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18. 방송을 합시다. (18/95)



〈 18화 〉18. 방송을 합시다.

내가 심각한 얼굴로 멍하니 있자 시청자들이 걱정스레 물어왔지만 채팅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랭킹 1위를 찍어도 구단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가 하고 있는 이 노력은 무의미한 일이 된다.


"왜 LCK에 여성 프로게이머는 없을까요?"


내 뜬금없는 질문에 시청자들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고민해 줬다. 난 게임을 잠시 멈춘 뒤 의자에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모으고 앉아 채팅창에 집중했다.

"내 다리가 예쁘다는   그만하고요."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그제야 내 물음에 대한 답변이 하나,  올라오기 시작한다.


[여자 선수는 하나도 없나? LCK에?]
[없지.]
[ㅇㅇ 한 명도 없음.]
[내가 알기로는 감독, 코치 전부 다 포함해서 없음.]
[일단 상위 랭커 중에는  잘하는 여자가 없음.]
[롬 하는 여자가 별로 없어서 아닐까요?]
[프로 리그 환경 자체가 여자가 하기엔 좀 그렇지 않을까요? 같이 먹고, 자고, 연습도 하고 그럴 텐데.]
[아무래도 합숙하기엔 좀 그렇지.]
[원래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AOS 게임 못함.]


"에에? 말도 안 돼. 그럼 전 어떻게 설명하실 건데요?"

저건 진짜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된다.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AOS 게임을 못 한다는 과학적 증거라도 있으세요? 저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돌연변이?]
[한국대 법학과랑 논리 가지고 싸우실 분.]
[전 GG요.]
[출출하니 라면 물이나 좀 올려놓을까. 하하하!]

뭐, 솔직히 신체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기는 하다. 피지컬적인 부분에서 남자들이 더 뛰어난 건 사실이니까.

거기다가 공간 인지능력 또한 남자가 더 뛰어나고. 그렇지만 그런 걸 떠나서라도 이 게임 자체가 여자들에게 그렇게 관대하지만은 않다.

난 얼굴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솔직히 이 게임 자체가 여자한테  적대적이에요."

[맞아요, 언니!]
[옳소! 옳소! 여자들  그만 까라!]
[좀 그런 부분이 있긴 하지.]
[그런 게 뭐가 있어요.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나도 잘 이해가 안 가네. 그런 게 있나? 이 게임이 여자들한테 적대적임?]


내가 남자였지만 그건 확실하다. 여자한테 이 게임 환경 자체가  좋지 않다는걸.

"같이 게임하던 팀원  한 사람이 잘 못한다 싶으면 그래본 적 없으세요? 님 여자예요? 그럼 ㅇㅈ."


[뜨끔...]
[뭐지,  익숙하지.]
[저렇게 물어보기만 하면 다행. 여자라고 하면 다짜고짜 성희롱 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보통 자신이 여자라는 걸 굳이 안 밝히고 게임을 하는 여성 유저분들이 많죠. 저도 그중 한 사람이고요."

솔직히 그것뿐만이 아니다.


"거기다가 롬에 남자를 비하하는 말이 있나요?"

[음... 없는 것 같은데?]
[없지. 대다수 유저가 남자인데.]


"근데 여자를 비하하는 말은 있죠."

내 말에 곧바로 채팅창에 올라온다.

[여왕벌이나 버스 같은 소리를 듣기는 하지.]
[혜지라는 것도 사실 여성 유저 비하 발언임.]
[근데 이  자체가 사실 남자들 전유물임. 선수가
코치가 되고 코치가 감독이 되고 계속 이게 반복됨.]
[여자들 자체가 끼어들기 어려운 구조긴 함.]
[할  있는 건  구단을 응원하는 팬, 아니면 캐스터나, 아나운서 정도? 프로게이머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긴 함.]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전 그리고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지금 LOM 해설도 중계도 다 남자잖아요. 그런 건 여자도 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분들 솔직히 프로게이머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합숙은 좀 그렇지 않나.]

난 저 채팅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합숙하는 프로게이머 숙소에 성별 제한이라도 있어요? 합숙 때문에 여자는 프로게이머를 할  없다는  가당키나 한 일이에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남자들이 드글드글한 방에서 같이 재울 순 없는  아님?]

"아니, 합숙소가 무슨 원룸입니까? 아니 무슨 강간 문화에 산증인이세요? 아, 짜증 나네."

진짜로 열이 받아서 얼굴이 확확 달아오른다. 내 얼굴이 어떨지  봐도 딱 알겠다.


"게임 잘하는 여성 자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있다고 밖에 볼  없네요."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잖아요. 프로 리그에 여자를 들일 생각조차 없는  같은데. 아이러니한 게 근데 뭔 줄 아세요? E스포츠가 굴러가게 만드는  여자 팬이라는 거. 그 팬층은 흡수하면서 주인공이 될 여지는 주지 않는다. 이거 되게 모순적이지 않아요?"


난 신경질적으로 끌어모았던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몰라! 내가 최초로 LCK 여자 프로게이머가 될 거야. 내가 되고 만다. 꼭. 반드시."

[웬지 진짜로  것 같은 느낌.]
[성지 순례의 시작인가...]


 내가 당연히 LCK 프로게이머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내가 가진 게임이라는 스킬은 뛰어났고, 어떤 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솔랭과 팀 게임은 엄연히 다르지만 내가 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선 팀 게임에서도 솔랭과 같은 퍼포먼스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이건 자만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 내가 프로게이머가  된다면 이건 내가 문제가 아니라 LCK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구단 입장에서 나쁘지 않을  같은데. 얼굴 예뻐,  잘해, 몸매도 좋아 보여. 스타성이 있으면 구단에서도 이득 아닌가? 최초라는 타이틀만으로도 늘 주목받을 것 같은데.]
[그건 ㅇㅈ]
[맞음. LCK에 여자 선수가 없으니까 있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거라고 봄.]
[솔직히 다 필요 없고. 1등 찍으면 구단에서 입질은 분명히 올 거라고 봄.]
[아니, 내 생각엔 안 올 것 같은데. 여자라서.]

난 테이블을 손으로 때리며 말했다.

"아, 그러니까 여자라서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니까요!"


다른  몰라도 저건 이유가 안 된다. 내가 여자라서 LCK에 입성할 수 없다는 말.


"그리고 치즈님. 얼굴 예뻐, 롤 잘해, 몸매도 좋아 보여? 하. 좋아 보여는 뭡니까?"


 말에 쭈뼛주뼛 올라온 채팅.


[아니,  제대로  적이 없으니까.]

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하.. 제가 진짜 몸매가 좋은데 코피 쏟으실까 봐 공개하지 않고 있는 거예요."

난 허수아비처럼 양팔을 벌리고 말했다.

"제가 이렇게 박스티만 입고 있는 이유 정말 모르겠어요?"


[칫, 결계인가?]
[봉인이구나! 봉인이야!]
[근데, 각선미만 봐도 몸매 좋으실 것 같긴 함.]
[ㅇㅇ 몸매도 좋을 것 같음.]

난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때리며 말했다.

"아니, 좋을 것 같은  아니라 좋다고요. 하도 색드립이 심해서 박스티 입고 방송하는 거예요. 언니가 일이 많아지니까. 정말로 전부 찾아서 신고 다 했거든요."

게임은 안 하고 그냥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재미있어 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LCK에는 왜 여자 선수가 없는 가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지나고 이제는 내가 정말 몸매가 좋은가에 대한 토론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자자. 제가 논란을 종결짓겠습니다.]
[뭐냐 닉네임 ㅋㅋㅋㅋ]
[ㅋㅋㅋ 찐이면 개 웃기겠다.]
[한국대 교수님 나오셨다.]
[야야, 교수님 말씀하신다. 다 조용히 해라.]
[크흠, 흠. 감사합니다. 여러분. 자. 여러분. 유전이라는 게 있습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자식 세대는 부모로부터 유전형질을 물려받습니다.]
[잉? 갑자기 웬 생물 시간이냐?]
[어허! 교수님 말씀 들어.]

나도 한국대 교수님이란 닉네임을 사용하는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내가 그러자 덩달아 채팅창이 조용해진다.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에게 받는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  데 꿋꿋하게 자기 생각을 채팅창에 올린다.

[여러분들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습니다. 한국대 여신님의 몸매는 우리가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지만 언니분의 몸매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죠.]

"아."


언니가 내게 색드립을 날리는 놈들에게 열받아서 고소미를 날리겠다고 엄포를 하던 때를 말하는구나. 그때 확실히 언니 몸매는 적나라하게 방송을 탔지.

[언니 몸매 진짜... ㅗㅜㅑ...]
[언니분도 한국대세요?]

"네, 한국대 의류학과에 아니고 있어요. 2학년. 이제  3학년 올라가고 저도 이제 2학년 올라가요."

[근데 유전이라 언니가 좋으니 동생도 좋다는 건 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 같은 자매라고 해도 몸매는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나?]
[그건 그렇지.]
[맞아. 우리 누나는 개돼지임. 맨날 처묵처묵하면서 하는 소리가 다이어트 중이라는 말.]
[우리 누나는 다이어트를 10년 동안 하는 중이다.]
[절레절레...]
[ㅋㅋㅋㅋㅋ 개공감.]

"근데,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네요. 개인이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거니까. 언니가 몸매가 좋다고 해서 동생도 몸매가 좋은 건 아닌  같아요."


내 반발에 한국대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나 언니가 몸매가 좋으면 동생도 몸매가 좋을 확률이 높습니다. 생활습관이나 패턴이 같기 때문에 생리 주기 같은 것도 비슷한 경우가 많죠.]

어... 그런가? 난 고개를 갸웃했는데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을 보니까 전혀 없는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어? 이건 맞는 말이다. 진짜로 나랑 같이 사는 친구 있는데 생리 주기가 비슷함. 원래 달랐는데.]
[근데 언니가 저렇게 몸매가 좋으면 동생 입장에서 자극을 안 받을 수 없을 것 같긴 함.]
[ㅇㅇ 덩달아 같이 운동하고 관리할 것 같은데.]
[100% 지. 자극을 매일 받는데. 원래 동기부여보다  무서운  자극임. 동기부여가 잘 타는 장작이라면 자극은 기름에 휘발유를 붇는 거임.]

"확실히 듣고 보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나야 남자였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위로 남자 형제가 있고 그 남자 형제가 몸이 좋다면 비교하게 될  같다.


자연스럽게 나도 운동이나 할까? 나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  같기는 하다. 물론, 그 자극을 받고 실행에 옮겨 얻는 건 다른 차원이 얘기지만.


어쨌든 뭐, 전혀 허튼소리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논란은 종결되지 않았다.


[에이, 어쨌든  가정일 뿐이잖아.]

그래,  말이 맞지.

"결국 종결은 제가 지어야겠네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웹캠을 조절해 내 전신이 나오게 만들었다. 펑퍼짐한 박스티에 돌핀 팬츠를 입고 있어서 상의  장만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의 실종! 사랑해요!]
[와... 다리 진짜 예쁘시다.]
[거의 걸그룹 각선미.]
[와... 다리 오지네.]
[눈이라도 발라 놓은  같네.]

난 멀어져서 글씨가 작아진 채팅창을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음, 좋아. 이것도 인증 할게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얼굴도 예쁘고 롤도 잘하고 몸매도 좋다고 해주세요."

난 그렇게 말하며 팔을 뒤로 해 티셔츠를 몸에 착 달라붙게 만들었다.


박스티를 밀착하니 고스란히 드러나는 몸매, 볼륨감 넘치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잘 발달한 골반의 모습에  채팅창이 후끈 달아오른다.

[ㅗㅜㅑ!]
[역시 봉인이었군!]
[오우야...]
[언니 몸매 너무 예뻐요!]
[와... 마음이... 넓으시네.]
[와... 슴... 웅장한 슴가...]
[헐!]
[ㅗㅜㅑ]
[ㅗㅜㅑ]
[ㅗㅜㅗㅜㅗㅜㅗㅜㅗㅗㅜㅗㅜ!]


난 그 상태로 슬쩍  라인을 보여주고 다시 정면을 보여주는 걸   반복하곤 붙잡았던 티를 풀었다.


그러자 안타까움과 탄식이 섞인 채팅창이 순식간에 도배된다.


[아...]
[아아... 님은 갔습니다. 머루랑 다래랑...]
[사랑합니다.]
[더 보여줘요! 더! 더! 더 보여줘요!]

 그 채팅창을 보며 조금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슈퍼 플레이 보여줄 때보다  반응이 격렬해요? 너무들 하신 거 아니에요?"

내가 진짜 조금 화난 표정으로 말하자 시청자분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아... 죄송합니다.]
[아. 미안!]
[솔직히 어쩔 수 없음... 슈퍼 플레이 보는 것보다 여신님 몸매 보는 게 더 읍읍!]
[다 말해놓고 뭐 읍읍이야.]
[슈퍼 플레이도 뭐 가끔 보여주면 모르겠는데 계속 보여주시니 솔직히 이젠 감흥이 없음.]
[ㅇㅇ 그건 그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봄.]
[아니! 남자가 그런 게 당연한 거 아니오!]
[옳소!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
[남자의 본능이라고. 본능. 여자는 이해  한다.]

흠...  가만히 그 채팅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한다고... 내가 너무했네.


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나는 이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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