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11. 스킬을 배웠습니다.
게임[S급] 스킬은 굳이 더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이 훌륭했다. 게임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었고 직접 게임을 한 내가 직접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실력이네."
내가 내 전적을 보면서 하니까 남들이 보기엔 굉장히 재수 없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어떡해? 사실인걸. 엣헴!
새벽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몸은 아주 생생했다. 다만 저녁을 먹고 계속 게임을 하느라 제대로 먹은 게 없어 배가 좀 고플 뿐이었다.
"하, 이제 그만해야겠다. 너무 오래 했어."
난 가볍게 몸을 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에 걸쳐 놓은 패딩을 입고 사용 종료 버튼을 눌렀다. PC방 이용 시간이 4시간 47분 남았다는 안내 음성을 들으며 난 PC방을 나왔다.
"으으으으!"
난 기지개를 기분 좋게 키며 패딩의 지퍼를 잠갔다. 밖은 아직 어둑어둑했고 겨울밤 공기는 제법 마셔줄만했다.
"뭘 좀 사가지고 들어갈까?"
언니가 나를 찾지 않은 거로 봐서는 아마 집에 늦게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면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는 경우인데 그런 경우는 내게 전화를 했다.
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편의점에서 한아름 사들고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도착한 나는 테이블 위에 놓고 언니가 혹시 집에 왔는지 궁금해 언니 방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언니?"
이제 이주 지났다고 언니라는 말이 잘 나온다. 난 그런 나 자신이 우스워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다시 노크를 했다.
"세연 언니."
노크를 하고 방 문에 귀를 대고 들어봤지만 반응이 없다. 난 문고리를 조심스레 돌려 문을 열어봤다.
언니 방 안에는 진득한 술 냄새가 가득했고, 침대 위에 언니는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어휴, 많이 마신 모양이네."
난 진동하는 술 냄새 때문에 코를 부여잡고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혹시 몰라서 편의점에서 해장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깨어나면 먹을 수 있게 잘 보이는 곳에 놓고 나는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와 삼각김밥, 사이다를 꺼내 먹었다.
"음, 맛있다."
난 야무지게 먹은 후 깔끔하게 테이블을 치워 놓고는
내 방으로 들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
시험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PC방에 가서 실컷 게임을 즐기고 집에 돌아와 잠들었다. 눈이 떠지긴 했지만 더 누워 있고 싶어서 멍하니 있다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5시 조금 넘어서 집에 돌아왔으니까 거의 9시간을 자고 일어났다는 말이었다.
"어후, 되게 오래 잤네."
난 이불을 걷고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갔다. 거실로 나가자 세연 언니가 식탁에 앉아서 내가 사 온 콩나물 복어국을 밥과 함께 말아 먹고 있었다.
"일어났어? 이거 네가 사 온 거야?"
"응. 괜찮아? 어제 술 많이 마셨어?"
내 물음에 세연 언니는 손가락을 작게 벌리며 말한다.
"조금."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난 언니를 흘겨보며 쳐다봤는데 언니는 그런 내 시선을 슬쩍 피하며 밥을 먹는다. 나한테는 술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잔소리하면서 본인은 진탕 마시고 왔으니 얼굴을 들 수 없으시겠지.
"적당히 마셔. 속 버리니까."
"알았어."
남자였을 땐 관계가 서먹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근하지도 않았는데 여자가 되고 나니까 뭔가 언니와의 관계가 확 변했다.
"내가 뭐 다른 거 해줄까?"
"아니야, 괜찮아. 너 시험은 잘 봤어?"
"당연하지. 무조건 과 수석이야."
내 자신만만한 태도에 세연 언니는 작게 웃더니 말한다.
"그래, 뭐. 계속 과 수석이었는데 이번에도 과 수석이시겠지. 그래서 진짜 방송 해보려고? 컴퓨터 사줘?"
난 언니의 말에 얼른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방송 장비도. 내가 잘 되면 언니한테 두 배로 갚을게."
"한 5년 기다리면 되는 거냐?"
세연 언니의 말에 난 눈을 가늘게 뜨며 째려봤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여웠는지 세연 언니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알았어, 컴퓨터랑 방송 장비 다 맞춰 줄 테니까 적당한 선에서 가져와 봐."
"진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세연 언니는 세상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휘휘 젓는다.
"그래. 얼른 가서 가져와 봐. 너무 비싸면 안 된다."
"알았어!"
난 얼른 핸드폰을 꺼내 컴퓨터와 방송 장비를 사기 위해 열심히 서치에 들어갔다. 사실 이미 봐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난 밥을 먹고 있는 세연 언니에게 바로 보여줬다.
"여기."
내가 대뜸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휴대폰을 내밀자 세연 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날 쳐다보며 말한다.
"뭐야? 벌써 다 정해 놓은 거야?"
"응."
어차피 1등은 나니까. 미리미리 정해 놓고 빨리빨리 사서 방송하는 게 좋은 거니까. 난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언니에게 두 손 공손히 건네드렸다.
언니는 견적을 쭉 보더니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 가격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면 돼?"
"응.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자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내 말에 세연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내게 핸드폰을 넘기더니 말한다.
"주문해."
"진짜?"
"어. 무통장으로 입금할 테니까 계좌만 나한테 보내."
"진짜지? 정말이지?"
"얘가 속고만 살았나. 왜 사주지 말까?"
"아니! 아니!"
내가 누나들에게 속아왔던 세월이 얼마인데... 그게 다 없던 일이 돼버렸다는 게 한편으론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이렇게나 쉽게 컴퓨터와 방송 장비를 얻을 수 있다면 그깟 아픔 아무것도 아니다.
난 행여나 언니의 마음이 바뀔까 빠르게 주문을 넣고는 언니에게 계좌번호를 보냈다.
"보냈어."
혹시 말만 저렇게 하고 입금을 안 해주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언니를 쳐다봤는데 언니는
밥을 먹으며 다른 한 손으로 틱틱 핸드폰을 누른다.
"보냈다."
언니의 말에 난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두손을 곱게 모으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언니, 진짜 고마워. 내가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게. 진짜, 진짜로."
"뭐, 뭐야... 너 울어?"
"아니, 안 울어."
찔끔 눈물이 나오긴 했지만 우는 건 아니었다. 하여간에 진한 감동을 느끼며 언니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원래 아무것도 안 해주던 사람이 사탕 하나만 줘도 감동 먹는 법이다.
평소에 게임을 좋아했다는 걸 언니도 알고 있었지만 내가 게임 방송까지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너 근데 진짜 방송하려고?"
누나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몇 번째 나한테 물어봤는지 모르겠다. 내가 게임 방송하는 걸 별로 안 좋게 생각하나 싶어 물었다.
"왜? 별로야?"
"아니, 그거 하면 악플도 달릴 거고. 좀 질 나쁜 사람들이 많다고 들어서. 네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지. 언니는 네가 뭘 하든 너 응원해."
언니의 걱정에 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멘탈 좋아. 걱정하지 마."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세연 언니의 말에 나도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학 동안에는 그럼 제대로 방송 해보려고? 너 하는 게임이 뭐였더라? 그... LOM인가? 그거 내 동기들도 많이 하던데. 그거 계급인가? 뭐 그런 거 있지 않아?"
"응, 있어. 나 플래티넘 4티어야."
"플래티넘 4티어? 그럼 높은 거야?"
"그럼, 엄청 높은 거야."
내 말에 세연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사람들이 좀 보겠네. 못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막내야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하니까. 거기다가 LOM인가? 그것도 똑똑한 사람이 더 잘하는 거 아니야?"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LOM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 더 잘할까? 뭐, 전혀 영향이 없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럼 잘하겠네."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게 정말로 내가 잘 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느낌이다.
그 믿음에 은근히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지었다.
"언니는 이거 먹고 좀 더 자야겠다."
초췌한 얼굴로 말하는 세연 언니를 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어차피 또 PC방에 가서 게임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난 좀 씻을 게."
"어디 나가려고?"
"응. PC방. 연습 해야지."
내 말에 세연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맞지. 방송하려면 연습해야지. 얼른 가서 열심히 연습해."
세연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가 속옷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이젠 거리낌 없이 옷을 훌렁훌렁 벗으며 나체가 된 내 몸을 바라봤다. 여전히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여체에 스스로 감탄한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몸매였다. 샤워기를 틀고 따듯한 물에 몸을 적시며 이젠 익숙하게 가슴이든 음부든 씻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샤워를 하고 난 수건으로 깨끗하게 물기를 닦아냈다.
하얀색 팬티를 입고 그 위에 능숙하게 하얀색 브라를 착용한다. 어째 알몸인 상태의 내 모습을 보는 것보다 속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더 야해 보인다.
"드라이기가..."
미용실이 아니면 머리를 말릴 때 딱시 헤어 드라이기를 이용한 적이 없었는데 이젠 필수가 됐다.
처음에는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해도 헤어 드라이기로 말리지 않고 나갔다. 그랬더니 머리가 엿가락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 이후엔 어지간히 바쁘지 않으면 머리를 반드시 말리고 나갔다.
위이이잉.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것도 남자보다 더 오래 걸렸다. 머리가 기니까 뭐 그건 당연한 거긴 했지만 나보다 더 머리가 긴 여자들이라면 나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얘긴데.
"진짜 대단들 하다."
긴 머리를 관리하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든 배로 시간이 들어갔다. 머리를 감는 것도 머리를 말리는 것도 머리를 만지는 것도.
"됐다."
난 머리를 말리고 나서 수건으로 한 번 더 완전히 물기를 제거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테이블에 앉아서 속을 풀던 언니는 다 먹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깔끔하게 테이블 정리를 하고 들어간 언니를 보며 난 피식 웃었다. 난 내 방으로 들어가서 어제 입었던 옷을 다시 입고는 PC방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난 이번엔 머리끈을 주머니에 챙겨 가지고 나왔다.
밤을 새는 건 무리라고 하더라도 꽤 오랫동안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은 PC방에서 해결하고
게임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안녕하세요."
카운터를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곤 안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PC방으로 들어가자 순간적으로 조용해진 느낌을 받았다.
어제 앉았던 자리가 비어 있어서 난 그곳에 똑같이 패딩을 벗어 걸어 놨는데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왔어! 왔다고!"
"어제 그 여자, 저 여자 아니야?"
"야야야야야! 저 여자 맞지? 어제 그 여자."
"대박... 몸매 진짜 좋다."
안 들린다고 작게 말하는 것 같긴 했는데 그중에는 들리는 말들도 꽤 많이 있었다.
어디를 가나 입에 오르내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예쁜 여자에게 시선이 가는 건 남자나 여자나 똑같았고 그건 몸매가 좋아도 마찬가지였다.
트레이닝 복을 입었어도 감출 수 없는 볼륨감이나 시원하게 뻗은 다리와 잘 발달한 골반과 예쁜 엉덩이 라인은 남자든 여자든 시선을 끌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여자가 되면 다 이렇게 시선을 받는가 보다 했던 게. 아, 내가 특별히 예쁘고 몸매도 좋아 시선이 몰리는 거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엄청 쳐다보네.'
처음엔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웠지만 내가 뭐 이상해서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여자로 변한 내가 매력이 있어서 쳐다보는 거라고 생각하니 뭔가 좀 뿌듯한 마음도 조금 생겼고.
또 뭐 내가 남자였기 때문에 그 시선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라서... 뭐, 물론 노골적으로 가슴을 보거나 몸매를 훑는 시선은 기분이 나빴지만.
"으쌰."
난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흔들며 화면을 켜곤 몸을 풀면서 미소를 지었다.
"자, 어제의 기세를 이어 오늘도 연승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