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9. GOAL 어패럴
한 해가 지나 난 22살이 되었고, 언니는 23살이 됐다.
고정적인 시간에 빠짐없이 방송을 한 것도 그렇고 내 실력이 점점 시청자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고정적인 시청자 숫자가 상당히 많이 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4~5천 정도의 시청자가 유지되던 게 단숨에 8~9천이 된 건 순전히 몸매 논란에 인증을 했던 영상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박스티를 허리에서 붙잡아 밀착시키자 고스란히 드러나는 몸매의 영상의 조회수는 다른 영상보다 월등히 높았다.
'뭔가 좀 씁쓸하네.'
밤 12시, 조금 더 길게 하면 새벽 2시까지 방송을 하고 그 다음날 9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영상을 편집한다.
나도 언니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영상 편집하는 법을 배웠다. 너튜브에 워낙 설명이 잘 돼있기도 하고 나도 언니도 머리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기에 우리 수준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구현하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제도 재미있는 거 되게 많았네. 진짜 슈퍼 플레이도 많았고. 이거 LOM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콘텐츠도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언니의 말에 나도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도 생각해 보긴 했는데. 지금은 일단 내 방송에만 집중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일단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어."
방송 처음부터 내가 얘기했던 건 챌린저. 그것도 그냥 챌린저가 아니라 1등이었다. 방송을 하든 하지 않든 그래서 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LOM만 하고 있었다.
"정말 1등 하려고?"
"그래야 부모님도 어느 정도 생각해 보시지 않을까?"
내 말에 언니도 가만히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한다는데 네가 강하게 밀어 부치면 허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언니는."
"그랬으면 좋겠다."
게임이라는 게 긍정적으로 인식이 되기보다는 아무래도 부정적으로 인식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내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나서면 부모님은 분명히 반대할 거라고 봤다.
"아빠도 엄마도 너한텐 약하잖아. 아마 허락해 주실 거야."
최악의 상황엔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싫었다.
어떻게든 허락을 받고 허락을 해주지 않으신다면 몰래 구단에 입단해 선수로 데뷔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성인이니 문제 될 건 없지.'
내가 미성년자였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도 어엿한 성인이다.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한 나이가 아니라는 것에 난 다시금 감사했다.
"편집 끝내고 게임할 거야?"
"응, 해야지."
가능한 한 빨리 챌린저 1위를 찍고 싶었다. 찍기 전에 어떤 구단에서 연락이 온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긴 했지만...
생각보다 일찍 내 방송이 유명해져서 아마 구단 관계자들이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게임 한 판, 한 판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마스터는 진작에 달성했고. 그랜드 마스터인데..."
이미 마스터 티어를 달성해 D급 스킬 쿠폰도 받은 상태였다.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퀘스트가 없었는데 아마 마지막은 F급 스킬을 주고 그 이후로는 아마 포인트를 주지 않을까 싶었다.
"방학 동안에는 챌린저 충분히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컴퓨터 의자에 앉아 발가락으로 본체를 켜고 모니터 전원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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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훌쩍 지나, 1월 중순이 돼서 난 그랜드 마스터를 달성했고, 승률은 여전히 90%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승률로 랭크를 올리고 있었기에 난 생각보다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많은 롤 너튜버나 아메리카 BJ들이 언급했고 나와 같은 팀이나 상대로 만나는 경우에 내게 정중하게 영상을 업로드를 해도 되겠냐고 물어보셨다.
난 그때마다 흔쾌히 승낙했고, 감사를 표했다.
"어... 이건가?"
전 프로게이머 원딜러로 LCK에서 1000킬을 달성하신 성윤 님이셨는데 동글동글한 인상에 귀여운 외모와 수준급 원딜 실력으로 18만 구독자를 보유하신 분이셨다.
난 요즘 내가 나온 영상을 찾아보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나도 그걸 역으로 내 너튜브 채널에 편집해 올리고 있었다.
"맞다."
내가 나오는 영상을 찾은 난 감상에 들어갔다.
[뭐? 한국대 여신님? 그게 누군데? 예쁘시냐?]
성윤 님의 티어는 챌린저셨고 나는 이제 막 그랜드 마스터를 달성했을 때라 같이 플레이할 가능성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유저수가 적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 MMR이 꽤 높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편으로 잡혔다.
[아, 이 분도 방송하셔?]
채팅창을 보고 내게 흥미가 생기신 모양이다.
[아니, 무슨 소리야.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같은 방송인으로서 호기심이지. 오... 내 이상형인데. 아니,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 왜 이렇게 예쁘셔? 뭐야? 뭐 아이돌이나 배우셔?]
방송하는 시간 때가 겹쳐서 내 방에 오셔서 후원을 해주셨지만 내가 그냥 시크하게 감사 인사만 하고 마는 모습이 보인다.
"아, 내가 저랬나?"
[뭐야? 이 정도 가지고는 안 되나? 하. 달풍선 충전해야 되나?]
성윤님은 그런 내 모습에 의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였는데 달풍선 만 개가 터진다.
난 그 모습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 진짜? 그렇게 많이 터져? BJ탈논님 사단이 밀어주고 있다고? 그래? 와, 근데 진짜 예쁘시네. 아메리카 웬만한 여캠들 뺨따귀는 다 돌리겠는데. 근데 뭐 리액션도 없어? 아, 없어.]
리액션이 없다는 말에 굉장히 아쉬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 뭘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잠깐 전적이나 검색해 볼까? 엄청 잘하신다고?]
성윤님께서 내 전적을 검색해 보시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신다.
[에에? 승률이 91%? 그랜드마스터까지 승률이 91%라고? 와... 뭐야. 대박이네. 버스 탑승하면 되는 건가?]
성윤님의 잔뜩 들뜬 표정으로 게임이 시작됐고, 별안간 화면이 바뀌더니 내 플레이가 마치 매드 무비처럼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성윤님의 비명 소리. 내 플레이에 감탄해 날뛰는 영상이 교차해 나오기 시작한다.
[아니, 저걸 산다고? 와... 아니, 저걸 피해? 뭐야? 뭐지? 진짜 저분 뭐지? 아니, 뭔가 차원이 다른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내 모습에 성윤 님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게임이 끝나고 난 뒤 슬쩍 내게 친구 추가를 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아, 아... 초대가 꽉 차 있으신가 보네.]
마지막 영상으론 관심 없는 척하더니 내 박스티 짤을 보며 흐뭇한 영상을 지으시는 거로 마무리된다.
난 성윤 님 말고도 업로드하겠다고 하신 분들의 영상을 하나, 하나 찾아서 봤는데 악의적인 편집은 하나도 없었다.
똑똑똑!
"세나야 일어났어?"
"어! 일어났어!"
"얼른 나와서 밥 먹어! 씻고 나갈 준비해야지!"
언니의 말에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는 언니가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를 든 상태로 서 있었다.
"우리 어디 나가?"
"GOAL 어패럴."
언니의 말에 난 아! 하곤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언니는 최대한 뜸을 들이다가 정말로 그 사람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을 때 연락을 줬다.
언니 말로는 굉장히 들뜬 목소리로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와 언니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다.
우린 전문 모델도 아니고 언니야 옷에 대해서 좀 알지만 나는 문외한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다.
"야, 넌 그냥 옷 입고 조용히 있어도 그림이 되니까 걱정할 거 없어. 걱정이야 언니가 해야지 네가 왜 하냐."
언니는 툴툴거리면서 얼른 앉아서 밥을 먹으라고 하기에 난 컴퓨터를 끄고 곧바로 식탁에 앉았다.
언니는 방금 막 끓인 소고기뭇국을 떠서 내게 건네줬다.
"잘 먹을게!"
"그래, 많이 먹어."
난 언니가 해 준 따뜻한 밥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소고기뭇국에 밥을 말아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몇 시까지 가야 돼?"
"12시까지 청담역으로 오라고 했어. 점심 사준다고 하니까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밥 한 공기 더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난 깨끗히 밥을 비우곤 언니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줬다.
"언니 진짜 맛있어.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언니 먼저 씻고 준비해."
"땡큐."
난 식탁에 있는 그릇을 들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보다 조금 늦게 식사를 시작한 언니도 얼마 가지 않아 다 먹고는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준다.
"고마워."
"고맙긴, 언니가 밥해줬는데 내가 설거지해야지."
"너는 밥해도 네가 설거지하는 경우가 더 많잖아."
그건 아무래도 습관이 그렇게 들어서 그렇지... 남자일 땐 밥을 해도 내가 설거지를 했고 언니가 밥을 해도 내가 설거지를 했다.
그냥 내가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모두 끝내고 난 뒤 난 고무장갑을 잘 걸어 놓고 싱크대에 물기를 깨끗이 닦았다.
"한 판만 할까."
언니는 나와 다르게 씻는 시간이 무척 길었기 때문에 솔랭 한 판을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늦게 나오니까 씻을 준비 해놓고 한 판 돌리자."
시간이 곧 금이다. 한 판이라도 더 해서 부지런히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난 언니가 씻고 나오면 바로 들어갈 준비를 해놨다.
"옷도 미리 골라 놓자."
난 내친김에 입을 옷도 미리 준비를 해뒀다. 검은색 테디베어 무스탕에 갈색 소프트 니트, 기모로 된 흰색 일자 팬츠를 입었다.
신발은 굽이 낮은 캐러멜 색 앵클부츠를 신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굽이 조금이라도 있는 신발이 어색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하이힐 수준이 아니면 어지간한 굽 높은 신발도 적응이 된 상태였다.
'사실 내 키에 하이힐까지 신을 필요는 없지.'
170cm인데 굳이 거기다가 하이힐까지 장착해 키 작은 남자들의 기를 죽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일 때 내 키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는데 여자가된 내 키는 무척이나 큰 키라는 점이 무엇보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여자인 이 몸은 작은 게 없었다.
골반도 크고, 가슴도 크고, 키도 크고, 눈도 크고... 하여간 커서 좋은 곳은 다 컸다.
"됐어."
난 아이보리색의 미니 크로스백을 꺼내 카드 지갑과 핸드폰과 머리끈을 담고 최종 준비를 마무리했다.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 놓고는 난 날아갈 듯이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위이이잉.
컴퓨터가 부팅되며 들리는 소리가 비싼 차의 엔진음처럼 듣기가 좋다.
"좋아, 빠르게 한 판 가자."
난 바로 LOM을 실행하고 게임을 돌렸는데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아, 맞다... 게임 더럽게 안 잡히지."
티어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게임을 하려면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했다. 그 생각을 못하고 게임을 켰으니 그렇다고 다시 끄기도 뭐하고...
그래도 언니가 다 씻으려면 보통 1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늦게 잡힌다고 하더라도 게임을 빨리 끝내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난 그렇게 행복 회로를 돌리면서 게임이 빨리 잡히기를 기도했다.
콰앙!
"오! 좋아!"
생각보다 게임이 빨리 잡혔다. 난 빠르게 게임을 수락하고 채팅을 쳤다.
[빠른 픽 부탁드려요!]
[오! 한국대 여신님이다!]
[대박! 진짜 한국대 여신님이네!]
[이겼다.]
[버스 탑승하겠습니다.]
[자자! 빨리들 픽 합시다.]
[그래야죠, 그래야죠. 여신님 말씀인데.]
확실히 나를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워졌다. 게임을 하며 만나는 사람 중에 내가 방송을 하는 걸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내가 LOM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대 여신님, 혹시 구단에서 오퍼 받으신 적 있으십니까?]
[입단 테스트요? 아니요. 아직 없었어요. 챌린저 1위 찍으면 오지 않을까요? 지금은 그마딱인데...]
[승률 91% 그마께서 그마딱이라고 하시면...]
[한강 가야 하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난 작게 웃으며 팀원들 덕분에 빠른 픽을 할 수 있었다. 상대팀이 늦게 픽 해도 어쨌든 우리 팀이 빨리 픽 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더 고마운 건 사람들이 내가 바빠서 빨리 나가야 한다고 하니까 초반에 힘을 싣는 챔피언 조합을 가져갔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우리 팀 정글은 애초부터 선언 아닌 선언을 한다.
[미드만 팝니다.]
[OK, OK. 바텀 신경 쓰지 마셈.]
[그게 맞지. 탑 안 와도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