됐다. 뭐, 이거죠."


결국, 꼬리를 마시며 우리 둘에게 양손을 흔들며 말했다.

"저  그렇게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그러진 않았습니다. 세연 씨, 세나 씨."
"아아. 네. 그냥 좀 반대한 걸로."

세연 언니가 여우 같은 표정을 짓고 눈을 흘기며 말하자 고개를  숙이시더니 말한다.

"괜히  꺼냈네."

그 말에 스튜디오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웃음을 터뜨린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커피까지 챙겨 마신 우린 스튜디오에 남아 정리하는 걸 도와드렸고, 그런 우리들을 대표님과 스튜디오 사람들이 극구 말렸지만 우린 기어이 정리를 도와드렸다.

우리가 정리를 하자 덩달아 대표님과 기사님도 정리를 도왔는데 재미있는 게 대표님이 그러면 뭔가 부담스러워할 법도 한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아, 대표님 그건 이쪽에 놓으셔야죠!"
"대표님. 이것 좀 나르세요."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여간 정리가 모두 끝나고 우린 집까지 편하게 차를 타고 돌아왔는데 기사님께서 의아한 말씀을 하셨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금방 나올게요!"


언니는 헐레벌떡 집 안으로 들어간다. 난 그 모습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기사님을 쳐다봤다.

"언니 어디 가요?"
"대표님과 약속이 있으시다네요."
"에? 벌써요?"

 말에 기사님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신다. 눈이 맞아도 너무 빨리 맞는 거 아니야? 나도 어깨를 으쓱여 보이곤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시게 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언제나 과분하시네요."

 말에 기사님은 작게 웃더니 말한다.

"지금이라도 철 화살 안 날리십니까? 대표님 썩 마음에 들어 하시진 않는 것 같은데요."
"뭐, 저 말고도  화살 날려줄 사람은 많아서... 전 그냥 활시위나 당겨보고 있으려고요."

내 말에 기사님은 이해가 안 되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기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표님 하는  봐서 독화살 날릴 준비는 해야  것 같아서요."


내 말에 기사님은 앗! 뜨거워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말한다.

"이거 미리 해독제라도 사둬야겠네요. 실업자 되지 않으려면."

능청스러운 기사님의 말에 난 작게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언니는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것처럼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뭐야!  하다가 이제 올라왔어!"

언니는 나를 타박하더니 옷을 자신의 몸에 대보며 묻는다.

"세나야, 이거, 이거, 이거. 어떤  제일 나?"

 신발을 벗으며 언니가 고른 옷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일 마지막 옷."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곧바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앞에서 아주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지더니 곧바로 신발을 고르기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신발을 쓸다가 정했는지 하나를 집어 들고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본다.


난 고개를 끄덕였고, 언니는 밝은 표정으로 신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신기 시작한다.

"다녀올게."


언니의 말에 난 진심을 가득 담아 물었다.

"오긴 할 거야? 내가 봤을 때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내 말에 언니는 주먹을 들어 보이며 귀엽게 나를 위협하더니 밝은 표정으로 나갔다.

난 그런 언니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김주원 대표님을 떠올렸다.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같은 남자가 보더라도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아무것도 없이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해서 일군 GOAL 어패럴이라는 전도 유망한 회사의 CEO 지.

직원들이 서슴없이 그를 대하는 태도를 봤을 때 성격도 좋아 보였고, 무엇보다 그의 최측근이라고   있는 기사님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착하고 돈 많으면 됐지."

난 내 방에 들어가 씻기 위해 속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 촬영했다고 하지만 처음 해봤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무척 피곤했다.

분위기에 취했다고 해야 할까? 촬영할 때는 으쌰 으쌰 하면서 하나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촬영이 끝나고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몸이 잔뜩 노곤해졌다.

"아, 씻고  쉬다가 방송 준비해야지."

아무리 피곤해도 방송은 약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무단으로 방송을 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방송을 시작하고 모든 스케줄이 방송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있었다.  시간이 충분해 난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물이 차오른 뒤 TV를 끄고 욕조 안에 물에 손을 넣고 찬물을 틀어 온도를 맞췄다.


"딱 좋다."

난 옷을 벗고는 조심스레 욕조 안으로 발을 집어 넣었다.

난 천천히 욕조에 들어가 몸을 담궜다. 따듯한 물이 온몸을 감싸 안자 피로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으으으으! 좋다."

난 기분 좋게 기지개를 펴며 미소를 머금었다. 난 등을 기대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까닥였는데 그런 내 모습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인간이 아무리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이 말도  되는 상황은 뭐고."


난  팔을 들었다. 눈처럼 새하얀 살결에 나뭇가지처럼 가는 팔뚝과 손목, 그리고 곱고 가녀린 손.


처음 내가 여자의 몸이 되었을 때만 해도 정말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아니면 내가 미쳤거나."


정말 정신병이라도 있는   알았다. 남자였던 내가 사라지고 여자인 내가 나로 있을 때 느꼈던 그 엄청난 혼란스러움.


거기다 TS상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어플을 통한 능력들. 정말 모든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난 모든 게 바뀌었다.

그런 경험을 겪고도 난 생각보다 굉장히 순조롭게 적응했다. 처음에 느꼈던 충격과 큰 혼란은 다시 내겐없었고 성별이 바뀌면서 겪는 트라우마나 정신적인 충격 또한 크지 않았다.


"남자든 여자든... 어쨌든 나로서 존재했으니까."


그거면 충분했다. 남자였던 나도 분명 존재했고... 물론, 여자로 변하면서 남자였던 나는 사실상 죽었다고 봐야 옳았다.

내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으니까. 어쨌든 남자였던 나도 나였던  맞고, 여자였던 나도 내가 맞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했다.

무엇보다 여자로 변한 삶이 남자였던 삶과 비교했을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게 어떻게 보면 큰 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제 겨우 몇 달  됐지만."


내가 여자가 된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여자가 됐으니까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넘은 기간이다.

겨우 그 기간을 여자로 살고 여자로 사는 게 더 편하다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긴 했지만 남자였을 때와는 다르게 편한 구석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군대. 사실 이게 가장 크다. 내가 마음의 여유를 갖을 수 있는 이유도 이게 가장 큰 것 같다. 20대의 2년이란 시간을 군대에서 보낸다는 게 생각보다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군대  가도 된다."


사실 여자가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이유도 이 군대가 가장 컸다. 군대에 가본적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무서워 하냐.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곳이다.


"거기다 군대는 무서운 곳 맞잖아."


군대를 가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인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군대에선 훈련을 받는다.

그 훈련은 당연히 나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이는... 그러니까 살상력을 가진 총기를 다룬다거나 수류탄을 던진다거나 하는 걸 배워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그것보다 더 두려운 건 사람. 사람 때문에 힘든 게 군대라고 들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비슷한 나이의 남자들이 단순히 몇 개월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부조리한 일을 겪는 곳.

그런 곳이 두렵지 않다면 어떤 곳이 두려울까? 거기다 언론에서 다루는 군대에 대한 건 결코 좋은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부정적인 것만  기억하려는 인간의 습성이 있어서 그런 건가?"

난 고개를 갸웃했지만 어쨌든 뇌리에 스치는 기억들은 군에 대한 좋은 기사들이 아니라 총기 난사, 탈영병, 자살, 집단 따돌림, 집단 구타, 괴롭힘 등등.


좋은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찰박!

난 물장난을 치면서 여자가 되고 느꼈던 좋은 점을 생각해봤다. 그것도 그냥 여자가 아니고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


내가 남자였을 때 외모는 평범한 편에 속했다. 너무 못 생기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정후가 잘 생긴 얼굴이지."


 정후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내부에 소문이 돌 정도로 잘생겼으니  정후가 잘 생겼다는데 이견을 가질 수 없었다.

거기다 돈도 많아, 성격도 좋아. 확실히 남자 입장에선 적폐의 대상이다.

남자도 확실히  생긴 것보다는, 아니 굳이 남자 여자 나눌  없이 현대 사회에서는 아니, 역사적으로 따져도 못 생긴 것보다는 잘 생기고 예쁜 게 더 좋았다.

그건 내가 예쁜 여자가 되고 나서 느낀 점이었다.

"뭐가 있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