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6. 방송을 합시다.
갑작스럽게 크게 터진 달풍선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B... BJ탈논님, 달풍선 오, 오 만개 너무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떨려 나오는 목소리. 말까지 더듬으면서 난 탈논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크, 역시 메이저 클라스]
[야... 하루에 800을 태우네.]
[BJ탈논 사심 방송하네.]
"가자 후원이라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제 말은... 어... 내기가 아니라 순수하게 저를 위해 후원해 준 첫 번째 분이라는 그런 말이었어요."
당황을 해서 그런가 말이 빨라진다. 랩처럼 쏟아낸 내 말에 연이어 또다시 터진 달풍선.
[BJ탈논님이 달풍선 20,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그럼 전 두 번째로 만족하겠습니다.
"헐!"
난 입을 또 한 번 막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 많이... 정말 이렇게 많이 후원 안 해주셔도 되는데."
오늘 하루 탈논님에게 받은 달풍선만 100,000개였다.
돈으로 환산하자면 1,00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달풍선을 충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수수료까지 들어가니까.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저 진짜 방송 열심히 할게요. 어.. 게임 잡혔네요. 그... 그럼 게임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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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부터 밤 12시까지 총 4시간의 방송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난 4시간 동안 총 7게임을 했고
전승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BJ탈논님에게 받은 10만 개의 달풍선 이외에도 꽤 많은 달풍선 후원을 받았다는 거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적든 많든 나를 후원해 준 부분에 대해 난 연신 감사를 표했고 이 마음을 절대로 잃지 않고 받은 만큼 더 돌려주겠노라 약속했다.
"대박이다."
고맙게도 방송을 끝까지 지켜봐 준 언니가 나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난 어떨떨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나 지금 실감이 안 나."
BJ탈논님에게 받은 달풍선만 쳐도 오늘 내가 4시간 동안 번 금액은 천만 원이었다. 물론, 수수료를 때면 그것보다 적긴 하겠지만 절대로 적은 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BJ탈논님에게서만 받은 달풍선을 말하는 거다. 그 이후에도 경쟁적으로 첫 방송 축하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달풍선을 선물했고 그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중간에 정말 깜짝 놀랐어."
"나도."
정말 놀란 건 중간에 BJ탈논님 만큼이나 달풍선을 쏴 준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였다.
채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BJ탈논님과 인연들이 있으신 BJ분들이 오셔서 달풍선을 쏴주신 거였다.
"그 BJ탈논인가? 그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야?"
언니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고, 나도 그분에 대해 아는 게 많지는 않아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그냥 LOM 방송하시는 분이고. 엄청 잘하시는 분이라는 거. 그리고 BJ 중에서 상당히 유명하신 분이라는 것 정도?"
평균 시청자가 만 명이 넘어가는 BJ는 많지 않았다. 점점 이쪽도 경쟁자가 많아지고 더 이상 블루오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 잘 나갔던 사람도 인기를 잃고 폭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한결같이 BJ탈논님은 그 자리를 꿋꿋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니 그것만 보더라도 대단한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흐음... 좀 알아봐야겠네."
"누구를? 탈논님을?"
"응.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몰라? 사람을 사귈 땐 잘 알아보고 사귀어야 하는 거야."
나보다 1살 많으면서 말하는 건 나이 지긋한 노인이 말하는 것 같다.
언니의 말에 나도 동의했기 때문에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첫 방송 축하해. 네가 나한테 바로 돈을 갚겠다고 하기에 뭐가 있구나 싶기는 했는데 탈논님이었구나?"
"응, 내기를 한 게 있어서. 내가 정산 받으면 다시 돌려줄게."
"됐어. 앞으로 죽을 때까지 생색용으로 쓸 거니까 안 줘도 돼."
세연 언니의 말에 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안 받을 거야? 정말이야?"
내 진지한 물음에 세연 언니가 잠깐 마음이 흔들리는 표정을 짓더니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바.. 반만 받을까?"
"풋!"
난 작게 웃음을 터뜨렸고 언니도 작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 줘도 정말 괜찮아. 언니가 너한테 투자했다고 생각하지 뭐. 나중에 이자까지 더 쳐서 갚아. 지금은 영 사이즈가 마음에 안 드니까."
"내가 반짝하고 말 수도 있는 거고 어쩌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후원을 받은 날이 될 수도 있는데 정말 괜찮겠어?"
"내가 봤을 땐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너 재능 있어 보여."
"게임에?"
"게임, 방송 둘 다."
언니의 말에 난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언니를 보며 물었다.
"내가?"
"응."
언니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LOM도 모르면서 내가 게임에 재능있는 건 어떻게 알지?
"내가 아무리 게임을 몰라도 사람들 반응을 보면 알겠더라. 방송이야 처음이니까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너야 뭐 워낙 예쁘니까 조용히 게임만 해도 사람들 많이 볼걸?"
그건 그렇지. 난 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 인정하는 반응을 보이자 날 흘겨보더니 말한다.
"어머, 고개 끄덕이는 거 봐라."
언니의 말에 난 조금 재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사실이니까."
내 말에 언니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아, 그리고 웬만하면 지금처럼 루즈하게 입고 방송해. 그게 좋겠어."
"에? 어닌가 사 준 옷 말고?"
"응. 그냥 집에서 입는 편안한 티셔츠 같은 거 입고하는 게 좋겠어. 아주 채팅창이 가관이더라."
나도 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했다.
어떻게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지 정말 익명성이란 가면을 쓰고 서슴없이 성적인 말들을 하고 상스러운 욕설도 습관처럼 던진다.
"그래도 언니가 나서 준 덕분에 많이 나아지긴 했어."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이거 고소한 거 진행 상황 방송할 때마다 말하고 그러면 좀 괜찮아질 거야. 너무 그런 채팅 보고 신경 쓰지 마."
"신경 안 써. 어느 정도는 예상하기도 했고."
언니는 그렇게 말하더나 자신이 사준 옷을 입고 있는 날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그렇게 야한 옷도 아닌데 네가 입으니까 야해 보인다."
언니의 말에 난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옷도 내가 입으면 야해 보인다. 이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가슴이 너무 커서 어떤 옷을 입어도 그런 게 보이는 것 같았다.
"박스티 같은 거 입고 할 게."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게 하자."
앞으로 내가 방송할 때 의상은 only 박스티다.
나름 첫 방송을 잘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갈 길이 멀다.
"이제 잘 거야?"
언니의 물음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방송한 거 다시 보려고."
"아, 그래. 중요하지. 괜찮겠어? 안 피곤해?"
솔직히 전혀 안 피곤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계속 내가 했던 방송을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하긴 한데. 그래도 보고 자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 아직도 심장이 떨려서 어차피 누워도 잠이 안 올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에 언니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겠다. 오늘 하루에 참 별일을 다 겪었네."
"그러니까."
난 작게 웃으며 어쨌든 성공적인 첫 방송에 마음 껏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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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언니는 나보다 더 신나서 연신 돌고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겨우 방송 한 번 했는데. 이렇게나 이슈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게 무슨 일이니."
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연신 감탄하며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각종 LOM 커뮤니티에 내 방송 영상이 도배가 되어 있었다.
너튜브는 물론이고 수많은 갤러리에도 내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였는데 단순히 예뻐서... 정말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올린 사람도 있었고 이 게임을 아는 사람들을 내가 가진 실력에 감탄하며 플레이 영상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난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아니, 정말 이게 무슨 일이지?"
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봤을 때 내가 이렇게나 화자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BJ탈논님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BJ탈논님과 친한 BJ분들 대부분이 메이저, 흔히 얘기하는 대기업이었고 그런 분들이 BJ탈논님이 하루에 달풍선 100,000개를 쏜 신입 여자 BJ가 누군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본인이 직접 한 번 탐방해 달라고 부탁도 했다고 하고. 그래서 그 영향을 받아 상당히 많은 시청자들이 찾아왔고 그분들은 내 플레이를 보면서 자신의 방에 있는 시청자들과 소통 방송을 하셨다.
게다가 내 방송을 찾아왔던 메이저 BJ분들 모두가 자신의 너튜브에 내 첫 방송 영상을 상당히 그럴싸하게 편집해 올려주셨다.
"세나야, 확실히 영상을 편집하니까 완전히 다르다. 우리도 전문적으로 영상 편집자를 구하던가 하자."
난 언니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에? 무슨 편집자까지 구해. 언니, 나 어제 첫 방송한 신입 BJ야.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무슨 편집자야."
"그런가? 좀 이른가?"
"일러도 너무 이르지."
내 말에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뭔가 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한 번 해볼까?"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했다.
"언니가?"
"응. 이거 뭐 영상 편집하는 거 어려운가?"
언니의 말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나도 그렇고 언니도 영상 편집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는지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뭐가 좋은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 뭐, 인터넷 검색하거나 너튜브 영상 보면서 독학하면 금방 배우지 않을까? 뭐 얼마나 어렵겠어."
언니의 말에 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언니도 한국대 의류학과에 다닌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영상 편집이 얼마나 어려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니가 마음잡고 시작하면 솔직히 웬만한 영상 편집자들은 금방 따라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주면 나야 좋지."
"흠... 그럼 한 번 해볼까? 잘 되면 언니 용돈 주냐?"
"용돈뿐이겠어."
내 말에 언니가 미소를 짓는다. 저 저.. 자본주의 미소 봐라.
언니는 내 말에 지금 당장 시작하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학이라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잘 됐다면서 의욕이 충만했다.
"아, 전화는 해봤어?"
내 물음에 언니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벌써 전화를 하면 안 되지. 이제 겨우 하루 지났는데. 조금 더 뜸을 뜰이다가 포기할 때쯤 해야 우리에게 주도권이 있는 거야."
언니의 말에 난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 경험이 없는 언니가 저런 말을 하니까 조금 웃기기도 하고. 어쩐지 좀 믿음이 가지 않아서 웃었는데 귀신같이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모양이다.
"어쭈? 이게 지금 언니 말 무시하냐?"
난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믿어. 난 언니 믿지. 내가 아니면 누가 언니를 믿어."
"흠... 뭔가 뒷말은 애매하긴 한데. 넘어간다."
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되고 확실히 언니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유해지긴 했다.
남자였다면 발이나 주먹부터 날아왔겠지.
원래 남자 형제가 있으면 여자도 좀 과격해지는 면이 있는 건가? 오히려 내가 좀 여성적인 면이 두드러지고 반대로 내 위에 누나들 셋 전부가 좀 남성적인 면이 있었다.
그런 거 보면 신기하다니까. 하여간 그 덕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보고 자란 게 여자 셋이라 그런지 이젠 언니 소리도 잘 나오고 행동이나 말투, 이런 것들이 처음보다 확실히 여자스러워졌다.
육체가 이성을 지배하는 건지 이성이 육체를 지배하는 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육체가 여자가 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처럼 행동했다.
이 세상 불편한 브래지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착용한다던가 어디 앉을 때면 다소곳이 다리를 모은다거나 하는...
이게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하는 건지 사회적으로 여자에게 요구하는 암묵적 규칙을 그냥 따르는 건지는 사실 나도 여전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