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12. 방송을 합시다.
게임은 순풍을 맞은 배처럼 매우 순항 중이었다. 내 연승에 재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은 이 티어 구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연승을 했을까? 이제는 세기도 귀찮아서 아무런 감흥도 없이 게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플래티넘 4였던 내 티어는 어느샌가 플래티넘 1을 달고 다이아를 넘보는 정도까지 됐다.
"진짜 생전 처음으로 이단 승급도 해보네."
난 새로운 게임이 잡혀 승낙했다. 이번에 이기면 아마 다이아4를 찍을 수 있는 게임이라 좀 더 집중해서 플레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좋아, 가자."
무난하게 시작된 게임은 10분 동안 서로 1킬도 나지 않았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언제 뭔가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팽팽한 게임은 내가 있는 미드에서 먼저 터졌다.
정글 싸움을 몇 번 봐줘서 탈논은 6레벨을 자신이 먼저 찍는다고 자신만만하게 앞무빙을 쳤다.
"너 아직 6 아니잖아."
경험치 차이가 조금 날 것 같았지만 내 생각엔 엄청 큰 차이는 아니었다. 정글에서 조금 얻어 먹고 다른 라인에서 좀 받아 먹은 CS가 있었다.
"얜 차이가 많이 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 생각을 오히려 잘 역이용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딜교를 하는 척 하면서 일부러 미니언을 공격했다. 그렇게 경험치를 수급하며 잔뜩 겁을 먹은 척 연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더욱 의기양양하게 앞무빙을 치면서 날 견제하기 시작한다.
6렙을 찍자 더 심해졌다. 깊게 내 포탑 쪽으로 다가와 겁을 줬는데 난 그 행동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역으로 앞무빙을 쳤다.
미니언 한 마리만 죽으면 6렙이 되는 경험치였고 그 미니언의 피가 엄청 적게 남았다.
게다가 상대는 탈논, 나는 재드였다. 상성상 내가 절대적으로 우위였기 때문에 난 곧바로 딜교를 걸었다.
1렙이 낮은 내가 먼저 딜교를 걸자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W로 그림자 분신을 만들어 가까이 붙어 표창인
Q를 두 개 모두 맞췄다. 화들짝 놀란 탈논이 놀라며 궁을 사용하기에 그전에 미리 궁을 사용해 따라갔다.
결국 마지막 발악을오 벽을 넘어 도망가려고 해봤지만 벽에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피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점화 안 써도 되겠다."
내 판단은 정확했다. 벽을 넘어가면서 탈논이 시체로 변한다.
"공중에서 죽네."
난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리곤 빠르게 라인을 밀고
포탑 골드까지 챙기며 귀환을 눌렀다.
"근데 좀 잘하는 것 같네."
생각보다 상대방 탈논이 못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굉장히 수준급 실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서 놀 티어는 아닌 것 같았다.
"뭔가 좀 잔뜩 화가 났네?"
탈논의 움직임을 보아하니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낮은 티어에게 불의에 일격을 당해 성이 난 것 같은 움직임이라 작게 웃음이 나왔다.
탈논은 자신의 기동력을 이용해 로밍으로 나를 흔들려고 했지만 난 핑이나 한 발 빠른 합류로 그때마다 유연하게 대처했다.
"어디 탈논 같은 똥챔으로 1티어 챔에게 비비나?"
원하는 대로 플레이가 되지 않자 탈논은 채팅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대 여신님 원래 티어 어디세요?]
[원래 여긴데요.]
[부캐 아니시고요? 전적 보니까 여기 티어 아니신 것
같은데. 본캐 따로 있으신 거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저 이거 아이디 하나밖에 없어요.]
[대리네.]
난 마지막 채팅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대리라고?"
뭐, 내 전적을 보면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긴 하겠다만.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지.
[저 대리 아닌데요.]
[신고 안 할 테니까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대리 맞다고. 제발요.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저 사실 여기 티어 아니에요. 부캐거든요.]
난 탈논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원래 티어가 어디신데요?]
내 물음에 곧바로 채팅창이 자신 있게 올라온다.
[챌린저요.]
채팅을 확인한 나는 에에?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채팅을 쳤다.
[챌린저라고요? 아닌 것 같은데.]
상대방 탈논이 잘하는 것 맞지만 그렇다고 챌린저 실력까지는 아닌 것 같가 보였다.
"어디서 구라를 쳐. 손모가지 날아가려고."
아무리 그래도 챌린저는 아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챌린저는 저것보다 훨씬 더 잘해야 맞는 것 같다.
[하... 어이가 없네.]
[저도요.]
한 마디를 지지 않고 대꾸하자 탈논이 기어이 열이 받은 모양이다.
[저 챌린저 맞고요. 인증 가능합니다. 한국대 여신님도 인증 가능하십니까? 저 궁서체고요. 진짜 장난치지 마시고 대리 아니십니까?]
[아니라니까요. 저도 인증 가능해요.]
[대리 아니시라고요? 진짜로?]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아, 아니라고요! 대리 진짜 아니라고요. 그쪽도 진짜 챌린저 맞아요?]
[하. 정말 어이가 없네. 저 진짜 챌린저 맞고요. 전 시즌도 전전 시즌도 챌린저였습니다.]
[오케이. 서로 인증해요.]
난 진짜니까 거리낄 게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저게 챌린저라고?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대리 의심을 받는 건 이해하겠는데 아니라고 하는데 자꾸 대리라고 의심받는 건 기분이 나빴다.
저런 애들 인증 하라고 하면 도망갈 게 뻔하다.
[게임 끝나고 친추 주세요.]
[네.]
난 단답으로 대답하곤 게임에 집중했다. 자칭 챌린저라고 말하는 사람의 실력이 좋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넘사벽으로 잘하는 건 아니었다.
게임은 처음 사고난 이후부터 우리 쪽으로 계속 유리하게 흘렀고 미드 탈논이 열심히 흐름을 가져오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훼방을 놔서 번번히 실패했다.
"동선이 뻔히 보이게 움직이는데 이게 챌린저라고?"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친추를 걸면 안 받고 도망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생각했다.
결국, 승리! 라는 기분 좋은 소리를 들으며 게임을 끝냈고 난 게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상대방 탈논에게 친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전 BJ탈논이라고 아메리카TV에서 방송하는 사람이고요. 탈논으로만 챌린저 찍은 사람입니다.]
난 그의 말에 두 눈을 깜빡이며 곧바로 아메리카TV에 접속해 BJ탈논을 검색했다. 반쯤 혼이 나간 표정으로 한국대 여신님에게 채팅을 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짜 나잖아?"
화면에서 내게 채팅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채팅을 치고 엔터를 치가 고스란히 내 화면에 출력되는 모습이 보였다.
[아메리카TV에 들어오셔서 BJ탈논 치시면 저 나오니까 인증 바로 될 거고요. 본캐 인증하라고 하시면 하겠습니다.]
"헐... 대박."
진짜 BJ탈논이었다. 평소에 LOM과 관련된 너튜브를 많이 보기 때문에 탈논 장인 중 유명한 BJ탈논 또한 알고 있었다.
평균 시청자가 만 명이 넘어가는 BJ라고 알고 있었다.
"어? 이거 기회인가?"
난 눈을 빛내며 곧바로 채팅을 날렸다. 방송을 보니 내가 말이 없으니까 이것 보라고 대리라고 난리를 친다.
[네, 믿기진 않지만 확인했습니다. 저도 인증할게요.]
살짝 긁어주며 방송각이 잡히게끔 해줬다. 시청자들이 내 센스 있는 채팅에 다들 웃고 난리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믿기진 않지만 ㅋㅋㅋㅋㅋㅋ]
[하... 탈논이 챌린저 망신 다 시키네.]
[플딱이 한테 지냐. LOM 왜 하냐? 접어라. ㅋㅋㅋㅋ]
난 신나게 까이는 BJ탈논님을 보며 웃고는 내가 이 계정 외에 다른 계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인증했다.
눈을 연신 비비며 몇 번이고 확인하는 BJ탈논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대리 아니쥬?]
[대리는 뭔 대리냐. 그냥 발리거지.]
[플딱이한테 발리냐.]
[하... 물 챌린저 진짜.]
[창피하다, 창피해.]
BJ탈논은 초점을 잃는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 보더니별안간 눈을 빛내며 말한다.
"대리야. 저거 본인 아이디가 아니네. 다른 사람 아이디인데 자기 아이디인 척하는 거지. 그러니까 완전 대리네."
그 말에 더욱 호되게 채팅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야이XX야! 졌으면 졌다고 인정 좀 해라!]
[남자XX가 질척거리긴. 랄부 때라 이XX야!]
[미친XX 패배자가 말이 많다.]
[그만 좀 해요, 오빠... 저 오빠가 싫어지려고 해요.]
[탈논아... 인정하자. 플딱이 한테 진 거...]
"아! 난 인정 못해! 절대 못해! 저게 어떻게 플레야. 아무리 봐도 챌린저 실력인데. 저 사람 대리가 아니면 방금 플레이가 설명이 안 돼. 솔직히 플레 실력이냐 저게? 내가 못하는 거 그래 인정한다. 나 물 챌린저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라인전부터 운영까지 밀리는 게 말이 돼? 아니잖아. 솔직히 너희들도 의심 안 가? 이거 지금 나만 대리 의심 가? 봐봐. 전적 보라고 이게 갑자기 하루아침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실력이 이렇게 는다고? 말이 돼?"
BJ탈논은 내 지난 전적과 최근 전적을 비교하며 무척이나 타당성있게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자 채팅창도 조금씩 탈논의 편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맞아, 그건 그래.]
[솔직히 좀 대리 냄새가 나긴 함. 본주가 아닌 듯]
[친구거 대신 돌려주고 있는 건가?]
이거 외엔 다른 계정이 없다는 거로 일단 내가 부캐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부캐가 아니라고 하니 또 다른 의심이 싹을 튼다.
난 BJ탈논의 채팅창에 로그인해 채팅을 남겼다.
[이거 제 아이디 맞고요. 친구 거 돌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재미삼아서 하다가 하도 못한다고 욕을 먹어서 영상 찾아보고 프로게이머나 전프로 너튜브 보며 공부하고 진지하게 게임하니까 연승하고 있는 거예요.]
[어? 진짜 찐인가?]
[한국대 여신님 오셨네.]
[ㅋㅋㅋㅋㅋ 진짜 오셨네.]
[진짜 찐 맞나? 가짜 아니야? 진짜 한국대 여신임?]
[진짜 여신이신가요?]
[예쁘십니까?]
"다 조용히 해! 이 새끼들아! 야야, 매니저. 채팅창 얼려. 빨리 얼려! 저분 매니저 드려봐. 방금 저랑 게임하신 재드님 맞으세요?"
[네, 맞아요.]
"하,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재미 삼아서 하다가 욕먹는 게 싫어서 너튜브 영상 보고 공부 좀 했다고 챌린저를 이깁니까? 뭐 진짜 한국대 다니세요?"
난 조용히 채팅창에 답글을 달았다.
[네. 한국대 다니는데요.]
내 말에 BJ탈논은 헛웃음을 짓는다.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지가 한국대를 다닌다네."
한국에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은 한국대학교는 상위 0.1%라도 떨어질 수 있는 학교였다.
단순히 수능을 잘 본다고 갈 수 있는 대학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야야. 네가 한국대 다니면 내가 달풍선 만 개 쏜다."
[진짠데.]
"아, 그러니까 인증해 보라고!"
이거 시작하자마자 만 개 받게 생겼네. 난 곧바로 학생증과 함께 내가 인증한 계정의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도 함께 보냈다.
학생증과 주민등록번호, 거기다 내 주민등록증까지
꺼내 뒷자리만 가리고 모조리 보내 확실히 인증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대리라고 우기면 진짜 답도 없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봤는지 멍하니 쳐다본다. 몇 번이고 확인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는데 채팅창을 얼려서 잘 모르겠지만 난리가 났을 것 같았다.
방송 시작하기 전에 내게 이런 행운이 오나? 이거 잘 활용하면 누구보다 화려한 데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거 보여줘도 됩니까?"
무척이나 공손해진 그의 태도에 난 웃음이 나왔다.
[네, 상관없어요.]
그는 다시 한 번 내가 보내준 메시지를 보더니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별안간 침을 닦는다. 그 모습에 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침을 닦아?
"이게 정말 본인 맞으시면 대박인데."
얼렸던 채팅창이 풀리고 답답했던 사람들이 홍수처럼 채팅을 치기 시작한다.
[뭐야! 빨리 공개하라!]
[진짜 찐 한국대라고?]
[에이, 한국대가 무슨 옆집 개 이름이냐.]
[진짜 한국대?]
[한국대는 별로 필요 없다. 뒤가 중요해. 뒤가.]
[여신?]
[빨리 공개해라!]
[아, 미친! 현기증 나니까 빨리 우리도 보여줘.]
순식간에 도배되는 채팅창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엄청나게 빨리 올라가는 채팅창이 보이긴 하나? 난 눈을 깜빡이며 눈을 감았다 떴다.
"공개한다."
BJ탈논이 내가 보낸 메시지를 웹캠에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