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10. 스킬을 배웠습니다.
게임[S급]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한국대 여신님께서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그냥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스킬 연계가 됐고 킬각도 눈에 보였다. 그냥 게임 자체가 너무 쉬웠다. 마치 내가 LOM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게임이 완벽했다.
만약에 AI를 통해 내 실수를 통계로 내라고 한다면 0%가 나올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이 게임을 위해 내 몸이 최적화된 느낌이었다.
무도[B급]이라는 스킬을 배웠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 게임을 하면서도 난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임을 읽는 기본적인 감각이 남자였던 나를 아득히 초월했고 각각의 챔피언에 대한 이해 능력이 뛰어났다.
챔피언 하나하나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알고 있으니 내가 플레이하든 남이 플레이하든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상성이 그냥 눈에 보이네.'
게다가 그 챔프와 상성, 게임 전체에 맞게 알아서 딱! 하고 떠올랐다. 가장 효율적인 템트리와 룬 특성이.
언제나 난 효율적인 위치를 잡고 있었고 판단에는 오류가 없었으며 이 모든 것들을 유리하게 이끌고 갈 수 있는 피지컬적인 능력이 있었다.
내가 플레이하면서도 이걸 피하네? 이걸 반응하네?
라고 중얼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니라 매 순간 매 경기가 그랬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게임을 못하는 게 더 어려웠다.
누구를 만나든 이 골드 티어에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었고 상성까지 무시하며 압도적으로 미드 라인전을 찍어 눌렀다.
간혹 멘탈이 좋지 못한 팀원들이 던져도 멱살을 부여 잡으며 하드캐리하고 있었다.
승률이 51%였던 내가 무아지경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했더니 63%가 돼 있었다. 물론, 게임 숫자가 적어서 승률이 빨리 높아진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해도 이 게임[S급] 스킬은 사기적이었다.
"이거... 거짓말 아니라 이 정도면 진짜 페이크 수준 아닌가? 잘 모르겠지만 쉽게 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자신감을 가져도 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플레이가 나왔다. 물론 골드에서 나온 거니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이건 의미가 없는 수준이 아닌데.
"데스가 0이잖아."
아무리 프로게이머라고 하지만 골드에서 7판을 하며 한 번도 안 죽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지만 난 그걸 해냈다.
"진짜 기계면 모르겠다."
정말 게임을 하는 기계라면 모르겠다. 반응 속도도 인간과 차원이 다를 것이고 받아들이는 정보도 그렇고 애초에 스킬 자체를 못 맞추는 일이 없겠지?
나도 그랬던 것 같은데. 스킬을 사용하면 못 맞추는 경우가 없었다. 그건 상대방이 시야에 보이지 않아도 그랬는데 예측으로 날리면 거진 다 맞았다.
꼬르륵.
"아, 배고파."
게임이 너무 잘 되니까 배고픈 줄 모르고 정신없이 했다. 뭐 좀 먹고 싶은 마음에 PC방 안을 봤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뭘 먹는 사람은 많이 않은 것 같았다.
바쁜 시간에 주문이 확 몰리는 것보다 이렇게 좀 덜할 때 시켜주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엄청 편할 거다.
물론, 사장이 아닌 이상 아예 시키지 않는 게 더 좋겠지만 너무 배고파서 그건 안 되겠다.
난 혹여 누가 주문할까 얼른 라면과 소시지, 음료수를 주문했다.
주문이 들어갔다는 소리가 들렸고 난 먹을 게 올 동안에 뉴스를 보거나 너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왔다.
"여기 있습니다."
"오. 빨리 왔네요. 감사합니다."
난 환하게 웃으며 라면과 소시지, 음료수를 받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알바생이 주진 않고 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난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안 주세요?"
내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표정을 짓더니 내게 건네준다.
"맛있게 드세요."
알바생은 내게 90도로 인사를 하더니 도망치 듯 가버렸다. 난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곤 이 PC방 사장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알바생들을 엄청 잡나 보다 싶었다.
"인사를 뭔 90도로 하고 가냐."
난 키보드를 밀어 놓고는 라면과 소시지. 음료수가 담긴 쟁반을 내려놨다. 너튜브에서 재미있는 여상을 찾아 틀어 놓고는 젓가락을 뜯고 라면을 휘휘 저었다.
PC방에서 먹는 라면이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잘 익은 김치와 단무지를 라면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가져다줬는데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난 라면을 먹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가 열이 확 뻗쳤다.
"아, 짜증 나."
여자가 되고 뭔가를 먹을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이 길어진 머리카락. 뭘 좀 먹어 보려고 하면 머리카락이 이 난리다.
생각이 짧았다. 머리를 묶을 수 있는 끈은 항상 필수로 가지고 다녔어야 했는데. 핸드폰이랑 카드 지갑만 달랑 들고 왔으니.
난 시무룩한 표정으로 먹을 걸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내고 있다가 할 수 없이 조금 불편하지만 왼손으로는 머리카락을 모아 붙잡고 오른손만 열심히 놀려서 식사를 했다.
살짝 웨이브 진 머리카락의 끝을 움켜쥐고 내가 라면을 먹자 불편해 보였는지 주변에서 날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엄청 쳐다보네."
불편하게 라면 먹는 거 처음 보나. 난 심드렁한 표정으로 쳐다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너튜브를 보며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면서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아, 배부르다."
식사를 마치고 쟁반을 놓는 곳에 가지런히 정리해서 두곤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프리시즌이라 승격은 하지만 승급전은 없어서 정말 고속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듣기론 이번 시즌에는 되도록 올렸던 랭크 그대로 플레이할 수 있게 패치가 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더 눈에 불을 켜고 다들 랭크를 올리고 있었다.
"아... 그렇다고 트롤이 없는 건 아니네."
난 한숨을 내쉬며 자기 팀 원딜이 못한다며 우물에서 나오지 않는 래오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런 트롤의 출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내 플레이에 충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딜은 게임을 무척이나 이기고 싶었는지 서포터가 없어도 킬을 내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열심히 CS 수급을 했다.
"원딜이 그래도 잘 하네."
같은 골드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골드는 아니었다. 동일한 골드, 동일한 티어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그 사이엔 실력의 차이가 있었다.
"원딜 잘하는데 서포터 왜 저러냐."
난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짤짤 흔들며 게임에 집중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을 뽑으라면 내가 트위스트 패이드를 뽑았다는 거였다.
글로벌 궁으로 빠르게 합류가 가능한 챔피언이었고 스펠 또한 텔레포트를 들고 있어서 분명히 한 번의 기회는 나올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회가 빨리 왔다. 상대 정글의 움직임이 바텀을 향하는 걸 확인한 나는 용을 먹거나 다이브를 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뭘까?'
난 상대 바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거 다이브다."
바텀 듀오가 라인을 빠르게 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난 빠르게 미드 라인을 밀고 바텀으로 내려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만 하더라도 큰 압박이 되기 때문이다. 난 내려가면서 혹시나 상대 정글이 용을 치고 있을 수 있어 와드로 시야를 밝혔다.
용을 안 치고 있다면 이건 분명히 삼거리에 있다고 봐야 했다. 우리 정글이 미드 1차와 2차 포탑을 지나
내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합류하고 있었고 난 상대 정글이 삼거리 부시에 무조건 숨어있다고 봤다.
난 뒤로 물러나 레드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상대 미드 또한 내가 밀어낸 미니언을 받아 먹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 나 포위하려는 움직임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내려갈듯 말듯 하다가 레드 쪽으로 방향을 틀자 부시에서 나왔고 상대 미드는 레드 위쪽으로 돌아 내게 올 거라고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2:1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난 상대 스킬을 유려하게 피한 후 반격에 들어갔고 때마침 합류한 우리 팀 정글의 가세로 오히려 반대로 2:1구도가 된 상대방 미드를 짤라 먹었다.
"좋았어."
원딜 또한 우리 쪽 상황을 보고 합류를 위해 움직였고 뒤늦게 상대 바텀 또한 합류하려는 움직임이 보였지만 내겐 궁이 있었다.
오히려 반대로 포위 당한 상대방 정글이 벗어나려고 해봤지만 내가 궁을 켜 추격하자 속절없이 3:1로 싸워 장렬히 전사했다.
"가자, 이거 가자."
난 바텀 핑을 연달아 찍으면서 원딜이 바텀 깊숙하게
박아 놓은 와드에 뒷텔을 탔고 탑 또 상황을 보더니 나를 따라 텔을 탄다.
허겁지겁 퇴각하던 바텀 듀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전 방향을 포위당해 죽고 말았다.
"오케이, 용 가자."
난 이번엔 용 핑을 찍고 원딜에겐 타워를 밀라고 핑을 찍었다. 원딜은 내 핑에 용을 오려다가 몸을 휙 돌려 타워를 치기 시작한다.
"그래, 포탑 골드 먹는 게 이득이야. 어차피 용은 우리가 먹을 수 있어."
몇 대 쳐주다가 난 빼라는 핑을 찍었고. 탑은 내 핑을
알아듣고는 바로 귀환을 누른다. 난 라인이 밀려 타고 있는 미니언을 빠르게 받아먹고 곧바로 귀환을 탔다.
"완벽하다."
방금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전세가 우리에게 많이 넘어왔다. 래오나도 그걸 알았는지 슬그머니 채팅을 치곤 합류한다.
[내가 여신님 때문에 한다.]
[와, 트페 진짜 개 잘하네.]
[트페 뭐임? 프로게이머임? 부캐인가?]
[피지컬이 장난 아니시네. 근데 여자분이심?]
난 그 채팅을 싹 무시하고 게임에만 집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유리한 게임이 뒤집어지는 게 너무 싫었다.
래오나가 다시 게임을 한다고 하지만 또 수틀리면 안 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염두 해 내가 더 성장하고 내가 더 커야 한다.
뭔가 확실히 승기를 이쪽으로 가져오려면 방금 같은 플레이가 한 번 더 나와야 한다.
"솔킬을 따보자."
게임도 기세와 흐름이라는 게 있다. 이 기세를 한 번 잡고 그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
그건 뭐, 어떤 스포츠든 마찬가지일 거다. 아무리 불리해도 한 번쯤은 뒤집을만한 기회가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유리해도 단숨에 패색이 짙어질 수 있다.
"집중하자, 집중."
난 주문처럼 집중이라는 말을 되뇌며 상대 미드의 솔킬을 따기 위해 기회를 노렸다.
"어? 뭐야?"
상대 미드의 솔킬을 따기 위해 잔뜩 노려봤던 눈이 풀린다. 긴장감이 일시에 쫙 빠지는 기분. 난 스스로 포탑으로 걸어 들어오는 상대 미드의 모습에 헛웃음을 짓곤 손쉽게 킬을 올렸다.
그렇게 몇 번이고 상대 미드는 내게 죽어줬고 난 그런 상대방 미드에게 넙죽 절하며 오는 족족 킬을 내 골드를 벌었다.
[트페 템봐라.]
[이거 이겼네.]
난 그 골드를 기반으로 협곡 전체를 누비며 바텀도 풀어주고 탑도 풀어주고 정글 싸움도 적극적으로 봐주면서 주도권 자체를 끌고 와버렸다.
나 혼자 게임했다고 해도 솔직히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번 게임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만들고 지키고 미끼도 되고.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
그건 팀원들도 알고 상대팀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미드 완전 캐리네.]
[진짜 한국대 다니심? 여대생?]
[한국대 여신님 캐리 감사요.]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긴 것처럼 행동하다니. 난 눈살을 찌푸리며 바론 핑을 찍었다. 시야가 없는 레드에서 무식하게 원딜과 레드를 서로 먹기 위해 견제하다 내게 둘 다 죽었기 때문이다.
[우오아우! 트페 딜 미쳤네!]
[그냥 삭제.]
[야야. 떠들지 말고 빨리 바론으로 모여. 여신님이 바론 먹자고 하잖아.]
난 채팅을 보며 피식 웃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얼른 와서 바론 좀 쳐라."
상대 정글이 없으니 뺏기는 게 더 어려운 상황이다. 대체적으로 우리 팀이 잘했고, 내 오더도 잘 따라서 엄청나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바론으로 오는 길에 시야도 착실히 먹어둔 래오나 덕분에 큰 위험 없이 바론을 챙길 수 있었다.
원딜이고 서포터고 다 잘하는데 왜 싸우고 난리야.
둘 다 잘 하네. 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귀환을 눌렀다.
뒤늦게 적들이 우리를 잘라보기 위해서 왔지만 강화 귀환을 끊진 못했다. 한순간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상대팀은 여전히 깨지 못한 미드 포탑을 밀기 위해 모였지만 난 미드에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어딜 감히 내 포탑을 깨려고."
세 명이나 있었지만 내가 텔레포트를 타자 포탑 철거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난다.
난 빠르게 라인 클리어를 하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어림도 없쥬."